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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제자'의 글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3. 2. 1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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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思]   ' 할머니 제자'의 글

 

                                                                                                       최  종  희

                                                     즐거운 상상

 

                                                                                                 이 0 정

 

  오늘 하루도 매스컴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세상의 소리들은 시끄럽기만 하다. 보기 싫은 장면도 듣기 싫은 소리도 우리는 무슨 의무감처럼 날마다 들으며 귀와 눈을 혹사시키고 있다. 그러나 가끔씩 들리는 희망적인 뉴스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면 불편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 중 사회를 향한 기부와 봉사의 뉴스를 접하면 언제나 가슴이 따뜻해진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는 사회의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는데, 세계적인 부자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의 통 큰 기부를 볼 때마다 존경스럽고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조금씩 기부 문화가 발전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부자가 아니라도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기부할 수 있고 돈도 없고 재능도 없다면 몸으로 하는 봉사를 할 수도 있다.

 

  주식으로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은 재산 기부와 재능 기부를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그와의 점심 식사가 경매로 붙여지고, 낙찰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그와 식사를 하면서 그의 조언을 듣는다는 이야기는 세인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30억이라는 거금을 내고 그를 만나고 난 후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 사람이 있고, 게다가 그 엄청난 돈이 모두 사회의 기부 단체로 돌아간다니 참으로 멋진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그런 구세주가 나타날 것인가.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한 달에 겨우 몇 번 하는 나의 봉사활동이나 성실하게 해야 하지 싶다.

 

  내가 다니는 복지관에서는 연말이면 종합 예술제가 열린다. 일 년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는 행사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작품들이지만,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1층에는 멋진 서예 작품과 수공예품, 2층에는 문인화와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고 강당에선 합창, 무용, 댄스, 연극 등 분야별로 배운 것들을 발표하는 공연이 벌어진다.

  내가 속한 문예창작반에서도 작품을 내 놓았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인 시화 작품들이 당구장에서 체력장으로 가는 복도에 멋지게 걸렸다. 나의 작품은 “ 혼자 먹는 밥”이란 제목의 시인데 오며가며 시를 쳐다보던 할아버지들이 공감이 간다고 한다. 혼자 하는 식사의 쓸쓸함을 그들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본의 아니게 혼자 식사하는 내 신세가 탄로가 나 버린 셈이다.

 

  당구 연습팀의 아저씨 두 분이 나를 보더니,“혼자 밥 먹으면 밥 맛 없을 텐데, 같이 밥 먹어줄까요?”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는 급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가 뭐 워런 버핏은 아니지만요, 식사 경매를 붙이면 어떨까요? 낙찰 금액은 이웃돕기로 쓸게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나는 2탄을 날렸다.

  “오천 원짜리 추어탕부터 시작합니다. 곰탕, 불고기, 일식집, 뷔페식 만찬식...손 드세요”

  하지만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되지는 않았고, 그냥 웃고 말았다. 워런 버핏이 누군지 그들은 모른다. 내 농담에 맞장구를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한 십만 원쯤에 낙찰된 나의 점심 식사에 초대된 그들에게 나는 혼자서도 멋지게 밥을 먹을수 있는 비법을 전수하고, 그 돈으로 독거노인의 이틀치 양식을 해결해주는 재능 기부자가 되는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실제로 행하는 그들은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어디 로또복권이라도 사 볼까. 일등 당첨! 그날이 온다면 멋지게 한번... 나도 버핏처럼......

 

                                                                *

  위의 글은 나의 ‘할머니 제자’ 격인 어느 분의 글이다. 내년이면 고희 잔칫상을 받으시는데, 이분과의 인연은 15년도 훨씬 넘는다. 경상도 농촌 지역에 사신다.

  인터넷상의 문학동호회를 통해서, 아이디 인사나 하고 지낸 지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분이 지역 문학지를 통해서 시인으로 데뷔하신 분이라는 걸 알았다. 그만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곳 동호회에는 등단 준비를 하는 이들과 이미 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는데다 글발로 뿜어내는 열기들이 보통이 아니었던 터라, ‘오매 기죽어’ 하면서 지레 꼬리(?)를 내리고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러다가 내 글 중에서 울 집사람의 한쪽 귀가 어렸을 때 앓았던 중이염과 그 당시의 부모들 무지로 전혀 들리지 않게 되어서 한쪽 귀로만 살아왔다는 글을 접하고선, 그때부터 속내를 조금씩 털어오셨다.

  당신은 양쪽 귀 모두가 자연 상태로는 귀머거리에 가까워서 보청기 신세를 져오고 있는데, 그게 그녀의 고교 시절 음독 자살 미수의 후유증이라고, 메일에 적어왔다. 그런 내용을 대하고 어째서 그런 용감한(?) 농약 마시기에 도전했느냐고 묻지 않은 나의 무관심이 고마웠는지, 그 뒤로는 살살 속내를 드러냈고 거기에 욕심 한 자락도 자연스럽게 매달게 되었다. 제대로, 남들보다도 그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글쓰기 통신 교육이다. 그것도 시가 아닌 산문 쪽.  (참고 삼아 귀띔을 하자면, 이 나라 시인들의 산문 실력을 보면 절반 이상이 중학생의 우수작보다도 한참 아래다. 멋내기 버릇에 빠져든 껍데기 시인들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주소가 그렇다.)

