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 편이 인생을 바꾼다 : 최인호의 <가족>과 나
-시가(cigar), 잡문은 오케이 낙서는 노, 죽을 때까지 생각이 새로워야
글 한 편이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인생 전체를 통째로 바꾸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될 때도 있습니다. 제게도 그런 것들이 좀 되지만, 그중 하나가 최인호의 <가족>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문학사에도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기준으로만 따져도 1975~2009에 걸쳐 자그마치 35년간 연재된 작품이죠. 나이 서른에 시작하여 65살을 넘길 때까지 <샘터>에 연재했습니다. 시작 당시에 큰딸 다혜는 4살, 아들 도단은 2살이었지만, 400회를 넘길 즈음에는 손녀딸 정원/윤정도 등장하고, 그동안 어머니와 큰누나/작은누이와도 작별합니다.
이 <가족>은 일기를 쓰듯 전개해 간 자서전적 소설입니다. 최장의 연재소설이자 자전소설이라는 점에서 희한(稀罕. 매우 드물거나 신기함)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연재소설사에 이런 기록이 다시 쓰일 수 있으리란 생각조차 안 듭니다. <현대문학> 연재에서 최장 기록인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도 완간까지 잡으면 1969~1994년간의 대장정을 거쳤지만, 그 기록은 25년입니다. 그보다 10여 년 이상을 더 나아간 <가족>의 기록은 희귀(稀貴. 드물어서 귀함)합니다. 그런 작가의 끈기와 정성은 단순한 의지나 노력의 차원을 훌쩍 넘어섭니다.
그리고 제게는 아주 각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제 인생을 간섭한 것은 아주 많지만, 그중 세 가지만 예를 들자면 -좀 웃기는 것들이기도 하지만요- 이런 것들입니다. 시가를 제대로 피우게 되었다는 것, 잡문은 써도 낙서 글은 긁적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각이 새로워야 한다...입니다.
1. 시가를 피우는 취미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니까 아마 1975년의 글이었던 듯합니다. <시가를 피우는 취미>라는 소제목의 글을 대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던 시기라면 예정에도 없이 느닷없이 입대하게 된 군대 시절 초창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붉은 글씨’를 매달고 간 문제 사병이었는데, ‘붉은 글씨’라는 건 각개 병사에게 따라 다니는 병무청 서류, 곧 병적카드에 붉은 글씨로 ‘특별 입대’ 사유를 기록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 바람에 저는 전방 보병사단의 최말단 부대에 배치되었고, 처음 몇 달은 병사 중에서도 가장 하급 보직인 ‘뻬치카당번병’(줄여서 ‘뻬당’)도 했습니다.
옷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탄가루를 뒤집어쓰게 되어 식당에 가도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뻬당’들에게는 버려도 되는 여벌의 옷이 더 지급되는데, 당시에는 군복의 물이 잘 빠져서 희끄무레한 그런 것이었습니다. ROTC 단복 중에서도 유일하게 금실로 수놓은 견장이 달린 걸 입고 다니다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병사가 된 거죠. 가족들이 그걸 봤다면 즉석 울음바다가 됐을 겁니다. 잊지도 않고 두 달이면 한 번씩 꼬박꼬박 문안차(?) 저를 찾아오는 보안대 병사 덕분에 세월의 흐름을 챙기는 일은 아주 손쉬웠습니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21269833967
인생은 새옹지마라죠. 그런 세월을 한 해 넘게 보내고 나서, 그 뒤로는 이른바 ‘룰루랄라’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게 저를 살린 겁니다. 1975년도쯤에는 제 행선지만 제대로 알리고 나면 하루 종일 내 멋대로 해도 됐습니다. 제대 후 그 해에 시행된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할 정도로 행시 책자들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게 그때였고, <가족>을 대한 것도 군에서였습니다.
그중 하나의 소제목이 <시가를 피우는 취미>였던 듯합니다. 글 속에 담긴 시가(cigar)의 효용에 대한 칭송과 즐기기 과정이 마치 신선놀음만 같아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단번에 제게 인각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삶에 여전히 살아 있을 정도로요.
