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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개성, 그리고 이구동성의 묘미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8. 1.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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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배꼽으로 나오면 원본은 이곳에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jonychoi/221178997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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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개성, 그리고 이구동성의 묘미

 

작년 세밑에 재미있는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이정모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 관장의 이름을 다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서장훈이 진행하는 모 케이블티브이의 과학 프로그램에 몇몇 과학자들과 함께 나와 신바람이 나서 판서를 해대는 털북숭이 생물학자라면 혹시 기억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그 책자의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흐드러질 때

 

흐드러지다라는 표현의 대상은 항상 작은 꽃이다. 봄에 일찍 피는 꽃을 보자. 벚꽃, 매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철쭉 같은 꽃은 모두 자잘하다. [중략] 자잘한 꽃들은 곤충에게 제공할 꿀이 적다. 그러다 보니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큰 꽃과 경쟁하기 어렵다. 내가 벌이라고 해도 크고 화려한 꽃으로 날아가지 작은 꽃에서 수고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서둘러 꽃을 피려다 보니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공급하는 이파리를 틔울 틈도 없다.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다. [중략]

 

또 다른 전략은 무리를 지어서 흐드러지게 피는 것이다. 이유는 한 가지. 겨울 내내 굶주렸던 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작은 꽃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무더기로 펴서 나무 하나가 통째로 꽃으로 보이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자잘한 꽃들이 각자 도생하겠다고 나서면 죽을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봤자 별무소득인 것은 자명하다. 꽃들도 안다. 자잘한 꽃들은 당연히 뭉쳐서 피어야 하며, 큰 꽃들은 홀로 피어야 한다.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은 작다. 우리가 주인이 되는 길은 벚꽃처럼 서둘러 흐드러지게 피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가 흐드러질 때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 도서출판 바틀비/본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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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이 흐드러지게 피는 꽃의 1번으로 놓은 게 벚꽃인데요. 저도 좋아합니다. 벚꽃의 의미를 제 나름대로 다시 깨닫게 된 뒤로는 더욱더요. 이 관장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긴 하지만요.



 <사진 : 2009년 삼길포 뒷산의 벚꽃길 나들이에서 >

 

예전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가르치던 것 중에는 화식(花式)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사전 풀이를 보면 꽃을 구성하는 꽃받침, 꽃부리(화관), 암술, 수술 따위의 종류, , 배열 상태를 기호와 숫자로 나타낸 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독일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꽃받침을 K, 화관(꽃잎)C, 화피(꽃덮개. 꽃받침과 꽃부리 구분이 없을 때 이 둘을 합한 명칭)P, 수술군을 A, 암술군을 G로 표기하죠. 암술은 뻔하므로 주로 KPCA의 순서로 적습니다. K5P5C5A10 등으로요


그 시절에 벚꽃의 화식을 대한 적이 있습니다. 수술(A) 다음에 무한대 기호()가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수술이 숫자로는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많은가 보다...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진 : 낱개의 벚꽃들>

 

그 뒤 벚꽃 앞에 설 때마다 꽃 안을 들여다봤는데, 숫자로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거참 이상하다... 그러다가 뒤늦게야 그 무한대 기호()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개체마다 숫자가 달라서 일정하게 표기를 할 수 없다는 뜻, 곧 무정수(無定數)를 그리 표기한 것이었습니다. 벚꽃과 같이, 각 개체의 꽃마다 꽃술 숫자가 다른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도 함께 알았습니다. 수만 종이 개발된 원예종 장미와 같은 것들도 그 좋은 예지요.

 

그걸 달리 보자면, 같은 것으로 보이는 한 종()의 꽃들이라 할지라도 낱개의 꽃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럼에도 그 꽃들은 무리를 지어 함께 피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종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합심합니다. 한 무리 내에서 일사분란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거죠. 저마다의 개성을 떠나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요. 그것이 우리에게는 아름답게 ('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고요. 자신의 목소리부터 앞세우곤 하는 우리들 인간의 모습과 저절로 대비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꽃들의 이구동성은 묘미를 넘어 묘법이라 일러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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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하나,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될 때가 잦습니다. 제가 이곳 블로그에 간간이 올리는 녀석들의 얘기도 그중 일부입니다.


흔히 무시당하기 쉬운 모과꽃이 매다는 그 큰 열매와 억센 흔들기에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거머쥐는 그 책임감. 연약한 뿌리이면서도 땅속이 얼어도 생명력을 지켜내는 냉이 뿌리와 같은 온갖 뿌리들. 보잘것없이 작은 꽃임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한자를 창설하고 거느리는 명자(榠樝. 명자나무 명, 명자나무 사). 항상 꽃받침이 북쪽을 향하는 목련꽃. 씨에서 발아하는 데에 6달 이상 걸리는 동백나무. 최소한 5년 이상 힘써 자란 뒤에야 첫 열매를 조심스레 매달아보는 매화... 모두 거명하기에 벅찰 정도로 많습니다. 그처럼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것들이 천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묵언의 스승들 천지입니다.

 

가끔 녀석들 앞에서 옷깃을 여미곤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자연을 살아 있는 종교로 삼게 된 연유이기도 하고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면 좋은 이유이기도 하죠. 이 사회를 위해 바르고 올곧은 일이라면 저마다의 목소리를 죽이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그냥 지나치곤 하거나 완상의 대상으로 한 번 쓱 시선을 던진 채 잊기 쉬운 것들에서 배웁니다. 온 힘을 다해서, 이파리를 틔우는 일조차도 미룬 채로 한목소리를 내는 것들에게서요.                            -溫草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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