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Man Walking을 번역하실 부운~~!
오늘 아침 댓글에 답글을 달다가, 갑자기 어떤 사형수 하나의 얘기가 떠올랐다. Joe Hill(1879.10.7-1915.11.19)이라는 사람.
스웨덴 출신의 미국인인 그는 우리에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떤 방면에서는 유명 인사다. 그 중 하나는 사형수들이 남긴 명언들 중에서 그의 이름이 빛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작사가로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여 명품을 남긴 몇 안 되는 특이한 노동운동가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연적이 자신에게 총을 쏜 사실을 끝까지 감추고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죽어간 사실이 그의 사후에 밝혀져서 여인들의 부러움 섞인 칭송을 은근하게 받기도 했다.
그는 노동운동과는 무관하게 전직 경찰관과 그의 아들을 사살했다는 누명을 썼고, 수많은 논란과 국외 지원까지 받고도, 총살형으로 죽었다. (미국에서는 1910년대에 일반인에 대해서도 총살형을 집행했다. 교수형, 약물주사형, 총살형, 전기의자... 등 각주마다 갖가지 방식을 두루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군법회의 판결이 아니고는 총살형이 없다.)
그때 그가 최후에 남긴 발언이 아주 걸작이다. 남길 말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소원을 들어주겠느냐고 묻고서,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준다고 하자, 자신의 사형 집행 마지막 명령을 자신이 내리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총살 집행관이 ‘들어총(Ready)!’, ‘겨눠총(Aim)!’ 하자, 마지막 명령인 '발사(Fire)!'를 자신이 외치고는 죽었던 것.
그가 남긴 명언 중에 또 하나는 친구에게 보맨 마지막 편지에 적힌 글. “나는 지금 현재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다. (I am now officially dead.)"라는 말이다.
그 의미를 두고, 특히 'dead'라는 표현을 두고, 호사가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체로는 노동운동 작사가답다는 평이 주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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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들의 명언이라는 소제목으로 편입될 내용들을 사냥하느라 여기저기 뒤지고 다닐 때다. 힐의 이야기를 접하자 내게도 이 평범한 ‘dead'라는 말이 머릿속으로 날아들어 꽂혔다.
죽은 사람이 편지를 써? 그것도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공식적인 증빙으로 남을 편지를 쓴다?
Dead는 상태를 뜻하는 형용사다. 죽음과 관련해서는 이미 죽은 상태, 즉 과거형이다. 현재형일 수가 없다. 사전을 펼치고 확인해 본다.
예문들까지 훑어봐도 과거형이다. 울 엄마는 죽었어요; 1987년에 돌아가셨죠. 죽은 잎/나무/피부. 그는 자신의 집 밖에서 무장한 사람에게 총 맞아 죽었다. 캐서린의 죽은 몸(시체). (My mother's dead; she died in 1987. dead leaves/wood/skin. He was shot dead by a gunman outside his home. Catherine's dead body.)
혹시 달리 어디에 꽁꽁 숨겨둔 의미, 내가 모르는 뭐가 있을지 몰라서 dead 항목을 끝까지 훑는다. 더 이상 믿어지지[추구되지] 않는(Many believe the peace plan is dead.)/ 과거의, 케케묵은, 인기가 없어진(a dead language)/다 닳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dead matches)/기계나 장비가 작동을 안 하는(a dead battery)/활기[흥미]가 없는 (No theatres, no cinemas, no coffee bars. It was dead as anything.)/매매가 없는, 부진한(The market is absolutely dead)/기진맥진한, 몸이 안 좋은(half dead with cold and hunger)/신체 부위가 (추위 등으로) 감각이 없는 (My left arm had gone dead.)/감정을 못 느끼는, 무감각한(He was dead to all feelings of pity.)/사람의 목소리・눈・얼굴이 생기[표정] 없는 (dead grey eyes)/완전한, 정확한 (a dead silence/calm)/생명이 없는(dead matter)/경기장 밖의(dead area)......
그래도 없다!
그럼 그렇지. dead는 어떻게 해도 죽은 상태, 즉 과거 세계에 속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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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Man Walking> (1995)란 영화가 있다. 마돈나의 전 남편인 숀 펜이 사형수로 나오고 중년 여배우 수잔 서랜든이 빈민가의 헬렌 수녀로 열연한 영화. 1996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고, 미국 내에서 사형제도의 존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다.
그런데, 제목이 참 괴상하다. 죽은 사람이 걸어? 죽은 사람의 걸음? 하기야, 오스카상 후보작으로 올랐을 때, 우리나라의 모 통신사는 그걸 <사형수의 발걸음>이라 번역하기도 했고,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될 때도 한글로 번역되지 못한 채, 그냥 <데드 맨 워킹>이란 제목으로 걸렸다.
여기서, 급구 광고를 내볼까나?
“이 Dead Man Walking을 번역하실 부운~~~!”
답부터 말하기로 하자. 이 말은 사형 집행을 할 때, 담당 교도관이 외치는 말이다. “사형수 입장!”이란 구호다.
사형 집행을 할 때, 사형장 안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참관인들이 착석하고 집행 준비가 다 끝나면 담당 교도관이 사형장 안에서 크게 외친다. 그러면 죄수용 출입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형수를 호송 교도관이 데리고 들어오는데 그때 쓰이는 명령어다.
아무리 봐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죽음의 상태가 이어지면 그 자체가 이미 과거형인데, 죽은 사람인 dead man을 보고 걸어 들어오라니... 그거 참.
