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一思] 어디에 설래? : 독장수구구 편에? 아님 기우 쪽에?
그렇잖아도 시험문제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았던 모 대학에서 전 과목 입시로 갑자기 바꾸면서, 준비 기간을 겨우 반 년 남짓 주고 야밤의 기습군처럼 수험생들을 괴롭힌 적이 있는데, 그 첫 시험을 치른 게 1970년이다.
어느 정도로 악명(?)이 높았느냐 하면, 예를 들어 영어 과목에서만도 최소한의 필독서라고 꼽히는 게 <성문 정통 영어>(문법), 독해력용으로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수필집과 <동경대 영문 1200제>(당시엔 번역 출간본도 없어서 일제 원본을 그대로 봐야 했다)라는 거였으니, 얼마나 그 학교가 학생들을 괴롭혔을지는 알조 아닌가. (당시 전 과목을 준비하면서 보니, 인문계 기준으로 국영수와 제2외국어에 사회과 네 과목 (국사/세계사/일반사회/지리1-2), 과학 분야 네 과목(물리1/화학/생물1/지학) 해서 과목 수만 12과목이었다. 괘씸한지고... ㅎㅎㅎ)
암튼, 그 영어 시험문제 중에 지금도 기억되는 게 하나 있다. 계란 팔러가는 사람이 혼자서 꿈에 부풀어 너무 지나치게 신나하다가 그만 계란까지 깨뜨리고 만다는 지문(地文). 그걸 내놓고는 거기에 해당되는 우리말 속담을 적으라는 거였다. 정답은 ‘독장수 구구’. (당시엔 이렇게 두 말을 띄어 적었다. 속담 대접을 받아서.)
그 답을 쓰고 나서 속으로 난 웃었다. 아니, 뭐 이게 영어 시험이어, 아님 국어 시험이어?
그렇게 웃기는 문제가 또 있었다. 국어 시험 때다. 김광균의 시 <와사등>이던가 <설야>던가를 제시하고는 그곳에 나오는 정경을 그림으로 표시하라면서 도형을 세 갠가 네 갠가 줬다. 큰 원 하나, 작은 원 하나, 점들과 또 무슨 야릇한 기호 하나.
시어들을 따라가서 그림을 그려보니 큰 원 안에 작은 원이 들어가고 그 두 원 사이에 점을 잔뜩 찍고, 작은 원 안에 기호를 넣으면 될 듯했다. 결국 그렇게 답을 써냈고 요행히 득점을 했다. 그러고 나서, 속으로 했던 말. 아무리 이미지즘 시인 작품의 독해력을 시험하는 문제라곤 하지만 이게 국어 시험이어, 미술 시험이어?
그 바람에 평생 안 잊히게 된 것 중의 하나가 ‘독장수 구구’라는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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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장수구구’의 사전상 뜻풀이는 이렇다. ‘독장수셈’과 같은 말이며,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을 하거나 헛수고로 애만 씀을 이르는 명사.
여기서 여러분들은 눈치채셨으리라. 그 잘난(?) 학교의 교수님들도 그게 요즘은 속담이 아닌 명사 대접을 받으리라는 것을 모르고서, ‘속담’으로 여기고 답을 쓰라고 출제를 하셨다는 걸. 하기야 당시엔 지금처럼 중심을 콱 잡고서 쇠말뚝을 쾅쾅 박아주는 <국립국어원> 같은 기관이 없었던 탓도 있긴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독장수구구라는 말이 출연하시는 정식 속담은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뜨린다’뿐이다.)
기우(杞憂)라는 어려운 한자어가 있다.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혼자서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온 말로,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다. 다른 말로는 군걱정, 노파심, 별걱정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독장수구구와 기우. 혼잣속을 재는 천칭(天秤)이 있다 치고, 그것들을 저울의 양쪽에 놓으면 대충 형평이 맞지 않을까. 그런 속생각들이 행동으로 표출될 경우를 상상해보면 한쪽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것이고 또 한쪽은 그 반대로 웅크리거나 버티면서 안 나가려고 할 것이니까.
행동의 결과로만 놓고 보자면 돈키호테와 햄릿과도 흡사하다. 하나는 주변을 밝게 하고 또 하나는 칙칙하게 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자못 심각하기 짝이 없다.
특히, ‘기우파(杞憂派)’들은 모든 행동을 선뜻 시행하지 못하고, 제대로 안 될 경우나 못할 조건들을 더 신경 쓰고 그 후유증을 겁내는 듯하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만약 하다가 실패하면?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그 일이 이뤄질 수 있을까? 등등, 온갖 조건들을 떠올리면서 미적거리다가 결국은 제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런 게 버릇이 되고 나면 어느새 멀찍이 뒤로 쳐지거나 밀려나 있다.
나는 그것을 ‘미연(未然)의 악순환’이라 부른다. 걱정해야 될 것도 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걱정하는 사이에 그게 핑계로 쌓이곤 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필요하지만 대책을 찾아나가면 된다. 정면 돌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안 되면 돌아서라도 가면 길이 보인다. 미래의 문은 현재나 과거에 머물지 않는 사람에게 밀려서라도 열린다.
앞날들을 맞이하거나 예비하는 태도. 그게 미래의 내용물이나 결실까지도 좌우할 때가 많은 듯하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독이 깨지든 계란을 깨뜨리든 독장수구구 쪽이 낫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쪽을 택하고 싶다. 웅크리고, 저어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뒷전으로 슬그머니 밀려나 있는 쪽을 택하기보다는, “오매 또 어제 거긴게비네” 소리를 중얼거리게 되더라도 발걸음은 앞으로 내딛고 볼 일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영어 시험 문제에서 그 웃기는 국어 문제를 낸 교수님들의 혜안이 덩달아 고마워지기도 하면서. [16 Feb.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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