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춘식 님께 경례!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3. 5. 19. 06:36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김춘식 님께 경례! : 인사 하나가 품격과 생사를 좌우한다

  

   인사(人事)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뜻풀이가 되어 있다.

   1.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함. 또는 그런 언행. 2.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이름을 통하여 자기를 소개함. 또는 그런 언행. 3. 입은 은혜를 갚거나 치하할 일 따위에 대하여 예의를 차림. 또는 그런 언행.

   그리고 한자를 보면, ‘사람의 (할) 일’로 되어 있다.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 또는 ‘사람 사이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인사다.

  

                                                            *

   내 서재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거기서 글을 쓰고 일한다. 아마 이 세상에서 나처럼 멋지고 큰 서재를 가진 이들도 몇 안 되리라. 대영박물관의 부속시설로 문을 열었던 <독서실(Reading Room)>에 몇 해를 두고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명저를 완성한 칼 마르크스, 그 뒤를 이어 젊은 시절 그곳에서 자양분 충전에 여러 해를 바쳤던 버나드 쇼, 그리고 압축 명문의 대가 서머셋 모옴 등도 그곳 출신이니까, 그런 분들에게 비하면야 좀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다.

   나의 꼴에 비하면, 이런 누림은 정말 황감할 정도다. 글자를 일일이 조립해야 하는 수공업자에게 필요한 건 첫째가 조용함이고 둘째가 수시로 필요한 책자를 들춰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충족되니 더 무엇을 바라랴.

  

   경기도 K시의 골짜기 원룸 생활과 이천의 <부악문원> 등, 이곳저곳의 떠돌이 생활을 거쳐 이곳 도서관(“파주 00도서관”이란 간판이 작년부터 “경기도 대표도서관”으로 바뀌어 건물 정면 출입구에 붙어 있다)으로 출퇴근한 지도 이제 한 해 반이 되어간다.

   시간이 흐르며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들과 수인사도 하게 되고 그중 맘에 드는 이들과는 맞담배질에 이어 가끔 식사 외출로도 이어졌다. 점심 때 그중 한 사람이 하는 가까운 농장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음식점으로 몰려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술 한잔을 곁들이게 되는 일도 생기고, 심지어는 뜻이 맞으면 어느날 불쑥 영종도로 날아가는(?) 짓도 했다. 결국 그건 시간 낭비.

  

   지금은 번역가와 교수 화가 등 두어 사람 정도로 좁혀졌다. 도서관 발길을 끊은 이들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 친교의 범위를 좁힌 덕분이다. 그 중 두 사람은 내가 정리(?)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 그건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알은척을 하지 않으면 제 발로 찾아와 먼저 인사를 하는 법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그중 한 녀석은 좀 늦게 와서는 의자 반 개 정도 떨어진 내 옆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 보곤 하는데, 먼저 인사를 하는 법이 없다. 지금껏 두 해 넘게. 정면으로 눈길이 마주쳐도 목례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목을 까딱하는 흉내만 낸다. 나이도 이제 겨우 50줄에 간신히 턱걸이한 새카만 어린(?) 녀석*인데 말이다.

  

   반면에, 내 왼쪽 옆자리에 고정석을 마련한 지 한 해가 넘는 40대의 번역가는 어제도 인사 오늘도 인사한다. 아침에는 물론 퇴근할 때도 꼬박꼬박.

    [*주 : 사내들에게는 이따금 나이를 따지는 일이 쓸모가 있다. 나이를 제아무리 먹어도 철이 없는 사내들에게는 특히나. 사실 그 녀석은 내가 제대할 무렵까지도 내게 ‘국군장병 아저씨께’ 하나 쓸 수 있는 군번(?)이 아니었다. 왜냐, 그 무렵쯤에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으므로. 내가 그에게 그런 말을 꺼내들 때쯤이면, 상대방을 차렷 시킬 필요가 있을 때다.

    반면 여인들에게는 30대 후반만 넘어서면 절대로 사내가 나이 따위를 꺼내들면 안 된다. 매 맞아죽을 각오가 아니면. 왜냐, 여인들은 철이 일찍 들게 마련이므로. 함부로 나이를 꺼내들면, 철든 여인의 쇠 매로 맞든가, 입 매(말을 좀 조리있게 잘하는가)로 맞든가, 몸 매(무게나 외모 따위는 따지지도 말 일)로 맞든가 셋 중 하나다. 하하하] 

  

                                                     *

   난 다행히도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첫인상은 아니다. (종일 두고 보면 찬바람이 더 많이 부는 사람이긴 하지만도. 하하하.) 그래서일까. 내가 도서관 직원들과는 제일 친하다. 관장에서부터 직원들의 절반 이상은 이제 내게 자기들이 먼저 인사한다.