미국 영어에 사형수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condemned criminal이 최고로 딱딱한 말이고 보통은 condemned prisoner/man을 쓴다. 매스컴 등에서는 death-row inmate라든가 prisoner on death row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말들은 dead man만큼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비록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니 제정신인 사람은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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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과거형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 자체를 알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마치 그 속을 전혀 짐작조차 못한 채 우선 엎드리고 보는 종교 행위와 똑같다. 하기야,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꾸미는 또 하나의 언어적 종교다.
영어에는 죽는 것에 대한 표현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흔한 게 die. 그건 그냥 숨이 끊어지는 의미가 강하다 보니,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거기서 살짝 비튼 게 pass away다. 이승을 그냥 지나쳤다는 식의 살짝 우회. 번역할 때는 흔히 작고라는 말로 바꾼다. 격식을 차려서 하는 말로는 decease가 있다. 법률 용어이기도 하고, 유가족의 경우는 deceased family로 고착된 표현을 쓰기도 한다.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들을 받드는 태도가 엿보이는 말. demise도 있지만 그건 기관이나 공식 단체 같은 것의 사멸을 뜻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쓰면 도리어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좌우간 영어에는 우리가 쓰는 서거, 작고, 별세, 사망 등의 다양한 표현 나뉨은 물론이고 붕어(崩御), 훙/졸(薨/卒)* 등의 계급 구분용 전용 표현도 없다.
[*주 : 사지오등[死之五等]이란 말이 있다. 신분에 따른 죽음의 다섯 가지 등급이라는 뜻. 천자(天子)는 붕(崩), 제후(諸侯)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선비는 불록(不祿), 서인(庶人)은 사(死)라 하던 게 바로 그것. 여기서 선비의 죽음에 쓰이는 ‘불록’은 더 이상 녹봉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선비들은 과거에도 공무원이어야만 제대로 선비 대우를 받았나 보다. 그래 봤자 봉급쟁이일 뿐인데, 피이!]
영어에서 죽음 관련 표현들이 우리에 비하여 비교적 단순하고, 계급 구분 표지어(標識語)들도 없는 것. 그것은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죽은 자에 대한 대우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들은 죽음 자체를 단순 사실로 인정하려 한다. 죽는 것은 그냥 die 아니면 pass away다. 점잔을 떨어야 할 자리나 문서화할 때만 decease를 쓴다. 대통령이 죽었으니 서거이고 옆집 할아버지가 죽었으니 작고, 노숙인이 죽었으니 사망으로 계급을 갈라서 차별(?)을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같은 사람, 똑같은 인간 하나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신 것일 뿐이므로.
좋은 예가, 어딜 가 봐도 묘비의 상단이나 중단 표기는 하나같이 Born/Died로 되어 있다.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다.’로 통일되어 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달리 되어 있지 않다. 죽음 뒤편, 곧 저승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아닐까.
죽음 앞에서 죽음의 추상화 그려보기, 혹은 호들갑 떨기. 그건 살아있는 이들의 개별 종교 내용과도 흡사하게 그 안이 채워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죽음은 그 따위에 전혀 관심조차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문득, Bruce Springsteen의 노래 <Dead Man Walking>에 나오는 가사 하나가 떠오른다. [이 가사는 사형수 숀 펜이 유리창 밖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수잔 서랜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기도 하다.]
... 수녀님. 저 용서해 달라는 말 안 할게요. 제가 다 저지른 죄인 걸요. (이미 제가 다 알아요. 용서해 달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어요). (Sister. I won't ask for a forgiveness. My sins are all I have.)
우리가 이승을 하직할 때, 저 사형수만큼 우리 자신의 꼴을 제대로 알고나 갈 수 있을까. 모두 끌어안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까?
그쯤 되려면 ‘죽은 사람도 걸어 나오는 (dead man walking)’ 신묘한 경지에 도달해야 하렷다. 난 언제나 그런 경지를 꿈이라도 꿔볼까. 에효. [Jan. 2013]
[참고] Joe Hill에 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Joe Hill, born Joel Emmanuel Hägglund in Gävle, Sweden, and also known as Joseph Hillström (October 7, 1879–November 19, 1915) was a Swedish American labor activist, songwriter, and member of the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 also known as the "Wobblies"). A native Swedish speaker, he learned English during the early 1900s, while working various jobs from New York to San Francisco. Hill, as an immigrant worker frequently facing unemployment and underemployment, became a popular song writer and cartoonist for the radical union. His most famous songs include "The Preacher and the Slave", "The Tramp", "There is Power in a Union", "The Rebel Girl", and "Casey Jones—the Union Scab", which generally express the harsh but combative life of itinerant workers, and the perceived necessity of organizing to improve conditions for working people.
In 1914, John G. Morrison, a Salt Lake City area grocer and former policeman, and his son were shot and killed by two men. The same evening, Hill arrived at a doctor's office with a gunshot wound, and briefly mentioned a fight over a woman. Yet Hill was reluctant to explain further, and he was later accused of the grocery store murders on the basis of his injury. Hill was convicted of the murders in a controversial trial. Following an unsuccessful appeal, political debates, and international calls for clemency from high profile people and workers' organizations, Hill was executed in November, 1915. After his death, he was memorialized by several folk songs. His life and death have inspired books and poetry.
Joe Hill's love relationship, though frequently speculated upon, remained mostly conjecture for nearly a century. William M. Adler's 2011 biography reveals new information about Hill's ostensible alibi, which was never introduced at his trial. According to the biography, Joe Hill and his friend and fellow countryman, Otto Appelquist, were rivals for the attention of twenty-year-old Hilda Erickson, a member of the family with whom the two men were lodging. In a recently discovered letter, Erickson confirmed her relationship with the two men, and the rivalry between them. The letter indicates that when she first discovered Hill was injured, he explained to her that Appelquist had shot him, apparently due to jealou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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