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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매달려 하늘을 달리는 자전거

[1事1思] 단상(短想)

by 지구촌사람 2014. 2.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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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칠순을 맞은 어느 시골 할머니가 곧 펴내게 될

수필집 <비망록>에 대한 서평 겸 발문이다.

과수원 농사꾼이기도 한 그녀의 결 고운 시선을 상찬하고 싶은 마음에

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감히 몇 자 꾸렸다.  -溫草

 

 

                               거꾸로 매달려 하늘을 달리는 자전거

 

                                                                                                     최 종 희

 

지난 설날, 친척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길을 가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목적지 근방에 이르자 우리 차 앞에서 버스 한 대가 계속 가고 서고를 되풀이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느라 서행하던 탓도 있었지만, 그곳은 왕복 4차선 도로였다. 일부러 서둘러 추월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버스 뒤를 따라서 고분고분 2차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버스의 꽁무니 쪽으로 저절로 시선이 갔다.

 

버스의 뒤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끌어올리자 몇 개의 글귀가 들어 왔다. 그중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노선 안내 표지와 <기사 모집>이라는 광고 옆에 붙여진 한 줄의 글귀, <행복한 설 명절 되십시오!>. 그 버스의 기사는 다른 이들의 행복한 설날을 빌면서 다른 이들의 발이 되고 있었다. 그 자신은 설날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하지도 못한 채.

 

그 순간, 십여 년 전 생각이 났다. 동생들의 오후 일정이 있는지라 내가 서둘러 채근해서 보내고 보니 설날 오후가 일찍 비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함께 북한산 자락을 타고 올랐다. 그 짧은 등산길에서 명절날에 홀로 산을 오르는 이들이 그처럼 많은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돌아와서 <명절날 홀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 하나를 엮었다. 그때 그 글속에 버스 기사처럼 명절날에도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일터에서 지내야 하는 이들을 대강 꼽은 게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대충 떠올려 본 것.

 

이번 설날 연휴 마지막 날 내 방에 혼자 머물게 되었을 때, 이번엔 그런 이들을 제대로 꼽아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헤아리기는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만큼 떠오르는 이들이 많았다. 여기서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대충만 늘어놔도 그 리스트의 내용물은 한참 되고, 내가 모은 상세 자료들은 십여 페이지를 넘길 정도가 되었다.

 

45천여 명의 교정시설 수감자들과 그들을 살펴야 하는 15천여 명의 교정직 공무원들을 필두로, 각급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는 환자들을 챙기는 이들만도 5만여 명. 명절에도 전기와 물을 제대로 공급해야 하는 에너지와 상하수도 업무직들도 만 명을 훌쩍 넘긴다. 버스기사처럼 명절이라고 해서 고객과 화물 운송을 접을 수 없는 지하/육지/바다/하늘의 수송 업무직들과 창고 등의 지원시설 종사자들도 20만여 명. 1365일 불을 지펴야 하는 제철소의 고로(高爐) 근무자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날에도 일터를 지켜야 하는 10여 만 명의 제조업 분야 종사자들도 있다.

 

그뿐이랴. 명절일수록 더욱 긴장해야 하는 경찰/해경/소방직 공무원들의 1/3 정도만 잡아도 그 숫자는 5만여 명. 거기에 중앙과 지방공무원의 상황실이나 당직실 근무자들도 5천여 명은 족히 된다.

 

