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회(2013.3.4)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1)
1. 개괄
-출연자들의 면면 : 정태식(31. 소방관, 서산소방서). 아름다운 청년(?)이라고나 해야 할까. 수려한 용모에 다부진 골격이 한눈에 담뿍 담기는 멋진 사람이었다. 소개 자막으로 흐르는 철인 3종경기를 대하자 안팎으로 꽉 찬 사람이라는 첫인상에 힘이 실리는 듯했고. 초성 문제에서 손쉽게 300점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예고편에 나온 세 사람 중 하나인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이분은 우리말 겨루기 카페 회원이시기도 하다. 2012년 12월 가입. 공문서 표기에서 잘못 쓰이는 말들을 대하고 우리말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당찬 가입 인사를 대하고 그때 그의 삶에서 내뿜은 열기가 예사스럽지 않은 느낌을 받았기에 그 열기에 화답하는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다시 답글을 다는 흔치 않는 열성을 보여주셨던 분이다. 사람은 그런 자디잔 일 하나에서도 그 사람의 그릇이 드러난다면 과장일까.)
방혜신(58. 공인중개사). 어제도 세 분의 여성이 출연하셨는데, 하나같은 공통점은 표정들이 밝고 또 맑았다는 점.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분들의 고정 인상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긴장이 넘쳐날 녹화 내내 싱글싱글 생글생글. 시청자들도 이 멋진 미소 앞에서 덩달아 맑아지는 큰 덤을 챙기게 된다.
강민표(25. 연대 전자공학과 3학년). 엄지인 아나운서를 흠모(?)해서 출연했다는 맑은 청년. 제대 복학생인데도 그런 형님(?)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 청년의 당당한 고백 때문일까. 엄지인 아나운서가 그의 사연을 들으며 진짜로 얼굴 빨개지는 건 처음 봤다. 화면에서는.
후임들을 챙기는 간단한 인사말에서도 따뜻한 패기가 배어나와서 참 좋았다. 공부량 부족이 눈에 보여 좀 안타까웠다.
권태옥(75. 주부). 이런 분들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저렇게 곱고 멋지게 나이 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전파되지 않을까. 서예 10년, 가곡 교실 10년을 다니셨다는 말씀에 딱 어울리게 안팎이 아주 멋지신 분이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황감하게도 공짜로 대할 수 있는 인생의 귀감에 들고도 남으셨다. 10손주들 앞에서 티브이에 출연하신, 공부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신 것 이상으로 더 확실한 사표(師表)가 세상에 또 있을까.
최승희(34. 새댁). 지난 번에는 40대의 새댁이 출연하셨는데, 이번에는 3살 연상의 새댁이 모습을 보이셨다. 주차 단속이라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듯. 공부량 부족이 엿보였지만, 당사자는 까짓거 어떠랴 하셨지 싶다. ‘생글이’ 표 미소 천사군에 편입되고도 남았거늘.
참, 어제 모습을 보이신 분들 중에 세 분, 즉 방혜신, 강민표, 권태옥 님들은 모두 지난해 10월 예심 합격자들이셨다. 연말과 연초 행사 프로그램들이 끼고, 게다가 이런저런 특집 방송 등이 있어서 녹화와 방송이 지연되었는데 그런 것이 되레 참가자들에게는 준비 시간을 더 벌게 해주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공부량 부족과 자료 미흡이 드러나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3단계 진출자 중 방혜신 님과 권태옥 님의 경우는 공부량은 많았어도 공부 자료량(폭)이 좀 적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내 눈에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중도 탈락하신 분들은 공부량 부족이 한눈에도 드러날 정도였고.
-출제 수준 : 폭넓게 공부한 이들에게는 아주 평이한 문제들이라고나 할까. 제작팀에서 마치 어서 달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기원을 담은 듯한, 그런 출제로 보였다. 애먹이는 문제가 거의 없었는데다 평이한 말들이지만 그런 것들에 관심하는 공부 과정을 통해서 삶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들이었다.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질 때 그 알속이 제대로 들어차게 마련이므로.
-옥에 티* : 방혜신 님이 미인대회 이야기를 하자, 거기에 엄지인 아나운서가 미스코리아와 ‘미세스코리아’ 얘기를 덧붙여 맞장구를 쳤다. 대본에 있었는지 아니면 진행자의 기지를 발휘한 애드리브인지는 불명하지만, 그때 ‘미세스’라는 발음을 했다. 이건 영미 발음 어느 것을 택해도 없는 콩글리쉬 발음이다. ‘미시즈’라고 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바뀐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발음인데, 희한하게도 이 나라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미세스’로 오독한다. 누가 처음 그런 깃발을 꽂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가지의 옥에 티. 이것도 방혜신 님과 관련되는데 초성 문제에서 ‘원장실’로 답했을 때, 그 낱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면서 오답 처리를 했다. 명백한 실수다. 이 ‘원장실’은 정말 제대로 된 파생어다. 국립국어원 원장실 앞에 표지판으로도 걸려 있는.
그 이유는 초성 문제란에서 상술하겠지만, 제작팀이 녹화를 잠시 중단하고라도 국립국어원에 질의를 했어야 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만 하고서 가위표를 들어 보인 듯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피해갈 수 있는 실수였다.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방혜신 님이 3단계 진출을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뱀다리 : ‘옥에 티’는 옥에 있는 티, 곧 옥의 티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옥의 티’라고 표기하면 표준대사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오답이 된다. ‘옥에 티’는 관용구도 아니고 속담으로만 쓰이는 말로 규정되어 있는 까닭이다. 참고로, 옛말로 ‘옥병’이라는 게 있는데 지금도 그 뜻풀이는 ‘옥의 티’로 되어 있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렇게 되어 있다.
