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에 매달린 삶
와이셔츠를 고르기 위해 장문을 연다. 무얼 입을까. 오랜 만이다. 정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와이셔츠를 입기 위해서 장롱 문을 연 지도. 오늘은 초등학교 친구가 혼주인 결혼식장에 가는 날이다. 사돈집도 있을 터이고 어떤 이들이 올지 모르니 아무리 사소한 것으로라도 친구의 체면에 흠집이 나게 해서는 안 되지 싶다. 나는 깃의 높이가 보통인 백색 와이셔츠를 꺼내 입는다.
나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보면 와이셔츠에 눈길이 간다. 처음에는 그저 눈에 들어와서 별 생각 없이 바라보기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상대방을 유심히 살펴봐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와이셔츠부터 본다. 넥타이와 벨트는 와이셔츠에서 읽어내지 못한 것이 있을 때 그 다음으로 살펴본다.
와이셔츠는 남자용 괄호다. 여름철에 샌들 사이로 무심코 드러나는 여자들의 발가락과 발톱에서 짐작되는 사연보다도 더 많이, 남자의 와이셔츠는 그에 대해 자상하게 이야기해준다. 형편과 처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와이셔츠는 한 편의 단편소설이다. 남자의 내력이, 그의 삶이, 요약되어 있다. 와이셔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스냅 사진으로 채워진 휴대용 앨범을 펼쳐보는 것 같다.
칼라에 버튼이 달렸거나 핀 고정식과 같이 스탠드 칼라가 아닌 것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나는 와이셔츠를 보면 우선 다림질 상태와 목 위로 올라오는 깃의 높이를 본다. 그리고 깃 안쪽으로 맺혀져 있는 주름자국이 있는지, 목과 깃이 닿고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마모되었는지 살펴본다. 세심하게, 그렇지만 재빨리, 살펴보는 재주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소매를 본다. 소매단과 단추 구멍 주변을 본다. 뜯어진 실밥이 없는지, 오염도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본다. 팔목 사이로 보이는 안쪽과 커프스 정면을 잽싸게 살핀다. 맞춤 와이셔츠인 경우에는 재질도 힐끔거린다. 그러면 대체로 상대방의 정황이 읽혀진다.
깃이 다리미질되어 있거나 깃끝이 제대로 펼쳐져 있고, 목 위로 올라오는 깃 높이가 보통인 기성품 와이셔츠는 평온한 중산층 월급쟁이의 거울이다. 천의 재질에 따라 이따금 깃이 빳빳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늘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서 있으면 그것은 최소한 아내의 손길이 머물렀던 옷이다.
와이셔츠 깃이 날렵하게 서 있지 않고, 둥그스름하게 말려있거나 끝이 쳐져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때문이다. 가장 흔한 것은 출근길에 아내에게서 그 와이셔츠가 건네지지 않은 경우인데, 부부싸움과 같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그렇고, 애초부터 와이셔츠의 갈무리나 선택을 남자가 알아서 하는 집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다림질이 필요 없다는 와이셔츠만 골라 사는 아내 덕분에 그리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좀 드물긴 하지만 남자가 와이셔츠 따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되는대로 아무 거나 걸치고 다닐 때도 그렇다. 그럴 때는 와이셔츠뿐만 아니라 그가 걸치고 있는 옷 전체가 군기 빠진 병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걸 대하는 사람은 왠지 편안하다, 속이 타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내만 예외다.
그래서인가, 와이셔츠가 때때로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매가 낡은 와이셔츠에 눈길이 가면 아릿한 파동이 인다. 특히, 중년 남자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왠지 눈시울이 뜨듯해져 온다. 사연의 앞뒤에 길게 매달릴 한숨들도 함께 떠오른다. 쳐진 어깨선과 골이 넓어져 긴장이 풀린 듯한 구두까지 보면 그에게 더 이상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아파트 입주를 며칠 앞두고 이혼청구 재판에 몰린 사내. 그가 마지막으로 정신과의사를 찾아와서 아내가 집도 절도 없는 사내에게로 달려간 그 이유나 속 시원하게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던가. 내 집 마련 한 가지 목표달성을 위해서 그와 그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참아내면서 함께 뛰어온 힘든 길에서, 그것도 꿈에 그리던 아파트 입주를 코앞에 두고, 자신에게서 뛰쳐나간 아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을 때, 의사는 그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가 13년 전 결혼 당시에 입었던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자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와 그 아내 사이에는 이미 봉합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거리가 벌어져 있는 게 보여서이기도 했지만, 그의 낡고 해진 와이셔츠가 머물러야 할 곳이 없어서 뒤늦게 서성거리도록 만든 내 집 마련이라는 굴레와 거기에 덮씌워진 완강한 사회적 흡착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연해서였다.