거기에, 인원은 소수지만 꼭 생각해야 할 이들이 있다. 멀리 떨어진 곳이거나 외진 곳에서 홀로 또는 겨우 몇 사람끼리 얼굴 맞대고 명절과 무관하게 근무해야 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유인 등대 37개소에서 머무는 이른바 등대지기(정식 직함은 항로표지 관리원이었는데, 요즘은 등대원으로도 표기한다) 163명을 필두로, 전국 21개소의 국립공원에서 사무실과 매표소를 지키는 300여 명의 설날 근무자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49개소의 기상대(예전에는 측후소등으로 불리던 것이 지금은 지방기상청 소속의 기상대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에서도 200여 명이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꼽을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이들 중에 명절 고속도로를 덮는 차량들을 더 신경 써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속도로 관련 업무를 하는 이들. 본사 상황실을 비롯하여 지역본부와 지사, 영업소 등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2천여 명에 이르는데, 그중에서 꼭 짚어야 할 이들이 336개의 영업소에 소속되어 일하는 요금소 지킴이 여성들이다. 자신의 집안 차례에도 참례하지 못하고 명절날이면 한복으로 바꿔 입고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창문을 열어둔 채 찬바람을 맞으며 근무해야 하는 이들. 그들 대부분은 주부인데, 명절날에도 천여 명이 그처럼 좁은 공간에서 홀로 일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일이기에 자신을 챙기는 걸 잊어야만 한다. 자신을 잊고 일한다.

 

이런 이들의 합계 아래에 군인들의 숫자를 더하면 명절날 아침에도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은 약 110만 명 정도가 된다. 우리 주변에서 열 사람 중 두 사람은 명절날 아침밥을 집에서 먹지 못하고 지낸다. 부모 없이 명절을 맞아야 하는 각종 수용시설의 아이들을 빼고도. 그런 이들 중에 홀로 되는 시간이면 자맥질로 떠오르는 그리운 이들의 뒷모습에 이슬방울을 살짝 매달게 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

서평에서의 이런 얘기. 어쩌면 뜬금없고 엉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먼저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어찌 보면 위에 언급한 이들과 어떤 면에서는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다.

 

oo 님은 홀로 지낸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들이 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안으로는 혼자서 자신을 끌어안고 지낸 시간들이 더 많다. 유달리 섬세한 정서에다 소녀 시절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문학적 감성, 모든 것을 따뜻이 껴안으려는 결 고운 심성, 그리고 재주는 넘치지만 또렷이 보이는 출구가 없이 지내야만 했던 막힌 시간들의 복합이 그녀를 그리 이끌었다. 내가 그녀의 글속에서 눈치 챈 바로는 그렇다. 더구나 그녀를 덮친 수많은 사건들이 더욱 그녀의 가슴을 홀로 끌어안도록 했다.

 

꿈 많고 생각 많아서 평생 짊어지고 갈 업보에 다가가기도 했던 처녀 시절이나, 첫 아이를 비명에 보냈을 때, 당찬 시어머니 밑에서 전형적인 시집살이를 겪을 때, 방학 때면 내려와 하모니카 연주로 시집살이 초보 시절의 고단한 마음을 달래 주기도 했던 시동생을 잃었을 때, 패혈증으로 남편을 먼저 보냈을 때, 장성한 아들이 취업과 장가로 자신의 곁을 떠나 간 뒤로도 그렇고, 가까이에서 머물며 과수원 농사일과 수다를 함께하던 손아래 동서를 몇 해 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로도 그랬다.

 

저자 oo 님을 알게 된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꽤 오래 전 이 나라에 피시 통신이라는 게 퍼지고 그 활동 영역 중의 하나에 피시 통신 문학 동호회라는 것이 만들어졌을 때 모니터 속에서 그녀를 대했다. 어쩌다 가끔 대하는 글이었지만 글에 멋 부리기용 꾸밈이 없었고 무척 따뜻했다. 시가 아닌 일상적인 삶의 단편들을 담은 산문을 주로 대해서, 한참이 되도록 시인으로 등단한 줄은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그뿐만 아니다.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 그처럼 많은 잔가시들이 박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기야,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통신상의 문학 마당에서 서로를 알려는 노력은 개별적인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고는 뒷받침되기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러다가, 어렸을 때 부모님도 모르고 지나간 중이염 탓에 아내의 한 쪽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다는 내 잡문을 대하고 나서, 내게 처음으로 쪽지를 보내왔다. 자신은 처녀 시절에 치른 삶의 홍역 탓에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들을 수 없는 세월을 지내왔다면서, 도리어 아내의 처지를 안타깝게 동정해 왔다.

