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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진면목]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작품 <제0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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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생산자와 종류
요즘 ‘가짜 뉴스’가 화두다. 생산자도 갖가지. ‘너절리스트’ 내지는 ‘기레기(‘기자 쓰레기’의 줄임말)로 편입되는 싸구려 매스컴 종사자에서부터, 5.18은 북한군 조종/소행이라고 강변해 오는 바람에 보수에서 제명돼야 한다는 말이 보수 측에서조차 나오는 지만원 같은 속칭 ‘또라이’들, 뭘 보고 들어도 걸핏하면 음모론이라며 속삭여대는 게 버릇이 된 이들, 그리고 음흉한 속셈을 깔고서 ‘찌라시 뉴스’를 뿌려두고 그 귀추를 지켜보는 이들과 그 밖의 온갖 부류의 사람들까지...
내 보기에 ‘가짜 뉴스’도 등급과 성분이 다르다. 가장 저급한 것으로는 ‘낚시’용으로 그저 뿌려대야 하는 불쌍한 생존형이 있다. ‘기레기’ 노릇이나 ‘찌라시’ 생산이 밥줄인 불쌍한 사람들... 그 다음은 관심 끌기가 주목적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면도 살필 줄 아는, 지각 있는 사람’이라는 걸 덤으로 얹고 싶어하는 이들이 잘하는 짓은 음모론 들이대기다. 그들의 첫마디는 ‘그게 아니고 말이야. 진짜 속내는 이런 거야... 얘들이 ~를 하려고 꾸며내고(혹은 ‘뒤집고/확대하고/뒤집고/감추고’) 한 거라니까. 뒤에서 다 조종하고 있는 거야’다. 그런 이들 중에는 지만원처럼 시각과 사고방식이 ‘헤까닥’한 상태로 고착화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태극기 집회파들이 그 전형이랄 수 있다.
몹시 고약하면서도 가짜 뉴스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것은 여론 조작/세뇌용이다. 특정한 목적을 숨긴 채 그럴 듯한 뉴스들을 지속적으로, 그 관련성을 일반인들은 잘 알 수 없게 조각으로 나누어 일관되게 뿌리는 정보 공작이다.
반공이라는 추상명사를, 당사자는 꺼내지도 않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소리로 압축/조작*하고 기념관까지 만들어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는 한편, ‘공산당 비적(匪賊. 중국에서, 국민 정부 시대에 공산당의 지도 아래 활동하던 게릴라를 비적(匪賊)이라고 욕하며 부르던 호칭)’의 준말인 ‘공비(共匪)’라는 말까지 창안하여 반공을 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고 겁박하는, 체계적이고 총합적인 가짜 뉴스 시스템도 그런 경우다. 공개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이고, 정통성을 위장하는 재주가 빼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註 ‘언어 조작’ : 훗날, 이승복이 이런 말을 한 것을 확실하게 확인해주는 증거는 없었다고 당시 기사를 전화 송고했던 기자가 동료에게 회고한 바 있다. 데스크가 전화를 끊으면서 그 기사 제목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뽑으면 딱이겠다고 했고, 거기서부터가 발단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승복의 무참한 죽음은 사실이다. 문제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특종을 했던 매스컴의 보도 태도. 훗날 이 보도를 두고 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대법까지 오가는 지루한 소송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가짜 뉴스 중 최상층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진실 은폐형이다. 가장 흔한 것은 밀실이나 어둠속에 처박아 두어야만 하는 수치스러운 진실들. 대표적인 것으로는 최순실과 박근혜의 진실이나 이명박의 이면 거래와 같은 정권 관련 진짜 뉴스들을 가짜 뉴스로 호도하는 것. 한편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핵 개발 시도와 같이 드러내서는 결코 안 되는 그런 일들과 관련해서는 그걸 부인하는 가짜 뉴스를 우회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이 나라 정치판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사건 당사자들이 즉시 늘 해대는 말, ‘사실무근/사필귀정!’ 따위도 전형적인 은폐형 가짜 뉴스들이다. 한참 뒤에 보면 사실무근이라던 그의 말이 사실무근이고, 사필귀정의 결론은 옥살이로 바로잡혀진다(歸正). 오로지 국리민복을 위해 봉사해 왔다는 말은 부동산 재테크의 귀재가 그의 부인이었다는 걸 고백하는 말과 다르지 않았음이 드러나는 식이다.
이러한 가짜 뉴스의 범람에 대한 총체적 최종적 책임은 저널리즘에 있다. 저널리즘이 그걸 주동적으로 담아내고 전파하니까. 기레기의 작품이든, 정권의 나팔수 소리든, 지성인임을 내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지성을 떠들어대는 이의 글이든, 저널리즘이라는 도구에 의해서 가짜 소리가 생산/유통/확대/재생된다. 요즘에는 웃기는 1회용 넋두리 광고판인 SNS까지도 그런 얼치기 저널리즘에 기를 쓰며 발붙이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는 저널리즘이라는 유포 도구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있다. 저널리즘을 통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 초미세먼지 이상의 공해 물질이 더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판 뉴스라면 아예 눈과 귀를 막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이미 공기 중에 전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졸저 <박근혜의 말>에서 ‘만유정치(萬有政治. omnipresent politics)’의 시대라 지적한 것처럼, 이제 정치는 만유인력처럼 인간이 존재하는 한은 언제 어디서고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 지 오래다.
