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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 잣대와 연애편지

[내 글] 진담(眞談)

by 지구촌사람 2011. 3. 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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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철, 삼포로 가는 길
 

 

 [옮겨오기]

                                    다림질 잣대와 연애편지


                                                                                             최 종 희    

           

  내 앞에 서 있는 사내의 와이셔츠에 주름이 져 있다. 다리미가 거쳐가지 않은 옷.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니 하루의 삶에 지쳐 있는 중년 남자 하나가 퇴근길 전철 손잡이에 그 삶의 무게를 어럽게 분산시키고 있다.

  위아래 훑어보니, 하루의 삶뿐만이 아니라 제법 오랜 기간에 걸쳐서 그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온 흔적들이 그의 외피에  매달려 있다. 후줄근해 보이는 겉옷도 그렇고, 옆으로 넓게 퍼져서 본래의 태어날 때의 모습과 동떨어져 보이는 구두까지도 그의 삶의 무게를 나눠서 지탱해 왔음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아내가 없거나, 아니면 어떤 연유로든, 그의 입성은 아내의 손길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했다. 며칠 전에 만났던 시골 친구의 말이 아니더라도, 중년의 사내가 다림질되어 있지 않은 옷들을 걸치고 다니는 걸 보면  괜히 안쓰럽다.

  그녀는 전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의 옷에서 드러나게 주름이 져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그 사내 편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슬금슬금 손가락을 움직여 허벅지 근처로 접근하는 바람에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나중에 알고 보니 맛이 간(?) 남자였다며 자신의 헤픈 마음 적선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중년 사내의 옷차림에서 다림질이 빠져 있으면 왠지 그의 평온한 일상이 보이지 않게 훼손되어 있거나 삶의 잔뿌리들이 튼실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있는 잣대로만 보자면 그렇다.     


  여러 해 전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주 접하고 이상하게 여긴 것 중의 하나가 남자들의 옷차림이었다. 다림질이 되어 있지 않은 옷들을 아무렇지도 않게들 입고 다니고 있었다. 중견간부급 이상인 공무원이나 회사원들도 그랬다. 요즘처럼 일부러 상표 딱지를 드러나게 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 아니던 시절에도 소매 끝에 붙은 상표룰  떼어내지 않고, 구김 자국이 선명한 양복들을 그대로 입고 다니기도 했다. 다림질되어 있지 않은 와이셔츠를 대하는 일은 예사였다. 나는 맞벌이가 대부분인 중국 여성들이 바쁜 탓이겠거니 하고만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건 새 옷이라는 표시였다. 포장을 뜯어서 곧바로 입은 새 옷이라는 표지로 그들은 구김 자국이 선명한 옷들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 그걸 여성의 손길로 연결시켜서 생각한 것은 외지인인 내가 지니고 있던 성급한 잣대의 탓이었다.


                                                       *

  엊그제 사무실로 예쁜 양란 화분 하나가 배달되어 왔다. 동양란 일색인 사무실에 화사한 꽃이 놓이자 사무실 분위기는 금시 환해졌다. 직원들은 나와 꽃을 두고 한 마디씩 했다. 일부러 부러움을 과장시키며 꽃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멋진 연애편지는 다시없다고 으스댔다. 직원들은 그 말을 듣자 입들을 비죽이다가 끝내 푸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 꽃을 보낸 우람한 여인을 그들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10여 년 전 직장에서 나와 함께 근무한 이다. 소속 회사와 하는 일은 달랐지만, 같은 터전에서 자주 얼굴을 대하던 이.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하거나 아래라 하더라도 조금밖에 차이가 안 날 게다. 그러나, 몸무게는 모르긴 해도 나보다 이십 킬로쯤은 더 나갈 것이다. 내 짐작만으로도 80킬로 대에 육박하니까. 

