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회(2013.4.22) KBS 우리말 겨루기 문제 함께 풀어 보기(1)
1. 개괄
-출연자들의 면면 : 김현숙(55. 간병사). 강경숙(43. 공무원. 의정부 시청). 김우성(20. 대입 준비생). 박순경(58. 주부). 김병균(35. 물리치료사).
1) 출연자 소묘 : 이 프로그램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 나라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어 더 뜻 있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40~50대의 중․장년층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제 출연한 김현숙, 강경숙, 박순경 님의 경우도 그랬다.
간병사로서 근무하면서 십수 년간의 독서 토론을 해오셨다는 김현숙 님.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면서 ‘삼가하다’는 ‘삼가다’의 잘못이라고 그 고침이 노릇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말을 껴안아 오신 강경숙 님. 그리고 지지난번에 나오신 분처럼 자신도 꿈의 목록을 만들어 하나하나 이뤄오고 계시다는 박순경 주부.
특히, 순경 님의 그 미소는 천하일품이었다. 자서전 쓰기와 세계 일주 여행이라는 꿈을 지니면 그처럼 웃음도 자연산이 되어 몸과 마음 전체가 홀가분해진다. 발걸음이 가볍고 빨라지면서 몸놀림 전체에 군더더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갈 길이 명확한 사람들은 똥폼을 잡거나 남들 의식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쓸데없는 망설임과 핑계용으로 작동하기 마련인 돌아보기가 어느 새 버릇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내주곤 하는 이들과는 시간 이용법 자체가 다르다.
거기에, 아내의 지역 예심에 따라 갔다가 얼결에 시험을 보고 자신만 합격하는 바람에 아내의 한풀이를 겸해서 출연하게 되었다는 김병균 님.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선 모습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고 따뜻했다. 삼천만 원을 타오라고, 그 돈 쓸 데를 미리 다 정해두었노라고, 아내가 그랬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전하는 남편 김병균의 표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 그림들은 보는 이들에게 저절로 본보기 그림으로 스며든다. 나도, 우리도, 저리 해보고 싶다, 해봐야지,로 이어지면서. 행복 바이러스란 제대로 감동하는 이에게 그 보답으로 손쉽게 감염되는 크나큰 선물 꾸러미의 이름이기도 하다.
잊기 전에. 출연자들이 언급하는 ‘꿈의 목록’. 어느 분의 강연 활동으로 널리 번지고 있고 여러 자기 계발 책자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기 계발과 관련해서 핵심 사항에 속한다. 내가 나이 삼십 전에 옷장 안에 그걸 길게 적어서 붙여 뒀는데, 어느 결에 보니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뤄내고 있더라는 얘기를 전에 잠깐 적은 적이 있다.
여기서 이 꿈의 목록 실무(?)에 관해서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 없이 살아왔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심하게 말해서,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허수아비 인생을 살아왔거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지금이라도 이 꿈의 목록들을 작성하셨으면 한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의 유언장도 써두면 아주 좋다. 살아가는 방향과 내용물이 일목요연해지고, 덜어내기를 하는 데에 아주 유용하다. 가볍게 살아가는 것처럼 그 자신과 주변, 사회를 홀가분하게 하는 것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네 번의 유언장을 고쳐 썼고, 짬이 나는 대로 다섯 번째로 고쳐 쓸 참이다. 수정할 내용들은 이미 정리해 두었다.
2) 공부 부문 : 참, 아쉬운 한 판이었다. 어제 비로소 오랜만에 제대로 공부하신(특히 공부 자료 면에서) 분이 출연하셨고, 제대로 된 공부 자료로 오래 공부하면 어떤 실력을 보여주게 되는지를 몸으로 보여 주셨는데, 그만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낱말 하나 앞에서 좌절하시고 말았다. 달인 문제치고는 좀 문제가 있었던 ‘다솔(多率)’이라는 괴상한(?) 한자어 관문도 무난히 통과하셨는데. (이 ‘다솔’이 왜 문제어인가는 해당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내 섣부른 짐작에 강경숙 님의 낙마 원인은 이 분이 애용하신 <표준국어대사전>을 책의 표제어 순서대로만 공부하신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통한의 ‘얌심’이란 말을 해당 항목에서만 대하고 나면 그 관련어인 ‘용심’이나 ‘강짜/시기/질투’ 등과 자력으로 연결시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 말이 딱 떠오르기 전에는. 관련어들을 모아서 공부하는 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 부분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참. 강경숙 님은 4년 전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면접에서 낙방하신 아픔이 있는데, 그 낙방 경험이 절치부심 각고 인내의 기폭제가 되신 듯하다. 누구나 맛보는 작은 실패의 경험. 그것을 큰 뛰어오름의 발판으로 삼는 이가 진정으로 멋진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가.
