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고정관념 뒤집어 보기 : 울타리를 치자

[내 글] 진담(眞談)

by 지구촌사람 2011. 4. 1. 06:34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옮겨오기]          

                                                                                 

                                   고정관념 뒤집어 보기 : 울타리를 치자


  사회복지 역사, 혹은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 영국에서 일어난 인클로우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다. 흔히들 종획(綜劃)운동이라는 꽤나 어려운 말로 번역해왔는데, 쉽게 말하자면 울타리를 치고는 "들어오지마, 나가! 지금부터는 내 땅이야" 소리를 매몰차게 해댄 사건이다.

  처음에는 양털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지를 목장지로 바꾸고, 공유지나 농민보유지에다 울타리를 떠억 치고는 그렇게 해댔다. 중상주의(重商主義)를 숭모하게 된 튜더왕조 때 벌어진 일이다.


  그 바람에 힘없는 농민들은 실업자가 되거나 이농민이 되어 부랑민으로 전락했다. 1470년대부터 16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다. 나중에 거기에는 일차 종획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건 가진 자들의 가치 중립화 표현이고 실은 <빽>도 힘도 돈도 없는 농민들을 쫓아낸 운동이어서, 농민추방 (Bauernlegen, 農民追放)이 진실에 가깝다. 

  두 세기가 지난 뒤 이 울타리 치기 운동이 또다시 이어진다. 2차 종획운동이다. 이번에는 공유지나 미개간지까지도 싸잡아 그렇게 해댔다. 작은 농장은 큰 농장에 먹혔다. 앞서 1차 때는 민초들의 원성이 하도 높아서 정부에서 금지령을 내놓기도 했지만, 2차 때에는 그런 일에 정부가 앞장서기도 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 운동이 농업혁명/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농민들은 확실하게 도회지 공장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1760년대부터 점차 극성을 부리다가 1845년 이후 쇠퇴했지만, 이것을 통해 이뤄진 건 자본가 계급의 발흥이다. 봉건제도는 확실하게 붕괴되었고,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성되는 시민사회로 이전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시민사회라는 건 처음부터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뒤섞음 구조로 출발했다는 원초적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처럼 울타리 치기 운동은 나쁜 짓이다. 그리하여 후대의 사학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지만, A. 토인비가 정식으로 밀어붙인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지닌 휘황찬란함에 묻혀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울타리치기는 악명 높은 짓이라는 본래의 평가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지주와 무산농민의 비합법적/ 일방적 양산이나 중소농들의 농업노동자화도 그렇고, 저임금 도시 근로자들이 비인간적 생활환경으로 몰리게 된 것 등도 그 뿌리는 이 울타리 치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새삼 되우치게 되어서다. 사회복지학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인클로우저 운동. 울타리치기 운동. 300여 년간에 걸쳐서 영국에서 일어났던 이 역사적 사건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졸지에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신세 조지게 된 어두운 시대구획의 표지판에 붙어 있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울타리 치기는 나쁜 짓이다. 이기주의의 표징이기도 하고, 남을 쫓아내고 몰아냄으로써 타인을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해야 할 경계의 대상 내지는 공격목표로 삼는 고약한 행위다. <나뻔 넘>들이 하는 짓이다.

 

                                                            *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 라디오방송국의 아침프로를 들을 때다. 울타리 얘기가 나왔다. <행복한 국수>라는 이름으로 수동식 기계를 돌려서 만드는 국수 공장 얘기에서다.  

  그 <행복한 국수> 공장 얘기는 나도 작년에 들은 바 있다. 공장대표를 사장이라 부르지 않고 소장이라 부르고, 또 다른 동업자를실장이라 부르는 회사. 그리고, 종업원들이 모두 장애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손국수라고 불러도 좋은 국수공장을 세워서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소식은 그 국수공장의 후속 성공담이었다. 5명으로 시작한 종업원은 10명으로 늘었고, 물건도 맛이 좋아서 계속 잘 팔리고 있다는 기쁜 소식. 그 대신, 처음엔 지체장애자였지만 근로특성상, 지금은 모두 정신지체 장애자들로 바뀌어 있었다.

 

  장애인들과의 작업에서 애로사항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은 여성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 처음엔 지체장애자인 저도 그들을 100 퍼센트 믿지 못했습니다. 판단력/지각 모두 현저하게 떨어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150% 신뢰합니다. 그들을 껴안아주고 외부의 편견이나 사시로부터 보호해주려는 마음으로 울타리를 쳐주기만 하면 그 안에서는 정상인들 못지않게 잘 합니다. 인내와 성실면에서는 정상인들은 물론 우리 지체장애자들을 추월할 정도로, 애정을 다해 근로에 임합니다. 그런 우리 식구들에게서 감동을 받아먹으면서, 저 자신 철이 더 들고 성숙했으니, 제가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 우리는 울타리는 타인을 배척하기 위한 금 긋기 목적으로 치는 일이 흔하다. 그런 일들을 주로 봐왔고, 그래서 당연히 그런 목적으로 울타리를 치거나 담을 높게 쌓아올리는 일을 아주 쉽게 흔히 해왔다.

