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인 : 동성의 친구가 젤 좋다는, 나이 든 여인은 착한(?) 여자다
□ 50~60대의 지긋한 나이가 되면 남편은 우선순위에서 서너 번째이고, 첫째가 같이 늙어가는 동성의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내놓고 토 다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까지 얻고 있어서, 남정네들은 속으로 찔끔한다. 둘째가 돈이라는 말에도 거의 이의가 없는 듯하다.
하기야, 그동안 나이 들어오면서 저지른 죄과(?)가 만만찮아서 이런 말에 끽소리도 못하는 남자들, 적지 않다. 오죽하면 퇴직자 중 ‘삼식이’(하루 세 끼니 꼬박꼬박 집에서 밥을 찾아먹는 사람을 낮잡는 속어)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이라는 농담까지도 힘을 얻고 있을까. 나이 들어가는 아내 근처에서 치마꼬리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는 이들은 그나마 늦철이라도 든 축에 든다고도 한다. 그런 노력이 가상하다는 비아냥조도 곁들여지지만.
□“난 35살 넘은 여자들은 상대도 안 해요. 술 한잔했을 때는 40 넘은 여자도 상대하긴 하지만...”
미국 티브이 시리즈물인 <클로저(Closure)>에 나오는 50대 후반의 못생긴 독신 남자(맘은 여리고 착한) 플린 경위의 대사다. 사무실을 처음 방문한 보스 여인(브렌다)의 어머니를 그가 지극하게 챙기는데, 그걸 본 브렌다가 ‘우리 엄마는 결혼한 여자에요’라는 말로 슬그머니 제동을 걸자 그게 기우라는 뜻으로 경위가 대꾸한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냥 피식 웃어넘겼다. 작가의 재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하면서. 게다가 목 주변의 주름으로 보아 보스의 엄마는 아무리 잘 봐줘도 6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여인의 외모로 짐작되는 연령대 말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대체로 단순하게만 생각하곤 해서 가끔 ‘띨띨이’ 소리도 듣기도 하는 나는, 평소의 나답게 단순하게 그런 것이나 챙겼다.
그러다가 천천히 차분해지면서 무거워졌고 웃음발이 깨끗이 지워졌다. 왜냐, 경위의 말은 남자 세계의 여성관을 극명하게 제대로 잘 요약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내들은 어쨌거나 항상 영계(?)들을 상대한다. 아니, 원하면 상대할 수 있다. 술집에 가거나, 어딜 가도. 제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1회용 고객이든 중·장기적 상대자감이든 상대 가치가 있는 남자들에게는 여인들이 있다. 결과로만 보면 여인들이 다가온다. 외형이야 그 반대일 때가 더 많지만.
그럴 때의 여인들은 상대 가치의 판단에서 사내의 나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른 것에 비하여 감점 폭이 적거나 가중/가감 점수가 약하다. 사회적 지위, 부, 명망, 여인에 대한 태도, 지향점의 건전성 내지는 꿈의 실현과 관련된 준비 사항 등을 점검한 뒤 건강 항목에 이르러서야 나잇값을 내릴지 올릴지 정한다. 건강하다면 감점 폭이 대폭 줄어들기도 한다.
