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Title from Apollo 13
<사진 좌측으로부터, 아예 어린이 동승용으로 만든 카트. 오오사카의 어느 수퍼 마켓에서
이걸 타신 우리 공주님은 일본에 대한 주요 사랑 기억의 하나로, 신나는 그림으로, 이걸 떠올리곤 한다.
한 해가 지난 지금도. 7순을 바라보는 큰고모가 막둥이 조카를 보고 싶어 일본까지 불러댄 그 속사정을,
훗날 어른이 되어 기억하는 밑그림으로 제일 유효한 장면이 되지 싶다. 사진 중앙 : 간사이-오오사카 급행 열차
안에서 큰고모와 입 크기 경쟁 중. ㅎㅎ. 맨 오른쪽 사진은 큰고모의 자랑인, 사색 영산홍.>
사랑은 앨범이다
최 종 희
사랑은 앨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저런 사랑의 앞뒤 모습을 사진이라는 실물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 혹은 그 결과물이다.
앨범은 우리가 마음이 울울해서 뭔가를 들추거나 만지작거리다가 대하는 경우도 있고, 청소나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면 하던 일 멈추고 아예 자리 깔고 앉아서 들여다보는 그런 것일 때가 흔하다. 하지만, 가장 잦은 경우는 새 사진들을 끼워 넣기 위해서 앨범을 내려놓고 사진이 채워진 앞장들을 넘길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럴 때, 앨범의 맨 앞 사진들은 대체로 좋은 일들, 기억할 만한 대표적 사진들일 때가 많다. 결혼 사진이거나 최근의 가족 사진들, 잔치 사진 중 가장 기억하고 싶었거나 흐뭇했던 그런 장면이 담긴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안을 더 넘겨보면 지나간 세월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런저런 세월의 모습들이 사진 속에 압축되거나 요약되어 있다. 사진을 보고나서야 새삼스럽게 되돌려 맛보게 되는 달착지근한 감정들도 있고, 사진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들만 알고 있는 어떤 사연들이 몽글몽글 연기를 피워 올릴 때도 있다. 그 사진을 찍기 전후에 발생했던 어떤 사건들이 사진을 통해서 새롭게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맛보게 되는 것. 그것은 사진 속의 등장인물들과 지금도 이어지고 있거나, 혹은 끊어진, 어떤 기억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되돌아보기다. 그것이 이런저런 심정적 평가나 관계의 위상에 대한 결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 그래 그땐 내가 좀 성급했어... 맞아, 그땐 참 내가 철이 없었어... 그땐 그 사람 참 심했는데, 요즘은 좀 괜찮아졌을까... 이 시절 지날 때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내가 지금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그러고 보면 나두 제법이야. ㅎㅎㅎ... 등등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우리가 만들고 쌓아온 모든 관계들에 대한 어떤 결론들에 이르게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앨범 속의 장면들 중에서 지금이라도 되돌려보고 싶거나, 되살려내어 다시 한 번 되풀이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강력한 심취(혹은 흥취)가 일어 새삼 가슴 안이 훗훗해져 올 때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처럼 좋은 기억들 대신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어떤 사건들이 새삼스럽게 부각되어 마음속에서 거센 도리질이 연달아 터져 나오는 그런 일도 간혹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기억들도 도움이 된다. 할 수만 있고 노력해서 피할 수 있는 거라면,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곧추세울 수 있게 되므로.
그러한 앨범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우선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 첫 장에 꽂아둘 멋진 사진, 언제 봐도 미소가 떠오르는 그런 사진을 앨범에서 찾아내려면, 그 장면에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사건이나 행사, 거취 등에 실물로 참례했을 때만 그 사진이 만들어지고, 그 사진이 있어야만 앨범이란 게 만들어지니까...
그리고 그쯤이야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얘기. 그런데도 이런 얘기를 굳이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들은 앨범 첫 장을 장식할 멋진 사랑을 꿈꾸면서, 사랑을 끈질기게,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소망한다. 하지만, 막상 실물의 사랑을 쌓아가는 일에는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상상속의 사랑,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로 타오르는 듯한 심정적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도 없다. 손발에 실리지 않으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사진에 결코 찍히지 않는다. 게다가, 그러한 생각이나 느낌들은 몇 시간 혹은 하루만 지나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말 때가 더 흔하다. 그것이 우리 삶의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커플 사이의 뜨거운 사랑은 물론이고 언쟁이나 부부싸움, 부모 자식 간의 당연한 듯한 그 결체적(結體的) 사랑이 빚어내는 온갖 정다움과 그 반대편의 갈등들, 형제간 혹은 이웃간의 마찰까지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보게 될 때, 그것이 심정적 회억(懷憶)으로만 다가올 때는 지극히 주관적인 모습만 보이게 마련이다. 자신은 대체로 잘했고 상대방이 주로 잘못을 감당해야 하는 그런 일들로 자리 잡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실체적 진실은 그와 다를지도 모르고, 상당 부분은 실제로 그럴 때가 많다. 그런 경우에도 사실을 그대로 담은 사진들만은 진실을 거의 제대로 보여준다.
얘기를 마무리 짓자면 이렇다. 사랑은 머리나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찍지도 않은 사진을 앨범 첫 장에 꽂아놓고 들여다보는 일과 흡사하다. 앨범 속의 모든 사진들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갈등이나 마찰은 물론 고통까지도 감내한 모습으로.
그것이 삶이고 그 속에 우리들이 갈망하는 사랑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삶의 힘살 속에 뼈나 힘줄, 또는 신경다발의 모습으로. 사랑은 사진과 같은 실물로 담겨져야 하고, 그것이 오려진 사진처럼 또렷할수록 우리는 오늘과 내일의 삶에 더욱 확실한 경쾌함과 따뜻함을 매달 수 있다. 누구나 소망하는 그 사랑을 향해.
우리들의 사랑 만들기. 그건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사랑의 앨범을 만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늘상 좋은 일들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에 면역력과 항체를 형성해준다. 예방주사를 맞을 때 따끔하듯, 짧은 고통이 따를 수도 있지만.
사랑은 실물이다. 행동과 수고가 따르는 실물 만들기를 통해서 나타나거나 담길 때, 그것이 사랑의 실체적 진실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실체적 진실이라는 점에서, 거기서 예외가 아닌 사랑의 실체적 진실도 실물로 드러나야 한다. 현물로 만들어져야 한다.
실체적 진실이 실물로 드러나야만 비로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가장 효과적으로 내통하는 건 구체적 사건으로서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들이다. 아름답고 멋진 세상의 언어로 머릿속에서 이쁘게 갈무리 된 정서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길게 늘어놓고 있는 나. 그러면서 소중한 시간을 까먹고 있는 나는 그러한 실체적 진실을 담은 사진 찍기에 어떤가. 이미 방학이 끝나 개학한 지 여러 날이 지나고 있는데, 아직도 마치지 못한 방학숙제 중의 하나로 끌어안고 있지 않은가. 오매.
아고야. 얼른 여기서 잡문 긁적이기 멈추고, 오늘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 밀린 숙제가 많지만, 우선 사랑 사진 찍기부터 오늘 당장 해야겠당. 하하하. [Set. 2006]
<우리 공주님. 강아지풀만 보면 수염 매단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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