책자로 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을 훑어보려면 초회독에만 최소한 6달이 걸린다. 하루 50쪽씩 읽어보는 속도로도. 발췌독을 포함하여 5회독 정도는 해야 하는데, 속도가 빨라지긴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최소한 2년이 걸린다. 경숙 님의 경우는 3년 이상 이 책자 사전에 매달리신 듯하다. (이 사전의 시디판도 있지만, 공부를 하는 데에는 종이 사전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그 핵심을 추리고 관련어들을 모았던 자료들이 산더미였는데 그걸 버리기 아까워 손을 보아 출판하게 된 게 내 책자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막상 한 권의 출판 내용으로 압축 정리하다 보니 자료 모으던 시간의 세 배 이상이 더 들어갔지만.)
2. 1단계 초성 문제
-제시어 분포 : 포/명/임/선/호. 어제 출연자 중 300점 만점 취득자는 김현숙 님. 독서 토론회에 십수 년 동안 참여했다는 말은 그만큼의 독서량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곳에서 누차 말해 왔지만, 자신의 가용 어휘력은 읽고 써야 늘어난다. 읽는 것은 활자화된 것이어야 하고 모니터나 화면상의 글은 제아무리 읽어도 기억 창고에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도 종이 신문을 읽으라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그리고 가장 좋은 일은 써보는 일이다. 낙서가 아닌, 자신의 일기 한토막이라도 직접 써보다 보면 묻히거나 잊혔던 어휘들도 그 때를 벗고 되살아난다. 어휘를 포함한 모든 기억은 자꾸만 그 기억의 먼지를 떨어줘야 자신의 것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매몰되고 이윽고 머지않아 완전히 잊힌다.
쓰는 것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는 (말하기와 쓰기 모두에서) 자신이 알고 있거나 한번 대한 낱말들의 50분의 1에서 100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예컨대 1만 단어를 알고 있는 이는 (생업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100~200단어 정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하는 이들이라면 보통 3만 단어 정도(빼어난 이의 경우는 5만~10만)가 가용 자원인데,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낱말들은 300~600단어라는 말이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직업이 쓰는 일과 관련되어 있지 않는 한, 하루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평균 100단어 이하를 사용한다. 조사된 수치에 의하면 70단어 정도에서 머문다.) 오죽하면 <00어 정복 500단어>라는 식의 제목이 달린 책자들까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출판되고 있을까.
잔소리 삼아 덧대자면, 영어 500단어 정도만 제대로 구사하면 미국 가서도 전혀 고생 안 한다.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는 수준급에 든다. 예전 기준으로 중학교 영어 과정을 마쳤을 때 1500단어를 익힐 수 있었고, 우등생은 2500단어까지도 손댄다. 중2 수준의 영어 책만 제대로 익혀도 미국 가서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언어학을 전공하는 미국 토종 영어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유출된 아주 오래된 낡은 정설(?)이다.
오늘도(!) 삼천포엘 들렀다. 원위치!
이번 회의 전체 문제들을 대하면서, 몹시 기꺼웠다.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1단계 제시어 선정에서 출제자들이 노력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내가 1단계 제시어(문제어)들에서 드러나는 빈도 문제(일상성, 보편성, 남녀 형평성, 가용 자원량)를 몇 차례 언급했는데, 이번 회의 문제어들에서는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그래도 남녀 형평성 문제가 있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야. 더구나, 출연자 중 누가 그 제시어를 선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두 번째로는 2단계 문제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지나친 2차~3차 연상력을 발휘해야 해서 지능 테스트와 같은 그런 유형의 문제들이 거의 자취를 감췄고, 친근하고도 평이한 말들로 문제들이 짜였다. 실력 점검을 하는 데에는 구태여 출제 문제 자체가 까다로울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우리말 실력 겨루기여야 한다. 정도로 돌아온 듯만 싶어 반가웠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3단계의 맞춤법/띄어쓰기 문제에서도 이어지고 있어서 기쁘다. 3단계의 문제 출제자는 지금까지도 그런 정도를 걸어왔고, 그런 출제자의 기본 시각이 다른 문제 출제자들에게도 번지고 있는 듯하여, 기껍기 짝이 없다.
이번 회에서는 희한하게도 1단계에서 150점을 얻은 분들이 많았다. ‘??0’과 같이 제시어가 끝말에 들어간 말에서 낙마했다. 강경숙 님은 ‘00면’에서, 김우성 학생은 ‘00임’에서, 박순경 님은 ‘00발’에서.
