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웃’ 수락할까, 말까...
나는 아주 나쁜 블로거다. 다른 이들의 블로그 방문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이기적인 블로거다. 내 코가 석 자인데 하면서, 컴 앞에 앉으면 다른 이들의 살림살이나 형편에 관심할 정도로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핑계부터 앞세운다.
그저 오직 내 일을 하기에만도 바빠한다. (하기야, 내가 지고 있는 글 빚도 엄청난 빚이긴 하다. 가끔은 잠자리에까지 찾아와 서성이면서 여간만 하지 않은 무게로 머릿속을 헤집거나 짓눌러오곤 하니까. 오늘 교정을 마쳐야 할 책자를 빼고도, 올해 중에 두 권의 책자 원고를 끝내야만 한다. )
오늘 어찌하다 보니 내 블로그 안쪽 깊숙이까지 들어가게 됐다. ‘서로 이웃’ 신청 숫자에 11이라는 게 찍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다. 그런 신청을 대하면 대체로는 그 사람의 블로그엘 가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과정조차도 건너뛸 때가 대부분이다. 내 블로그의 포스팅 중 일반 공개는 1/3도 안 되고 대부분은 이웃 공개 이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이웃’ 신청은 내게 은근히 부담스런 것이기도 한 때문이다.
블로그를 주로 글 저장고나 미분류 자료들의 보관용 창고로 사용해온 터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소설까지 접근할 수 있는 ‘서로 이웃’은 단 두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 몇 가지만 비공개로 해놓고 나머지는 ‘이웃’과 ‘서로 이웃’에게 개방하면 된다는 그런 간단한 생각조차도 해내지 못하고 있던, ‘왕띨띨이’이기도 했다.) 그런 나였으니, ‘서로 이웃’ 신청이란 게 은근한 부담이었다. 그것은 마치 부담스러운 것 앞에서는 버릇처럼 무지근해지곤 하는 내 무의식의 방광을 은근히 자극해대는 것쯤 되고도 남았다.
오늘 새벽 4시 반, 여러 날 전에 ‘서로 이웃’을 신청한 사람 중의 한 블로그엘 가 봤다. ‘허걱’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고, 잠도 덜 깬 내 가슴속 깊은 곳이 울컥하면서 덜컥했다. 그분의 이웃난에 실린 사진은 달랑 두 사람이었고 그중 한 사람이 나였다.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온 나는 ‘서로 이웃’ 수락 버튼을 얼른 눌렀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나의 밀린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숙제처럼 돌아보지 않았던 나머지 분들의 블로그엘 가봤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 맛집 탐방의 전문 블로거, 혼자 노는 청년, 어느 막내의 애교스러운 인생 일기... 뒤돌아 나와서는 얼른 얼른 ‘서로 이웃’ 신청란에서 연달아 수락을 클릭했다. 두어 사람은 뺐다. 내용이나 방향이 나와는 반대쪽이었고 장난기와 장삿속이 뒤범벅인데다, 무엇보다도 의도적인 신원 미상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일반 공개로 전환하지 못한 내 포스팅 중에는 시간 부족으로 다 지워 없애지 못한 음악 따위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 더구나 네이버 쪽의 내 블로그에는 하루 300여 명이 넘게 드나들지만, 죄 우리말 공부 쪽에 관심하시는 분들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2009년, 그다지 유명한 편도 아닌 외국 가수의 가사가 맘에 들어서 그걸 내 기행문에 매달았다가 졸지에 70만 원의 합의금을 에이전트 변호사에 지급한, 불유쾌한 경험을 한 탓도 있다.)
다행히도 이 네이버에서의 ‘서로 이웃’ 신청은 그걸 거절해도 상대방에게 알려지지는 않는다. ‘거절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서로 이웃’을 신청한 사람의 블로그에는 ‘이웃’으로 떠 있게 된다. 내게서 ‘허걱’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한 것처럼.
*
지난해 설날 때다. 설날을 앞두고 내가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짓을 했다. 내 벗들이나 몇몇 선배, 지인, 그리고 후배들에게 이른바 설밑 인사라는 걸 이메일로 했다. 내 딴에는 그동안의 무례는 무관심 탓이 아니라 게으름이었을 뿐이고, 잊거나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방어용/핑계용 인사치레였다. 150여 통을 띄웠는데, 공통 인사를 제외하고는 메일 첫머리에 수신인에게만 해당되는 몇 마디씩을 적어 넣어 보냈으니 나로서는 150번을 작업한 셈이었다.
