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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의 '안비밀'인 비밀 몇 가닥] 2022년에는 “체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 용감한 여류 작가, 佛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22. 10. 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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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의 '안비밀'인 비밀 몇 가닥] 2022년에는 “체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 용감한 여류 작가, 佛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매우 독특해서 그 상을 받을 만한 작가 아니 에르노(1940년생)에게 돌아갔다. 작가는 모두가 개인적으로는 독특하기 마련이어서 문학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독특할 때 그 의미가 오롯한 법인데, 에르노는 이 항목에서 단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수상 작가에 대한 요약 평가 중 가장 적확한 것은 그 상을 수여하는 스웨덴의 한림원 발표 내용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상 작가들에 대한 압축 평에서 한림원의 그 평가 이상으로 잘 요약된 것은 접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스웨덴 한림원의 요약은 이렇다: "에르노는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다. 그는 작품을 통해 젠더,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하며, 길고도 고된 과정을 통해 작품세계를 개척해왔다”

노벨문학상위원회 위원장 안데르스 올손의 보완 평은 이렇다: “에르노의 작품은 비타협적이며, 평이한 언어로 깨끗하게 조탁됐다. 에르노는 굉장한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당신이 누구인지 볼 수 있도록 부끄러움과 굴욕, 질투, 무력함 등을 묘사하여 계급적 경험에서 오는 고통을 드러낼 때, 그는 무언가 훌륭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성취해냈다.”

하지만, 이들 평가의 어디에도 에르노가 외쳐 온 '체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다'를 직접 거론한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임의로 밑줄 처리한 부분들에 용해돼 있다. 아울러 온갖 비유를 배격하고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백하게 써내려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위의 평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에르노의 수상은 자전적 체험을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담담하고 '정확'하게, 일부 사람들의 과잉 노출증 작가라는 비난 따위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인 그 용기와 고된 역정의 선택을 높이 평가한 덕분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그녀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인류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나 할까.

에르노는 글쓰기에서 거의 모든 작가들이 지향하기 어려운 '정확한 글쓰기'를 고집하고 그걸 끝까지 지켜냈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게 독특한 작가다. 이번 수상은 그녀의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에 담긴 말 “내가 유일하게 ‘정확하다’고 느낀 글쓰기는 표출되는 감정도, 교양 있는 독자와의 어떤 묵계도 없이 오직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화하는 방식이었다”를 스웨덴 한림원에서 알아준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래 기사 중 2010년 이후의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명단이 나온다. 그중 세 사람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한다.

2010년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내가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2000년대 이전부터 나는 그가 장래의 수상자로 꼽힐 것이라 예측해왔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0041416803. 이 글은 이웃 공개로 한정해 놓은 글이다.]

2016년 밥 딜런이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엄청 기뻤다. 그 노래 <Blowing in the Wind>가 일찍이 내 18번의 하나가 된 것은 그 가사가 정말 멋져서였으니까(내 기준으로는 심오한 인생 철학을 그처럼 간명하고 쉽게 처리한 것이 놀라워서, 단번에 껴안았던 노래다).

2017년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54년생. 石黒一雄)의 국적은 영국이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6살 때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 후 생활인으로의 필요에 의해 28살에 영국 시민권을 선택한 일본인이다. 집에서는 일본어를 상용하면서 글을 영어로 쓰는 동서양 합체 작가다. 일본적 정서를 영어적 표현으로 승화시켜 보편성을 획득한 작가인데, 그 뿌리는 당연히 일본이다. 부커상을 받았던 작품의 주인공은 전쟁과 파시즘에 환멸을 느낀 영국인 집사지만, 그 집사에 투사된 정서는 일본의 전후세대로서의 일본인 정서이듯이...

이 가즈오 이시구로까지 포함하면 일본적 정서가 노벨문학상으로 인정된 사례는 세 번째가 된다. 1968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4년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에 이어서. 첫 수상 후 26년 뒤에 두 번째, 그리고 다시 23년 만에 받았다. 우리나라는 현대문학사 100년을 넘기고도 한 사람도 없다.

노벨문학상에 대해서 우리나라만 갖고 있는 오해 두어 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한글로 쓴 작품은 심사위원들이 읽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영문 번역이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답은 아니다다. 일단 추천사를 읽어 보고 심사할 만하다고 여기면 위원회 측에서 번역해서 읽어본다. 동양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타고르의 작품은 영어가 아닌 인도 방언 중의 하나(벵골어)로 쓰였다.

