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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아, 송구하구나!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2. 12. 31.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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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신아, 송구하구나!
                                    - <나>와 <가정>편

                                                                                         최   종   희


   
     한 해의 마지막이다. 모두들 송구영신에 바쁘다. 나  역시 그 와중에
   들어있다.
     이런 때면 애용되는 문구 하나가 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한 해의
   끝에서 돌아볼 때 처음 시작과 달라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라
   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그런 톨스토이의 말이 아니라도, 나는 문득 내가  제대로 송구(送舊)
   하면서 영신(迎新)할 채비를 갖추고나 있는지 의아해진다. 그리고 세월
   에게 무척 송구하다는 느낌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나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도 그렇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이 나라에서 벌어
   진 온갖 현상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올 한 해를  보내는 일이 송구
   스럽기만 하다.  
   
                                  *
     나는 낱개의 존재다. 어찌 보면 하찮은 단편적인  존재. 그럼에도 모
   든 것의 시발이다. 내가 없이는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없다. 그런 나의
   올 한 해 일상은 어떠했는가.
     적당한 베끼기와 휩쓸리기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때가 거의  없었
   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꿈을 가꾸기보다는 눈앞의 단기적 의도에 쫓
   기거나 매달려 지내다시피 한 적이 더  많다. 타인들에게 간섭 당하지
   않는 진정한 정신의 자유 세계를 독채 전세로 차지하려는 시도를 완곡하
   게 고집하기보다는, 이따금 대강의 큰 테두리를 막연히 점호해보는 일
   로 자족한 적이 더 잦다. 지성인의 으뜸 책무는 작은 언저리에서 서성
   이는 일이 아니라 큰 테두리를 떠올리는 지속적인 습관을 강건하게 유
   지하는 일임에도.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김우창 교수가  인터뷰 하나에서 인용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작은 틀에 갇힌 채 거의  대부분을 휩쓸리기로 살아가는 우리네
   살이를 꼬집은 말이다.
     나 역시 어느 땐가 영문 에세이 하나를 긁적이며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질러 닦지 않은 삶은 반짝거리지 않는다고. (The unscoured
   life does not glitter.)
         
     의식 있는 지성인의 언저리에서라도 머물려면 낱개의 삶이 본뜨기와
   베끼기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휩쓸리기는 더더욱 배척되어야 한다. 생
   각 있게 살아야 한다.
     지성은 타인과 분리된 자신의 의식을 응시하는 의식의  자폐증을 받
   아먹고 자란다.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생각 있게 움직일 때, 지성은 생
   존한다. 생각 있는 사람들이 연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내 모습은 어땠는가. 올 한 해의 나는 임의로 반개(半開) 상
   태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표찰 뒤에서 의식의 자폐증 감염을 거부
   하면서, 생각 없이 둘러쓴 쓰개치마  틈새로 보이는 좁다란 세계를 주
   로 기웃거렸다.
     생각의 큰 테두리를 좆지 못한 채 옅은 뿌리를  훤히 드러낸 정신적
   풍란으로 연명하기에 급급했고,  마지못해 일깨워진  의식은 부평초가
   되어 떠돌 때가 더 많았다. 올 한 해도 여전히.
     영신아. 그런 나를 용서해 다오.
                 
    
                              *
        [중략]


     그러한 논쟁에서 간과되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길들이기와 관련
   된 시각의 문제다. 즉,  결혼 생활은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가 선도하는
   여인들 길들이기의 연장이라는 관점이다. 그런 시각이 변화되지 않은
   채, 논의에 참여하는 남녀 모두에게 휘젓기의 잣대로 쓰이고 있다.
     그게 문제다. 결혼은 결단코  상대방을 길들이는 일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또는 드물긴 하지만 여인  득세하의) 일방적 상대방 길들이기
   가 결코 아니다. 결혼은 가정 생활에 자신을 길들여가는 일이다. 성공적
   인 결혼 생활일수록 자신이 지녀온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언행과 습관,
   사고방식을 가정이라는 새로운  공동생활에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그
   반대일수록 결딴나는 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단순한 동거에는 상대방 길들이기와
   관련된 달갑잖은 의무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논거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다.
     결혼을 길들이기로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큰 잘못이어서 한시적 동
   거의 실패를 미리 예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혼전 동거의 본래 목적은 제도권  결혼 생활에 편입되기 전 미리  그
   낱낱의 생활이 서로 일치하는지, 상대방에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오래 전부터, 뭔가 미흡한 결혼에의 습속
   적인 직행이 꺼림칙하거든 결혼을 미루고 책임 있는 혼전 동거를 해보라
   고 권하기도 했던 진짜 이유다. 결혼하고 나서 결혼 생활 내내 후회를
   적립하면서 체념을 이자로 쌓아가거나, 몇 년 지나 찢어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으니까.)
     상대방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보다도, 내가 상대방에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를 더 염두에 두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
   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혼과 다른 동거의 장점이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서는 어째서 그것이 불가능할까.
   
                                 *
     조금 외돌기는 하지만, 앞서  대표적 송년회고사의 주인공으로 언급
   된 톨스토이로 돌아가 보자. 올해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대열에는 그
   의 단편선도 올라 있다. (죽은 지 백 년 가까이 되는 사람의 작품집이
   새삼스레 그와 같은 각광을 받는 이유를 나는 도시 알 수가 없다.)
     또 얼마 전 어떤 해외 소식을 보니 모스크바에서 이삼백 킬로나 떨어
   진 톨스토이의 고향 무덤을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1828년 탄생, 1910년 사망이니 특별히 기념할  만한 무엇이 있
   는 게 아닌 듯한데도.
   
