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오기] 내가 좋아하는, 땀 흘리는 여자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가끔 대하는 친구 하나가 있다. 나처럼 참석이 들쭉날쭉하다. 나는 그녀의 불참 사유를 잘 안다. 사별한 남편 대신 떠맡고 있는 가장 몫의 일들 때문이다. 그녀는 농사꾼이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지만, 그녀처럼 농사일을 아직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은 몇 안 된다. 그녀를 만나 악수를 하려 들면, 자꾸만 손을 뺀다. 손이 거칠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낚아채듯 움켜쥐고는 한참 만진다. 녀석의 얼굴이 발개질 때까지. 나는 그녀의 풀물 든 손을 사랑한다. 이곳저곳 긁힌 자국까지 남아있으니, 거칠 것은 불문가지다. 거칠어도 한참 거칠다. 손톱 사이엔 미쳐 다 제거하지 못한 흙물도 남아있다.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있으면, 내 어머니의 손을 대하는 듯만 하다. 농사일을 전업으로 하시지 않았음에도 늘 재게 움직이시는 바람에 항상 손에 뭔가가 들려있던 내 어머니. 하다못해 마당가에 떨어진 지푸라기 하나조차도 부엌 아궁이 안으로 옮겨지곤 했다. 어머니의 손길에 잡혀. 내가 그 친구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그녀가 진짜로 땀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어서다. 햇빛 속에서 햇볕을 벗 삼아, 온 몸으로. 그녀의 남편이 돌아갔을 때다. 나라밖에 머물고 있어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문상을 했다. 그것도 겨우 전화로. 이야기를 길게 못한다고 하기에 까닭을 물었다. 가뭄이 들어 밭에 물을 줘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호스 연결을 지금 해둬야 이따가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제때 받을 수 있단다. 호스가 무거워서 누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그 일손을 덜어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나. 서둘러 전화를 내려놓고 나가면서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쓱 닦아낼 그녀의 모습이 내게도 읽혀왔다. 그녀의 남편은 나와도 가깝게 지내던 1년 선배. 중학생 시절, 후배인 내게 영어공부법을 물어올 정도로 착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와의 짧은 통화에서 다시 끌려나온 그녀의 남편 이야기. 억지로 눌러 가라앉힌 남편의 모습은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내색 하나 하지 않고 가뭄 걱정만 하면서, 삶의 땡볕 속으로 뛰쳐나갔다.
그처럼 그녀는 삶을 정면으로 정시하고 정공법으로 대응한다. 햇볕 따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반긴다. 햇빛은 밝음이며, 생력의 근원임을 믿고 고마워한다. 모든 자연이 햇빛 덕으로 나고 자라남을 그녀는 매일 깨닫는다. 햇빛은 기분 그늘까지도 밝게 해주고, 마음의 상처도 소독으로 낫게 해준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그녀다. 햇빛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그녀는 그러므로 햇빛을 피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직사광선을 가릴 생각으로 머리에 눌러쓴 남자용 맥고모자 하나가 전부다. 그녀는 햇빛 앞에서도 정통 문법으로 살아낸다. 삶의 행간에 떠도는 냄새를 맡는 일이나 여백의 문맥 따지기도 하지만, 그건 짬이 있을 때의 일이다. 간혹 동창회 카페에 올라오는 그녀의 짧은 글 속에는 삶의 행간에서 거칠어진 손으로 그녀가 추수한 소중한 알곡이 들어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찰옥수수 알처럼 소담하고 탐스럽다. 싸구려 시구(詩句) 따위와는 거리가 먼 자연스런 흐름과 내용은 무공해 자연산만 같다. 그래서일까. 뒷맛이 참으로 그윽하다. 마치, 오래 끓인 삶의 사골 국물이 그 안에 녹아있는 듯하다. 삶의 진국. 나는 그걸 그녀의 짧은 글속에서 맛본다. * 땀방울 흘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기분의 호불호가 왜 없을까마는, 내 친구처럼 진짜배기 땀을 흘리는 사람들은 삶의 현장 바로 그곳에서 삶과 정면으로 당당하게 겨루고 승패에 흔쾌하게 승복한다. 복잡하지 않고, 진솔하다. 자신의 기분을 앞세워 수고를 필수과목으로 요구하는 삶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기분을 주물럭거리느라 머리와 가슴이 더 복잡해진 사람들은 대체로 입으로만 더 바쁘다. 머리속 생각을 쥐어짜고 비틀어댄다. 결국 해법 없이 자신을 들볶아대는 일로 열매를 맺는 일이 다반사. 속빈 쭉정이 열매를 껴안고 무력하게 물러서곤 한다. 그래서일 게다. 입만 살고 기분이나 찾는 이들은 막상 조금만 큰 일이 터져도, 외면하거나 숨어버리고 대책 없이 발만 굴러댄다. 그런 일이 아주 흔하다. 자신의 몸부터 던지는 손발의 수고를 아끼고, 땀방울을 흘리는 일이라면 우선 기피하고 보는 버릇들의 당연한 결과다. 베란다에 놓인 화분이 비실거린다 싶으면 아주 쉽게 내다 버리고 새로 사오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몸에 밴 게으름들이 그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사이에, 마음은 만성무력증의 늪에 빠져 익사상태로 향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기분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마치 고급한 정서만 같은 그런 착각에 빠져서. 삶은 기분 따위로 요리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게 결코 아니다. 삶의 고갱이는 대체로 경성(硬性)이다. 딱딱하다. 힘과 정성을 들여 정으로 쪼아대야 하기도 하고, 달려들어 흔들어대기도 해야 하고, 터진 옆구리를 황급히 틀어막기도 해야 한다. 지금 바로 당장. 마땅한 게 없으면 제 팔뚝을 밀어 넣어서 막아야 할 때도 있다. 얼굴이 그을릴까봐, 손발이 탈까봐, 햇볕을 피하거나 정면 대응을 기피하는 사이, 몸과 마음에는 곰팡이가 핀다. 햇빛처럼 좋은 최상의 소독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햇빛 좋은 날, 반나절쯤 널어 말린 이부자리의 보송보송함을 즐길 줄만 알지, 실제로 해내는 일은 드물다. 얼굴 그을리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몸에 밴 게으름 탓으로. 까짓 얼굴 그을리는 일이 무에 대수라고. 일부러 선탠도 하는 세상인데... 희끄무레한 하늘이 낮게 깔리는 끄느름한 날씨를 좋아하는 이들치고 햇빛 소독의 위대한 기능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런 이들의 삶에 그늘이 더 많이 깔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인과응보일지도 모르겠다.
손발이 긁힌 내 친구. 햇빛 속에서 당당히 살아내는 친구의 모습. 그 앞가슴에는 인생 훈장들이 매달려 있는 듯하다. 삶의 깊은 맛을 정통문법으로 읽어낸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멋진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그런 훈장. 그녀와의 악수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면 좋겠다. 녀석의 얼굴이 발개질 무렵엔 꽉 껴안아줘야지. 내놓고 그래도 될 우리 나이 덕도 보면서. [Nov. 2006] -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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