   청소도우미 아주머니와 35세의 정신지체 처녀가 매번 너무 큰소리로 내게 인사해서 미안할 정도이고,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직으로 일하면서 자전거 유럽 여행을 마치고 그걸 정리해서 이달 중에 출간할 40대 여인 하나는 몇 달을 두고 나만 보면 허리를 잔뜩 굽혀서 인사하는 바람에 혹시 내 뒤에 있는 누굴 보고 그러는가 싶어서 뒤를 돌아본 적도 있다.

  

   그뿐 아니다. 구내식당의 여사장 젊은댁은 손님이 없을 때면 식후에 원두커피까지 만들어 갖다준다. (그녀는 구내 음료/커피 자판기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올초부터 구내 식당을 운영한다. 내가 도시락을 먹을 때 와서 재료 채우기를 하면서 자꾸만 미안해하길래 맘 놓고 하라고 했을 뿐인데.)

   정신지체 처녀가 구내 식당 여사장을 보고 언니라고 하길래, 전혀 그리 안 보인다고 하자, ‘겨우 한 살 차이일 뿐인데요 뭐’ 하는 바람에 저절로 여사장 나이까지도 안다.

  

   내가 마당발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난 그저 기본적인 인사만 제대로 하는 편이다. 아무 생각없이. 늘 얼굴을 대하거나 자주 대하는 직원들에게는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조금 친해지면 ‘오늘도 안녕하시렵니까?’를 음조를 바꾸어 농담조로 건네기도 하고, ‘내일도 안녕하실 거죠?’하고 물어서 멀뚱한 표정 응답이 돌아오면 나는 ‘낼 혹시라도 인사를 못 드릴지도 몰라서요’로 미리 그 답을 알려준다.

   그렇게 하는 이유. 아주 단순하고 이기적이다. 내가 편하고, 내가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그들에게서도 밝은 표정이 돌아오고, 말이든 뭐든 빈손이 아닐 때가 더 많다. 하다못해 자기들이 먹던 캔디 하나라도 슬그머니 내 책상에 놓고 간다.

   

   나 역시 그리 한다. 특히,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입구에서 안내 업무를 하고 그 뒤로는 정독자료실로 들어와서 다시 밤 8시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가야 하는 여직원의 얼굴에서 피곤기를 읽어내면, 도서관을 떠나기 전 내 가방을 뒤진다. 남은 캔디가 있나 해서.

   그러다 보면 간혹 횡재할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초콜릿 같은 게 손에 잡힐 때. 그럴 때면 1/4쪽 정도를 뚝 자른 뒤 나머지를 직원에게 주고 나온다. 물론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리 한다. 그래야 그녀도 집으로 안 가져가고 그 자리에서 먹는다.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기도 하면서.

  

                                                           *

바쁘신 중에도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시어 저희 아들 혼사에 축하와 후의를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따뜻한 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춘식 박순연 올림 5월7일 오후 6 : 51

  

   이것은 대구의 김춘식이라는 이가 아들의 혼사를 치른 후 이틀 뒤에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50대 후반의 사내. 그와 나는 이태 전 5월에 첨 만났다. 생면부지였는데도 시간이 흐르자 오랜 지기를 만난 듯했다.

   그날 1차 모임이 파하자 대구 근방에 사는 이들만 남게 된 자리에 나 혼자서 외지인 신분으로 남아 있게 되었는데 (어차피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빠른 일인지라), 뒤풀이 삼아 들른 노래방에서 다섯 사내가 새벽이라고 해도 좋은 시각에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뒷전무당만 같은 뒷전 행각 때문이었다. 돈 내고 산 노래시간이 끝날 무렵만 되면 어느 틈에 살짝 빠져나가서는 얼른 또 돈을 내고 내고 하는 바람에.

  

   그런 그. 흘러간 노래를 멋들어지고도 맛있게 불러대는 것하며, 처음 보는 이를 그처럼 자연스럽게 흡입하면서도 품격에서 벗어남이 없는 그의 행각(?)이 내게는 보통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노래방을 나오면서 혹시나 싶어서 이름에 쓰는 한자를 물어봤다. 봄 춘(春)에 법 식(式). 그럼 그렇지. 사람은 제 이름대로 가는 법. 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법도를 지켜내는 그 멋진 행보는 내공으로 승화한 삶의 밀도에서 배어나오는 법이렷다.