2. 1단계 초성 문제
-제시어 분포 : 수/원/조/동/한. 관심사인 ‘?0?’ 문제를 통과한 분은 정태식, 강민표, 최승희 님이었다. ‘수’에서 ‘파수꾼’으로 답한 정태식 님의 내공이 돋보였고, 강민표 군은 이곳에서 내가 만능접사 격으로 제시했던 ‘적’을 활용하는 기지가 엿보여서 방송을 보면서 나 혼자 배시시 웃기도 했다.
어제 주어진 제시어들은 비교적 답을 찾아내기 쉬운 말들이었다. 권태옥 님이 당황하셨던 ‘00동’의 문제만 빼고는. 차분히 생각하셨으면 답이 적지 않았는데 그분 기준의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접하지 않는 말들이기도 해서 적잖게 당황하시는 바람에 다음 관문으로 나아가시지 못했다. 예컨대, ‘노동’만 떠올리셔도 막노동/중노동/임노동이 있고 전자동/급제동/정중동/벽오동, 방향을 뜻하는 남남동/북북동... 등등 꽤 많았는데, 그런 것들이 그분의 삶에서는 그다지 익숙한 말들이 아니었던 탓이 아주 크다. (그래서, 평소의 독서량 유지를 자주 강조하는 것. 책과 종이 신문 읽기를 통한 세상 접촉은 인생 공부도 되지만 간접 경험을 통한 지식 확장과 삶의 통로 넓히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므로.)
다른 얘기는 건너뛰고, 위에서 언급했던 ‘원장실’ 문제만 다루기로 하자. 이 말은 어엿한 파생어다. ‘원장’이라는 실질 형태소에 접사 ‘실’이 결합한 파생어다.
그 이유로, 첫째 답에 쓰인 ‘-실’을 보면 이것은 사전에도 규정된 접사다. 사전 풀이를 보자.
실 : ①‘방’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건조실/숙직실/연구실/탈의실.
②‘업무 부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국무총리실/기획실.
즉, 이 ‘-실’은 방을 뜻하거나 업무 부서를 뜻하는 접사이기 때문에 ‘원장실’이라는 말은 원장의 일을 행하는 자가 머무는 방을 뜻한다. <표준>에 ‘교장실’이라는 낱말을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는데, 그 뜻풀이는 ‘교장이 사무를 보는 방’으로 되어 있다. 대학원에 가면 ‘원장실’이라는 방 표지가 달려 있고, 국립국어원에 가도 그 표지가 큼지막하게 달려 있다. 누구나 다 알듯이 그건 바로 ‘원장이 사무를 보는 방’이라는 뜻이다.
둘째로, 우리말에는 사전에 표제어로 다 오르지는 못하지만, 파생력을 인정받아 파생어로 취급되는 말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쓰인 ‘파생력’이라는 말도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사전에 오르지 못한 파생어들을 설명할 때 국립국어원에서도 사용하는 파생어이다.)
예컨대, 사전에서 ‘비행깃값/교복값/물건값/공책값/음식값/쌀값’이나 ‘한정식집’을 찾아보라. 표제어에는 없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어엿한 파생어들이다. 잘못된 말들이 아니다. ‘값’은 일부 명사 뒤에서 대금의 의미로 쓰일 때는 앞말에 붙여 적도록 하는 (즉, 파생 접사 능력을 부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정식집’ 역시 마찬가지다. 사전에 오른 ‘꽃집’과 마찬가지로 ‘집’에 이러한 파생 접사 능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정식집’으로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물론 어엿한 명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위에서 문제된 ‘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전에서는 ‘국무총리실, 기획실’ 등만을 예시하고 있지만, ‘전략실/총괄실/처리실’ 등이 명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부지기수다.
예컨대 <표준>에는 ‘분리수거’라는 말이 합성어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런 명사 뒤에 ‘-실’을 붙이면 ‘분리수거실’이 된다. ‘분리수거 처리실’의 준말 꼴인데, 실제로 이런 말이 쓰이고 있고 어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시체 처리실’에서 어감을 고려하여 ‘처리실’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때의 ‘처리실’도 잘못된 말은 아니다. 사전에 표제어로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정당한 파생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파생어를 배제하는 건 잘못이다.
요컨대, ‘원장실’이라는 말이 사전의 표제어에 없다고 해서, 그 말이 문제에서 요구하는 명사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그럴 때는 잠깐 녹화를 멈추고라도 미심쩍은 것들은 국립국어원에 질의하여 확인한 뒤에 계속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이 말은 파생어의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말이다. ‘실’이 접사로 완벽하게 규정되어 있는 말이므로.
어제의 방송을 보고 국립국어원의 자문위원이 전화를 걸어와서라도 이 문제점을 논의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아주 괴상한 일이 된다. 왜냐, 국립국어원 원장실 앞에 버젓이 표지판으로 내걸려 있는 ‘원장실’이 문제에서 요구하는 명사 범주에서 제적되어야 하니까, 어쩌면 그 표지도 떼어져야 할 불운(?)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잖는가. 하하하. (계속)
455회(2013.3.11)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1) (0) | 2013.03.12 |
---|---|
454회(2013.3.4)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2) (0) | 2013.03.06 |
453회(2013.2.18)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1) (0) | 2013.02.19 |
452회(2013.2.11)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 (0) | 2013.02.12 |
451(2013.2.4)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 (0) | 2013.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