  그녀는 키도 크지만 체구도 무척 당당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외모를 습관처럼  존경한다. 왜냐 하면 나는 맷집이 풍성한 사람들은 그 살집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담고 있다고 믿어왔고, 실제로도 내가 겪어온 그녀의 마음씀씀이나 행동거지는 내 예단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며칠 전 우연히 내가 예전의 직장 근처로 돌아온 것을 알자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들어오자 사무실 안이 꽉 차는 것 같았다. 당연히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도 남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선선한 목소리로 그녀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상의해 왔다.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오면서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어느 대단위 오피스텔 건물 분양에 참여했는데 중도금을 계속 납입해야겠느냐고 물었다. 그 부도난 회사에 돈을 계속 내도 되겠느냐고, 잔뜩 걱정스런 표정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내가 하는 말이라면  믿어보겠다는 태도가 하도 역력해서 나는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사실 그녀는 나 같은 얼치기의 말이라도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능히 믿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룹사 사주의 친척이 은근슬쩍 운영하는 꽃집의 하나를 맡아서 이십여 년 이상 운영해온 사람이다. 압도적으로 보이는 체구와는 달리 그녀의 내면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맞아떨어지는 연약한 식물성 여인이다. 그녀는 식물성답게 동물성 앞에 약해서, 사람을 잘 믿는다.

         

  그 바람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공회사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그녀가 가져온 서류들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입주예정자 대표회의라는 곳에서 돌린 문서도 챙겨보았다. 두어 곳에 전화를 걸어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그 회사의 최근 형편을 물어도 보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51 대 49 정도의 비율이라면 어느 쪽으로 결정하겠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51쪽을 택했다. 내가 예상대로라는 말을 한 것은 그녀가 조금이라도 높은 확률을 택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니다. 그녀는 선의, 곧 사람들을 믿고 싶어 하는 쪽을 여전히 택했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하고 돌아갔고, 그 뒤 납부를 늦췄던 중도금을 납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양란을 보내온 것이었다. 몇 마디 말에 불과한 내 손님맞이에 대해서 그녀는 그걸 잊지 않고 바쁜 와중에도 예쁜 꽃으로 답례를 해왔다.


   그 꽃을 두고 내가 연애편지라고 했을 때 우리 직원들은 웃었다. 그리고는 대체로 싱거운 농담을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여전히 농담을 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기야 농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꼭 농담으로만 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녀가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보내는 연애편지였다. 그녀는 내내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으므로.

  다림질이 되어 있지 않은 중년 사내의 와이셔츠의 흔적도 어찌 보면 그가 여전히 삶에 보내는 구애의 편지일 수도 있듯이, 어떤 형태로든 보는 이들에게 삶의 파동을 전하게 하는 것은, 그리하여 보는 이들이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이끄는 것들은, 삶과의 연애에 속한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흔히 어떤 감흥에 젖어서 긁적이는 편지글에 무턱대고 연애편지라는 제목을 붙이는 버릇이 있다. 이런 내 나름대로의 발상이 저절로 그런 제목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역시 나 혼자만의 잣대이긴 하다.


                                                         *

  나는 다시 양란 화분을 바라본다. 화분에는 두 무더기의 앙증맞은 아이비도 배치되어 있다. 크고 단단한 난잎 사이로 양쪽에서 부끄러운 듯이 손가락 반 마디만한 잎사귀들을 치켜들고 있다.

  길게 뻗은 꽃대 끝에는 무더기로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다. 큼지막한 꽃송이들이 또 다시 보낸 이의 듬직한 체구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꽃들이 결혼식장에서 신부들이 손에 드는 부케로 많이 쓰인다는 생각도 난다. 아 부케. 그러고 보니 그녀는 사십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아직 미혼이다.


  나는 괜히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린다. 그녀의 짝꿍이 될 만한 마땅한 홀아비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처럼 모두들 짝수인 처지이거나, 홀수라도 이미 '찜'되어 있는 게 소문이 나 있는 사람들뿐이다. 홀수는 제대로 된 홀수를 만나야 완전한 짝수가 된다는 간단한 문리를 나는 화분을 보고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보낸 화분에 두 대의 꽃대가 솟아있음을 본다. 그리고, 난잎 사이에 숨기듯 심어놓은 아이비도 두 무더기임이 다시 생각난다. 아아. 내가 농담으로 던졌던 연애편지는 농담이 아니었다. 어쩌면 부끄럽게 드러낸 그녀의 소망이었을 것만 같다.

  습관처럼 들이대기 마련인 내 혼자만의 잣대를 가지고 생각 없이 화분에 던졌던 그 말에 뒤늦게 부끄럼들이 몰려와 엉기기 시작했다. 벽쪽으로 돌아선 내 얼굴은 저 혼자 달아올랐다. 왠지 그녀에게 잔뜩 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0/0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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