이건 동서양의 공통 과목(?) 내용이다. 쉽게 몇 가지 예만 봐도 그렇다. 제네바에서 이승만(1875년생)을 만난 지 몇 달 만에 뉴욕으로 날아와 결혼한 부잣집 이혼녀 프란체스카는 세는나이로 35살이었고, 신랑 나이는 60이었다(프란체스카는 결혼 3년 만인 23세에 이혼한 전력이 있다). 첫 작품을 들고 김동리(1913년생)를 찾아갔다가 두 번째 작품을 들고 갔을 때는 새삼 작품 얘기를 하기가 쑥스러울 정도로 관계가 급진전했다고 스스로 고백한(‘한 남자를 사랑했네’) 소설가 서영은(1943년생)도 있다. 그녀는 그 뒤로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가 되는데, 그런 뜨거운 관계가 이뤄진 시기는 20대 시절이었고 30년 연상인 상대 남자는 60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한때 세간의 안줏감으로 씹혔던 신정아(1973년생)와 그녀의 ‘똥 아저씨’ 변양균도 23살의 나이 차가 있는데, 30대 처녀의 몸으로 그를 맞았다고 한 때가 남자 나이는 60을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 이와 똑같은 나이 차 23년의 유명 커플이 또 있다. 재클린 케네디가 케네디 오나시스로 성을 바꾸던 해(1968년), 오나시스(1906년생)는 우리 나이로 63세였고 재클린은 갓 마흔이었다. (그때가 케네디 사후 5년일 때였는데, 세간에서 말이 많자 그녀가 대꾸한 말 또한 걸작이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런 것이다.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그때 여인들은 사내의 나이, 곧 외모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여인들은 그렇지 않다. 억울하게도 그 반대편으로 몰린다. 제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부자 반열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일단 얼굴에 주름살 나이가 문신처럼 둥지를 틀고 목 주름살이 끌어올려진 로만셰이드(커튼)처럼 겹쳐져 있으면, 사내들은 그녀와 악수까지는 해도 더 이상 다가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절레절레 절대 절대 사절한다. 시키지도 않은 도리질까지 하면서 부정 감탄사 ‘에이’나 한탄 감탄사 ‘어휴’까지 들릴 둥 말 둥 살짝 보탠다.
그래서 나이 든 여인들은 불쌍하다. 위안 조 삼아 뭐라고 빼고 더할 말도 없다. 일단 나이 든 여자가 되고 보면, 사내들의 눈길에 고정되거나 스쳐가는 여자들 대열에서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밀려나고 만다. 그렇다는 사실을 당사자들도 안다. 그때가 바로 나이 든 여인들이 진짜로 불쌍해지는 순간이다.
나이 든 여인들이 동성의 친구에게서 느끼는 편안함. 그건 그런 속마음의 대상(代償) 작용이거나 한 품격 높인 승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로서 밀려난 자리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거나 마음의 갈고리를 걸어 매지 않으려는 착한 마음의 행로가 찾아내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내왕이 자유로운 편안한 이웃집으로의 일시적 자발적 가출. (나는 그런 것들을 뭉뚱그려 ‘순치(馴致)된 심리적 피난처’ domesticated psychological shelter라고 부른다.)
□좀 욕심이 많은 당찬 미국 여인네가 있었다.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회장과 어울리고 있던 그녀의 뒤안길을 개인적으로 우연히 잘 알게 된 터라, 나는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편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기에 뜬금없이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나도 아주 잘 아는 유대인 회장 녀석이 의도적으로 그녀의 뜻 바깥으로 돌고 있을 때였다.
“그대도 이제 정식으로 시집을 세 번 가보는 게 어때? 여자들은 세 번 시집을 가야 제대로 간다는 말도 있던데... 그대와 같은 금발 여인들은 일을 안 해도 잘만 먹고 산다는 말도 있고 하니 딱 맞는 말 아닐까?”
“뜬금없이 무시기 말쌈을 그리 하시는가요, 시방?(누구 약 올리는 겨?)” (번역을 좀 장난스럽게 해본 것인데, 그녀의 말은 What the heck are you talking about? What the hell made you say so all of a sudden? 식이었다. 엉뚱한 번역은 아니지 않은가. ㅎ)
나는 내 말을 서둘러 짧게 요약했다.
...처음엔 아주 나이 든 부자 영감과 결혼한다. 밤낮으로 고달프게 만들어 빨리 세상을 뜨게 하여 한목 챙긴다. 그리곤,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여 사내가 제 발로 떠날 때까지 버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래야 위자료를 뜯기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면 중장년이 될 터. 그때는 평생 함께해도 좋을 사내를 제대로 골라서 시집을 간다. 그리곤 거기서 생을 마치는 거다...
처음엔 뜨악해하던 레이첼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살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말끝을 흐렸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내 나이엔 세 번째 사내여야 하는데, 이젠 이놈의 목주름이... 이 책의 제목처럼 나도 내 목이 ‘뵈기 싫어’ 죽겠어용.”
