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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의 피아노와 전자피아노, 그리고 키보드

[촌놈살이 逸誌]

by 지구촌사람 2014. 4. 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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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의 피아노와 전자피아노, 그리고 키보드

 

새벽에 내 방으로 건너오는데, 거실에 펼쳐져 있는 풍광이 좀 이채로웠다.

평소에 흔히 보지 못하던 것. 

(아니, 두어 달 전부터 되풀이된 광경이겠지만 내가 안방에 머물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아래의 사진 속 모습이다.

 

 

보아 하니, 엊저녁 울 집 두 뇨자 분들께오서

오늘의 행사인 양로원 방문 연주회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신 듯하다.

 

 

왼쪽의 전자피아노(야마하 클라비노바)와 오른쪽의 키보드(카시오 Wk-220)는

함께 연습하다가 밤이 늦거나 해서 피아노 소리가 이웃에 공해가 된다든지 하면

이어폰을 꽂고 연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 집에는 업라이트 일반 피아노와, 전자피아노, 그리고 키보드가 있다.

엄청 부자라고?

우린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욕망으로든 생활에서든. ㅎㅎㅎ

 

전자피아노는 주로 야간에 연습해야 하는 탓에 소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필요했고

키보드는 바로 최근 시작한 재능 기부 때문이다.

 

 

아내의 방에 걸려 있는 한 장의 사진.

연주회 때의 모습이다. 눈물의 연주회...

 

 

 

아내의 피아노다. 30년을 향해 가는 낡은 피아노.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피아노 뚜껑을 보면 세월에 긁힌 흠집투성이이다.

 

아내는 서울 변두리에서 쌀 가게를 하는 집의, 두 아들 한 딸 집안에서 자랐다. 

당시에 모두를 대학에 보내기는 힘에 겨운 그런 집.

아내는 피아노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레슨을 받을 여유가 없었고, 집에는 피아노조차 없었다.

 

아내는 학원에서 원장 선생님의 배려로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것이 전부였다.

저 피아노는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은 첫 봉급부터 모아서 산

최초의 피아노다. (내다 팔면 몇십만 원도 못 받겠지만, 아내가 지극 정성으로 조율을 해서

아직도 소리는 멀쩡하다. 내다 팔 생각은커녕 무덤 안에 함께 묻어달라고 할지도... ㅎㅎㅎ) ​

 

그리고 기어이 해냈다. 10여 년 전 40대의 만학도 길을 걸어냈다.

그런 뒤 제대로 된 뮤직 홀에서,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했다.

위의 사진에다 눈물의 연주회라 적은 까닭이다. 

눈물을 진짜로 흘리지는 않았지만, 속울음을 삼키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기에.

 

아내는 두어 해 전부터, 처녀 시절 10여 년 넘게 해오던 

주일 예배 반주를 또다시 하고 있다. 등록 교인 수는 천 명을 넘기지만

5층짜리 교회를 채우는 것은 할머니들이 주력 부대인 그런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문제 없이 해낼 재원이 없는 곳이라서다.

(아마 이 나라에서 50대 여인이 제법 규모 있는 교회의 예배 반주를 해내고 있는 건  

유일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보면 밤에 아내가 전자피아노 앞에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연습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전자피아노가 필요한 건 울 공주뿐만이 아니다.

 

 

 

 

키보드가 필요한 까닭. 바로 울 집 공주도 참여하기 시작한 재능 기부 때문이다.

양로원이나 요양원 등과 같은 곳을 방문하여, 또래나 언니/동생들과 함께

소규모 공연을 하고 있는데, 공주의 담당이 키보드인 까닭에...

남의 악기를 빌어 할 수도 없거니와, 주말마다 빌려 줄 이도 없다.  

(저 재능 기부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단체 이름을 '어우렁더우렁'으로 지어 준 것밖에 없다. ㅎ)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서 아이들이 공연을 한다.

오른쪽 사진 속의 안경잡이가 사회를 맡고 있는 진 모친이다.

앞에 나와서 춤을 추는 요양원 할아버지 앞에서 박수로 화답하고 있는  중.

 

눈물 어린 한 대의 낡은 피아노가

아이들과 어른들의 재능 기부로 이어지고 있다.    [2014. 4. 19]     -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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