 

아내는 비록 한 쪽 귀가 들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멀쩡하게(?) 피아노 연주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악기 연주를 해대고, 운동도 다 잘해낸다. 한 쪽 귀가 들리지 않으면 몸의 균형 잡기가 힘든데, 자세에서 균형 감각이 특별히 중요한 볼링 따위에서도 퍼펙트에서부터 백몇 점대까지 들쑥날쑥 하는 나에 비하여 항상 고정적인 점수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 둘의 시합에서 아내는 나보다도 승률이 더 높다. 그런 아내인데, 내 글을 보자 oo 님은 자신을 젖혀두고 아내의 처지를 더 많이 공감해 왔다.

 

                                                                      *

저자의 사진 속 모습을 대하면 꼭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 복스럽고 후덕하다. 삶의 노정에서 온갖 신고간난을 겪은 사람 같지 않다. 이마에 주름살 하나 없다.

 

대체로 미간의 주름살은 선천적이기보다 훨씬 더 많이 후천적이다. 이른바 평소에 인상 쓰기를 많이 하는 이들이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주름살을 만든다. 그리고 눈과 귀가 멀쩡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주름살이 훨씬 더 많다. 보고 들으면서 더 자주 인상을 쓰기 때문이다. 보고 듣는 것들 앞에서 주름살 만들기를 더 많이 자주 연습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이나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의 표정을 보라. 항상 맑다. 얼굴 전체에 엷은 미소가 깔려 있을 때가 더 많다.

 

고승들에게는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다. 주름살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얼굴엔 늘 수상한(?) 미소가 옅게 깔려 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알아내지 못하는 어떤 비밀 같은 것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듯해서 더욱 수상해 보이는 그런 미소 말이다.

 

고승들의 무념무상은 보고 듣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데서 시작되고 보고 들은 것 따위에서 초월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뭘 보고 들어도 거기에 섣불리 자신의 지식이나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 때문에 미동도 하지 않게 되고 정서의 수면에는 잔물결이 일지 않는다. ‘무의식지 무안계(無意識知 無眼界)’. 섣불리 의식하거나 알아챈 듯 거벼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적 활동 영역에는 어떤 금 따위가 그어지지 않는다. 안으로 무한대의 광역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래서 그런 고승들의 홀로 됨은 더 넓고 크고 깊게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로 이어진다.

 

저자의 오랜 홀로 됨 역시 비슷하다. 고승과 같은 엄청난(?) 깨달음의 경지를 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난다. oo 님은 주변의 온갖 것에 관심한다. 특히 말 없는 것들에.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풀포기 하나에도 눈길을 주고, 꽃 한 송이에도 아는 척하면서 지나간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 들판을 달리며 대하는 맑은 공기에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그러다가 자전거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몰라. 하하하), 푸른 하늘에도 감사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녀의 글을 보면. (외람된 표현이지만) 하는 짓만 놓고 보자면 참으로 나잇값도 못하는 양반, 그 나이에 아직도 철이 덜 든 분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들을 글에서 대하면서 내게 떠오른 그림 하나. 그것은 철없이, 겁도 없이, 하늘에 매달려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삶에 등 떠밀려 살아가야만 한다는 습관적인 당위성을 앞세워 미진하기 마련인 것들에 그녀는 살살 도리질을 치면서 일상의 하중에서 벗어나 하늘 바라보기 연습을 수없이 했다. 그런 노력 끝에, 이제는 하늘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아릿하게 맺혀 온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지상의 것들을 쓰다듬는 일을 잊지 않았다 과수원 농사꾼에 불과한 것이 명백한 그녀가 오지랖 넓게도 욕심을 냈다. 풍물반에 들어가 그걸 익힌 뒤 위안 공연에도 나서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주간 봉사에도 빠지는 법이 없는가 하면, 우리말 깊이 익히기를 통한 글쓰기 강좌에도 개근생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풀꽃 사랑 단계를 넘어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바짝 다가가는 진한 사람 사랑 계단 위로 훌쩍 올라섰다.

