어허 그래도 당신은 집사인디???....
최 종 희
나는 엉터리 집사다. 아니, 술/담배 하지 말라는 집사 취임 선서를 하나도 지키지 않으니까, 집사는커녕 신자 축에 들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교회에 꾸역꾸역 나간다. 그것도 격주로 일요일 오후에만 딱 한 번.
나는 점심을 얻어먹으러 교회에 간다. 점심 배식 시간에 맞춰 나가서, 밥 두 그릇 정도를 먹어치우고는 오후 예배 시간 내내 눈 딱 감고서 오수를 즐기다 오는 게 내 격주 일요일 일과다.
그렇게 해서라도 꼭 교회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래야 맛있는 점심을 얻어 먹을 수 있어서이고, 또 하나는 결혼 서약 탓이다. 연애시절, 내가 까마득한 시절에 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는 걸 실수로 흘리는 바람에 마눌한테 딱 걸렸고, 그게 처가에까지 알려지는 바람에 장로와 권사인 장인 장모님에게 다른 건 몰라도 교회 하나는 잘 다니겠노라고 약속을 하게 됐던 거다.
눈에 뭐가 씌면 뵈는 게 없는 게 아니라, 할 약속 못 할 약속 날름날름 해대는 이 나라 남정네들의 입 싼 죄에서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던 것. 하여, 나는 가벼운 사내 입에 따르기 마련인 벌을 지금도 엄중하게 받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건 몰라도 늙으신 분들한테 한 약속, 그다지 힘들지 않은 거시기 같은 건 지켜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당.)
암튼, 그렇게 해서 다니는 교회. 그 앞마당에서 지지난주에 나눴던 대화가 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대화의 동아리는 이제 갓 사십대에 접어든 남정네와 그의 처. 그리고 나와 내 아내. 넷이었다.
거두절미하고 그 사내의 말 몇 마디와 내 대꾸만 아래에 옮긴다.
- 제가요. 이십대 후반 시절부터 장가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거라요.
-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 방법이 있나요. 제 밑천은 교회 하나 욜심히 다니는 거밖에 없었거등요. 해서, 작 심하고 주정헌금(週定獻金)을 했지요. 제게 아내감 하나 점지해주십쇼 하면서, 진심으로요.
- 그래서? 아니, 그 정도였으면 당근 성공했겠구만?
- 그럼요. 성공했죠. 바로 저 사람이죠.
- 와아. 기도가 효과가 있었네???
- 근데요... 그때 제가 잘못 한 게 딱 하나 있었어요.
- 뭔디?
- 그때 제가 무리를 해서라도 매주에 이만 원씩 했어야 하는데, 주정헌금 액수를 만 원짜리로 했거등요......
그 순간,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늦은 나는 아내에게, 저게 무신 소리여? 하는 표정을 지은 것 같다. 왜냐 하면, 아내가 대답 대신 서둘러 내 엉덩짝을 꼬집으며 한 손으로 나머지 여인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 사내의 아내 표정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짓던 얼굴이 홱 돌아갔다. 1-2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잽싸게 돌아간 여인의 엉덩이가 순간적으로 사내 쪽을 향한다 싶더니, 흐윽 소리가 나왔고 이윽고 여인은 교회 앞 도로쪽으로 뛰었다. 얼굴을 가린 채...... 그리고, 몇 초뒤.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그날 입당 예배 드린 뒤 처음으로 앰블런스가 교회 앞에 와서 섰다. 아마 사내도 난생 처음으로 제 아내와 함께 앰블런스를 타봤을 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앰블런스를 올라타고 사라지는 사내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내 말에 의하면......
- 어허 그래도 당신은 진짜배기 집사인 줄 알았는디... 하여간 집사 노릇 하나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긴 힘든가벼. 어허 그거 차암.
[Oct.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