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살펴보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실수 몇 가지
우리나라에서 우리말 사전을 국가기관이 나서서 제대로 편찬한 것은 <표준국어대사전>뿐이다. 그동안은 민간 기구인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1967~1991년까지 약 25년이 걸린 사전으로 나오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 일제 치하는 물론 6.25 전쟁 중에도 눈물겹게 원고와 씨름한 수많은 학자들 덕분에 세상에 나온 사전이다.
그럼에도 민간 기관의 것이다 보니, 통일성을 강제하기 어려웠고 일부 대형 출판사에서는 자신들이 편찬한 국어사전을 고집하는 경우도 많았다. 7년간의 작업 끝에 1999년에 간행된 <표준국어대사전>은 국가기관이 나서서 그런 복잡다기한 사전 난립 체계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해 뒷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공격적인 이들은 일본어 투의 한자어를 많이 게재한 것과 북한 말에 영향을 받은 점 등을 꼽고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개정판을 내놓은 뒤 종이사전 편찬을 중지하고 홈페이지에서 인터넷판으로만 서비스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속적인 개정 보완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종이사전으로는 감당해내기 어려워서다.
아래에 싣는 것들은 현행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이는 ‘옥에 티’들이다. 사전 편찬과 같이 큰일을 하다 보면 사소한 실수들은 비일비재다. 특히, 편집 실무진의 실수는 100% 바로잡기가 참으로 힘들다. 인터넷판으로 운영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이기에 기회가 오면 바로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옥에 티들을 다룰까 한다. 앞으로 서너 번 연재될 정도의 분량이 될 듯하다. [April 2014] -온초(溫草)
재미로 살펴보는 ≪표준≫의 실수 몇 가지(1)
◈‘닭잦추다’ : 새벽에 우는 닭은 꼭 홰를 치며 울까?
≪표준≫에 보면 ‘닭잦추다’의 뜻풀이는 ‘새벽에 닭이 홰를 치며 울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홰를 치며’에 있다. ‘홰’는 알다시피 ‘새장/닭장 속에 새/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다.
새벽에 우는 닭은 많다. 하지만, 모든 닭이 꼭 홰에 올라가서 울지는 않는다. 게다가 홰가 없는 닭장도 많고, 거기서도 새벽이면 닭이 운다. 그리고 그렇게 울 때는 두 날개를 퍼덕이면서 운다. 그러므로 ‘닭잦추다’는 ‘새벽에 닭이 날개를 치며 울다.’로 바뀌어야 한다.
◈‘흠잡힐 짓’은 ‘흠 잡힐 짓’의 잘못이라고?
①‘흠잡다’라는 말도 있고 ‘잡히다’는 ‘잡다’의 피동사이므로 ‘흠잡히다’도 가능할 듯도 싶으나, 현재 독립동사로 오르지 않은 말이다. 즉 ‘흠잡히다’는 ≪표준≫에 없다. 더구나, 예문으로 제시된 ‘약점이 잡히다/트집을 잡히다/실마리가 잡히다’ 등으로 미루어 현재로서는 ‘흠(이, 을) 잡히다’ 꼴로 써야 한다.
②그러나, 이는 ≪표준≫의 실수로 인한 누락일 수도 있다. 또한, 피동형 보조어간이 올바르게 사용된 낱말들은 일일이 표제어로 올리지 않는 경우도 흔하므로, 반드시 띄어 써야 한다고는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더구나, ‘책잡다/흉잡다’의 피동사인 ‘책잡히다/흉잡히다’도 표제어로 올라 있는 점에서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
③참고로, 현재 명사(형)+‘-잡히다’ 형태로 사전에 올라 있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 감잡히다/돌잡히다/책잡히다(責-)/흉잡히다/되술래잡히다/여릉귀잡히다/부개비잡히다.
흠잡다[欠-]? 사람의 언행이나 사물에서 흠이 되는 점을 집어내다. ¶이번 일은 대충 넘어가시게. 흠잡으려면 끝이 없는 법이니까.