 

                                                                *

나이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oo 님은 누님뻘이다. 연상이다. oo 님은 칠순을 맞았지만 나는 아직도 6학년생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글쓰기에 관한 한은 내게 제자다. 여러 해 전, 어떤 일로 그리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자는 내게 글쓰기와 관련해서 곁붙이가 되어 줄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곁을 주었다. 그때서야 그녀가 모 계간 문학지를 통해서 등단한 시인이라는 걸 알았다.

 

그 뒤로 그녀가 바쁜 농촌 생활 중에서도 틈틈이 쓴 글들이 내게 배달되었고, 뻘건 밑줄과 붉은 글씨가 잔뜩 보태진 답장이 내게서 간간이 띄워졌다. 그러기를 여러 해 하다가 재작년 말쯤이던가. 내가 메일 답장에 볼드체로 크게 적어서 보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이제는 하산하셔도 되시옵니다.’라고.

 

서평 부탁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인생 선배인 oo 님의 글에 뭘 매단다는 게 외람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게 으뜸가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다가 수락했다. 누님의 대견한 출산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동안 선배를 마구 다그치고 족치면서 지내오는 사이 쌓인 내 마음 빚도 조금은 덜 수 있을 듯해서다.

 

이 책은 70여 년에 걸쳐 논틀밭틀길 같은 삶을 살아온 이 나라의 여인들 모두의 공통분모만 같은 내용을 oo 님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빗질해낸 글들로 채워져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 모두 먹는 밥이지만 그 조리 시간과 방법을 달리하여 찰기를 다르게 하고, 잡곡을 달리 섞어서 그 맛을 다르게 한 쌀밥이다. 굳이 이름 짓자면 '이oo 표' 쌀밥을 '이oo 표' 밥공기에 담아낸 것쯤 되려나.

 

그 밥맛에 대한 평가는 개별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의 눈길에 스친 모든 것들에는 늘 온기가 얹혀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가슴 저리는 슬픔이나 애통함과 비통함까지에도. 그러니, 웬만한 일들에는 그녀의 맷집에 어울리는 시원한 너털웃음 한 조각이 기본적으로 매달려 있다. 한 편의 글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은근한 미소를 머금게 되는 연유다.

 

이 책에는 저자가 비망록이라 이름 짓고 싶어 할 정도로 한 생을 살아오면서 잊히지 않는 것들이 담겨 있지만, 그 시선이 참으로 곱다. 그 모든 것을 이제는 결 고운 마음 빗으로 빗어 내리면서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정리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기본 채색으로 깔려 있다. 작가의 무채색 마음과 꾸밈없는 시선이 참으로 어여쁘다.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되고 행복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던가. 온기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책자다. 이 책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저자의 그러한 온기가 전해져 세상 여러 구석에서 조용한 따뜻함이 번지기를 빌고 싶다.

 

끝으로 저자 oo 님의 건강 장수를 축수(祝手)하며 기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맨날 글발로만 내 마음을 전했듯이, 오늘도 여전히 글로만이다. 하하하.

 

[추기] oo 님은 아들보다도 며느리와의 통화량이 더 많을 정도로 며느리와 아주 죽이 잘 맞는, 최신식 시어머니다. 신식(?)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에도 일찍이 컴퓨터를 가까이하여 피시 통신에 글쓰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사진 찍기나 갈무리, 그리고 올리기 등에서도 놀랍게 능숙하다. 위의 글에서 넘치는 재주꾼이라 적었던 것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첫아들을 잃는 바람에 외동이 된 아들은 어머니의 걱정과 기대를 배불리 먹은 덕분에 무럭무럭(?) 잘 자라서 지금은 초일류기업이라는 곳에서 해외 지사 근무를 하고 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재작년인가, 자신의 근무지로 어머니를 모셔서 아주 멋진 관광을 시켜 주기도 했다. 딱 한 가지, 손주 안아보는 꿈이 늦춰지고 있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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