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마디 My Words 189] 싸가지 없는 딸은 우수한 자식이다!
싸가지(⇒사[四]가지) 없는 딸은 우수한 자식이다!
그렇다는 걸 알아채는 데에 부모들은 20년 이상을 허송한다.
-溫草 [Jun. 2018]
[해설판]
집사람은 고3 딸내미가 학교나 독서실로 가고 나면
때때로 긴 한숨을 내쉽니다.
오래 안에만 담아두었던 걸 한숨에 실어 날려 보냅니다.
그리하게 된 연유들을 저도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그 걱정들의 곁가지라도 정리해 줄까 싶어 묻습니다.
우리 딸내미가 뭐가 그리 못된 딸이냐고요.
아내는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습니다.
모두 제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요.
-제 방 청소 하나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요즘 아이들 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가끔 이불을 갤 때도 있다!)
-집에서는 책 한 번 잡는 것 못 보고, 그저 오직 스마트폰이다.
(딸내미는 주로 만화를 봅니다. 그것도 ‘자두’가 주인공인 순정만화 종류.
딸내미가 젤 좋아하는 과일도 ‘자두’이고, 인터넷 별명도 일찍이 ‘자두’로 해 둔 지 오래.)
-성질머리가 나쁘다. 롤러코스트처럼 오르내리며 바뀐다.
(잘 삐치긴 하지만, 금방 잘 풀리기도 합니다.)
-하여간... 싸가지가 없다고 해야 한다.
(내 볼 때는 부모의 기대치를 배반한다는 의미가 더 큼)
죽 늘어놓더니만, ‘싸가지’란 표현이 과했다 싶었는지
몇 번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려 보더니만
‘싸가지? 응, 사(四) 가지가 없어’로 바꿉니다.
때를 기다리던 저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사(四) 가지? 결국 네 가지만 없으니,
그걸 빼고는 다 잘한다는 얘기네유??’
**
얼마 전 진학 상담 차례가 된 집사람이 담임선생님을 뵀답니다.
선생님 왈, “진이는 학교생활도 즐겁게 아주 잘하고,
교우 관계도 매우 좋고, 인상도 좋고, 다 좋습니다.
선생님으로서 걱정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딱 한 가지, 공부에서 쫌... ”
(주 : 희한한 것이 손가락을 들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찍고 보니 똑같이 둘 다 왼손을... ㅎㅎ)
저는 그 말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딸내미는 흠이라곤 겨우 네 가지뿐이니
나머지는 죄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우수 품질’이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보탰습니다.
‘우리 딸이 그런 사람이란 걸 깨닫는 데
내가 거의 20여 년이 걸렸다’고요.
부모가 자식 과목을 공부하여 겨우 평균 학점을 받는 데에
그리 오랜 세월을 걸렸으니, 내가 부모로서 겨우 과락을 면한 거라고요.
**
사실 제가 우리 딸내미를 바라보는 시선 전체가 바뀐 것은
겨우 작년 하반기 때부터입니다.
몇 가지 흠만 빼고는 아주 빼어난 청춘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면서지요.
어느 분의 말씀을 듣고 새롭게 눈을 뜨게 된 덕분입니다.
하기야, 우리 딸내미 정도의 흠쯤이야 요즘 아이들 기준으로 보면 기본적(?)이고,
수능시험과 같은 것으로 점수벌레를 양성하는 현재의 교육 제도는
길어야 10년도 못 가서 스스로 붕괴될 것으로 봅니다.
인공지능과 통신기술의 발달 속도가 무섭고 그 결합이
지금도 우리 삶에 슬슬 (하지만 무섭게)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죠.
아마 5~6년 안으로 등교하는 일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등교를 한다면 공부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과 노는(함께하는)
사회화 과정을 위한 실무 연수를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 시대에 나는 우리 딸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임을
저도 짐작하고 있고, 딸도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 소외, 피부 접촉 부족, 정신 건강 문제, 사람다운 냄새 그리워하기...
제 짐작이 맞다면, 딸내미의 장래 직업은 이런 분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서 아주 잘해내고 있을 겁니다. 아주 잘.
울 딸내미의 최대 자산은 인간관계거든요. 아이도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너무 쉽게 깊이 잘 빠지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요.
그러니, 지금의 우리 딸내미가 미래의 빼어난 자산이 될 수도 있죠.
그리될 겁니다. 하여 저는 이렇게 외칩니다. (저한테만요. ㅎㅎㅎ)
싸가지(⇒사가지)만 없는 딸은 우수한 자식이다!
누가 뭐래도 울 딸, 이쁩니당. ㅎㅎ히. '딸바보가 돼도 좋아유.
아빠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친절하게 루즈까지 발라주는 건, 울 딸뿐입니다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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