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족’ 다음은 뭘까 : 혼잠족 →혼밥족 →혼술족 →혼?족
통계청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1인 가구가 10명 중 3명꼴이란다. 1인 가구는 당연히 모두가 ‘혼잠족’과 ‘혼밥족’이려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재주 많은 이들도 있다. 밥때가 되고 시간이 되면 한곳에 모여 먹는 이들도 있고, 잠자리가 늘 비어 있는 건 아닌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같은 파트너 유지 시간이 사람마다 길거나 짧아서 몇 날에서 몇 년씩으로 크게 차이가 있지만.
그런 혼잠/혼밥족은 집에 있을 때만의 이름이다. 일터에서나 사회생활에서는 여럿과 어울린다.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에게 SNS나 소규모 소통 모임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다. 의식의 숨쉬기 활동. 외로움을 또 다른 외로움들과 겹치거나 나누기 위해서다.
혼술족은 1인 가구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수많은 장점(?)들에 이끌려 선택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므로. 시간과 비용 절약되지, 옷 고르고 갈아입는 수고 생략되고, 구두 약 안 바르거나 운동화 털지 않아도 되고, 교통카드 안 빠뜨렸는지 되돌아서지 않아도 된다. 상대/타인 신경 안 써도 되니 입과 귀도 안 피곤하고, 나처럼 만고의 독신 처녀 할매 싱글이가 옆에서(혹은 무릎 위에서) 가끔 꼬리와 눈으로 나를 유혹해 오더라도, 나는 집 안의 나무/꽃 화분들에게 곁눈을 팔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중극 사극이나 액션 활극을 감상해도 되고, 무엇보다도 한눈판다고 꼬집힐 일도 없다. 일타 4매의 수확!
그럴 때면 내가 술 한잔하고 있는 안방으로(내 TV는 안방에 있고, 아내의 것은 ‘皇后室’에 있다) 들어오는 빛 고운 햇볕도 고마워지고, 베란다와 안방 사이에 그 흔한 커튼을 치지 않은 것도 아주 잘한 짓이라는 생각을 한다. 베란다에 두기에는 여리거나 내한성이 약한 것, 공기정화용 산세베리아 등 화분 대여섯 개를 티브이 거치용 괴목 탁자 위에 두었는데, 녀석들에겐 햇빛이 늘 필요해서.
혼잠/혼밥족은 당연히 1인 가구일 듯싶지만, 막상 카드를 젖히고 보면 엉뚱한 것도 나온다. 삼팔 광땡인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껍데기뿐인 삼팔따라지일 때처럼. 외형으로는 멀쩡한 다인 가구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혼잠/혼밥도 드물지 않다. 바로 나 같은 사람. 자고 깨는 시각에서 두세 시간 차가 나고,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는 이와 겨울에도 홑이불이면 족한 사람, 그리고 티브이 채널이 완전히 다른 부부... 등의 잡다한 이유가 가세하면 혼잠족이 된다. 그 위에 10여 년이라는 세월의 더께가 압착해 오면 혼잠족의 명패는 금속 주물로 형성된다. 더구나 나는 여러 해째 혼밥족이다. 밥 먹는 시간이 최소 30~40분 걸린다. 저녁 식사는 기본적으로 50분. 천천히 오래 씹기도 하지만, 막걸리 반 병의 반주가 고정 메뉴라서다.
그런 혼잠/혼밥족인 내가 이젠 주말이면 점점 혼술족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다 귀찮아져서다. 특히, 잔을 부딪치는 사람(들)과 말귀가 안 통하는 일이 되풀이되면, 돌아오는 길에서 ‘내가 오늘 왜 또 이런 낭비 짓을 했지?’ 하는 낭패감과 열패감이 되풀이된다. 내가 ‘욜심히’ 무소유를 얘기했음에도(그땐 또 남들 따라 고갯짓도 잘하면서 탐욕파들을 욕도 하더만), 나중에는 슬슬 자기 자식/차/집 얘기로 가거나 남의 얘기를 빌려서 하는 듯하면서 끝내는 그 냄새 나는 명예욕/소유욕/성취욕... 따위와 연결되는 끈을 기어이 잡아끄는 이들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그런 탐욕들이 내겐 악취가 된 지 24년째다.
