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타고 날아오르기 또는 꿈꾸기 최 종 희 내 책상 앞과 사무실 책꽂이 한 편에는 자동차 사진 하나가 있습 니다. 진홍색의 페라리 550 마라넬로입니다. 얼마 전 수입차 전시회 가 있을 때 작심하고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구해온 사진입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살 거냐? 언제 살 거냐? 이제는 대답하기에 지쳐서 아예 그 밑에 써 붙여 놓았습니다. <절 대로 살 것은 아님> 그러자, 이제는 사람들의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진을 붙여 놓았느냐고요. 아래 얘기가 그 설명입니다.
<사진 : 페라리 마라넬로 575M. 550의 개량형>
<사진 : 내 방 벽에 붙여놓은 페라리 마라넬로 550 녀석>
페라리 550 마라넬로. 참 대단한 녀석입니다. 배기량이 5,473 시시에 485마력짜리니까, 알기 쉽게 2000 시시에 200마력 이하의 일반 승용차하고 비교하자면 그 힘만으로도 너끈히 두 배반은 됩니다. 실제로 출력이 가능한 최고 rpm으로 보아도 7,000 정도니까 그 역시 승용차하고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더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흙을 잔뜩 싣고 다니는 25톤 덤프 트럭 과 힘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체구까지 그렇게 큰 편은 아닙니다. 날렵한 몸매지만 전체 길이가 4.55 미터여서, 우리네 중형 승용차와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더 긴 편이라고나 할까요.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
러운 놈입니다. 게다가 보면 볼수록 맘에 드는 진홍색입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속도입니다. 실제로 주행이 가능한 최고 속도가 자그마치 시속 340킬로 정도나 되거든요. 중대형차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가 160-200킬로 정도 니까, 그 역시 두 배에 가까운 속도입니다. (실제 주행시에는 이렇 게 단순한 산술적 차이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그 차이가 벌어지 긴 합니다만.) 시속 350킬로에 육박하는 이 속도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최대
한 내달리는 속도와 비슷합니다. 바로 하늘로 떠오르는 속도이기
때문에 이 자동차에 부양(浮揚)을 위한 장비가 조금만 부착된다면
아마 페라리는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페라리를 내 방과 사무실에 붙여놓은 이유. 바로 그것은 페라리를 타고 떠오르고 싶어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걸 타고 떠오를 때의 그 쾌감을 즐기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꿈을 꾸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이지요. 나아가서는 꿈꾸는 짓을 잊어버리기 않고 싶 어서입니다. 활주로에서 이륙 지시를 받은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처음 에는 갑자기 힘을 내기 시작한 엔진 모두에서 내뱉는 쐐애에 소리 가 너무 커서 바퀴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 면 활주로의 아스팔트 위에서 구르는 바퀴 소리가 타다다다 하고 들
리기 시작합니다. 한참 그렇게 요란스러운 마찰음이 들리다가 이윽고 드드드드 소리로 바뀌고 어느 순간 드으ㄷ... 로 소리가 끝납니다. 비행기가 지상을 박차고 솟아 오른 것입니다. 그 육중한 몸집으로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용트림을 해대는 비행기.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가장 신납니다. 떠오르는 순간을 온 몸으로 상상하며 나는 미리 짜릿짜릿해 합니다. 그런 데도, 실제의 이륙순간에는 또 다시 오금이 저려옵니다. 실제로 오줌을 질금거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떠오르기의 쾌감은 오 르가즘 못지 않습니다.
가장 노련한 파일럿도 실제로는 이륙 순간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 이라고 합니다. 떠오르기에 성공하고 나면 그들 역시 짜릿한 희열 을 느끼게 되고 그 맛에 조종간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고 들었습니다. * 지상과의 이별을 꿈꾸는 이륙에의 소망. 비상(飛翔)에의 꿈. 그것 은 지상에서의 인연과의 별리를 희원하는 것이나 진 배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막상 하늘로 떠오르고 나면 생각은 이내 지 상으로 내리꽂히고 맙니다. 조금 전 떠나온 지상에 두고 온 것들에 게로 생각이 내달립니다. 습관적입니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대개 의 사람들이 그런 모양입니다. 하늘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생각들. 그것은 지상에 머무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관한 것 입니다. 하늘로 떠오른 사람들은 반대로 땅위의 것들과 아교풀로 붙여진 것처럼 옴쭉달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떠오르지 말자고 말입니다. 떠 오르는 꿈만 꾸는 것입니다. 비상을 꿈꾸기만 하고, 그 꿈꾸기만 즐기자는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저릿저릿해오는 그 날아오르기의 꿈을 순수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날아오르기 직전까지의 행위
만 필요한 것이므로, 실제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동작은 아껴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 나의 페라리. 페라리 550마라넬로. 그것은 지상에 머물고 있는 내 꿈의 용기(容器)입니다. 꿈을 담아 내고, 꿈을 싣고 달리기 위한 그릇입니다. 지상에 머물고 싶어하는 내 꿈을 띄워 올리는 부양기입니다. 내가 늘 꿈꾸며 살기 위해서 나는 녀석이 필요합니다. 늘 책상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은 나는 녀석의 그 눈초리에 보답 하기 위해서라도 늘 꿈을 꾸며 살아갈 것입니다.
가장 윤택한 삶은 꿈에 이끌려 꿈을 먹고 사는 삶이라는 곰팡내 나는 말이 요즘 시대에 가장 돈 안 되는 얘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 도, 고집스럽게 그 말을 만지작거리면서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한 페라리의 사진은 여전히 내가 머무는 곳에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이 지상에 묶인 채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늘 꿈꾸는 꿈을 간직한 채, 그런 소망을 잊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어서, 날기 직전의 상태까지만 나를 꿈에 묶어놓습니다. 페라리에 내 몸을 엮어 놓습니다. 녀석이 늘 나와 함께 하는 이유입니다. [10/06/2000]
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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