  

   그 뒤 그가 KBS 티브이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 그의 직업 중에 체신부 시절의 우편배달부도 있음을 대하자, 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눈 비가 와도 그 커다란 가죽 행낭을 메고 묵묵히 발걸음을 떼어놓았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을 때였다.

   그 뒤 각고의 노력으로 공무원을 거쳐 지금의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 과정들은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의 업역이 심각한 불황으로 파리를 날리다 못해 폐업 사례들이 속출하는 데도 그만은 사무실 유지비 따위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를 믿고 거래 후 사후관리를 맡겨오는 고객들 덕분에. 그것 또한 알고 보면 그의 행적이 쌓은 공덕이다.

  

                                                 *

   김 사장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는 내가 그의 아들 결혼식에 간단히 고개만 내민 뒤 두 번째로 받은 인사다.

   결혼식 날, 나는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섰다. 1000여 쪽쯤 되는 데이빗 아볼라피아의 지중해 문명사 <위대한 바다>와 미리 사두었던 대구 왕복 열차표를 들고. 그것도 시속 100킬로 정도로 달리면서 온갖 역을 다 챙기고 가는 무궁화 열차표. 왕복 8시간의 기차 여행.

  

   이유는 단순했다. ...8시간 정도를 기차 안에서 보내면 읽고 싶은 책 한 권은 그날 다 읽을 수 있겠구나. 그러러면 점심 먹으며 부산에서 올라오는 암 투병 환자 분 얼굴 보고, 찻집 식구들에게 얼굴 인사 대충하고 하면 대략 두어 시간 정도면 될 듯하니 거기에 맞춰서 표를 사면 되겠구나...

   나는 그날 무사히(?) 저녁 9시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 집 두 뇨자분들은 어딘지 ‘더 좋은 데 계시다기에’, 혼자 먹을 라면 물을 막 올려놨을 때 김 사장의 전화가 왔다. 집에 잘 도착했느냐는 안부 전화였다.

  

   집에 들어오기 전, 나는 버스에서 또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김 사장이 그날 멀리에서 찾아온 우리 동료 7사람인가에게 함께 하지 못하는 죄값 삼아 저녁 식사 비용으로 30만 원을 내놨는데 그걸 다 쓰지 못했노라는 고백 전화였다. 세상에...

   혼사 당일 혼주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래저래 엄청 바쁘기 마련. 때로는 몸이 두어 개였으면 하고 바랄 정도다. 그러다 보면 천하장사도 슬슬 피곤해진다. 그러니 어디에 고맙다는 인사 하나를 하려 해도 마음뿐,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다음날로 미루고, 그러다가 때를 놓치기가 일쑤. 그런데도, 김 사장은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나같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꼬박꼬박 했다.

   피곤을 씻어낸 뒤로는, 잊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위에 소개한 전화 문자 내용으로 일일이 다 했다.

  

                                                               *

   ‘인사’. 이 글의 앞머리에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 또는 ‘사람 사이에 해야 할 일’이 인사라고 적었다. 그만큼 기본적인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려고만 들면 사실 암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간단한 것 하나를 해내지 못해서, 자신과 주변까지 망치는 사람들 흔하다.

  

   저 위에서 내게 목례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 얘기를 적었다. 그는 우울증으로 몇 해 치료까지 받은 친구다. 그 첫딸도 같은 증세로 고교까지 중퇴했다. 처음 그 사정을 알게 됐을 때, 난 그 친구에게 바깥 활동을 권했다. 무조건 햇빛 사냥, 야외 공기 탐식을 하라고.

   점심 식사 후 도서관 뒷동산 주변으로 데리고 가서 이런저런 식물들을 현물로 알려주기도 했고, 나중에는 자전거 타기를 적극 권장했다. 지금은 치유 효과가 상당하다. 자전거 원행도 하고, 도서관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 그처럼 안의 병은 꽤 호전되었음에도 인사 버릇 하나는 스스로 익히지를 못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토록 질색하고 만류하던 주식 투자 데이트레이딩을 또 다시 시작한 듯하다. 왕창 말아 먹은 게 겨우 2년 전인데.

