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광장>은 붉지 않더라 모
크렘린을 나와 붉은 광장쪽으로 향했다. (지도를 다시 펴놓자. 보며 가는 게 최고니까.)
행로를 설명하자면, 남서쪽의 제2출입구인 볼로비츠카야탑을 나와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쪽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이다. 이 공원이 바로 크렘린을 끼고 흐르는 또 하나의 강인 네그린나야 강을 복개해서 만든 공원이다. 물은 지금도 지하로 흐르고 있고, 그게 북쪽 광장인 마네지 광장의 분수로도 쓰이고 있다.
붉은광장을 향해 가다보면 사람들이 몰려 서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이 무명용사의 묘. 마네지 광장 바로 못 미처서다. 2차세계대전 중의 전몰자 중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철모와 우비, 총이 조각되어 있고, 화강암에 씌여진 명문(銘文)은 이렇다. "그대들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걸 우리의 일리아 할머니는 이렇게 번역했다. "그대들의 이름은 무명이지만, 그 희생은 영원불멸하리라" (Your names are unkown, however, the sacrifices will be immotal).
이 장면에서 내가 박수를 살살 쳤더니, 우리의 할머니 의아한 모양. 번역을 정말 잘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얼굴을 붉힌다. 그 동안, 공원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의 엄마는 프랑스계이고 아버지는 독일계 러시아인이어서 나고 자라면서 외국어에 익숙했다는 그런 얘기에다가, 남편 직업을 묻자, 러시아 남자들은 보드카로 진이 다 빠진 게으름뱅이들뿐이라고 우회하기도 했던 뒤이기도 했다.
이 무명용사의 묘 앞에는 사람들이 늘 북적댄다. 묘 양옆으로 위병들이 차렷 자세로 서 있는데 런던의 근위병들처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버티는 모습이 장관인데다 한 시간 간격으로 치러지는 위병교대식 또한 볼거리인 까닭이다. 시간에 쫓기는 나는 그런 기다림 복이 있을 턱 없다. 아쉽지만 사진 한 장만 얼른 찍고는, 퇴각.
하지만, 지금은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 아무리 바빠하더라도 의미 있는 것들은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위의 자료 사진은 겨울 풍경. 흰 눈이 쌓여도 불은 꺼지지 않고 동료의 희생을 기리고 지키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고 무명용사의 묘는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유명전몰자보다도 더 신경을 쓴다. 영국에서는 처칠 묘와 거의 동급의 대우를 받고 있고, 프랑스에는 시내 중앙부라 할 수 있는 개선문 근처에 있다.
미국에도 있다. 케네디 대통령도 묻혀 있는 알링톤 국립묘지. 하지만, 그곳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는 것은 무명용사의 묘다. 4기의 묘석은 초라하지만, 그들에게는 <영원한 불꽃> (Eternal Flame)이 타오른다. 한 시간 간격으로 (겨울철은 30분 간격) 치러지는 위병교대식은 바로 그들을 기리고 위한 행사다. 바로 위 사진 풍경이다.
미국군 무명 용사 묘석
무명용사의 묘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기억되는 역사 속의 명장면이 있다. 바로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통독 전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르샤바 공원 안 한쪽에 마련된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무릎을 꾼 채, 2차대전 당시의 잘못을 빈 일이었다. 1970년 12월.
혹한의 추위 속에서 서구인들로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무릎 꿇고 빌기...... 일본 아해들의 덜 떨어진 전후처리 방식과 지금도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이다. (독일은 얼마 전까지도 전쟁피해 보상금을 성실하게 폴란드에 지불해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떨까. 내 알기로 제대로 꾸려진 무명용사의 묘는 부산에 있는 유엔공원묘지에 안치된 4기뿐인 듯하다.
김천과 왜관 사이에 건립된 학도의용군 기념시설에도 위령탑만 거창할 뿐, 알맹이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서울의 국립묘지에도 영령 안치실 한 귀퉁이에 싸잡아서 배치해놓은 글씨들 몇 자가 전부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에서는 왜들 그리 무명용사의 묘에 신경들을 쓸까. 나라 사랑의 뼈대를 제대로 심어주기 위함이 아닐까. 1년 365일 어느 하루도 꺼지지 않고 지켜지는 불길이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심정으로, 후손들이 바치는 정성을 먹고 이어 자라는 게 나라 사랑 아닐까.
모스크바에서는 요즘도 신혼부부들이 결혼후 첫 번째로 찾아 참배하는 곳이 바로 저 무명용사의 묘라는데...
