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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뽑기와 사랑하기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3. 5. 2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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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집에 만개한 패랭이꽃들.

     줄기 아래를 들춰보면, 거기에도 잡초가 있다.

 

 

                                             풀 뽑기와 사랑하기  

 

                                                                                        최  종  희


  중장년쯤 되어 나쁜 것 중의 하나. 마음은 조금 있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일이다. 뭘 조금 해보려는 마음이 들다가도 마치 사건이나 치는 듯해서 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게 은근히 귀찮아지기도 한다.  

  그쯤 되면 이런저런 핑계들이 가세하여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오게 만든다. 나이 들어 크든 작든 사건을 친다는 건 그래서 대체로 어렵다.  


  그처럼 뭘 하고 싶어지는 것들을 돌아보면, 그것은 대체로 그 사람의 흥미와 취향에 맞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듣거나 대했을 때 가슴 속에서, 저거 괜찮겠다. 저거 내게 딱인데. 나두 저거 해봐야겠다...는 식으로 느낌과 각오 사이에 일렁임이 작용한다.

 

  작게는 흥취라고 할 수 있고 부풀리자면 감동이랄 수도 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뭉뚱그려 감흥(感興 = 感動 + 興趣)이라 부른다. 그런 감흥이 있어야만 무슨 일이든 저지르게(시작하게) 되고, 그것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내도록 이끌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흥으로 시작한 일들이 홀로서기에도 도움이 된다. 무슨 말이냐고? 그건 홀로서기의 의미를 곰곰 되짚어보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사람은 혼자다. 부부관계로 둘이 함께 있거나, 옆에 친구가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홀로다. 자기 혼자서 오늘을, 지금을, 그리고 내일을 꾸려간다. 옆의 사람은 고려 대상이거나 참고 대상일 뿐이지, 그 자신의 인생에서는 곁가지일 뿐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함께 가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 자신은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 혼자서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 내켜 하고 싶어 하는 것, 자신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을 손발을 움직여 해나가도록 이끄는 원동력 내지는 소형 발전기, 그것이 감흥이다.  


                                   *

  조금 전 밖에 나가서 뒤꼍과 꽃밭의 풀을 뽑고 들어왔다. 엊저녁 내가 잠든 사이에 비가 조금 온 모양인데, 넉넉한 비는 아니지만 땅 거죽은 비 기운을 머금을 정도라서 풀 뽑기에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실제로 그랬다. 딱딱한 땅에서는 맨손으로 뿌리가 잘 뽑히지도 않거니와 끊어지지 않고 깨끗이 뽑히질 않는데, 비가 조금 오고 나면 그 두 가지 문제가 훨씬 수월해진다.  

 한 시간 쯤 열심히 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자리에 앉아 이걸 긁적이고 있다. 회사에 나가기 전 아침 짬을 이용해서. (오늘은 공휴일이지만 일이 있어 오전에 나갔다 와야 한다.)  


  이런 풀 뽑기.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일 수 있고, 그다지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다. 내 손으로 기르는 것들을 위해 잡초를 뽑아주는 것으로 그것들에 대한 내 애정과 관심을 몸으로 보이는 것. 그것처럼 확실한 사랑법은 없는 것 같아서다.  

  사랑하는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거두기. 내 손발을 움직여 사랑하기. 그게 내 생각엔 영양가 있는 사랑법이다. 

 

  아침에 겨우 잡초 조금 뽑으면서 너무 거창하게 미화시키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게 내 지론이기도 하고, 나는 그걸 내가 좋아서 한다는 사실에 뒤늦게 주목한다.  

  거기서도 바로 감흥이 나를 그렇게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는 시간에는 내가 아무리 혼자여도 좋은 일이고...  


  그러고 보면 홀로서기란 어떻게 해도 내 밖의 다른 것들과 나름대로의 (혼자서 찾아낸) 의미 있는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 듯 싶기도 하다. 그것이 사랑하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더 좋은 일이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아침 일찍 집의 앞뒤 마당으로 나가서 풀을 뽑아댄 그 작은 일에서 굳이 의미를 찾아내자면, 그런 말로 요약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또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하기. 그것은 제 손발을 움직여 사랑하는 대상을 만지고, 쓰다듬고, 보듬고 아끼는 일이다. 늘 해온 말이지만,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에서 가장 쉬운 일이면서도 긴요한 것이 바로 그것 아닐까. 애정을 담아 접촉하기. 그것은 사랑의 출발이자 도달목표지역의 행동표지판에 새겨진 제목이기도 하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랑은 제대로 내 것이 된다. 내게 가장 맛있고 가장 좋은 형용사들로 내 안이 채워진다. 사랑은 동사로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제대로 형용사로 수렴되는 행위묶음에 붙여지는 이름표이다.   

                                            [6 June 2007]  

                                                                      

 

 

* 윗글의 보충판

 

   1) "육체적으로 사랑하라" --> http://blog.naver.com/jonychoi/20040180195

   2) "사랑하거든 물을 주셔요" --> http://blog.naver.com/jonychoi/2004053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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