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티브이나 일상 대화에서 걸핏하면 들을 수 있는 말이 ‘너무’다. 아무 데에나 그냥 갖다 붙인다. ‘너무 좋아요’가 그 대표선수다. ‘너무’ 대신 등장하는 다른 말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표현하자면 다른 말들은 들어설 자리조차 없이 밀리거나 압사당할 지경이다.
‘너무’를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이 말의 어감이 부정적임을 감안하여 긍정문에서의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국립국어원에서 이 말을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라는 중립적 의미로 규정하여 긍정적인 상황에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로도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너무 좋다’와 ‘너무 나쁘다’, ‘너무 기쁘다’와 ‘너무 슬프다’ 사이의 어감상 어색함은 극히 미세하거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너무’의 용례에서 부정/긍정의 가림막을 걷어냈다.
사진: '너무 심했다'의 사례로 인용된 카툰의 일부. 결말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곳으로: http://www.seoulwithu.kr/education/19?sct=
그런데... 그 후유증이 생각 외로 심각하다. 아무 데에나 마구 갖다 붙인다. ‘너무’ 외의 다른 말들을 떠올리려 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대신에 적절하게 쓰일 수 다른 아름다운 말들이 졸지에 내쳐지면서 이제는 점점 잊혀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엄청/대단히/매우/몹시/훨씬/아주/정말/전혀/끔찍이/많이/잔뜩/마냥/사뭇/마구... 등등.
아래에 그 실례를 보인다. 물론 ‘너무’를 그대로 써도 되는 예문들도 있다. 굳이 다른 부사들을 배치한 것은 그러한 문례에서도 다른 말을 찾자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다. 즉 그런 부사들에도 관심해 보자는 것.
언어가 그 사람이다! 어휘의 단출화/획일화는 사고의 협착화/협소화는 물론이고 몰개성화로 이어지면서 자동적으로 창발력 제어로 연결된다. 심하게 말하면 로봇화된다. 마냥 베끼고 따라 하기에만 골몰하다 보면 그런 길로 빠져드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들어가 있게도 된다.
[문례] ‘너무’ 대신 얼마든지 다른 부사로 바꾸어 쓸 수 있다.
○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너무 기뻐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엄청 기뻐요
○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오늘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 너무 슬펐어요 ⇒몹시 슬펐어요
○ 이곳이 너무(넘) 더 좋군 ⇒이곳이 훨씬 더 좋군
○ 너무 끔찍한 광경 ⇒아주 끔찍한 광경
○ 부모에의 효도는 너무 당연한 일 ⇒부모에의 효도는 극히 당연한 일
○ 너무(넘) 아름다웠던 여인 ⇒무척 아름다웠던 여인
○ 너무(넘) 아무것도 모르더군 ⇒전혀 아무것도 모르더군
○ 그녀를 너무 사랑했던 그 ⇒그녀를 끔찍이 사랑했던 그
○ 너무 귀여운 여인 ⇒정말 귀여운 여인
○ 너무 예뻤다니까요 ⇒진짜(로) 예뻤다니까요
○ 그동안 너무 수척해졌군 ⇒그동안 많이 수척해졌군
○ 너무 어려운 시험이었다 ⇒굉장히 어려운 시험이었다
○ 너무 먹었더니 배가 거북해 ⇒잔뜩 먹었더니 배가 거북해
○ 너무(넘)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를 ⇒하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를
○ 비 내리는 걸 보면 너무 차분해진다 ⇒비 내리는 걸 보면 마냥 차분해진다
○ 여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극적인 사건 ⇒여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
○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 ⇒놓치기에는 너무너무 아까운 기회.
○ 물이 너무 한꺼번에 불어났다 ⇒물이 왕창 한꺼번에 불어났다
○ 너무 맘이 아팠다 ⇒심히 맘이 아팠다
○ 너무 딴판 ⇒사뭇 딴판
○ 너무 함부로 만든 옷 ⇒마구 만든 옷
-溫草 최종희(4 Dec. 2022)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썼던 글편 하나도 있다. 면접이 가장 중요해진 요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대조직의 면접관들은 언어에서 거의 90% 이상을 읽어낸다. '너무'를 남용하면 면접에서 낙방이다. 삶의 실물 현장에서 지혜를 쌓아 온 면접관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만치 귀신들이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2040207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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