게다가 가방끈 짧은 것을 막무가내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나는 가방끈이 짧든 길든 그런 덴 관심 없다. 다만 독서량이 빈곤하거나 드라마나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주종인 사람들과는 내심으로 굵고 선명한 금을 그어놓는다. 그리된다. 내 시간과 정력을 들여 내 귀를 더럽힐 까닭이 없으므로. 그 정도의 바보는 면하자고 작심한 지 좀 된다. 다만, 태극기 집회파와 같은 꼴통 보수들과도 딱 한 번은 자리를 같이한다. 그네들 머리통 모양만이라도 우리와 조금이라도 닮은 데가 있나 심히 궁금해져서 1회 관찰용으로만.
악취를 풍기는 이들은 심지어 손주의 영어 유치원 얘기를 하면서, 그 웃기는 영어 중증 중독증 환자 모습을 자랑하기도 한다. ‘모국어처럼 배우는 영어!’를 내세우는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면서... 아이고야. 그 유치원은 나도 아는 곳. 원장이 소유한 5층 건물 전체를 유치원으로 쓰고 있고, 교사들만도 20여 명이 넘는다. 그런데, 영어 교사는 단 2명. 다른 선생들은 외국인만 와도 슬슬 피한다.
아이들은 ‘피애노우, 버내^너, 오린쥐’ 따위를 소리 내기는 하는데, ‘나 쉬하고 싶어요. 배고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집에 갈래요. 아빠한테 전화해 주세요’와 같이 꼭 필요한 간단한 말조차 해내는 아이들은 없다. 그런 사정은 그 유치원 교사들이나, 그 유치원을 고집하고 보내는 근사한(?) 엄마들, 아이들의 조기 유학을 위해 더 열심히 안 잘리게 일하겠다고 자식 앞에서 결의를 다지는 아빠... 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영어 낱말 몇 개를 내뱉는 걸, 모국어 영어 교육으로 자랑해대기에만 바쁘다. 영어만 통하는 곳에서 죽어갈 때조차도 '나 죽어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소리 하나 못하려면 뭣 때문에 영어에 그리 환장하다시피 해야 할까(나는 지금도 중.고교와 대학까지 자그마치 8년씩이나 영어책을 끼고 살아온 이들이 어째서 예전의 중학교 2학년 수준의 영어조차 구사하지 못하는지, 그게 참으로 불가사의다. 중2 수준의 영어 구문이면 전 세계 어딜 가서도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인데, 나가서 입도 뻥끗 못하는 걸 보면 이른바 그 ‘가방끈’이 영어 과목에서만 뚝 끊어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엉뚱하게 영어 얘기에서 열을 냈다. 혼술 얘기로 원위치!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점점 더 내가 혼술을 사랑하게 돼 간다는 것. 혼잠/혼밥족 탈피는 고사하고 혼술 사랑족으로 역발전하고 있다. 모두들 ‘앞으로 발전하고 위로 향상시키자’ 쪽으로 뛰고 있는데, 나는 역주행 핸들을 거머잡고 있다. 거기에 액셀까지 밟으면서. 이것참...
혼자서 궁금해한다. 나 같은 혼술족 다음에 나올 ‘혼?족’의 명칭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미 그 이름들을 얻었을지도 모르지만, 알게 되는 게 겁도 난다. 예전에 석기 시대를 만화처럼 그린 영화에 나온 모자란 아빠가 아이들에게 되풀이하던 말처럼 : ‘나는 늬네 엄마 말고는 다른 부족의 여자를 알고 싶지 않아. 더 겁나게 될까 봐서...’
<영화 속의 이 가장을 난 엄청 좋아한다. 동문서답이 주특기일 정도로 약간 '띨한' 구석이 날 닮아서. 동병상련. ㅎㅎㅎ.>
하기야, 난 석기시대와 친하다. 친구나 편한 이들이 내게 ‘넌 석기시대에서 온 사람 같아’라고 자주 말한다. 며칠 전 텃밭으로 나갔을 때 필요한 도구가 고장 났을 때, 주변의 나무로 말코지(가지가 여러 개 돋친 나무를 짤막하게 잘라 다듬어 만든 나무 갈고리)를 만들어 응급조치를 했다. 그런 임시방편의 도구 제작을 대충 잘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집사람이 하는 말, ‘당신은 딱 석기시대에 살면 엄청 인기였을 텐데...’
거기에 난 이렇게 대꾸하면서, 괄호 안의 말은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렸다 : ‘인기는 무슨... 솜씨 좋으면 일만 죽도록 많아지는 겨.’ (근데, 그 말을 잘 새겨보면 석기시대가 아닌 지금은 인기가 전혀 없다는 말이렷다???)
-溫草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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