감잡히다? 남과 시비(是非)를 다툴 때, 약점을 잡히다.
돌잡히다? 첫돌에 돌상에 차려 놓은 음식/물건을 아이가 마음대로 잡게 하다.
되술래잡히다? ‘되술래잡다(범인이 순라군을 잡는다는 뜻으로,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남을 나무람을 이르는 말)’의 피동사.
부개비잡히다? 하도 졸라서 본의 아니게 억지로 하게 되다.
◈‘걱정거리/반찬거리/웃음거리; 논쟁거리/연구거리/화젯거리/얘깃거리; 먹을거리/먹거리/볼거리’ 등에 쓰인 ‘거리’는 죄다 의존명사인가, 아니면 접사도 되는가?
현재 ≪표준≫에서는 ‘걱정거리/반찬거리/웃음거리; 논쟁거리/연구거리/화젯거리/얘깃거리; 먹을거리/먹거리/볼거리’ 등에 쓰인 ‘거리’를 모두 의존명사로 처리하고 있으나, 이는 ≪표준≫의 실수로 보인다.
물론 ‘명사+[의존]명사’ 형태의 합성어로 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의존명사는 띄어 써야 한다는 원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우선 껄끄럽다. 게다가, ‘먹을거리/먹거리/볼거리’ 등을 보면 ‘먹을거리’와 ‘볼거리’에서는 ‘먹을/볼’이 관형형의 형태로 제대로 의존명사와 결합했지만, 2011년에 새로 복수표준어로 추가된 ‘먹거리’의 경우에서는 어간/어근인 ‘먹-’ 뒤에 곧장 붙인 경우로서 의존명사에서는 볼 수도(쓰일 수도) 없는 조어법이며 접사일 때만 가능한 기능이다. 따라서 이 ‘거리’는 품사 분류에서 의존명사로만 못 박지 말고 접사 항목도 신설해야 할 듯하다.
아래의 예는 ‘거리’가 순수한 의존명사로 쓰인 경우들이다.
¶반나절 거리도 안 되는 일을 종일 하고 있네;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음식; 한 사람 거리의 일.
◈‘남의 뜻을 이어받아서 그대로 따라하다’에서 ‘따라 하다’인가 ‘따라하다’인가?
≪표준≫의 관용구 ‘뜻(을) 받다’의 뜻풀이를 보면 ‘남의 뜻을 이어받아서 그대로 따라하다’로 적고 있는데, 이는 ≪표준≫의 실수라고 해야 한다. 다만 보조용언 붙여쓰기를 적용한 것으로 볼 때는 ‘하다’가 보조용언이고 붙여 쓰기 조건에 해당되므로 붙여 쓰기가 허용되는 표기이기는 하지만, 사전에서는 원칙적으로 붙여쓰기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다.
[주의] ‘따라하다’는 없는 말이지만, ‘따라-’ 형태의 합성동사는 제법 많다. 주의해야 한다. ¶‘따라가다/따라나서다/따라다니다/따라붙다/따라서다/따라오다/따라잡다/따라잡히다’?.
◈‘녹즙기(綠汁機)’인가 ‘녹즙기(綠汁器)’인가?
결론부터 적자면, 현재 ≪표준≫의 한자 표기를 보면 ‘녹즙기(綠汁機)’로 되어 있는데, ≪표준≫의 실수로 보인다. ‘녹즙기’는 특정된 단순 기능만을 수행하는 기구일 뿐만 아니라 ‘조리기(調理器)’ 등과의 표기 통일성/형평성 유지를 위해서도 ‘녹즙기(綠汁器)’로 표기되어야 할 것이다.
①‘-기(機)’는 동력을 사용하거나, 대체로 설비/장치의 크기가 크거나 부속 장치들이 많아 구조가 복잡하고, 제조/생산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장치에 붙인다. 특히 동력 사용과 무관하게 기계류에 편입되거나 복잡한 장치의 총칭으로 사용될 경우도, ‘-기(機)’가 쓰인다. 한편 ‘-기(器)’는 그와 달리 장치가 크지 않거나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작동 원리가 복잡하지 않으며 특정된 단순 기능만을 수행하는 연장/연모/그릇/기구/기관(器官) 따위에 붙인다.