무명용사의 묘 구역을 벗어나면 마네지 광장에 이른다. 붉은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꼭 거치는 곳.
사진 속의 동상은 2차대전 당시 모스크바를 사수한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우리의 일리아 할머니는 그의 팬인 듯했다. 크렘린 안에서조차 모스크바를 지켜낸 전쟁 이야기 중에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30배의 무기를 갖춘 나폴레옹 군을 무찌른 1812년 9월7일의 볼로디노 전투인데, 일리아 할머니는 주코프 장군을 그보다 한 수 위에 놓았다. ㅎㅎㅎ. 아래에 깐 음악은 바로 그 나폴레옹 전투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했던 1812년 서곡이다.)
이 마네지 광장의 상주 거물들. 바로 레닌과 주코프 장군. 관광객이나 신혼부부들을 위해 포즈를 잡아준다. 그 날은 이런 가짜 거물들이 두 팀 있었다. 레닌 모델은 정말 빼닮을 정도로 흡사했다.
참, 이 마네지 광장에 서면 맞은편으로 나찌오날 호텔이 보인다. 그곳 107호실이 레닌이 집권후 잠시 머물렀던 곳인데 그곳은 일반객 투숙 금지 방으로 영구 보존 중이란다. 앞서의 글에서 호텔 이름이 없이 107호실이라고만 기록했던 바로 그 호텔.
그 방에 투숙했던 유일한 인물은 옥시덴탈 석유회사 회장 아몬드 하마. 그는 레닌의 친구로서 미소간의 교량역할을 했단다. 호텔 사진 찍는 걸 깜박 했다. 시간에 쫓겨서. (저 날 역시 자투리 시간 쪼개 쓰기 관광. 출장 업무를 마무리하고 공항행 직전에 겨우 두어 시간 정도에 이뤄진 초스피드 관광이었다.)
붉은 광장으로 들어서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출입구 건물. 바스크레센스키 문. 모스크바의 유명 시설물들은 스탈린의 손을 탄 것들이 많은데 이것 역시 퍼레이드에 방해가 된다고 파괴되었다가 소련 붕괴후인 1995년에 본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문 앞에는 기념촬영하러 온 신혼부부들이 늘 북적인다. 이 날도 한 쌍이 있었는데, 이들의 다음 코스는 무명용사의 묘 참배다.
붉은광장에 들어섰다. 내가 들어온 바스크레센스키 문이 멀리 중앙에 보일 정도로 광장 중앙부쯤에 해당된다. (광장의 전체 길이는 695미터. 폭은 130여 미터) 사진 왼쪽이 레닌 묘. 오른쪽 건물은 <굼>백화점.
그런데, 광장 바닥을 보라. 붉지 않다. 주변 건물들도 붉은 색이라고는 정문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붉은 광장?
이 광장의 러시아식 표기는 <크라스나야 플로시차지>인데 이때의 크라스나야는 러시아 고어로 '아름답다'는 형용사란다. 그런데,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온갖 붉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하다 보니 광장 이름을 번역할 때, 고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냥 하다 보니 그만 <붉은광장>이 되고 말았단다.
본래 이곳은 온갖 상인들이 모여들어 노점이 번성했던 곳으로 햇수가 거듭될수록 퇴적토가 쌓여서 현재처럼 4미터 가량 높게 구축되었다.
여하간, 붉은 광장은 붉지 않았다. 바닥은 저처럼 회색 화강암.
레닌묘. 검은 색 화강암에 레닌이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진상으로는 불분명하다. 건물안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레닌 유체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짐 검사 까다롭고 입장 대기시간도 아까운 터라 포기.
우리의 일리아 할머니 사진 솜씨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 ㅎㅎㅎ
러시아를 상징할 정도의 최고 걸작 성당. 바실리. 탑의 높이가 같지 않고 모양도 조금씩 달라서 되레 불통일의 절제미가 극히 빼어난 건물인데...
이걸 짓게 한 이반대제는 이런 걸작을 다른 곳에 만들지 못하도록 두 설계자의 눈을 뽑아버렸단다. 에고. 천재는 박명(薄明)일세 그려.
이 성당 옆구리로 가보면, 도로표지판에조차 영문표기가 전멸하다시피 되어 있는 러시아에서 참으로 드물게 영문 표기도 청동 플레이트로 붙여져 있는데, 거기엔 바실(Basil) 성당이라 되어 있다.
* 태양이 정면에서 비추고 있어서 사진이 안 좋다. 일반 사진 촬영을 하려면 오후에 가라는 걸 꼭 하고 싶다.