레이첼은 내가 테이블에 엎어놓은 책을 가리켰다. 호텔 로비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작가로 유명세가 드높은 노라 에프론(Nora Ephron)*의 신간 <내 목(주름)을 보면 속상해(I Feel Bad about My Neck), 2008>라는 책을 읽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 책은 제목대로 여자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제일 끔찍하게 여기는 게 목주름이라면서, 거기에서 가지를 친 여인들의 안팎 얘기를 편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레이첼과의 대화가 생각난 것도 서가에 꽂힌 그 책 제목을 며칠 전에 대한 덕이다. 네잎클로버를 말리기 위해서 책을 빼들다가. 하하하)
□며칠 전 목련이 질 무렵이다. 시 한 편을 대했다. 목련이 질 때면 그 성급한 낙화와 추레함, 그런 것까지 죄다 보여주는 그 준비성 없는 목련의 무책임 등을 싸잡아 욕하는 이들이 은근히 많아지는데 (말귀도 못 알아듣는 목련에게 왜들 그럴까. 하하), 그들에게 맞서서 그 화끈하고도 장렬한 정열의 미완성을 도리어 상찬하는 시였다. 끝이야 어떻든(그 끝이야 남들 보라고 있는 거지 당사자의 것은 아니므로), 정열적으로 살라고 외치는 시.
그 시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 찾아보니 쉬 눈에 띄질 않는다.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대신 다른 작품 하나를 찾았다. 바로 오늘의 긁적거림에 화답하는 듯만 한 장영관의 시. 봄만 대해도 가슴 아파지는 이들에게 익숙한 생채기를 건드리는 짓이라서 미안한 마음이긴 하지만, 아픔은 또 다른 아픔으로 치유되기도 하지 않는가.
우연히 들었던 유행가 가사,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고장 난 벽시계는 멈췄는데 세월은 멈추지 않는다...>가 유난히도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봄이다.
목련꽃이 질 때/장영관
잎도 나기도 전에 화사하게 피는
목련꽃이 나는 싫어요.
잎도 없이 앙상하게 지는 꽃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아요.
떨어진 꽃잎은 핏빛바랜
상처처럼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랑
유행가 가사 같아 듣고 싶지 않아요.
목련꽃이 질 때는
나는 나는 모른척하렵니다.
핏빛바랜 이 봄이 아픈 가슴앓이로
토해내는 역겨운 아픔을.
*노라 에프론(Nora Ephron, 1941-2012)은 미국에서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인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메일이 왔어요(You've Got Mail)> 등의 시나리오를 쓴 아주 유명한 작가다. 나중엔 직접 메가폰을 잡고 감독도 했다. 뉴욕 타임즈의 편집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빵빵한’ 필력과 관찰력의 힘으로 여성적 시선에서 재미있게 해석한 작품들을 양산하여 ‘로맨틱 코미디의 대모’로 불린다. <제2의 연인(Heartburn)>은 두 번째 남편이자 워터게이트를 파헤친 기자로 유명한 칼 번스타인과 이혼하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 (그녀와 아이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그 사건을 두고 훗날 그녀가 한 말이 걸작이다 : “내 생각에, 젊은 사람들이 정절을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자 필력 또한 수려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에세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녀가 죽던 해에야 (그것도 사망 며칠 전에) 단 한 권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원제 : I Remember Nothing : and Other Reflections)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여성용 드라마를 생산하기에 바쁜 이들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읽을거리들인데... 그토록 바쁘게 살아낸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섬세하면서도 독특하고 따뜻한 시선과 관찰을 해댔는지, 그녀의 시나리오가 아카데미상 후보로까지 오른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짬짬이 외쳐왔듯,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진짜 관심과 애정을 쏟는 일들이 진짜로 큰일을 멋지게 이뤄낸다. 생각을 건너뛴 채 그저 남들을 따라서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조언해대는 이들과 나는 기꺼이 적군 편에 서고 싶다. 사소한 것들에 목숨도 걸라고! 그래야 자신만의 인생이 생기고 세계가 열린다.
[Apr.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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