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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발가락의 저릿한 아름다움

[내 글] 진담(眞談)

by 지구촌사람 2013. 3. 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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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                      못생긴 발가락의 저릿한 아름다움

 

  임 선생님.

  뚱딴지같은 얘기지만, 제 아내의 발가락은 참 예쁩니다. 키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데다가 어느 것 하나 곧고 곱지 않은 것이 없이 가지런합니다. 참 신통합니다. 짬이 나는 대로 거의 매일 아내의 발 마사지를 해주고 있는 것은 온 종일 나보다도 더 고달프고 바쁘게 지내는 그녀의 곤고함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뜻에서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처럼 예쁘고 발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 아내의 발가락들이 신통하기만 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는 탓인지 나는 다른 여인들의 발가락도 그처럼 예쁘거나 예쁠 것이라는 괴상한 생각을 아주 당연하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 생각을 괴상하다고 단정하게 된 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전철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여인들의 발가락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전혀 아니었거든요. 차림이 근사한 사람, 몸매가 늘씬한 사람, 고아한 얼굴에 새하얀 샌들을 신은 사람까지도 발가락에 이르면 어찌 그리 민주적이고 지방자치가 완벽하게 이뤄져 있는지요.

 

  들쭉날쭉한 건 예사이고 꼬부라진 놈, 누운 놈, 다른 발가락을 파고들어 기어이 그 속에 제 어깨를 밀어넣고 있는 녀석에다, 무좀의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해 녹아 있는 발톱들까지 갖가지였습니다.

  여름철이면 흔히 보이는 그런 발가락 모양새들을 도둑질하면서 나는 혼자서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여름철 여인들의 차림새에 찍히는 마침표는 신발이 아니라 발가락의 모습이라고 고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들 따라서 제 발 크기의 한 배 반쯤 되는 항공모함을 신고 다니느라 제멋대로 늘어난 발가락이나 피터 팬의 뾰족구두에 발가락들을 가둬두고 지내는 요즘 젊은 사람들. 그들이 어른이 되어 못생긴 발가락을 바라보며 지나간 시절의 얕은 젊음을 되돌아보게 되리라고 혼자서 고소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속 좁은 사악함이었습니다. 악의에 찬 비죽임이자, 삐딱한 얇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죽 늘어앉은 초등학교 동창 친구 중에서 한 여인의 발가락을 대한 이후의 일입니다. 

 

  그녀는 두어해 전의 내 잡문 <결혼식장의 구두 한 켤레>에 잠깐 인용된 결혼식의 혼주이기도 한데, 우연히 바라본 그녀의 발가락은 못생겼다는 표현이 심심하달 정도로 온갖 비리(?)를 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엄지발가락은 좌우의 크기가 다르고, 방갓을 뒤집어 쓴 듯이 끝부분이 유달리 통통한 두 번째 발가락은 어찌 그리 멀쑥하게 큰지요. 게다가, 삐뚤빼뚤 솟은 게 마치 글씨 공부하는 어린아이가 모음 ‘l’자 연습을 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새끼발가락은 아예 네 번째 발가락을 이불 삼아 덮고 있었습니다. 어느 발가락 하나 제대로 생긴 게 없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무좀에 시달렸는지, 발톱들은 모두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발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 챈 그녀는 새삼스레 얼굴을 붉혔습니다. 마치, 남정네 앞에 발가락을 보이면 온몸을 보인 것처럼 부끄러워해야 하는 예전의 중국 여인들처럼요.

  그런 그녀의 말간 부끄러움 뒤로 그녀가 그 직전에 여자 동창들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이 스쳐갔습니다.

  -난 이제 밑 빠진 년에다 빈집을 지키는 년이야.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녀는 동창이긴 해도 우리보다 두어 살 손위입니다. 늦둥이 올깎이 가리지 않고, 부모님들이 생각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시절 탓입니다.

  그녀 역시 나이 스물 이전에 남들이 죄 올라가는 서울 땅에 발을 내딛고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신접살림을 차리고도 D시장의 생선 좌판을 그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꼼짝 않고 삼십 년 넘게 좌판을 지킨 덕분에 지금 그녀는 잘 알려진 N수산시장의 복판에 제법 크게 자리 잡은 점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지켜낸 좌판은 그녀에게 커다란 점포의 주인 자리와 아이들의 대학 졸업장까지 가져다주었지만, 그녀는 그 대신 무좀이랑 치질에다 이런저런 내과 질환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밑 빠진 년이란 말은 단 하루라도 시장을 비울 수 없어서 미련스럽도록 오랫동안 치질까지 깔고 앉아 뭉개는 바람에 끝내는 최악의 상황에서 미주알 절제수술까지 받게 된 것을 두고 그녀 자신이 느물거리는 어투로 뱉어낸 말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는 다시 자궁을 들어냈습니다. 빈집이 되었다는 말 역시 그렇게 된 상황을 그녀가 너스레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그녀가 친구들을 만나고 바깥나들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요즘도 누가 옆에서 함께 하지 않으면 버스를 혼자 타고 서울 거리를 나다니지 못 합니다. 삼십 년이 넘게 자신이 둥지를 틀고 살아온 서울 지리에 그토록 까막눈인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딸들은 대학원까지 마친 아이도 있고 그 중 하나는 그 어렵다는 고시까지 합격해서 그녀를 기쁘게 했습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나자 제 어미 속을 잠시 박박 긁어대던 맏딸도 시집을 간 뒤로는 뽀얀 살결을 빼어 닮아 유난히 고운 외손녀를 안고 와서 그녀의 입에서 할미 소리가 기쁘게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발가락에서 부끄러움이 가시자,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좌판을 마련할 때까지 동네 아주머니를 따라 생선 광주리를 이고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거든. 그때 머리가 하루 종일 짓눌려서 집에 돌아오면 고개를 못 돌릴 정도로 힘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고생을 진짜로 도맡아서 한 건 내 발가락이더라고. 하나도 제대로 뻗지 못할 정도로 짓눌린 데다 생선들 마르지 말라고 자주 물을 썼더니 고무신이 젖은 거야. 걸음을 떼어놓으면서 고무신 미끄러운 생각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온 발이 다 무좀과 전쟁을 하고 있더라고.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어.

 

  임 선생님.

  그 후로는 샌들에 걸려 있는 여인들의 발가락이 보이더라도 나는 그 모양새의 고움과 미움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머리통을 짓누르던 생선 함지박의 무게를, 삶의 순질량을, 발가락이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더라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고단해서 아름다운 삶의 뒤안길을 그런 발가락을 통로 삼아 들여다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삶에 삐딱해 하는 저의 얇음을 되돌려 세우곤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못 생긴 발가락을 대할 때마다 그 안에 깃을 내린 아릿한 고뇌와 수고에서 저릿한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싶습니다. 그런 연습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29/5/2001]

 

 

                                                                                        - 최 종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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