강경숙 님이 막혔던 ‘00면’은 전회에서도 지적한 남성적 용어다. 기술/전문 용어를 조금만 알아도, 그리고 남성 세계 쪽으로 한발만 들여놔도 줄줄이 사탕 격. 예컨대 신문만 떠올려도 ‘경제면/사회면/정치면/문화면...’ 등이 있고, ‘지표면/해수면/접촉면/수평면... ’ 등 쉽게 이어지는데, 이런 것들은 남성적 용어에 속한다. 여성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
김우성 학생의 ‘00임’은 도리어 여성적인 낱말이었다. 두 사람이 제시어 선택을 바꿔서 했더라면 결과가 더 좋을 뻔했다. 게다가, 이 ‘-임’은 생산성 있는 접사*에 속한다. 웬만한 동사에 이걸 붙여서 명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움직임/망설임/눈속임/덧붙임/되먹임/속삭임...’과 같은 것들이다.
[* 생산성 있는 접사 : 이것은 우리말에서 접사로 품사 분류가 되어 있지 않음에도 이 말이 붙으면 이의 없이 파생어가 되는 것을 이르는 언어학 용어다. 예컨대, ‘-값’은 명사지만 그것이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가격', '대금', '비용'의 의미를 나타낼 때는 파생어가 되어 붙여 쓰도록 하고 있고(신문값, 책값, 비행기값, ...), ‘감’도 명사지만 ‘대통령감/사윗감/장군감’ 등에서처럼 일정한 명사 뒤에서는 붙여 써서 파생어로 인정하는 그런 말들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생산성 있는 접사’들이 적지 않다. 위에서 예를 든 ‘-임’의 경우를 확장해보면, ‘끄덕임/기울임/곁들임/선보임/돋보임/휩싸임...’ 등이 무수히 가능해지는데, 이런 모든 말들이 사전의 표제어에 오르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들이 잘못되었거나 파생어가 아닌 것은 아니다. 확실하게 알면 자신 있게 사용해도 된다. 물론 답으로 제시해도 되고. 그럴 때면 녹화를 중지하고 국립국어원에 질의하여 확인한 뒤, 계속 진행하게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박순경 님은 ‘00발’에서 ‘보선발’을 답하시는 바람에 보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선물하셨다. 경상도 사람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그건 ‘버선발’의 경상도식 발음이 아닌가 싶다. 당황하게 되면 평소에 많이 쓰던 말이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오게 되는 일이 많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하셨더라면, 여성분이셨으니 ‘꽃다발’이 가장 친근한 말이셨을 듯하고, 그 다음으로는 살림과 관련하여, ‘밥주발*/밥사발*/죽사발/묵사발/약사발’ 등도 있고, 서 있던 발을 내려다 보셨더라면 ‘오른발/바른발/오리발/구둣발/군홧발/까치발/집게발/모둠발’ 등도 생각나시지 않았을까. 이 제시어를 남성이 선택했다면 대뜸 거칠고 씩씩한(?) ‘개나발/설레발/손나발/재개발/대폭발/서릿발’ 따위가 떠올랐을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사용하는 언어나 선택되는 언어만 봐도 머슴애들 말은 여성들의 것보다 질이 낮다. 하하하.
[*‘주발’과 ‘사발’ : 이 두 말의 정확한 의미 구분을 살림꾼인 여류 작가들조차도 엉터리로 쓰는 이들 참 많다. 대표적인 이가 신경숙이다. ‘주발’이나 ‘사발’은 그걸 만든 재료에 따라 구분되는 이름이다. ‘주발’은 놋쇠로 만들고 ‘사발’은 사기 제품이다. 그런데도 참으로 기절초풍할 말들이 아주 흔하게 여류 작품들 속에 나온다. ‘놋사발’에다 ‘사기주발’ 그리고 ‘양은함지’까지. 사발을 대접이나 뭐 그런 종류의 모양으로 알고 있지 않고서야 그런 희한한 표현들이 백주에 고개를 들고 설칠 수가 없다. 따라서 ‘놋주발’이라는 말은 불필요한 과잉 친절에 속하고 (‘주발’이면 된다), ‘사기주발’과 ‘양은함지’는 특허품감이다. 사기로 만든 놋쇠 그릇이니 얼마나 천재적인가. 그리고 함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에 붙이는 이름인데, 양은함지라니. 함지가 양은과 목제로 수시로 신출귀몰 변환된다는 뜻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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