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존심 상한다, 상해!
"에이 참. 자존심 상해서..." 자주 쓰고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 말을 누구에게선가 들으면 내 귀는 쫑긋, 코는 벌씬, 눈은 반짝 한다. 그 자존심 상했다는 내용이 궁금해서다. 그런데 그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대체로 기분 상했다는 의미에 가까울 때가 많다. 자존심과는 거리가 멀다.
자존심 상하는 것과 기분 상한 것이 같은 것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존심 상했다는 말을 기분 상했다는 말의 고급 표현 정도로만 여긴다. 그래야, 자존심이 올라간다는 듯이. 자존심이라는 말. 다른 나라에서도 약간 문제가 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골 때릴 정도의 문제아다. 그렇게 괴상하게 변질되어 번진 지 오래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전 편찬에 나랏돈까지 들였다는 표준국어사전의 예문조차도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운운하고 있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자존심의 고갱이는 그런 싸구려 체면 차리기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용례를 앞장서서 널리 퍼뜨린 사람들로는 이 나라 글쟁이들을 그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자존심의 영어 표기는 self-respect다. 영어까지 들먹거리는 이유는 수입품인 그 말의 뿌리 파악을 좀 제대로 하자는 뜻에서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나 자기 가치를 올바르게 제대로(re-) 곰곰 바라본다는(-spect) 뜻이다. 더 쉬운(?) 말로 하자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라'이다. 자존심의
함의가 당초에는 그렇게 좋은 의미로, 자기 반성적 의미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순수한 의미를 잃고, 기분이 조금 상할 때조차도 갖다 붙이는 싸구려로 전락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자존심이란 말의 본래 의미/기능은 '웬만큼 기분 상했을 때조차도 전혀 기분 상하지 않은 듯이 늠름해질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내가 누군데 그까짓 일로 기분 상할까 보냐. 나는 그런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하면서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로 돌아가는 것, 그게 자존심이다. 진정한 자존심이 제대로 해내는 역할이 그것이다. 위의 국어사전 예문으로 나온 사례를 이러한 진정한 자존심으로 여과해서 다시 비춰보자면 이렇다. 사과를 해야 될 일이라면, 누가 먼저 사과를 하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냥 하면 된다. 거기에 쓸데없이 자존심 따위를 거추장스럽게 매달고 잡아당길 필요가 없다. 거기서 정작 자존심이 작용해야 될 부분은 사과해야만 할 일의 본질에서다. 그게 자기 자신의 과오라면 그 과오를 저지른 자신을 먼저 탓해야 하고, 그것이 자식 때문이라면 그런 자식의 잘못을 방지하지 못한 잘못을 반성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진정한 자존심은 사과해야 할 일일 때, 선뜻 사과하도록 이끈다.
