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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핸폰 두고(?) 노세!

[내 글] 꽁뜨

by 지구촌사람 2013. 4. 1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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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뜨]                            노세 노세 핸폰 두고(?) 노세!

                                                                                             최 종 희

 

 1. 나는 띨띨이다

 

   나는 시쳇말로 띨띨이거나 아님 게으름뱅이다. 그도 아니라면 석기시대 사람이거나... 핸드폰으로 보자면 그렇다.

  나는 아직도 핸드폰 하나 없다. 그래서 띨띨이다. 회사에서 밖에 나가면 꼭 가지고 다니라고 하나 준 게 있었지만 퇴근 때는 기를 쓰고 사무실에 두고 다녔다. 그걸 보고 얼마 전 다른 부서에서 쓰겠다고 해서 얼른 줘버렸더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 그처럼 전화기 하나 들고 다니는 걸 귀찮아하니 나는 영락없이 게으름뱅이다.

 

   그리고, 요즘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씩 필수품으로 챙겨 들고 다녀야 살아갈 수 있다는 판국에 그것 없이도 살아보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나는 어쩌면 석기시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그 축에 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디지(DG 또는 dizzy)'탈 (디지털 가면)이라도 챙겨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나는 개인 장비만 놓고 봐도 시대에 한참 뒤진다. 하지만, 눈치 하나는 여전해서 그런 나 스스로를 얼른 석기시대로 편입시킬 줄은 안다.

 

   하여 오늘은 내 처지를 스스로 위안하고 또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얘기판 쪼가리를 서너 개 펼쳐 보일까 한다.

 

 2. 여기 화장실입니다......

 

  여러 달 전의 일이다. 어딜 갈 일이 있어서 전철역으로 들어가면서 화장실부터 들르기로 했다. 회읜지 뭔지 때문에 나가는 길이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모임 장소에 가면 화장실 들를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회의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면 화장실도 못 가고 끌려 들어가서 내내 고생해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화장실도 못 가고 점잔 떨며 자리를 지키느라 속으로 고생만 해댄 회의치고 끝나서 그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는 건 별로 없다.

 

  소변기로 다가서는데 칸막이 안쪽에서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아 화장실이라니까요" 그리고는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화장실 안에서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내가 볼일을 보기 시작하는데 칸막이 안에서 밀양아리랑이 혼자 울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나오는 여보세요 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는 게 보였다.

   "지금 화장실 안에 들어와 있다 말입니다. 일도 잘 안 됐고요."

  그리고는 다시 조용했다. 그 말만 대꾸하고는 폴더를 덮어버린 모양이었다.

 

  몇 초나 흘렀을까. 다시 울린 밀양아리랑은 날좀 보소 부분에서 촉급하게 끊겼고, 뒤따라 나온 여보세요의 억양은 마치 상대방이 눈앞에 있으면 한판 붙을 형국이었다.

  상대방도 뭐라고 뭐라고 길게 얘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듣고만 있던 칸막이 안의 사나이가 한 마디 불쑥 내뱉었다.

  "아, 저도 급한 거는 압니다. 다 좋은데 말입니다. 나는 지금 화장실 안에 있고, 게다가 큰 것을 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제발 조금 기다려줄 수 없습니까?"

 

  그때쯤에는 내가 볼일을 다 마친 터라 나는 얼른 바지 지퍼를 수습하며 칸막이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그 안에 쭈그리고 앉아서 긴장하고 있을 사내의 모습을 떠올리자 소리내어 웃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에 매달린 끈이 화장실 안에까지 따라 들어와 어떤 사내의 숨통까지도 조이고 있는 터에...

 

3. 너 이누무 새애끼.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그 바깥은 바로 길가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이면 술 취한 목소리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자기 시계를 보고도 몇 시인 줄 읽어내지 못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쫓아가서, 제 시계를 들이대며 시간을 묻고 가는 재미있는 사람들도 이따금 있다.

 

   어느 날 새벽의 일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버릇대로 자리끼를 마시고 커피를 한 잔 타서 들고 어슬렁어슬렁 내 방으로 건너왔을 때다. 창밖에서 아주 큰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아주 격했다. 한잔한 끝에 누군가 하고 입씨름이 붙은 듯했다.

   하지만, 남자 혼자의 목소리만 높았다. 길갓집들에 모두 들릴 만큼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떤 여자가 된통 몰리고 있는 듯만 해서, 나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100여 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사내 하나가 한 팔을 허공에 대고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길 주변에는 어둠이 남아 있어서 사내가 누구를 그리 몰아대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방 안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채 안 된 시각이었다.

   나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갈지자걸음이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 집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분명 혼자였다. 그때 술에 젖은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너 이 새끼.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고 내 돈을 떼어먹어? 얀마, 마누라 팔아서 피땀 흘려 번 돈이야 이 새끼야. 그런 돈을 떼어먹어. 너 이누무 새애끼,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 지금 달려가서 당장 요절을 내버리고 말 거야."