요약하자면, 그 뒤 해외살이를 여러 해 하면서 담배 파이프를 여러 개 샀고 폼도 잡아봤지만, 자꾸만 중간에 불이 꺼져서 파이프와는 오래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최고로 치는 불가리아산 장미 뿌리로 만든 파이프 몇 개는 아직도 가지고 있고, 파이프 끽연 용구 세트도 가끔 꺼내어 손질은 합니다. 그랬는데도 시가에는 쉽게 중독이 됐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몇 번 금연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시기에도 어쩌다 시가를 즐길 기회가 되면 했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가의 추억은 강화도인가 어느 곳의 펜션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뒤로 젖혀지는 장의자를 꺼내다 놓고 반쯤은 누운 자세로 시가를 피워 물고서 지는 해를 바라보던 때의 기억입니다. 물론 아주 기분 좋게 술 한잔한 뒤였고, 제 옆에는 가장 이뻐 보이는 모습의 집사람도 함께였죠. (젊은 시절, 술 한잔한 뒤에 보이는 애인의 모습이야 죄다 천상의 선녀 이상이잖습니까요. 하하하.)
시가는 와인 한잔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굳이 주종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소주든 막걸리든 그저 적당히만 마시면 됩니다. 시가는 막힌 곳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연 풍광과 함께하고 거기에 바람결이라도 얹히면 최상입니다. 하다못해 창문을 통해서라도 바깥 풍경과 함께해야 次善에 듭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막힌 곳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할 뭔가는 꼭 있어야 합니다. 고즈넉함에 평온을 더하는 촛불 하나, 은은한 불빛에 드러나는 그림 한 장, 하다못해 실루엣만으로도 마음이 달뜨는 여인 한 사람...이라도요.
시가를 즐길 줄 알게 되면 흡연자/비흡연자를 가리지 않게 되죠.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지 말라, 거쳐 가는 연기 정도는 마셔도 된다... 어쩌고 하는 식으로 복잡하게들 얘기하지만, 어느 정도 피워보면 스스로 깨닫게 되고, 또 사람마다 즐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는 건 시가에 대한 무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만 말하고 싶습니다. 석양을 바라보며 의자에 절반쯤 누워 술 한잔한 후 시가를 즐기는 일처럼, 지상낙원은 없다고요.
2. 잡문은 써도, 낙서 글은 긁적이지 말라. 그저 긁적이고 보는 게 낙서다
그 뒤로 <가족>을 가끔 대하면서, 어느 결엔가 저절로 쌓이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최인호가 쉽게 긁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작품도 낙서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걸요. 처음에는 그래도 잘 나가는 작가의 글이니 그 이름에 어울리게 쓰기 위해서라도 그리하는 것이겠지 했지만, 계속 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결코 쉽게 긁적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편(斷片)들을 정리한 것이긴 하지만 매 편이 완결된 하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생각이 잘 정리되고 착점이 또렷한 것들이었죠. 작가가 여전히 퇴고를 빠뜨리지 않은 것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낙서처럼 긁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에서 ‘연재소설’이라고 명토 박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낙서는 일필휘지(一筆揮之)가 특징입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거침없이 적습니다. 일견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낙서라 해서 아주 짧은 것만인 건 아닙니다. 심심찮게 길게 적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서는 다시 손보는 일이 없습니다. 벽에 쓰든, 종이에 남기든... 낙서는 처음부터 퇴고와 차단된 운명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쓰는 이의 손길/관심에서 즉시 버려집니다.