달리 말해서, 같잖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배출하는 뿌리가 되기도 하고, 곤경 속에서도 자신을 당당하게 추스리게 하는 것. 그것이 자존심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걸핏하면 암 것도 아닌 일에, 단순히 속상할 정도의 일에 자존심을 갖다 붙이는 짓은 스스로의 자존심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짓이다. 바보짓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자존심이란 말의 본래 의미를 찾아주고, 진정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한 게 자긍심(self-esteem)이라는 용어다. 여성의 진정한 자존심 회복을 부르짖은 글로리아 쉬타이넘의 명저서 <안으로부터의 혁명 Revolution From Within>에서 내내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자긍심이다. 책의 부제가 <자긍심에 관한 책>이라고 붙어 있을 정도로. 자긍심은 영어표기에서 보다시피 스스로 자신의 값어치를 제대로 매기는 걸 뜻한다. 스스로 자기평가를 하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나서 섣불리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로 똑바로 발걸음을 내딛는 걸 지향한다. 그게 자긍심이 해내는 일이다. 자긍심을 제대로 돌아본 사람은 그러므로 웬만한 일 따위에 흔들리거나, 쉽게 심정적으로 기우는 일이 없다. 아무 일에서고 쉽게 뾰루퉁해져서 일을 망치는 일이 적다. 그러므로 이른바 자존심이라는 게 상했을 듯싶었을 때, 이렇게 한 번 해보라. 나라는 사람이 저런 따위의 사소한, 무가치하거나 관심할 가치도 없는 일 따위로 내 심사가 어지럽혀지는 그런 일을 접수할 것인가. 받아들여서 영향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내 진정한 자긍심이란 건 저런 따위의 일로 흔들리거나 영향 받을 수 있거나 받게 되는 싸구려가 아니므로, 전혀 흔들림 없이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라고 작심할 것인가. 그걸 잠시 생각해보고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그 답은 본인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하고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것은 자존심(자긍심)에 대한 부풀리기다. 그게 자만인데, 자만하는 일에서 우리들은 실수를 많이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때, 타인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일에서 많이 망설인다. 자신에 대한 관대화 경향이 일반적이어서 상향 조정쪽으로 기운다. 나도 (대체로는) 남들 못지않다는 그런 상향평준화 성향이 은근히 심하다. 한 마디로, 자신의 진정한 실력(능력)을 냉정하고도 엄중하게 돌아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여부도 그 자신의 진짜 실력인데 ...... 진정한 자긍심의 회복. 그리하여, 웬만한 일 따위로 속상하거나 기분 나쁠 때조차, 되나 못되나 자존심이 어떻고 소리를 하지 않게 되려면, 먼저 자긍심 돌아보기를 해야 한다. 자신을 속속들이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진짜 실력을 엄중한 현실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낮춰 바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한다. 그 손쉬운 첫걸음. 그것은 아무 데나 자존심 어쩌고 소리를 붙이지 않는 것이다. 기분 상했으면 기분 상한 원인을 돌아볼 일이지, 거기다가 자신조차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존심 따위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그 기회에 진짜배기 자존심을 발동시켜 보는 것이다. 내가 누군데, 그깟 일로 내 심사가 요동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결코, 그런 몰가치한 일, 나와 그다지 관련 없는 일, 내게 별로 의미가 없는 일 따위로 내 귀한 심정적 가치를 할애할 수 없노라. 딴 데 가서 알아보거라... 하면서 뱃심을 끌어올리면 된다. 한번 무조건 그냥 실천들 해보기 바란다. 자존심 어쩌고 소리가 입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순간, 그 꼬리를 얼른 붙잡아 가슴 속으로 도로 밀어 넣고, 위에서 적은 대로 한번 해보라.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틀림없이 싱긋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자신이 곱빼기로 대견해져서다. 기분 상할 뻔 했던 위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극복했다는 뿌듯함도 뿌듯함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긍심을 돌아보는 기회를 삶의 현장에서 맛봤다는 즐거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가볍고 홀가분하게, 사소한 일 따위로 속상하는 일 없이, 신나게 살아가는 방책의 하나. 그것은 자신의 자긍심을 가장 솔직한 방법으로 하루 빨리 회복하는 일이다. 아주 요긴한 항목이 되고도 남는다. 왜냐. 아주 손쉽게 행복을 실물로 껴안을 수 있게 해주어서다. (속상하지 않으면 신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내가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서 싸구려 자존심 따위와 신나게 굿바이를 해서다. 지금은 내 몸피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정도로 굳어져서 그 효과에 대해서도 자신한다. 그리고... 전혀 돈 안 드는 일이니, 손해 볼 일도 없다. 그렇잖은가. 까짓거. [Sep. 2005]
|
장한나의 친구 황병기, 황병기의 친구 장한나 (0) | 2013.06.22 |
---|---|
사랑은 앨범이다 (0) | 2013.06.02 |
풀 뽑기와 사랑하기 (0) | 2013.05.25 |
김춘식 님께 경례! (0) | 2013.05.19 |
안철수와 “부인,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0) | 201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