   그때서야 허공을 자유롭게 휘젓고 있는 팔의 반대편에 있는 팔 하나가 사내의 귓가에 고정되어 있는 게 보였다. 사내는 핸드폰에 대고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나는 문득 핸드폰인지 뭔지가 없으면 그 늦은(?) 밤, 이른 아침에 술김에 생각난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핏대를 올리며 욕지거리로 마감하는 일이 줄어들었을까 어땠을까 궁금했다. 빈 거리를 독차지하고서 소리 지르고 있는 사내 하나. 그가 십여 년 전쯤에 저와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미친 놈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은 멀쩡한 세상에서 그렇게 <멀쩡한 미친놈>을 오늘도 양산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정말 많이 보고 시퍼쓰읍......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중년 사내 하나가 핸드폰 하나를 드디어 샀다. 우리처럼 핸드폰 사는 걸 끝까지 미루다가 샀는지, 아니면 사려고 벼르다 장만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핸드폰 사용법을 잘 모르면 이 시대의 왕따가 된다는 것 하나는 일찍 체득하고 있어서, 구입하자마자 그 복잡한 사용 안내서를 마스터하다시피 했다. 그 덕분에 구입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메시지를 보내는 것까지도 젊은애들 못지 않게 <숙달된 조교>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핸드폰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고,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바 전화방 데이트라는 것이었는데, 예전과 다른 것은 본인이 원할 경우 음성 변조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게 바꿔서 통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신청을 했고 한 달쯤의 시간이 흘러서는 어느 원숙하고도 고매한 여인 하나와 고정 메이트가 되는데 성공했다. 말투 하나면 들어도, 곰팡내 나는 아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상했고 우아했다.

   그는 신바람이 나서 틈만 나면 여인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는 둘이서 기가 막힌 커플이 될 수도 있다는 꿈에 부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드디어 두 사람은 약속 장소를 정해서 실물 데이트라는 걸 하기로 했다.

 

   사내는 약속된 시간보다도 훨씬 일찍 나가서 기다렸다. 약속 시각이 되자 그의 앞으로 화사한 차림의 여인이 어릿어릿 다가왔다. 그날따라 그는 도수 높은 안경이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할까봐 집에 벗어두고 나갔다.

   사내는 여인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벌어진 입을 가지런히 하느라 숙였던 머리를 들고 인사를 하려고 했다.

 

   "정말 많이 보고 시퍼쓰읍......"

'습니다'의 말꼬리는 뭉턱 잘렸다. 들릴 듯 말 듯한 짧은 신음소리를 삼킨 사내의 입에서 다음 순간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던가 어쨌다던가.

   그의 앞에 나타난 여인은 그의 아내였다. 머리와 차림이 평소와는 워낙 달라서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던가.

 

   그날, 우리 중에 두엇은 사이 사이 집에다 전화들을 해대는 것 같았다. 마누라 핸드폰에다 대고 전화했느냐고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5. 이건 보궐 선거용이야

 

   핸드폰이 하도 필수품으로 강조되다 보니, 움직임이 잦거나 일이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핸드폰을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나누어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당초 회사 돈으로 전화 비용이 지급되는 업무용과, 개인 비용으로 지급해야 하는 개인용을 구분하고자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는 프라이버시 유지용으로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아직은 더 많다.

 

   얼마 전에 전국에서 보궐선거라는 게 실시되었다. 그때의 일이다. 어느 후보 하나가 유세라는 걸 하기 위해서 이곳저곳 뛰어다니는데 어느 날은 도저히 양쪽 시간을 맞출 도리가 없게 되어 한쪽을 거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그는 머리를 써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한 군데는 녹음 테이프를 쓰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가서 떠들어봐야 얼쩡거리는 것은 유권자와 무관한 사람들일 때가 더 많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아무 소리나 스피커를 통해서 소리만 나면 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무실에 머물고 있던 비서에게 녹음기를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옛날부터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비서의 핸드폰에 이어폰으로 연결된 수신 상태는 음질도 아주 깨끗했다. 역시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 자신의 능력 앞에 기뻐하면서, 목소리로 그를 대신할 연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녹음 중간에 그가 보궐선거에 임박하여 개인용으로만 사용하려고 구입한 핸드폰이 울었다. 녹음을 잠시 중단한 그는 전화를 받았다. 짐작대로 그를 격려하는 그의 여인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는 녹음 중이라는 말을 하고는, 핸드폰을 들고서 하다만 녹음을 계속했다.

 

   다시 그의 개인용 핸드폰이 울었다. 그는 고개만 돌린 채로 걸려온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자기야, 아직도 녹음 안 끝났어. 이거 그래도 그 잘난 한 표 가진 사람들에게 나를 대신할 연설이야. 이따가 내가 하께. 끊는다. 사랑해."

 

   그가 그 시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개인용 핸드폰 번호를 비서를 통해서 알아낸 마누라에게 쥐어뜯긴 얼굴의 상처가 선거 전일까지도 말끔하게 회복되지 않아서라는 말도 있고, 녹음 내용을 전부 다 세심하게 확인하지 않은 채로 그걸 그냥 스피커로 연결시켜서 동네방네 틀고 다닌 비서 탓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띨띨이래도 좋고 게으름뱅이래도 좋다. 구석기 시대 사람이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웃어넘길 만하다.

   아직은 화장실에서 뭐 하고 있다고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 속 편하고, 새벽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혼자 소리 지르는 바람에 미친 놈으로 몰릴 일이 없으니 오죽 좋은 일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누라에게 얼굴 쥐어뜯길 일은 생길 턱이 없으니 이 얼마나 '널널한'* 일인가. 그건 모두 핸드폰이 없는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런 걸 죄다 아는 내가 누가 핸드폰을 준다고 덥석 받을 턱도 없다. 암, 없고말고. 나도 그쯤은 머리가 돌아간다. [15/06/2000]

*널널하다 : '널찍하다'의 전라도 방언. 하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살짝 룰루랄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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