소매가 해어진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 깜냥으로 바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푯대가 이따금 거기에 매달려 있어서 더욱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가늘고 짧게 풀어져 흔들리기도 하는 실밥들. 사내의 한숨과 함께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그 실밥들에 눈길이 머물면 내 가슴속에서는 한 줄기 바람이 스쳐간다. 바람에 쓸리는 낙엽처럼 속절없이 시간에 먹혀온 삶의 조각들이 언젠가는 그 실밥과 함께 힘없이 뜯겨져 나가는 걸 보고 있는 듯해서다.
예식장 안으로 들어선다. 제법 많은 친구들이 와 있다. 사업을 마구 확대하다 최근 예각(銳角)의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친구와, 그 친구의 그런 내밀한 사정을 내게 전해준 또 다른 친구도 와 있다.
사업하는 친구의 양복 위로 또렷하게 높이 솟아오른 하얀 와이셔츠는 여전히 맞춤셔츠다. 목이 길지도 않아서 기성품도 잘 맞을 것 같은 그 친구는 사업이 조금 잘 되면서부터 내내 맞춤셔츠만 입었다. 그것도 백화점과 호텔의 지하상가가 한 구멍으로 뚫려있는 시내의 이름 있는 맞춤집에서 대놓고 해 입었다. 내가 언젠가 그의 셔츠를 칭찬했을 때, 그는 내게 보는 눈이 자못 있다며 흡족해했다. 손으로 그곳의 약도까지 그리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만족한 웃음이 담겨진 그의 얼굴은 번질거렸고, 약도를 그리는 손가락에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큰 알반지가 번쩍거렸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그에게 내가 오래 전부터 이용해 온 곳을 말해 주었다. 내가 목이 좀 긴 편이어서 기성품을 입으면 와이셔츠 깃이 주저앉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서, 신경 써서 갖춰 입어야 할 까다로운 자리에 나갈 때 입기 위해서 이용했던 맞춤집이었다. 백화점 판매가보다도 훨씬 더 싸게 이삼 만 원대에 맞춰 입을 수 있는 곳이 이태원에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묻지도 않은 그의 셔츠 가격이 십만 원을 훨씬 넘긴다는 걸 굳이 밝히면서, 아무래도 싼 건 비지떡이라고 강변했다. 나는 그때도 삼 년 넘게 입은 투박한 재질의 푸른색 면 와이셔츠를 걸치고 있었지만, 말짱하다는 것을 그에게 그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예식장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그 친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높다. BMW 차가 튼튼하기는 한데 좀 좁다는 말을 하면서 너털웃음까지 섞는다. 웃음꼬리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 말고도 또 한 사람, 곧 그 자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줄무늬 투 톤 컬러에 소매와 깃만을 흰색으로 처리한 그의 요란한 와이셔츠 --- 그걸 클레릭 셔츠라고 하지만 그가 그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를 보면서, 나는 그가 아침에 와이셔츠를 고르면서 일부러 그걸 집어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우리는 가리고 감출 것도 없는 친구 사이가 아닌가.
반가운 얼굴 하나가 사람 사이를 뚫고 웃음을 머금은 채 내게 다가온다. 보면 늘 싱글거리는 친구다. 청년 시절 잠시 서울에서 방황하다가 시골로 돌아가 일찌감치 농사를 천직으로 작정하고 나서, 비닐하우스 농사로 두 아이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있는 친구. 매년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 동창회장에 올해는 그가 선임되었다.
웃음으로 그를 맞으며 악수를 나눈다. 중년남자의 손치고는 너무 따뜻하다. 버릇처럼 그의 와이셔츠를 본다. 넥타이로 바싹 조여진 와이셔츠 깃의 양끝이 살짝 들려 있고, 목주변의 천들이 조금 꼬여있다. 새 와이셔츠다.
서울 나들이에 걸칠 와이셔츠가 마땅치 않은 걸 보고 서둘러 나가서 하나 사들고 왔음직한 그의 아내의 부산한 손길이 떠오른다. 그래도 내 남편이 동창회장님인데...... 새 와이셔츠이니 깃까지 굳이 다릴 필요는 없을 테고...... 주름살이 말끔히 지워진 그의 와이셔츠 앞판과 살짝 들떠 있는 깃이 지어미의 손놀림과 마음갈이를 얘기해온다. 내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피로연장에서 내 앞에 앉은 동창회장에게 나는 술 한 잔을 더 따라준다. 그의 와이셔츠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서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의 온건하고 따뜻한 삶이 내게도 스며든다. 맞춤 와이셔츠의 친구를 찾아보니 그는 이미 많이 취했는지, 말소리들이 말리고 있다. 걷어 올린 와이셔츠 소매도 돌돌 말려있다. 돌아가는 길에는 저 친구를 부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떠오르는 목소리를 좇으며, 그의 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와이셔츠를 보지 않은 게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친구의 괄호가 말려 올라간 자리에 고민, 불안, 외로움이라는 글자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있을 때였다. [05/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