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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 창 쪽과 통로 쪽

[내 글] 진담(眞談)

by 지구촌사람 2013. 8. 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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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 뒤집어보기 : 창 쪽과  통로 쪽

                                              

                                                                                           최    종    희

                                     

  비행기나 버스, 그리고 여객선과 같이 승객의 좌석표가 창문 쪽과 통로 쪽으로 나뉘어져 있을 경우 우리는 흔히 창문 쪽을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문 쪽을 선호한다. 거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왜 그럴까.

  통로 쪽이나 가운데쯤에 앉게 되면 좌우의 사람들에게 조이는 느낌이 들어서 답답하게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예컨대,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에 대해서 자신만의 영역이 없는 것도 불만인데, 고스란히 노출까지 되는 것 같아서 거북스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창쪽에 앉으면 최소한 옆사람과 접촉되지 않는 한 쪽 만큼은 자신만의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하므로.

  또, 어쩌면 통로 쪽에 앉으면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하게 되어 상호간 원하지 않는 간섭(干涉)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원하지 않는 접촉으로 인한 간섭이 때로는 마음속에 부대끼기로 굳기도 하므로. 

 

  그러나, 막상 창문 쪽에 앉고 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화장실 출입을 하려면 그때마다 옆사람에게 미안함을 표해야 한다. 그 또는 그녀가 눈을 감고 있기라도 하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잠든 사람을 깨워야 하니까.

  그뿐만 아니다. 종업원들로부터 서빙을 받을 때도 옆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다. 통로 쪽에 서서 서빙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안쪽 좌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을 때도 흔하니까.

 

  또 있다.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좀 더 편하게 잠을 자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창문 쪽은 옆좌석과의 칸막이인 팔걸이를 올려봐야 좌석 하나 정도일 때가 태반이어서, 통로 중앙쪽에 여러 개의 의자가 병렬로 배치된 곳에 비해 더 불편하다.

  즉, 중앙 쪽 좌석에 빈자리가 생기면 팔걸이를 접어 올려서 좀 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넓은 자리도 만들 수가 있는데, 창문 쪽은 아무리 해봐도 겨우 두어 자리 폭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좌석표를 받을 때 통로 쪽을 요구한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지정한 대로 좌석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창문 쪽보다 훨씬 편한 여행이 된다.

 

  오늘 신문기사 하나는 영국의 젊은 여성(28세) 하나가 시드니에서 20여 시간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온 뒤, 런던 공항에 도착해서 수화물을 기다리다가 실신해서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대로 숨졌다고 전하고 있다.

  비행기의 일반석에 오랫동안 갇힌 듯이 앉아 있다 보면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어 고생하게 되는데, 그걸  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겪은 불운이다. 그녀는 특히 다리에서 올라오는 혈액이 굳고 그 덩어리가 심장을 막아서 발생하게 되는 폐색전증(肺塞栓症)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탑승 후 도착때까지 한자리에서 꼼짝 하지 않고 버틴 듯하니 참으로 어지간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녀는 중앙 통로 좌석의 한가운데쯤에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혹은, 창쪽에 앉아 있었지만 옆사람이 잠들어 있기 때문에 깨우기가 뭣하여 그대로 내내 참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본래 참을성이 많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자리에 앉으면 끝까지 꼼짝 않고 버텼는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그녀는 일단 자신이 확보한 영역을 내내 고수한 것만은 틀림없다. 자기의 것이 된 영역에서 꼼짝 않고 버틴 것이고, 그 결과는 그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습관적으로 창 쪽을 선호하기. 그것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여 덜 부대끼면서,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잠잠하고 포근하게 지켜내려는 무의식적인 버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달콤한 사유화 현상이면서, 고정관념에 이끌린 행동이기도 하다.

  공간의 달콤한 사유화 현상은 흔하다. 골방이나 다락방과 같이 자신을 포근히 감싸주는 좁은 공간을 선호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어쩌면 우리가 배태되었던 어머니의 자궁을 무의식에서 완전히 지워내지 못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습관일지도 모른다. 배내옷을 대하면 그 냄새에서 아련한 향수를 읽어내곤 하는 우리의 오랜 습벽이 늘 지속되는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자신만의 공간에서, 칸 질러 구분한 채 살아낼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많이는 외부를 향해 열려진 공간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함께 살아내야 한다. 여행길에서조차 그러한 부대낌을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것은 스스로를 폐색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사유화된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길에서만이라도 창쪽에 자신을 묶어두고 타인들과의 접촉을 스스로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비행기나 배, 또는 열차에 우연히 함께 타고 가는 옆자리의 승객들이야말로 우리들이 참으로 어렵게 접촉하게 된 삶의 동행자들이 아닌가. 외려 그러한 이들과 접촉하게 된 걸 행운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그들과 기꺼이 접촉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중심으로 금 그어지는 사유화는 대체로 달콤하고 안온하다. 그러나, 금 밖의 타인까지 포괄하는 공유는 막히지 않아야 시원하고, 그래야 밖을 향해 터지는 눈이 후련해진다.

  발전이나 성장과는 거리가 있어서 은근히 불만족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의지하게 되는 안온함에의 안주. 그것은 습관과 나태로 유도되는 유약한 사고력의 궤도 비행이 될 때도 많다. 제 자리 돌기다. 낡은 고정관념에 매달려 끌려가는 관성비행. 고정관념에 연결된 나약한 정신의 질긴 끈을 스스로 끊어내지 못하고 끌려가는 일이다. 심한 경우는 젖떼기에 실패한 어린아이나 매한가지로, 유아식이 든 병조차 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일도 생길 수 있다.

 

 

  고정관념. 때로는 가장 먼저 헤집어보고 필요하다면 깨뜨리거나 부수기도 해야 할 울타리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두기 위해서 더 많이 잘못 쓰이는 것이 아닌지 예의 주시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므로. [25/10/2000]

 

[사족] 비행기표를 살 때 통로 쪽과 창 쪽은 각각,

          aisle side, window side라고 하는데

          이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한편, 호텔 같은 데서는 바닷가 쪽과 그 반대편 쪽 방을

          고르라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의 말은

          ocean view, mountain view(산 쪽), park view(공원 쪽)

          등으로 말한다. 일종의 직업적 전문용어들이다.

          알아두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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