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一思] 장한나의 친구 황병기, 황병기의 친구 장한나
최 종 희
“어릴 때 디즈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 속에 나오는 야수의 서재가 지금까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몇 층씩 되는 높은 공간에 수없이 많은 책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아름답게 가득 차 있고, 계단과 사다리로 높은 책장까지 손을 뻗을 수 있었어요. 난로 가에는 토막나무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고, 그 앞에는 무릎을 덮을 수 있는 포근한 담요와 의자가 있었지요. 또, 그 앞 커다란 창문 밖으로는 숲이 보였던, 그런 아늑하고도 멋진 공간으로 기억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공간에서 여러 시대와 여러 문명의 문학을 소장하며 읽는 것이 제 꿈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하면서, 장한나는 야수가 머물던 지하의 그 서재를 이야기한다. 그 방의 분위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에 살을 붙여서, 그녀의 현재 삶 속에 재생시켰다. 그녀의 서재를 그렇게 꾸몄다. 몇 층씩 되는 높은 공간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운 책장들의 방. 그것이 그녀의 서재다.
그런 모습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대영박물관의 독서실에 있는 고가(高架) 책장들이다. 그 책장들을 꺼내서 한 줄로 세우면 그 길이가 자그마치 4.8킬로(3마일)나 된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는 ‘서실(書室)’이라 이름 붙인 독립가옥에 꾸며놓은 이문열의 서가가 그와 비슷하다. 읽을 책을 꺼내려면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장한나는 천재다. 천재 첼리스트로서만이 아니라 천재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를 뭉뚱그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하버드대의 철학과 학생이기도 한데, 유명 첼리스트라고 해서 얼렁뚱땅 입학한 게 아니다. 당당히 실력으로 겨뤄서 들어갔다. 지금은 연주 외에도 지휘까지 하느라 학업에 열중할 수 없어서 휴학 상태이긴 하지만.
그녀는 말을 참 잘한다. 청산유수라는 뜻이 아니다. 조리 있고 깊이 있으며, 따뜻하고 밝다. 그녀가 차분하게 쏟아놓는 말을 글로 엮으면 그대로 빼어난 수필이 된다. 멋진 담론이 된다.
그녀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칼럼은 이 나라의 수필가나 작가, 칼럼니스트들조차도 경탄할 정도로 맛깔난 명문에 든다.
장한나와 황병기는 아주 절친한 친구다. 각각 1982년생과 1936년생으로 나이 차이는 46년이나 되어, 황병기의 표현대로 하자면 거의 맏손녀뻘이지만, 둘은 대화가 아주 잘 통하는 절친한 친구다. 장한나의 지휘로 황병기가 가야금 연주를 하기도 했다. <새봄>이던가.
가끔 장한나가 황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황교수는 거기에 대한 답을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눈다.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는 그 내용 자체가 한 권의 예술철학서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의 뼈대가 튼실하고, 얼개에 짜임새가 있으며, 조밀하고도 아름다운데다 신선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리도 이음매 표지 하나 없이 두 사람의 생각들이 한 몸으로 감쪽같이 용접 되는지 신기하다.
하기야, 황교수의 학력은 서울법대 졸업으로 법학사이다. 장한나가 학업을 다 마치게 되면 받게 될 철학사 학위와도 상위 카테고리에서 만난다. 내 생각에 법학은 인간 영혼의 미래 규제용 규범(norm)이고, 철학은 어찌 보면 인간 영혼의 현재와 과거 규범들의 이해라고도 할 수 있지 싶어서다.
맨 처음 두 사람을 매개했던 건 음악이다. 음악은 규범의 총합체인 인간의 영혼을 보듬거나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서 마음과 생각을 보드랍게 무두질한다. 마음의 갈기를 가지런히 눕히기도 하고, 질서 있게 세우거나 다독인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한 상위의 세계로 건너뛰어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다면 나도 장한나를 친구 삼고 싶다. 아니, 장한나와 같은 사람들을 친구 삼아서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앞으로 죽어라 파고들어,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리고 몸수고의 실물 애씀을 한참 더 하고 난 뒤에나 부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알겠는가. 그런 욕심이 희망으로 승화되어 내게 더 큰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라도 잡게 해줄는지...... 돈 안 드는 욕심내기가 때로는 아름다운 꿈이 되어 삶에서 가장 값진 키잡이가 될 때도 있다. 내용에 따라서는. [July 2012]
[참고] 장한나의 공식 사이트 : http://www.han-nachang.co.kr
황병기의 공식 사이트 : http://www.bkhw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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