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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고 도덕이고 간에 무조건 많이들 하세요

[내 글] 수담(穗談)

by 지구촌사람 2013. 3. 22.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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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고 도덕이고 간에 무조건 많이들 하세요


  요즘 여의도 가정법률상담소에서는 가정 폭력에 관한 전문상담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종일 강의로 진행되는데, 몇 달짜리 장기 교육이다.

  수강 인원은 7-80명. 그 주력 부대는 중년 여성들이다. 생산적 여가활동에 심신을 바치기로 천지신명까지는 아니라도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선서(?)하다시피 한 가상한 분들이다.


  지난 목요일이었던가. 오후 강의의 제목은 부부간의 성적 갈등. 꽤나 흥미(?) 진진한 내용이어서 하나도 졸지 않고 시선을 반짝이며 경청했다지. 그날 강사로 나선, 그 분야에서는 시원시원한 직설가로 꽤나 유명한, Y대 교수님의 강의 핵심 부분을 그 양반 어법 그대로 늘어놓으면 이렇다.


  ... 에. 성욕은 반드시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식욕과는 다릅니다. 극복할 수도 있지요. 수녀나 스님처럼. 그러나, 그러한 극복기제를 체득하지 못한 일반인들게게는 그것이 모든 일상의 근본적인 장애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심리적 불만, 육체적 질병, 의식의 혼돈까지도 가져옵니다. [중략]

     그러니까 윤리고 도덕이고 간에 그딴 것들 일절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많이들, 그리고 열심히들 하세요. 밤에는요. 이 체위 저 체위도 다 시험해보고, 입으로 하든 손으로 하든, 앞으로 하든 뒤로 하든, 거꾸로 하든 제대로 하든, 열과 성을 다해서 땀 뻘뻘 흘리면서 섹스를 자신들의 것으로 즐기십시오......


  그 말을 전해들은 나. 결론은 뻔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 교수가 사용한 부사절이 몹시 맘에 들었다. 나아가, 버릇으로 굳어진 내 쓸 데 없는 호기심은 그 교수가 사용했다는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말에 관심이 갔다.

  낮시간은 대체로들 윤리와 도덕에 매달리거나 꿰여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고 부부가 맞이하는 밤이 되면 그걸 모두 잊고 무조건 열심히 많이 하고 보라는 말은, 맞다. 그런데, 비윤리적이니 비도덕적이니 하는 걸 아예 잊어버리고 행위에만 열중하라는 그 말은 부부간의 섹스에서 너무도 당연한 전제인데, 교수는 왜 그걸 되풀이해서 강조했을까. 격정적인 섹스 행위에 곁들여지기 마련인 죄의식이나 수치심 따위를 제거하라는 원론적인 뜻으로만 했던 걸까. 그랬던 걸까? 혹은 교수님의 발언 실수? 아님, 그 자신의 소망이 감독 부실로 삐져 나온 것?  


  그러나 내 궁금증은 하루도 못 갔다. 해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내 꼬드김으로 수강생의 하나가 되어 있는 후배가, 상담 현장에서 부부 문제에 관하여 좀 더 효과(?) 있는 고차원의 상담 기법을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여인이, 그 강의의 엉뚱한 후유증을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그 교수의 결론 중 하나가 상대방의 성감대 지도를 그려보라는 것이기도 해서, 그걸 실천(?)도 할 겸 숙제도 할 겸 해서 그녀는 그녀의 짝꿍에게 물었단다.


- 당신의 성감대는 어디야?

- 이 여편이 어디서 무신 소리를 듣고 와서 이러는겨?

- (이러구 저러구 해서)

- 거 미친 넘 아녀? 남의 집 침대까지 훔쳐보겠다는 거여, 머여? 글쿠,

결혼 15년도 넘긴 판국에, 내일 모레면 나이 오십이 될 곰팡이들에게

성감대는 무신 얼어죽을 성감대여, 제길...... 앞으론 거기 나가지도 마.


  남편보다 서너 살 연상인 그녀는 그날 저녁,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오랜 혼자됨을 새삼스럽게 끌어안고 울었다.

 

  돌아보면, 상담실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 역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짊어지고 가는 생채기의 무게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하게 겪었기에 무료상담원으로 봉사하는 일에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그녀 주변에서 한참 공중제비로 맴돌았다. [27/4/2003]

                                                                                                 - 시골마을

 

*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지금 모 군 소속의 최고참 병영상담관이자

   전역 장병들의 최다수 추천을 받은 최우수 상담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타인의 아픔을 더 많이, 제대로 껴안는다.

   아픔을 제대로 겪어냈을 때.

 

   아픔은 우리 삶에서 때로는 아주 좋은 스승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제자에 따라서는. [Ma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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