움베르토 에코와 팩션
움베르토 에코(1932-2016).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권위 있는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미학자다. 한 인간이 이처럼 다방면에서 떠받들리기도 쉽지 않지만 거기에 더 크게 찍히는 방점 하나가 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 소설가!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장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정도다.
이번에 번역된 소설 <제0호>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데, 바로 가짜 뉴스를 다뤘다. 4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고, 이탈리아에서만도 25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서점에 깔린 지 이제 겨우 1주일쯤 되었는데, 베스트셀러 목록 40위로 치고 올라왔다. 출판업계에서 제일 노심초사하는 판매지수도 7만을 넘겼고.
이 소설은 팩션에 가깝다. 뼈대는 2차 대전 종전 직전에 이뤄진, 무솔리니의 얼굴이 죄다 뭉개져 누군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시신 공개가 실은 가짜 뉴스이고, 실제로는 가톨릭의 도움을 받아 남미에 가 있었는데, 귀국해서 실제로 대형 사건의 주재자로 떠오르려다 거사 직전에 사망했다는 설에 기반했다.
하지만, 에코는 소설 <다빈치 코드>의 첫 장에 댄 브라운이 ‘소설 속의 모든 것들은 일점일획도 사실’이라고 적었던 것만치 큰소리치지는 않았다. 독자들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에코가 작품 속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뉴스들은 한 줄로 꿰어진다. 무솔리니의 생존설은 단순한 ‘썰’이 아니라 진짜 ‘설’이라는 쪽으로 은근히 압박한다. 그런 점에서 팩션적이다. 소설 속에서 제재로 차용된 온갖 보도들이 가짜 뉴스들이 아니었다는 전제하에서.
에코의 작품은 읽은 재미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그의 천재적인 기억력과 박식함에 혀를 내두른다. 하기야, 그는 학자 중에서는 드물게 사물 기억력이 특출하게 빼어난 사람이다. 그가 봉직한 볼로냐 대학 도서관 서가에 꽂힌 모든 책자들을 순서대로 기억한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처럼 박식한 그의 집을 찾은 이가 서가를 둘러보고서 상상했던 것보다는 적은 양의 책들인지라, (실망해서)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의 양이 빈약하다고. 그러자 그는 ‘읽은 책들을 가까이 둘 필요가 있느냐, 저것들은 내가 읽어야 될 것들’이라 답했다던가.
비상한 기억력도 그렇다. 그의 각종 저술에서 드러나는 엄청난 박식함으로 미루어 그에게는 저술량 못지않은 노트들이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믿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드러난 노트 양은 짐작보다 훨씬 적었다. 그가 강연/수업 때 예시했던 것들은 대부분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대의 천재들은 자신의 머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그럴 때 가짜 뉴스가 아니다.
여하간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두 가지다. 에코의 소설이 항상 그런 것처럼 지적(知的) 여행과 문학 산책의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낼 수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산책만 한 뒤에, 두 번째는 지성의 오솔길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는 방법도 있다.
역자 이세욱의 빛나는 조연
에코의 작품은 그래서 섣불리 번역에 달려들 수가 없다. 아무나 어설피 달려들었다가는 작품을 망치기 십상. 번역계의 국보급 박학다식자 이윤기 님이 생존했을 때 전담하다시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때 함께 거든 게 이번 번역을 맡은 이세욱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재미있고 깊이 있는 각주(脚註)를 제법 대하게 되는데, 모두 역자가 붙인 것들이다. 그걸 대하면서 독자들은 에코가 참으로 멋진 역자를 만나서 하늘에서도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역자 역시 에코流다. 번역계의 박학다식파로 손꼽히는.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보람으로 역자 이세욱과의 만남을 나는 주저 없이 꼽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기쁨과 반가움도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많이 논(?) 곳이 밀라노인데, 이 사건 현장이 밀라노인데다, 역자 역시 밀라노를 빠삭하게 알고 있어서... 특히 아래 퀴즈에 나오는 골목길 이름은 밀라노 성당(흔히 ‘두오모’라 부르는) 옆에 난 좁은 길로서, 그 길로 죽 가면 꽤나 알려진 맛집들도 있고, 착해서 더 이쁜 여사장이 운영하는 한인 식당도 있는 길. 밀가루 음식을 무척 싫어해서 파스타나 마카로니(특히 찬 것), 그리고 피자까지도 안 먹는 내가 찾아가 먹는 맛있는 해물 파스타 집도 그 길에 있다.
두오모(밀라노 대성당의 별칭)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진 몇 장을 훑고 가기로 한다.