메모로 남은 것들은 언젠가 주인이 돌아와서 완전체로 만들기 위해 손질을 가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낙서로 태어난 것들은 그 주인이 한때의 기분이나 생각을 담아서 어딘가에 버리기 위해 긁적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버려질 사생아의 운명을 타고난 것, 그것이 낙서의 근본적인 속성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최인호의 <가족>을 대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 최인호는 저런 글조차도 낙서로 여기지 않는구나. 아니, <가족>이란 존재들은 낙서에 담길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짧은 단편의 글에도 정성을 다하는구나... 낙서란 어찌 보면 그 주인이 처음부터 그 상황을 가벼이 여기거나 다시 돌아보지 않을 것들을 담아내는 것, 그래서 낙서는 긁적인다 하고, 글은 쓴다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은 그 뒤 제가 잡문을 긁적이게 되면서 더욱 굳어졌습니다. SNS 활동을 하면서도 90% 이상은 그런 생각으로 긁적입니다. 낙서랄 수 있는 것들은 내용 자체가 얇고 가벼운 것들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버려도 좋은, 잊혀도 좋은 것으로 삼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낙서는 최소한으로 줄이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제 메모지에만 남겨진 채 여러 해를 넘긴 것들이 대학노트 기준으로도 여러 권이어서, 작년인가에 열 권 넘는 것들을 독한 마음으로 재활용쓰레기 장에 내다 버린 적도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21211264736
그러다 보니 나쁜 버릇도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대하고 이건 낙서하듯 썼구나, 그저 긁적이기에 바빴구나 싶은 것들이 보이면 안 좋은 글, 품질 미달의 글로 여기고서는 그런 게 버릇으로 굳어진 이들의 글에는 아예 관심을 하지 않게 된 일입니다. 못된 버릇이라는 거, 압니다. 모든 이들이 글쟁이일 수 없고, 글로 남기거나 그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그마저도 해내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에 비하면 고품질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긁적이기에 더 바쁘다는 핑계로 저의 그런 못된 버릇을 합리화하곤 합니다.
3.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각이 새로워야 한다
<가족>의 특징은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 출연자들이 작가의 가족들이고요. 그래서 그 출연자들과 독자들은 이미 꽤나 익숙한 편입니다. 그런데도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모습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읽힙니다. 작가의 시선이 그런 쪽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작가가 이끄는 대로 그들의 새로운 모습에서 어떤 의미들을 꿰차게 됩니다. 그 바람에 최인호가 알게 모르게 퍼뜨린 멋진 말들도 꽤 됩니다. 안치환의 노래 제목 덕택에 제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처럼 30여 년을 훌쩍 넘기는 그 긴 세월 동안 그걸 대하는 독자들이 하나도 지겨워하지 않는 것은 매 편마다 새롭게 들어가 있는 작가의 착점 덕분입니다. 즉, 늘 대하는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읽어냅니다. 그것은 세상의 온갖 사물에 대해서 새 의식의 눈을 뜨는 일과도 같습니다. 생각이 새로워져야 새롭게 보입니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온 세상까지도요.
제가 작가 최인호에게서 크게 배운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취향(?)에서는 닮은 꼴이어서 쉽게 감염됐는지는 몰라도, 저는 하루에도 열 가지 넘게 메모를 해댑니다. 어느 때는 노트 두어 페이지가 1분도 안 돼서 가득 찰 정도로 아이디어/착점이 샘솟을 때도 있습니다. 겨눔의 방향과 깊이가 조금만 달라져도 그리됩니다.
오늘 아침 문득 이 글을 긁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가족’이란 낱말을 떠올리자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가장 먼저 새치기하듯 자리를 잡은 내 가족들을 쓰다듬다가, 최인호의 <가족>에까지 생각이 부풀어 오른 덕분입니다. 그래서 그것마저도 메모 몇 줄에 담아두면 또 언제쯤이나 꺼내게 될지 몰라서, 쇠뿔도 단 김에 빼라는 생각에 긁적여 봤습니다.
이 잡문, 낙서 아닌 것 맞죠? 오늘이 벌써 올해의 남은 반쪽, 하반기의 첫날이군요. 여러분들께서도 새 생각 하나쯤을 마련하여, 새로운 ‘가족맞이’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 새 ‘가족맞이’가 새로운 ‘주변맞이→사회맞이’로 이어지는 듯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 생각이 새 삶을 일궈내거든요. 새로 생각해 보기가 그 씨앗 뿌리기죠.
-溫草 [Ju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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