그 뒤 놀라운 세상이 열렸다. 가장 놀란 것은 수신 확인을 눌렀을 때다.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메일을 열어 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1/3 이상이었다. 그런 이들은 몇 달이 가도 내내 그랬다. 메일 수신자 중 세상을 떠났거나 현직에서 물러났다거나 이민을 갔거나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하도 의외여서 몇몇 이에게는 전화를 걸어봤다. 메일 주소가 잘못된 이가 두엇 있었고, 주소가 바뀌었다는 이도 몇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전화를 받고서야 ‘아 그랬나, 그동안 바빠서’라거나 그 흔한 핑계 ‘어쩌면 스팸 메일로 들어갔을지도’ 운운했다.
그런 말들을 하는 이들 중에 이메일도 열어 보지 못할 정도로 아주 바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내가 보내는 메일이 스팸 메일로 직행하도록 어설프게 메일을 보내는 나도 아닌데... (공식적인 메일이거나 잦은 메일 왕래가 없는 이들에게 보내는 것일수록 나는 그 제목에 ‘최종희입니다 :’를 붙인 후 내용 제목을 뒤에 적기 때문에 스팸 메일로 직행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는다. 연애편지에서야 절대로, 절대로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겠지만. 하하하.)
요즘 세상에 손 편지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메일조차도 점점 희귀품이 되어간다. 얼마 전, 앞날의 경과보고와 뒷날의 계획 설명을 위해서 한 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분의 답장 첫머리는 이랬다.
‘이메일 정말 오랜만에 접합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지경으로 살아오면서 사람들과 내내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만 연결되곤 해서인지 더욱 반가웠습니다.’
*
설밑 인사 얘기의 마무리를 다 못했다. 그걸 받고 응답을 보내온 이는 절반 정도나 될까. 그중 메일로 답을 보내온 이는 열 명을 조금 넘겼을 정도이고 나머지는 문자 메시지였다.
그 얘기를 후배 중의 하나에게 했다. 그랬더니, 그의 말이 이랬다.
“아이고. 선배님은 정말 복 받은 분입니다. 부럽네요. 요즘 세상에 누가 연하 인사 메일을 받고 메일로 답까지 보냅니까. 그리고 사실 그런 연하 인사 따위에 카톡이나 뭘로 잊지 않고 응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그런 것 정도는 받을 수 있고, 또 받아도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식으로들 넘어가지요. 실제로는 그게 얼마나 귀한 접촉인지도 모르고, 또 그럴 자격을 자신의 착각 크기만큼이나 한껏 부풀리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면서요.”
“아니, 이 사람아. 그건 단순한 연하장이 아니었어. 형식적인 문구 따위로 간단히 보내는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몇 장의 여러 가지 희한한 그림도 덧붙였고, 받는 이마다 다르게 서두 인사도 일일이 내 손으로 쳐 넣어서 보낸 거란 말일세.”
“그러니까 그나마 그분들이 답을 보낸 거겠지요. 요즘은 20단어 정도를 넘기는 양으로 뭘 받아보는 일조차 드문 세상이어요. 메일로 적으면 50-100단어 정도는 될 걸요. 두세 문단만 보내도요. 블로그 시대가 지나고 페이스북으로 옮겨진 듯하다가 그조차도 더 짧은 트위터 시대로 바뀔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몇 줄만 넘어가도 읽으려들지 않지요. 트위터에서 댓 줄만 돼도 안 읽을 정도거든요. 그러니 쓰는 일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은 블로그 시대보다도 한참 더 ‘후진’ 일, ‘고려장 시대’의 일이 되어 버렸어요.”
“......”*
[*주 : 200자 원고지로 35매에서 조금 빠지는 이 글 전체를 통틀어도 낱말 수는 1,444개, 글자는 4,534자 정도다.]
*
글이 댓 줄만 넘어가도 더 이상 읽으려 들지 않는 이들. 그들은 몹시 바쁘다. 한 시간 이상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서, 연예인 가십 기사와 드라마 소식, 좋아하는 분야(스포츠/화장품/성형/몸매관리/맛집/반려동물...)에 매달리느라. 그것으로도 시간이 남으면 게임 창을 띄운다. 마침 처지가 비슷한 이(들)와 카톡이라도 연결되면 단독 혹은 집단 채팅으로 수다를 떤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 근방의 광역버스 탑승이나 전철 통근도 금방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 그림자가 어둡게 흔들린다. 발가벗은 우리들의 자화상은 회색빛에 가깝다. 저마다 명도와 채도가 조금씩 다르긴 해서 올바른 이름조차 찾아서 붙이기 어렵지만, 어둡기는 매일반인 색깔을 배경으로 깔고 앉아 그 위에 눕거나 그 속에 갇히곤 하는 불안정한 낱개들이다.