일리아 할머니의 최고 걸작. 바실리 성당을 넣고 찍으랬는데, 보도 블럭만 즐비하다. ㅎㅎㅎ
이쯤 해서 이 붉지 않은 <붉은광장>을 파노라마로 한 번 훑어보면...
왼쪽이 굼백화점, 가운데 멀리 첨탑이 희미한 바실리 성당, 오른쪽이 레닌 묘가 된다.
러시아 최고의 굼 백화점. 모스크바에는 유명한 백화점으로 이 굼과 춤이 있는데 이름이 죄다 요상하다. 굼과 춤이라니... 궁금해서 일리아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모두 약자란다. 굼이라는 걸 풀어쓰고 보니 영어로는 상가(mall)라는 뜻이 되었다. 바로 예전에 이 광장에서 번성했던 노점상들이 만든 상가건물. 소유주를 물었더니, 예전엔 국영상가였지만, 지금은 개인소유란다.
굼 백화점 내부.
그런데... 그 안에 들어서고 보니 밖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국산 아짐씨들이 바글바글. 하기야, 광장 구경을 마쳤을 때가 열두 시 반 무렵이어서 땡볕이 여간 아니었다. 나야 얼굴이 타든 말든, 햇빛 소독을 노상 즐기는 녀석이니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여인들에게는 좀 힘들었을 게다.
그래도 그렇지... 어딜 가든, 관광명품보다는 입고 걸치는 명품에 더 신경 쓰는 우리네 아짐씨들의 모습은 늘 그렇듯 씁쓰레하다. 밀라노에서 보니 몸에 맞지도 않는 유럽형 옷들을 싹쓸이하고 있었고, 명품 할인 아웃릿으로 유명한 미국의 <아웃릿 팜 데저트>에 가면 노상 떼 지어 온 한국 여인네들을 대하게 되니, 명품 거지들이 득시글거리는 것 같다. 사람 대신 물건 명품을 향해 달려드는 그 빈 속을 보아버린 듯만 해서 더욱 더.
겉으로 보기엔 죄다 지닌 듯 싶은 유복한 이들인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허전하게 만들까. 나는 고거이 궁금허다. ㅎㅎㅎ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백화점을 빠져 나왔다. 거기서 내려오면 혁명광장이 된다. (맨 위의 지도참조)
이곳은 근처의 유명 식당 중 하나인 <고두노프>의 입구. 유럽식과 러시아식이라는데 값도 비싸지 않고 맛도 상당한 곳. 어느 틈에 내 식성을 알아차린 일리아 할머니가 담에 오면 꼭 들르라고 추천한 곳. 나중에 책자를 찾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명소 식당에 뽑혀 있었다. 나중에 일리아 할마이랑 다시 와야쥐. 안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제법 될듯한 60대 여인. 소비에트 시절의 한 가운데를 헤쳐온 지성인으로, 여인으로 수월찮게 신고간난을 겪었을 듯한 그녀가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이유가 조금은 짐작될 듯도 했다.
참, 그전에
굼 백화점을 빠져나오면 대하는 첫 번째 골목에 위치한 선물가게에 들러, 울 공주님을 위해 산 인형. 일리아 할머니에게 러시아 공주 인형을 꼭 사야 한다고 첨부터 누차 일러둔 터라, 일리아 할머니가 잊지 않고 나를 그곳으로 데려 갔당.
위 인형은 공주는 아니고, 귀족 여인. 공주 인형은 만든 게 없단다. 궁녀(비빈급)인형은 있었지만 어찌 울 공주를 궁녀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ㅎㅎ히.
혁명광장 우측의 지하철 역쪽으로 내려오면 맞은편으로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 보인다. 사진 속에 덮개를 뒤집어쓰고 있는 건물. 현재 보수중이란다.
수리 전의 아름다운 모습 (자료사진)
결론은 없다. 굳이 덧붙이자면, 붉은 광장은 붉지 않았고 무명용사들은 더 이상 안 알려진 (unknown) 존재들이 아니었으며 러시아는 소비에트의 철망사회에서도 그 면면한 문화는 예술을 축으로 숨결 고르게 흘러오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 바탕에는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귀족들이나 그 후예들이 힘을 비축해왔거나 기여해왔고... (마네지 광장 앞의 역사박물관은 일개 교사가 그 기초를 제공했을 정도)
그나저나 울 공주님, 점심 밥 먹으라고 성화다... 얼른 음악 깔고 나가야지, 안 그럼 혼난다. [July 2007]
-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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