또 작가에 대해서 상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전통적으로는 특정 작품에 대해서 시상해 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 <설국>에,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 체험>에, 윈스턴 처칠의 <세계제2차대전>(1953)에 상을 주는 식이다. 말이 많았던 밥 딜런의 수상도 가수에게 준 게 아니라, 그의 가사 <Blowing in the wind>에 주었다. 다만, 2013년의 앨리스 먼로(캐나다) 이후로는 수상작을 특정하지 않고 작가적 성취 중 수상 이유를 명기하는 방식으로 일부 변화는 하고 있다. [이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이곳에 담아두었다: https://blog.naver.com/jonychoi/220992218548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추천이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해마다 연초에 각국에 추천을 의뢰한다. 문학 단체와 위원회가 선정한 개인들에게... 20여 년 전의 기준이지만, 우리나라는 개인 의뢰가 단체보다 많았다. 단체로서는 '민작'(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준말인데, 현재는 한국작가회의로 개칭)과 펜클럽이 대상이었는데, 그 소문이 나는 바람에 한때 펜클럽 가입 회원수가 급팽창하기도 했다.

사실 이 추천 의뢰는 대외비로 이뤄진다. 사전에 대상 단체와 개인들에게 비밀 준수 서약을 받고 진행하는데, 그걸 떠벌이면 추천권이 회수된다. 개인 추천자 중 한 분(K대의 영문과 교수)을 알고 지냈는데, 그분이 생전에 외부로 떠벌이지 말라는 당부를 하면서 들려준 얘기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왜 추천이 중요한가. 추천사의 내용에 주목하여 심사하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써 왔고 작품 권수가 어떻고,지명도나 자국 내 위상이 어떻고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위원회가 수상 이유를 밝히는 것처럼 특화돼 있어야 한다. 무엇이 다른 작가들과 다르고, 왜 상을 주어도 되는지를 특정해야 한다. 그래야 심사가 진행된다.

                                                                          -온초 최종희(7 Oc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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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다”… 은유 없이 객관적 문체 구사

[세계일보] 2022-10-07

노벨문학상 佛 아니 에르노. 부모·청소년기·결혼과 낙태 등 자신의 이야기 파격적으로 묘사
“첫 대목부터 독자 관심 끌어”. 국내서도 10편 이상 번역 출간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현실은 단 한 줄도 쓰지 않겠다는 작가, 연하 외국인 유부남과 불륜 체험을 그대로 소설화해 프랑스 사회에 스캔들을 일으킨 여성, ‘광물성의 글쓰기’로 붉디붉은 열정을 누구보다도 뜨겁게 표현하는 우아한 외설의 소설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아니 에르노(82)는 사회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써온 용감한 프랑스 여류 작가이자 문학 교수이다.
◆작품 세계와 전문가 평가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공개 선언할 정도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사유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써왔다. 즉, 스스로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 글쓰기’를 주창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해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성생활을 비롯해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써왔다”며 “매우 직설적이어서 충격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는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과 담담한 문체, 단숨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 문단 사이의 여백,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자기성찰 등이 거의 전작에서 되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작가가 너무 파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노출증’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진실을 저버리는 자전적 이야기보다는 진실에 가닿는 소설”이라고 노출증이 결코 아니라고 반박한다.
◆에르노의 삶과 문학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 릴본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로, 다시 자영업자로 신분이동에 성공한 아버지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억척어멈으로 살아온 어머니와, 하나뿐인 딸로 구성된 가정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부엌에서 몸을 씻고, 취객의 저속한 농담을 감수하며,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야 했다.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부모와 심리적 단절을 결심했으며,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의 세계와 멀어졌다. 루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한 이래 자신의 부모와 청소년기, 사랑과 결혼, 낙태, 어머니의 죽음 등 사회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주로 써왔다. ‘아버지의 자리’,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탐닉’, ‘집착’, ‘칼 같은 글쓰기’, ‘남자의 자리’ , ‘단순한 열정’, ‘한 여자’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르노도상,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03년 작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했고, 2011년에는 자전적 소설과 편지 등이 담긴 선집 ‘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돼 화제가 됐다.
국내에도 ‘단순한 열정’을 비롯해 ‘집착’, ‘탐닉’, ‘칼 같은 글쓰기’, ‘카사노바 호텔’, ‘사건’ 등 10종 이상의 작품들이 문학동네과 민음사, 열림원 등 여러 출판사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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