‘군중 속의 고독’.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1950년에 출간한 저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에 나온 지 어느새 60년을 넘긴, ‘낡은’ 말. 겉보기만의 사회성의 그늘에 갇혀 안으로는 불안과 고독감을 지니게 되는 성격 유형을 ‘고독한 군중’이라 했다. 그는 사회학과 미래학을 접목시킨 이이기도 하다.
미래학과 관련하여 내게 떠오르는 이는 두 사람이다. 토플러와 나이스비트. 무명의 저널리스트 토플러를 세계적 지식인의 반열로 올려놓은 두 권의 책, 『미래의 충격』과 『제3의 물결』(1980)을 먼저 대했다. 『미래의 충격』에서 인간이 변화에 따라 겪게 되는 문화의 충격을 다루면서, 토플러는 새로운 사회의 특징으로 '변화의 가속화와 일상성', '과학기술로 인한 새로움', '다양성' 등을 들었다.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의 『메가트렌드(Megatrends)』(1982)는 중형 포켓판으로 100여 쪽이나 될까. 아주 얇은 책자다. 대학원 시절 과제물로 대충 읽었던 것을 훗날 코를 박고 다시 읽었다. 짤막짤막하게 요약식으로 서술된 것이라 중학생도 영어 원서를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인데 뒷날 정독을 했다. 맨 뒤에 접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을 읽고 나서 되돌아가기를 해야 할 필요를 아주 진하게 느껴서였다.
토플러는 요즘의 우리가 겪어야 할 초스피드 생활의 겉과 속을 30여 년 전에 예측했고, 리스먼은 그런 시대의 인간상의 내면을 60년 전에 읽었다. 나이스비트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어떤 물건들(물질적인 것)에 혹하거나 매달리게 될지를 앞서 짚어냈고.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예측대로 살아간다. 군중 속의 고독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뼈를 기울이면 속까지 번진 단절감과 회색을 넘어선 외로움이 줄줄 흐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서로 이웃’을 신청한 분의 블로그에 갔을 때 이웃난에 얹힌 달랑 두 개의 사진 중 하나가 내 것임을 대했을 때, 안으로 울컥하게 된 소이연이기도 하다.
우린 떼를 지어 몰려다니지만, 떼거지처럼 불쌍한 고독한 낱개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우린 행진도 하지만, 더 많이는 홀로 걷는다’는 마이클 월처의 말을 빌어다가 홀로 가기를 부추겨 왔다. 후배들에게는 생각 없이 남들 따라서 우르르 몰려가지 말고 외로운 늑대가 되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한계를 질타하는 월처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내 맘대로 그의 말에 엉뚱한 색칠을 해댔다.
오늘, 뒤늦게 크게 깨닫는다. 나와 함께하는 이웃들 중에 수많은 <고독한 군중>들이 내뿜는 그 공기를 나도 들이마시고 있음을. 그 공기를 나눠 마시고 있는 덕분에 내가 오늘 지금도 숨을 쉬고 있음을. 걸음걸이의 속도나 방향, 내용물에만 관심하여 그 발걸음의 주인이 인간임을 돌아보지 못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가슴속 깊이 담는다. 내막도 제대로 모르는 타인들에게 온갖 핑계를 앞세워 관심조차 하지 않으려는 내가, 그들보다도 더 나쁜 공기를 되돌려 내뿜는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돌아본다.
이런 큰 깨달음을 공짜로 내게 선물한 사람들, 내게 ‘서로 이웃’ 신청을 해주신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오늘까지 마쳐야 할 교정 작업을 미뤄둔 채 이 잡문을 긁적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그분들에게서 받은 관심 덕분에 더욱 교정 작업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관심은 사랑을 낳는 씨앗이니까. 관심은 애정으로 자라나고 애정은 사랑을 잉태하는 법이다.
그분들에게 내 방식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오래 전에 들은 낡은 농담 속에 등장하는 말이다.
“(여러분들). 복 받으실 겨...”* [2014.3.29.] -溫草
[*주 : 오래 전에 유행하던 낡은 유머에 나오는 말이다. 하기야 나야 맨날
아주 ‘후지고 낡은’ 그런 것밖엔 저장된 게 없지만...
수감자 청년 하나가 별렀다. 탈옥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여인과 하룻밤을 같이하리라고.
청년은 드디어 감옥을 나섰다. 산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산속 오두막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노인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청년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다음날 아침, 청년은 떠났다.
문 앞에까지 따라나서서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노파가 외쳤다.
“청년, 고마워. 복 받을 겨.
담에 또 나오거든 곧장 우리 집으로 와.”
[이 말을 들었을 때 웃고 나서 든 촌놈의 생각]
그려...사람끼리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신체적인 접촉 이상의 선물은 없지잉.
손을 내밀든, 등을 두드려 격려하든/토닥여주든,
나아가 껴안아주든, 사랑을 나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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