②그러나, 현재의 실질적인 쓰임새로 볼 때는 당초 출현/제작 당시의 상황과 무척 달라져 표기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유성기(留聲機)/축음기(蓄音機)/녹음기(錄音器)’는 각각 ‘留聲器/蓄音器/錄音機’로, 크기가 수 킬로미터에도 이르는 입자 ‘가속기(加速器)’에서의 ‘가속기(加速器)’는 ‘가속기(加速機)’로, 공장 규모의 태양광 ‘축전기(蓄電器)’에서의 축전기는 ‘축전기(蓄電機)’로 표기하는 게 현 실정과 부합된다. 이처럼 그 기능이 복잡해지고 장치가 대형화된 것들도 있어서 실제로 사전에서는 혼용 표기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조그만 휴대용 계산기와 대형 전자계산기는 근본적으로 그 한자 표기를 달리해야 할 정도의 차이를 보이므로. <예>복사기(複寫機/複寫器)/계산기(計算器/計算機).
◈‘다같이’인가 ‘다 같이’인가?
≪표준≫의 뜻풀이를 보면 ‘병리[竝利]’와 ‘평등무차별하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병리[竝利] : 함께 다같이 이익을 봄.
평등무차별하다[平等無差別--] : 일체 차별 없이 다같이 평등하다.
이걸 보면 아 ‘다같이’란 말이 있는가 보다 싶을 게다. 그러나 이 ‘다같이’란 말은 사전의 표제어로 오르지 못한 말로서, ‘다 같이’로 띄어 적어야 한다. ≪표준≫의 대다수 낱말 뜻풀이에서도 ‘다 같이’로 띄어 적고 있고, 위와 같이 ‘다같이’로 붙여 적은 것은 극소수일 뿐이다.
조어법상 ‘다같이’를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이’를 격조사로 사용하면 된다. 조사로서의 ‘같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이 있다. ①‘앞말이 보이는 전형적인 어떤 특징처럼’의 뜻을 나타내는 격 조사. ¶얼음장같이 차가운 방바닥; 눈같이 흰 박꽃; 소같이 일만 하다. 예문보기; 꽃같이 잘생긴 미녀; 이같이 잘 그린 그림은 처음 본다. ②(때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앞말이 나타내는 그때를 강조하는 격 조사. ¶새벽같이/매일같이.
그러나, 이와 같이 격조사로 붙여 적은 ‘다같이’의 경우는 전형적인 어떤 특징을 나타내거나 어떤 때(時)를 나타내는 용도로 쓰여야 하는데 위의 예문에서는 ‘함께’, ‘다름이 없이’라는 부사적 의미로 쓰인 것이므로 격조사로 붙여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다 같이’로 띄어 적는 것이다. 즉, 여기서의 ‘같이’는 부사다.
하지만, ≪표준≫의 실수로 붙여 적은 ‘다같이’나 띄어 적은 ‘다 같이’는 언중들의 언어생활에서는(의미 수용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표준≫까지도 뜻풀이에서 그처럼 헷갈릴 정도다.
그럴 때는 차라리 ‘다같이’라는 복합어를 인정하는 편이 훨씬 낫다. 마치 ‘별 수(특별한 다른 수)’와 ‘별수(여러 가지 방법)’의 의미 구분을 구태여 해야 할 실익이 적기 때문에 ‘별수’를 복합어로 인정하여 ‘달리 어떻게 할 방법’과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는 말로 인정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래야 사소하지만 사전 편찬에서는 중요하기 짝이 없는 이런 띄어쓰기의 실무적 실수도 나오지 않게 된다. [계속]
Ⓒ최종희. 이 글은 출판사와의 협약에 따라, 저작권이 설정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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