  처음에 보내온 글들에는 온통 빨간 줄이 그어졌고, 어떤 때는 문장 하나에서 살아남은 낱말이 겨우 한두 개일 정도로 발가벗겨지기도 했다. 문단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어째서 그리 되는 것인지 설명은 빼놓지 않고 최대한 상세히 매달았다.)

  그분은 혼자서 눈물깨나 쏟았을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혼날 각오 없이는 달려들지 말라고 쏟아놓은 내 엄포에 자원 서약(?)을 한 처지라, 이를 악물고 입술만 죽어라 깨물었지 싶다. 내가 보지 않았어도 뻔할 뻔 자.

 

  그 뒤로 그분은 등단 시인이라는 문패도 과감히 떼어 버리고, 시내의 문예창작반에 수강 신청을 했다. 지금도 최고참 개근생 자리를 지켜내고 있고, 그 자리에 어울리게 그분의 산문 실력 또한 몰라보게 발전했다.

  엉터리 글쟁이들에게서 부끄러울 정도로 흔히 드러나는 맞춤법․띄어쓰기 무시하기(몰라서도 틀리지만 틀리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무관심이 버릇에 가깝다)는 완전히 사라졌고, 군더더기 사설 늘어놓기나 핵심 부재, 혼자서 감동하거나 지나치게 앞서 감동하는 그 감동 부풀리기 방식 등도 아주 깔끔해졌다. (위의 글에서 내가 손댄 것은 ‘할 것이다’라는 표현 한 군데를 ‘할 듯하다’로 바꾼 것뿐이다.)

   게다가, 글과 삶의 일치, 곧 글을 쓰는 목적 자체가 작가와 독자를 아우르는 자기 성찰을 위한 것이라는 내 말을 내 말 이상으로 지켜내고 계시다. 글의 진정한 감동은 성찰의 나눔에 있다. 

 

  순전히 그분의 겸손한 노력 덕분이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서 잘하는 우수한 학습 태도는 그분의 겸손에서 나온다. 독서가 글쓰는 힘의 바탕이라고 늘 떠들어대는 내 말대로 꾸준히 독서를 했고, 문예창작반에서 실전 연습을 거듭했으며, 세상 사물들에 대한 관찰력 기르기와 표현으로 다듬어내기를 꾸준히 생활화해왔다.

  이제 그분은, <바빠서, 글 고치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썼다>는 식의 ‘낙서론 핑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분은 복지관에 나가 글쓰기, 고전무용, 풍물, 당구를 하고, 한 주일에 하루는 독거노인들의 수발들기로 봉사한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한가하신 분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녀의 남편은 여러 해전에, 굳어가는 간 때문이 아니라 성급히 먹은 저급 회에서 발병한 패혈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그가 남기고 간 과수원 농사를 시동생과 함께 짓는다.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한 발을 뒤로 빼는 일도 없이, 예전에 해왔던 일을 고스란히 그대로 다 한다. 시동생댁, 곧 손아래 동서도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떴기에 때로는 혼자 남은 시동생 식사나 반찬도 챙기시는 듯하다.

 

  그녀는 혼자 밥을 먹는다. 어려서 세상을 떠난 첫 아이 대신 호주 상속을 한 둘째아들은 이 나라의 최고 기업의 중견 사원으로 해외 근무 중인데, 이 아들과 며느리는 누구에게 효행상을 주어야 할지 어려울 정도로 어머니에게 잘한다. 그들의 초청으로 지지난 해인가에 그 나라에 다녀왔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내용을 블로그에 올린 걸 보고는 내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암암, 자랑하고 또 자랑해도 모자랄 멋진 일이야 하면서.

  요즘처럼 흔해진 해외 구경 따위야 자랑할 거리도 못 되지만, 그처럼 불러 모신 어머니에게 해드린 온갖 서비스(?)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니 아들과 며느리가 어디서고 어머니의 곁에서 손을 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난 이 멋진 할머니에게 이제 정식으로 박수를 치기 위해서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동안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뻘건 줄을 박박 그어대며 자존심에까지 흠집을 냈을지도 모르는 이 무자비한 웃기는 스승 밑에서 무던하게도 견뎌냈고, 무슨 말을 하든 옳다 싶으면 그대로 따라서 해내온 그 감내심은 정말이지 숭고하기까지 해서, 이제 영롱하게 빛난다.  글과 삶의 일치라는 덕목에서 특히나.

  아무래도 화장하면 몸에서 사리가 한 그릇쯤은 쏟아져 나오지 싶다. (그러고 보니, 화장장 모실 때 잊지 말고 바가지 들고 가야겠다.)

 

  글은 짧은 것이든 긴 글이든 그 자신이다. 멋지고 그럴 듯한 글을 쓰려고만 들면 옷과 화장, 악세서리에만 관심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대충 긁적인 뒤 휙 던지는 게 버릇인 사람도 막상 제 얼굴 화장 시간이나 외모 챙기는 데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런 이들에겐 아무래도 글보다는 외모 꾸미기가 더 중요한가 보다. (이 할머니! 그럴 거 같쥬? 하하하.)

 

  이 할머니. 이 작가님! 이제 하산하셔도 됩니다. 이젠 글 추수를 하실 때만, 그것도 짬이 되실 때만 간간이 이렇게 던져 주시면 됩니다. 달리 소식 전하시지 말고요.

  그동안 삶의 여러 구석에서 제가 더 많이 배워 깨치게 해주신 것, 이제야 고마움을 제대로 표합니다. 나의 멋진 제자였던 이쁜 할매에게 스승으로서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함다. 알라뷰~~~~~~~~~                 [18 Feb.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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