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양파 속에 대한 오해
우선 시 한 편을 보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양파>라는 시의 일부다.
[전략] 겉도 양파 같고
속도 양파 같으며 [중략]
양파 속에는 양파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뒤틀린 내장도 없다.
여러 번 벗어도 그건 속속들이
맨날 그거.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양파 (현대문학, 96.11)
이 시에서처럼, 우리는 흔히 양파는 까도 까도 맨날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색깔만 대충 힐끗 보고서 해대는 말이거나, 심지어는 양파 속의 실물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남들이 이미 내린 결론에 무임승차를 하는 이들이 갖는 생각이다.
양파의 속은 손쉬운 짐작과는 달리 은근히 복잡하다. 여기는 식물학이나 식품학 강의실이 아닌 까닭에 그 모두를 상세히 적을 수도 없거니와 적더라도 이 글의 이해에 아주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대강의 구분만 하기로 한다. (비교적 상세한 내역 설명은 졸고 <사랑과 양파 까기 –고정관념 까보기>에 들어 있다.)
껍질을 벗긴 양파는 가로썰기나 세로썰기 중 어느 쪽으로 해도, 그 단면은 대개 세 개의 그룹으로 구분된다. 심층부, 중간층, 그리고 표피층이다. 그리고 각 층은 맛과 섬유질 분포 상태, 당도, 수분 함량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심층부가 가장 달고 물기도 많으며 섬유질도 부드럽다. 단, 꽃대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겉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매워지고, 수분 함량도 적으며 섬유질은 조금씩 억세진다. 즉, 양파는 까도 까도 똑같다는 건 양파 속의 색깔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유효한 생각이다. 그것도 약간 거리를 두고 대충 훑었을 때에. 양파 속은 한 겹 한 겹마다 모두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저마다 그 속이 다르다. 깊이와 내용 모두가 다르다. 그럼에도 양파의 속을 크게 심층부, 중간층, 그리고 표피층으로 나누듯, 사람 속도 그렇게 크게 나눌 수는 있다.
심층부(코어)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무의식적 자아’가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의식적 자아와의 경계선이 묘하기도 하지만(특히 정신병자의 발병 때), 적극적 자아는 그 다음 층에 더 많이 속해 있다고 해야 한다.
다음 층에 속하는 중간층에는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 소질/소양/본능/품성/성향... 등등의 말이 모두 뭉뚱그려져 이 성격 속에 포함된다.
심층부는 타인들에게 보이지도 않거니와 기본적으로 출입금지 구역이기도 하다. 중간층은 준비된 관찰자들에게만 출입이 허락된다.
표피층이라 할 수 있는 곳에는 ‘태도’와 ‘행동’이 자리하고 있다. 외부 사람들이나 타인들이 그의 모습을 짐작하거나 읽어낼 수 있는 건, 이 표피층에서다.
양파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히 놀라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양파도 알고 보면 내숭파에 든다. 사람도 그렇다. 양파의 속 내용에 대해 때로는 대충 훑기나 일의적인 짐작을 멈추고 꼼꼼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특히, 고정관념이나 매스컴 따위가 만든 허상에 끌려서(그것이 실상과는 거리가 먼 허상인 줄도 모른 채) 타인들에 대한 평가나 폄하를 쉽게 해대게 되는 그런 때일수록, 우리는 양파의 속을 빌어, 우리 자신의 속내 들여다보기도 해야 한다. 때때로 혹은 자주. [May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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