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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나는 똥고집인가 외고집인가? : 나이를 먹는 일과 고집

멋지고 고급한 우리말

by 지구촌사람 2018. 5. 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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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똥고집인가 외고집인가? : 나이를 먹는 일과 고집

 

며칠 전 도서관 옆 간이 쉼터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어르신을 봤습니다. 반갑기에 다가가 자세히 들어보니, 멜로디 부분을 익히는 모양인데 소리가 약합니다. 가끔 넣는 추임새도 어색했고요. 한 손으로 잡은 하모니카도 불안해서, 서툴게 보였습니다. 하모니카는 두 손으로 잡고 약한 소리를 낼 때조차도 힘껏(정성껏) 부는 게 기본인데 말입니다.

 

대뜸 물었습니다. 예전부터 불었느냐, 아니면 최근 배우기 시작한 것이냐고요. 답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예전에 불었는데,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곳이 있어서 요즘 거길 다니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불평하더군요. 거기서는 하모니카를 깊이 물지 말고 입술만 대고 불라 한다면서요.

 

저는 그게 맞다고 했습니다. 음정을 정확하게 익히는 과정에서는 그리해야 한다면서요. 그 뒤에 깊이 물고 힘 있게 불면서 추임새도 넣고 하는 것이라면서, 정확한 음정 익히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거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습니다. 그런 분은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시간+정력의 낭비지요.

 

태극기 집회 참석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30대 후반의 여성도 봤지만, 대부분은 이른바 공짜 전철 카드를 지닌 어르신들(65세 이상)입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꼭 함께 들고 다니는 그들이 우리 기준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가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과에 속합니다. 어쨌거나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니까요.

 

제 또래 중엔 본좌로 더 유명한 허경영(1950~)을 흠모하는 사내도 있습니다. 허 본좌의 직업란을 보면 정치가(민주공화당 총재)이자, 자신이 설립한 본좌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로 돼 있습니다. 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김문수를 죽으나 사나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의 명언은 지구상의 77억 인구는 77억 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입니다.

 

                                                                    *

하모니카를 배우면서도 자신의 것을 고집하는 어르신, 태극기 집회파, 허경영파, 김문수파... 모두들 한 고집을 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집과 관련된 몇 가지 우리말을 들춰 봅니다.

 

옹고집(壅固執) :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 또는 그런 사람.

똥고집 : ‘옹고집의 속칭

외고집(-固執) : 융통성이 없이 외곬으로 부리는 고집. 또는 그런 사람.

땅고집(-固執) : 융통성이 없는 지나친 고집. 외고집 땅고집

왕고집(王固執) : 아주 심한 고집. 또는 그런 고집을 부리는 사람. 

황소고집(-固執) : 쇠고집(몹시 센 고집). ‘닭고집(-固執)’소고집/쇠고집의 놀림조 말.

생고집(生固執) : 터무니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

 

미안하지만, 태극기 집회파나 허경영파는 거의 옹고집 수준입니다. 심하게는 똥고집으로도 불리는... 김문수파는 땅고집/외고집/왕고집 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문득 어디에 속할까 궁금해집니다. 내 의견을 말하다가도 상대방 말이 옳으면 즉시 빨리 아주 잘 수긍합니다. 사과도 쉽게 잘합니다. 억지를 부리진 않으니 '옹고집/똥고집/땅고집/왕고집/생고집' 따위에서는 벗어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은근히 오랫동안 내 몸에 밴 판단기준을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외고집' 쪽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하겠네요.

 

나이를 먹는 일.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기준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낡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은 거른 채, 그냥 세월의 더께를 더하는 거죠. 그사이에 자신이 옳다는 믿음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그 위에 먼지가 쌓이는 데도, 그런 것들은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그게 고집을 쌓아가는 일이라는 것도요.

 

                                                    *

이런 고집들의 반대편에 있는 말들을 떠올려 봅니다.

 

너그러움 : 마음이 넓고 아량이 있음.

아량(雅量) : 너그럽고 속이 깊은 마음씨. 아량 도량

도량(度量) : 사물을 너그럽게 용납하여 처리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

용납(容納) : 1.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행동을 받아들임. 2.어떤 물건/상황을 받아들임.

용인(容認) : 용납하여 인정. 용납<용인.

관용(寬容) :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또는 그런 용서.

포용(包容) :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관용<포용

 

이 말들을 돌아보면 그 순서는 [아량 도량] 용납용인관용포용인 듯합니다. 포용 단계에 이르기 위한 첫걸음은 너그러워지는 것이라는 게 한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고집은 마음을 좁히는 일이고 너그러움은 반대로 마음을 넓히는 일입니다. 모두 자신의 안에 있는 것들이고, 생각만으로도 그리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쉽지가 않습니다.

 

                                      *

고집쟁이나 말이 안 통하는 이들에게, 그동안 제가 해왔던 짓거리들을 돌아봅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제 스타일이었던 듯합니다.


뒤돌리다 : 꺼려하거나 무시하며 상대하지 않다.

옆으로 제쳐 놓다 (관용구) : 관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다.

접어놓다 : 제쳐 놓고 관심을 두지 아니하다.

 

그러고 보면 제가 참 못된, 고약한 놈입니다. 마음을 넓히려는 대신에 마음 문을 닫아거는 일에만 몰두해 왔으니까요. 저 하나 편하자고, 제 맘속이 평온해지자고, 타인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온 거죠. 그것도 버릇 삼아서요. . 저는 진짜 나쁜 놈입니다. 고집쟁이들보다도 더요.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생각이라도 하게 되었으니까요. 돌아보니, 나이를 제대로 잘 먹는 일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 수 있으면 무룡태(능력은 없고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 소리라도 듣고 싶네요.

 

능력 따위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도토리 키 재기지요. 착하다는 소리만 들으면 되지 않겠어요? 어제 무룡태라는 말을 제 책상 앞에 써서 붙여둔 사연이기도 합니다.

 

                                                           -溫草 [Ma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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