  

 

   내 주변에 혼자 사는 (혹은 이혼 후 아이들만 데리고) 여인들이 몇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다. 고맙다는 말을 거의 듣기 어렵다. 대신, 그들의 대화법을 보면 상대방의 말꼬리를 깔고 앉아서 자신의 잘났음을 은연 중에 홍보하려는 듯한 게 아예 몸에 배어 있다. 신랄함을 명민함으로 착각하면서. 그런 자신에 대한 착각 증세가 아주 심한 탓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따위는 할 줄을 모른다. 그런 게 전혀 연습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마치 고맙다는 말을 그 자신이 전혀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모르는 것만치나 그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공통점이 또 있다. 경미한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증세 중의 하나가 걷는 일을 기피하는 일인데, 그들 역시 똑같다. 걷는 일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그 하늘같은 혜택에 대해 알지 못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뿐 아니라, 햇빛의 위대함, 주변 자연 경관들의 가르침,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걷기 마주침과 함께 하기, 풀꽃 하나에 손길을 던지는 그 몸수고 버릇이 주는 혜택과 가르침에 대해서, 그저 머리로만 안다. 그래야 유식하거나 고상한 것으로 또 착각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생각은 알맹이도 없는 ‘감정/정서’ 따위의 그럴 듯한 낱말로 부추겨지면서 고상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 곧 하잘것없는 ‘기분’ 챙기기가 최우선이 된다. 몸수고 자체를 무슨 상것들이나 일꾼들이 하는 하급 노동으로만 여긴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잃었거나 더 잃어가는 것. 그것은 고맙다는 말 하나조차도 거리낌없이(머리 생각으로 거르는 일 없이, 본능적으로) 제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내질 못하게 된다.

   그늘 내지는 반음지에서 더 많이 머무는 이들의 특징은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인 인사 하나를 제대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뒤를 살펴 보면 그렇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에겐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와 반면 취업 면접에서 낙방하는 일이 없는 어떤 여인이 있다. 심지어 자기네 회사로 오라며 전직을 꼬드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취업 전쟁터에서 40대의 여인인데도. 그것도 대기업 관리직으로.

   그녀는 밝고 맑다. 가만히 보면 상대방에 대한 맞장구나 대꾸가 아름답다고 해야 할 정도로 타인 중심이다. 그렇다고 아부나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녀와의 대화를 기쁘게 여긴다.

  

    그녀에게 놀라게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그녀는 아주 오래 전 읽은 책속의 낱말들을 선명하게 기억하는가 하면, 근간 서적속의 내용도 전문가 못지 않을 정도로 적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런 내색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지식들이 필요한 장면에서 유효하게 쓰일 때만 그녀의 그런 모습이 살짝 드러난다.   

   그런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 정도는 일상의 기본기에 속한다. 부모님 두 분 모두에게 골고루 자주 감사해하는 그녀의 태도는 몸에 밴 일상 중의 하나여서, 어쩌다 카메라 앞에서만 ‘부모님 사랑합니다아’ 소리를 해대며 폼을 잡는 이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

   김춘식 님께 경례! 이건 내가 내 자신에게도 외치는 구호다. 웬만큼은 인사를 하고 지낸다고, 그래도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착각해온 내가, 그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더 크게 배우고 깨달은 걸 잊지 말자는 뜻에서 외치는 자경문(自警文) 격의 표어.

   그리고 그걸 이런 잡문에라도 담아서 그를 기리고 싶다. 널리 알리고 싶다. 내가 던지는 이 작은 돌이 만드는 파문이 동심원의 하나가 되어 수많은 동심원들로 널리 멀리 번져 나가기를 기원한다. 특히 자신의 인사 버릇을 전혀 의식도 못하고(그 때문에 모르고) 지내온 수많은 이들에게, 차제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다. 그런 이들이 의외로 엄청 많은데 그걸 그 자신의 힘으로 자각할 기회가 드물거나 거의 오지 않으니까.

  

   사람 사이에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인사. 그걸 고맙다는 말로 무조건 시작하고 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많이 번져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김춘식 님께 경례!! [May 2013]

  

 

 

 

반응형

'[1事1思]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자존심 상한다, 상해!   (0) 2013.05.27
풀 뽑기와 사랑하기   (0) 2013.05.25
안철수와 “부인,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0) 2013.04.19
만우절 선물  (0) 2013.04.02
'할머니 제자'의 글  (0) 2013.02.1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