사진 : 두오모 성당 좌우. 파노라마 처리를 한 사진이다. 정면이 성당. 15년 전쯤의 것으로 당시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할 때여서
외부는 모두 차폐막 처리 상태. 사진 왼쪽이 한국인 쇼핑객들이 죄 몰려가는 유명한 <갤러리아>. 강남족의 갤러리아 이름도
여기서 왔다. 퀴즈에 나오는 길은 성당과 갤러리아 사이에 보이는 길을 이른다. 그 길 초입에는 바오밥나무가 상표인 통신 회사의
광고 차량이 상시 주차돼 있다.
<왼쪽 : 성당 정문 출입구. 그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그 이유는 <우> 바로 이 발들을 만지기 위해서. 나도 빠질 수가 있나...
저걸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방문객들은 거의 빠짐없이 와서는 만지고 가는 바람에 반질반질.
그런 데에는 가톨릭/개신교 신자의 구별이 없다.
마치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 넣으며 행운을 비는 데에 종교의 구분이 없듯이.>
소설적 구성의 묘미
이 작품은 구성의 묘미도 쏠쏠하다. 이런 형식의 소설을 다른 나라 소설가들도 열심히 베꼈을 정도로. 일기체의 두괄식인데, 첫 장에 사건의 절정을 제시한 뒤 본말 설명을 일기체로 풀어간다. 흡인력을 높이고 긴장 유지에 크게 기여한다. 독자들은 다음 페이지를 얼른 넘기고 싶어진다. 읽는 내내... 결말은 맛있는 디저트. 20년쯤의 나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의 커플 간에 사건 내내 이어져 온 실물 사랑의 성공을 2/3 정도 암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에코의 광대무변한 지성뿐만 아니라 소설가적 실물 진리 표현 능력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간간이 밑줄을 긋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 명대사를 떠올리며 오래도록 곱씹게 하듯이.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기억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와 같은 표현도 그중 하나다.
부분적으로 팩션이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에코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가끔 의심케도 만든다. 제시된 수많은 자료들로만 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전쟁 직후 발표된 무솔리니의 시신 공개는 가짜 뉴스이고, 실제로는 가톨릭의 도움을 받아 남미에 가 있었는데, 귀국해서 실제로 대형 사건의 주재자로 떠오르려다 거사 직전에 사망했다...는 틀이긴 하지만.
참 이 소설 제목 <제0호>는 창간이 되지 않은 신문인지라 그 호수를 0호라 이름해 두고 온갖 기사를 사전 조작하는 신문사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에코의 소설가적 기발한 창발력이 제목에서도 번뜩인다. 제목이 독자의 호기심을 끌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다.
퀴즈
에코와 함께 가볍게 산책을 했든 오솔길에서 오래 머물며 꼼꼼히 낙엽 뒷면까지 챙겨본 독자든, 이 책을 가까이한 분들에게 드릴 선물이 있다. 내가 에코를 엄청 존경/숭앙한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기꺼이.
아래에 두 가지 퀴즈가 있고, 답은 세 개. 정답을 모두 적어 보내신 분들 중 두 분을 골라 책자를 보내드리고자 한다. 단, 등기 우송비 부담 조건으로. 나 역시 이 책들을 내 수고로 획득/쟁취한 것이므로. 등기 우송비는 3천 원 미만. 이 책은 고급 지질을 사용하여 무겁지도 않다.
1. 퀴즈 하나
두오모 광장의 남서쪽 광장 어귀에서 700미터쯤 이어진 길로 밀라노에서 가장 좁은 길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가장 좁은 길인 <낚시하는 고양이>라는 골목만큼 좁지는 않지만...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이른바 밀라노의 먹자골목 중 하나에 이르게 된다.
위에 적었듯 명물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 해물 파스타 집도 거기에 있고, 소설 속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무솔리니 뉴스의 진실을 파헤치려다 첫 희생자가 된 브라가도초와 주인공이 처음으로 가까워지게 될 때도 그 길을 걸어 음식점으로 갔다.
<낚시하는 고양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파리의 그 골목은 폭 1.8m에 길이 29m. 파리에서 路(rue)라는 이름이 붙은 길 중에서는 가장 좁은 길로 파리 제5구 소르본 구역에 있다.
문제 : 밑줄이 그어진 이 두 군데의 길 이름은? 외국어 표기도 상관없습니다.
2. 퀴즈 둘
소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열 살짜리 소년이 강한 산성 물질을 저장하는 탱크에 던져져 살해되었다고 하면 텔레비전은 소년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아주머니, 아드님이 사망했다는 것을 아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하고 묻습니다. 사람들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힙니다. 모두가 그 인터뷰에 만족합니다. 독일어에 그런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단어가 하나 있어요. ‘000000’,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문제 : 위에 동그라미로 표기된 독일어 단어는 명사로서 본래 ‘짓궂고 고약한 즐거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무엇일까요? 독일어로는 13글자, 우리말로는 6글자인 말입니다. 저의 이 블로그에서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언급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정답 표기는 독일어로든, 한글로든 상관없습니다.
-溫草 [Nov.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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