                       

  타인들을 격리하고, 내 구역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 울타리 안에서 나만 안전하고 편안히 머물기 위해서... 은근히 마음 찔리는 짓이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을 안전하게 잘 지켜내는 방책(方策)으로 여기며 그 방책(防柵)을 쳐왔다.

                                                                *

  그런데, 이 울타리에는 그런 이기적인 목적만 붙여지는 게 아니다. 바로 위의 얘기에서처럼, 타인들을 품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따뜻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울타리를 칠 필요가 있다. 배척용의 방어적 울타리 세우기가 아니라, 포용을 위한 적극적 울타리 치기다.

  힘없고 불안한 병아리들을 어미의 품안으로 끌어들여 따뜻하게 끌어안는 어미닭의 몸짓과도 같은 그러한 끌어안기 말이다. 그런 울타리 치기가 이제는 설득력 있게 포교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적극적인 울타리 치기는 어디서고 권장되어 좋을 일만 같다. 예컨대, 어느 날 그늘 얹은 어깨로 힘을 잃은 남편을 대하게 될 때, 어미닭에게서 배운 것을 써먹어 보자. 두 팔을 크게 벌리고서, "아이구. 내 새끼 일루 와!! 내가 따뜻하게 안아줄게" 소리를 해보면 어떨까. 

  그럴 때, 어휘 선택이나 어법 따위 등에 신경 쓸 사내는 없지 싶다. 되레 싱긋 웃음 끝에 물기 한 방울 매달면서, 아내 품으로 찾아들지 않을까. 모름지기 사내들이란 어려운 때일수록 어미품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법이므로. 힘든 남편을 위해, 아내가 어미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끌어안기 위한 울타리가 되는 것 아닐까.

                                           

                             <어머니의 울타리는 거두고 품어안기 위한 기능일 때가 더 많다.>

                                            


  그러고 보면, 울타리 역시 그 쓰임새에 따라서 좋은 것도 되고, 고약한 것도 되는 것 같다. 울타리라고 해서 일의적으로 편 가르고, 쫓아내고, 나만 잘 되자고 하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간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 싶다.

  내가 타인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가끔은 잊지 않으려고 애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 

  정신의 무료 윤활유로 가장 좋은 것은 베풀기다. 크든 작든,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리고, 그 성능이 가장 또렷한 것은 늘 내게 가까이 있어 잊기 쉬운 사람들에게 그리 했을 때, 그 기름칠에서는 맑은 소리까지 난다. 바로 심금(心琴)이라는 녀석이 제 알아서 울린다.

  우선 가까운 사람들에게 껴안기용 울타리를 실제로 쳐보자. 손발 움직여서 몸으로 울타리를 치는 거다. 실물로 껴안는 일. 이건 베풀기 중에서도 가장 손쉽고, 저비용이다. 돈이 전혀 안 들거나, 들어도 아주 별로다. 체력 낭비나 시간 걱정도 내세울 일 그다지 없다.


  부모형제 빠지는 사람 없이 전화 한 통 자주 챙기는 일로 시작하면 어떨까. 자식들한테도, 안에 맺히고 쌓인 것들 없는지 달맞이 핑계로 실실 고백을 꼬드겨서라도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아내 역시 늘 씩씩한 일꾼이라는 법은 없다. 아픈 데 없는지, 두 팔 활짝 펴들고는 담뿍 안아들고 한번 물어보자. 당신 정말 몸 아픈 데 없어? 전에 아프다는 데는 워뗘? 하면서.

  그럴 때, 아내 몸이 제법 육중하더라도 그 정도는 번쩍 들고 버틸 체력이 그대에게 있어야 할 것은 불문가지... (멀쩡한 몸인데도, 아내를 안아들고 버티지 못할 남푠은 얼른 사표 내는 게 낫다. 그런 처지라면 암짝에도 제대로는 써먹지 못하니까. ㅎㅎㅎ.)


  내 가까운 이들만으로 심심해지면 이웃에게로 팔을 넓히자. 그래도 남거든 이 사회 곳곳의 구석으로 밀려난 이들에게로 시선을 넓혀도 되리라. 그런 울타리 치기는 심심할 일이 전혀 없을 건 물론이고, 쉽게 끝나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울타리 치는 이들 많아져서 서로 펼치는 팔들끼리 겯게 되는 일들도 벌어질 것이고... 와아! 그리 된다면 정말 신나고 재미있겠다. 먼저 끌어안기 위해 울타리 치느라고 서로 울타리가 겹쳐지는 일까지도 벌어져 실랑이질로 이어질지도 모르잖는가. [Sept. 2005]     

                                                                                                              

                          CopyrightⓒJonyChoi/최종희. All Rights Reserved.                                      

 

   *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잡문들, 옮겨오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