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에 식상함이 차고 또 넘친다. 언제 안 그랬던 때가 있나 싶지만, 어느 채널을 돌려도 모두 연예인 관찰 예능인 요즘은 더 그렇다. 초창기 관찰 예능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스타들의 일상 속에서 우리네 삶과 맞닿는 '평범함'을 조명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 관찰 예능은 그저 연예인과 그 가족들이 써내려가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바빠 보인다. 우리네 일상과는 동떨어져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없는 예능 프로그램은 ‘대리만족’은커녕 시청자들 눈살만 찌푸린다.
최근 SNS로 코팩을 홍보하다 저속한 손동작을 해 논란이 된 ‘한수민’ 사태는 사실 연예인 가족 예능의 폐해로 볼 수 있다. 일반인도, 그렇다고 연예인도 아닌 한수민은 그간 남편 박명수와 함께 예능에 수시로 모습을 나타냈다. MBC ‘무한도전’에 처음 나와 방송 진출의 뜻을 분명히 했고 실제로 박명수와 함께 SBS ‘싱글와이프’, 최근에는 TV조선 ‘아내의 맛’에도 출연하는 등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박명수의 후광을 입어 방송인이 됐다는 ‘불공정함’과 더불어 그의 이미지가 유명 한의원 원장, 수십억대 건물주 등으로 규정되며 시청자들의 반감을 불러왔다. SBS ‘싱글와이프’에서는 박명수 부인으로 사는 것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누가 박명수 부인 하라고 시켰느냐”며 그의 눈물에 의아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은 개인 SNS에서의 행동이 단초가 되긴 했지만, 그간 그가 예능에서 보여왔던 대중과의 괴리감과 이로 인해 쌓였던 불편함이 논란을 증폭시킨 측면이 크다.
요즘의 연예인 관찰 예능은 갈수록 대중이 보길 원하는 일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최근 “방송 최초로 성유리의 사생활을 공개하겠다”고 내세웠던 SBS Plus ‘당신에게 유리한 밤! 야간개장’을 보자. 지난 27일 첫 방송은 느지막이 일어나 강아지와 놀고, 리코더를 불고, 골프와 클래식 피아노를 치는 성유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그저 '스타의 삶은 이런 것'이라고 내세우니 어린 나이부터 방송활동을 해서 불면증이 있다는 그의 얘기 또한 절절히 와 닿을 리 없다.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여행 관찰 예능 또한 마찬가지. 일반인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숙소를 '최악의 숙소'라며 "벌칙방"이라고 칭하거나(tvN '짠내투어'), 별다른 의미 없이 친한 연예인들의 우정 여행을 보내주니(KBS2 '배틀트립', TV조선 '땡철이 어디가') 공감보다는 의아함을 자아낼 뿐이다.
연예인 관찰예능이 애초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엿볼 수 있는 공감과 위로 때문이었다.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연예인도 결국 별 것 없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이라는 동질감 말이다. 일례로 SBS '동상이몽2'에 나왔던 우효광·추자현 부부를 보자. 재력가인 이들이 사랑을 받은 이유는 "밥 조금만 더 먹겠다"며 아내에게 애교를 부리는 남편 등 그들의 현실감 있는 사랑스러움 때문이었지, 남 부러울 것 없는 그들의 환경이 주는 '대리만족' 때문은 아니었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적지 않은 관찰 예능이 '메시지'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다"며 "의미도 재미도 없는 '소음' 같은 관찰 예능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저 스타, 혹은 스타의 가족이 나왔으니 보라는 식의 '메시지' 없는 관찰 예능은 공허하다. 왜 관찰 예능이 각광 받았는지, 그 시작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이 관찰 예능에 바라는 건 그저 뻔한 대리만족이 아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