     그런 그의 이름이 <문학 속의 에로스>라는 디터 벨러스호프의 저서에
   나온다. 귀족 유한부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를 썼던 발자크와 스탕달,
   질 떨어지는 천박한 여인들과만 성관계를 가졌던 괴테의 이야기에 이어,   

   톨스토이는 기묘한 변덕으로 평생 아내를 증오해온 경우로 예시된다.
     그리고 그 책에는 안 나오지만,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방황하던 시절
   에 모스크바에 가서 꽤나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고, 자신의 농장
   일꾼 딸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고민한 적도 있다.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아내인 소피아에게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경제권을 빼앗기다시피 양여 
   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아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 생활 내내 여러 번 가출을
   꿈꾸었다. 죽던 해에도 그는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출했고, 그 길에
   병을 얻어 조그만 시골역에서 죽는다. 나이 82세때의 일이다. (<그들의
   사랑과 성(性)>이라는 왈친스키의 책에는 그때가 72세로 나오는데, 그
   건 식자(植字) 실수지 싶다. 연보를 보면 82세가 맞다.)
     그는 이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추종되던 톨스토이즘이라는
   사조까지 만들어낸 사람이다. 검소, 절제, 사랑, 신앙이 잘 조화된 이성
   중심의 생활이 그 사상의 주축을 이룬다.
     그런데도 그의 개인적인 사랑은, 아내와의 가정 생활은, 우리의 짐작과
   달리 무척 비참했다. 평생 아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고, 여든두 살의

   몸으로 의사를 데리고 가출해야 했을 정도로.


 
     그런 톨스토이가 “한 사람의 상대자를 평생 동안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한 자루의 초가 평생 동안 탈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곰곰 뜯어보면 그의 아내에 대한 개인적  질곡을 덮고 있던
   주름들이 저절로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아래에 보이는 몇몇 그의 말들에서도 그런 그의 개인적인 체
   취가 조금씩 풍겨나와 우리들의 동감과 동정심 사이를 떠돈다.
     - 남자의 사명(使命)은 넓고 여자의 사명은 깊다.
     - 다만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사랑은 한 남자나 여자를  많은 사람 중에서 선택하고 그  이외의
       사람을 절대로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 살림을 못하는 여자는 집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으며, 집에서 행복
       하지 못한 여자는 어디를 가도 행복할 수 없다.
     - 여자는 아무리 연구해도 새로운 존재다.
   
     
그런 그가 아내와의  성생활에서 행복했을까. 소피아에게서 아이를
   대여섯씩이나 낳긴 했지만,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성욕에 대해서는 절제를 통한 지속적인 탕감과  완전한 박멸
   까지도 주장했던 톨스토이지만 막상 그 자신은 역두에서 비명횡사를
   하던 해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친구야. 나는 이 나이에 들어서야 비로소 정욕에서 완전하게 해방
   되었다네.
   
     톨스토이. 그는 개인적인 정신 세계와 가정 생활의 양립에 평생 실패
   했던 사람인 듯하다. 자신이 몰두하는 정신의 세계에 아내의 출입자격
   을 사전 박탈했고, 아내의 물질적 세계에 동화되기를 거절했다. 그러면
   서도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세계를 현실로 인정해야만 했던 복잡하고도
   기구한 사나이였다.
     하기야, 우리에게 기억되는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들의 대부분이
   그렇긴 했다. 아내나 가정 생활 등과 같은  부분이 차단된 채 정신세계
   의 단면만 보여주는 불완전한  반쪽들이었으므로. 톨스토이 또한 그러
   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위대한  사람들에게서만 보이는  모습들일까. 아내가
   전폭적으로 자신에게 동화되기를 바라고,  아내의 세계를 어쩌다 들여
   다보는 일을 시혜로까지 여기며, 헛기침을 보태서라도 남편의 위상을
   높이려 드는 게 톨스토이뿐이었을까. 그 시대의 잘난 남자들만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그런 태도는 질기게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결
   혼 이후에 모든 것을 시댁중심으로, 남편 중심으로, 180도 전환하기를
   요구하거나 강압하고, 아내의 세계는  부수적인 참고사항 정도로 여기
   려는 남자들의 태도는 여전하다. 사내다움의 징표로 쓰이던 마초이즘
   까지 요즘에는 동서양의 그런 남자들을 매질하는 데 동원될 정도로.
   
     영신아. 참으로 미안하구나. 페미니즘과 마초이즘이 서로  그 장점을
   주고받지 못한 채 서로 반목만 거듭하는 꼴을 보여주었을 뿐이니 말이
   다. 그리고 그 뒤안길에서 여전히 면구스러워하면서  낯만 가린 채 웅
   성거리는 수많은 이들 중에 이 시대의 남편들이 대다수라는 걸 읽어내
   는 일 또한 여간 부끄럽지 않구나.
     그런 이들 중에는 앞서 간  톨스토이를 추종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게야. 그의 안섶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말이야. 그지, 영신아?
                                                       [31/12/2003]


     * 분량 관계로 사회와 국가편은 따로 싣는다.

 

   [추기] 적고 보니, 이 세상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숭배하기 마련인
          톨스토이를 들입다 내리까는 내용이 되고 말았다. 간추려진
          업적을 중심으로 떠받들려져 온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폴 존슨의 명저 <지식인의 두 얼굴>
          (이 나라에서는 2005년에 번역출간됨)에서 그를 '하느님의
          큰 형'이란 소제목으로 검토한 곳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그의 일기 한 구절을 소개하자면, "지독한 색욕이 육체적 질병
          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 1856.5.6.". "관습적인 출처에서
          얻은 임질을 치료받고 있다" - 1847.3월. 그리고, 1852년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또 다시 성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성병은 치료했지만 수은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말못할 고통을
          겪고 있어요.'라고 적고 있다. (위 번역서, P.214) [Dec.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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