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답이다
-‘파주 촌사람’들과 깜빡이
아내에게는 아침 식사 후 30분간의 중간 휴식(?)이 있다.
집안 청소 시작 전에 KBS의 <인간극장>을 보는 시간인데
커피 타임이기도 하다.
그 시간대가 내게는 도서관으로의 출근(?) 준비 시간과 겹치는지라
대부분 아내의 중계방송(?)을 통해서
방송 중인 프로그램 내용이 대충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많이 궁금해지면 짬을 내어 몇 분씩 기웃거리는 게 전부다.
지지난 주의 프로그램 제목은 ‘제 아내가 기억을 잃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소구력이 상당했지만, 방송 실물은 여전히 그림의 떡.
간간이 전해지는 아내의 중계방송에 의존해야 했다.
방송 내용은, 이태 전 부인이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외상 후 증후군의 하나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해리성(解離性) 기억상실증에 걸려 반생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50세의 동갑내기 부인을 위해 속리산 자락으로 내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남편의 순애보...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고상흠과 지민정 씨 부부.)
내용이 하도 짠해서 일부러 아내 방에 들어가 잠깐 화면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한 팔에 옷을 꿰면서.
지민정 씨의 얼굴을 대하고 보니, 문득 ‘백치(白癡/白痴)[뇌에 장애/질환이
있어 지능이 아주 낮은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낮잡는 말]’라는 말에
‘흰 백(白)’ 자가 들어 있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어설픈 생각도 들었다.
나이 오십의 기억상실증 환자인 민정 씨는 순백녀(純白女)였다.
그런 불행을 안긴 주범. 그건 교통사고였다.
그것도 민정 씨가 피해자로서 고스란히 당한 교통사고.
*
내가 당진에 머물 때다.
머무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농가주택을 샀다.
아파트 생활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서울에서도 내내 밖에서 길러온 세 마리의 개들도 그랬고
원두막과 텃밭 가꾸기 욕심 때문이었다.
텃밭이 딸린 농가주택이어야만 했다.
발품을 좀 판 덕에 그런 집을 구해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고 입주했지만
회사와의 출근 거리는 제법 되었고,
당진의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는 서너 군데의 산업단지 탓에
시골치고는 도로에 교통량도 적지 않았다.
그런 출․퇴근길에 좌회전을 해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두 군데는 편도 3차로일 정도로, 대로에 속했다.
문제는 좌회전 때의 차량 깜빡이 미점등.
좌회전 차선에 들어와 있는 차들 중 시치미 뚝 떼고 있는 것들이 더 많았고
심지어 어떤 차들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2차로에 서 있다가
좌회전을 해대기도 해서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저러다가 큰 사고 나고 말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기어코 그 불길한 예측이 현실로 드러났다.
어느 날 퇴근길에(그것도 일주일 정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여
내 차를 갖고 가기 위해 회사에 들른 뒤 퇴근하는 길이었다)
경사가 길게 이어진 그 위험한 도로의 교차로 부근을 지날 때다.
사람들이 도로가에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고,
회전을 끝내지 못한 두 차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엉켜 있었는데,
2차로에서 회전 중인 대형 트럭이 맞은편 승합차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우회전을 하는 처지라 외로 돌려 힐끗 쳐다본 것인데도,
절반 정도 압착되다시피 한 승합차는 운전석 부분까지
차체와 새시가 ‘찢어져’ 있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처참했다.
얼른 얼굴을 돌리고 운전에만 집중했고,
집에 가서도 사고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 다음날 출근길에 교차로를 보니 도로 가운데 이곳저곳에 모래가 보였다.
미처 다 제거하지 못한 핏자국들을 모래로 급히 덮어놓은 모양이었다.
티브이 뉴스를 챙긴 직원들은 그 사고로 트럭 운전사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중상이고 죽은 이도 두엇 된다고, 점심 자리에서 말해 주었다.
*
차량 운행 방향을 바꿀 때의 깜빡이(방향 지시등) 켜기.
아무 것도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손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안 하는 이들, 엄청 많다.
당진에서의 그런 사고 목격은 그 뒤로도 심심찮게 이어졌다.
하도 잦아서 통계 자료까지 기웃거렸다. 세상에나!
충남 지역이 교통사고 빈발 부분에서 전국 최우수(?) 지역 중 하나였다.
그래서 10여 년 전인 당시에 내가 긁적인 글 제목이
‘멍청도 사람 일부는 정말 멍청하다’였다.
내 고향 멍청도 분들을 공개적으로 싸잡아 비난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독한 제목을 붙였다.
(이곳 블로그에 그 글이 남아 있다. 심심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정도로
‘김여사’류의 제법 재미있는 사진들도 여러 장 붙인 글이다.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http://blog.naver.com/jonychoi/20049997002)
(동네 상가 앞 편도 2차로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하려다가
중국집 배달 아저씨를 용감하게 충격한 이른바 '김 여사'.
위의 글에 붙인 사진들 중의 하나다.)
운전면허증을 딸 때 시험에도 나오고, 나중에 무슨 교육 따위를 받으러 가도
꼭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 이 깜빡이 점등이다.
그런데 이걸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임의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 많다.
아주 많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법규에 반드시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사항이다.
도로교통법 제38조 제1항(차의 등화)과 시행령 제21조(신호의 시기 및 방법)에는
방향전환이나 진로변경 시에는 적어도 30m(고속도로에서는 100m) 전방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야 한다고 돼있다.
강제 규정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나거나 하면 찍소리도 못한다.
차선 변경 때 이걸 켜지 않으면 3만 원짜리 범칙금 부과 대상이기도 한데,
요즘은 이를 확대 적용하여(판례 인정) 교차로 등에서의 회전 시에도
깜빡이를 켜지 않고 돌다가 걸리면(?) 범칙금을 내야 한다.
다행히도(?) 이 깜빡이를 켜지 않는 것이 요즘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4대 교통질서사범(꼬리물기/끼어들기/오토바이 인도주행/방향지시등 미사용)에
들어서, 범칙금을 내고서야 정신 차리는 이들이 엄청 늘었다.
내 욕심 같아서는 지금의 범칙금 액수에 0이 하나 더 붙었으면 싶지만...
(고속도로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미국 엘에이 지역에서는
카풀 차선 위반 시의 벌금이 우리 돈으로 40만 원 정도이고,
공도(하이웨이)에서 담배꽁초라도 버리면 벌금이 천 달러니까 백만 원이 넘는다.)
*
아내는 나보다 열 배 스무 배 정도 운전을 잘한다.
사실 나도 그다지 빠지는 편은 아니지만... 헤헤.
앞뒤 차를 범퍼로 밀어내어 공간을 만들어 주차하는 나라에서도 운전을 했고,
‘개구리 주차’도 썩 잘하는 편이다.
드럼통 네 개를 세워 놓고 그 사이에 주차를 하는 것으로
운전시험을 때우는 나라에서도 단 한 번에 그 시험을 통과한 적도 있다.
(국제운전면허 협약에 가입되어 있는 국가라 하더라도
6개월 이전에 현지 면허를 꼭 따야 한다.)
그런 실력(?)이지만 나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 주차를 할 때면
5~6회 내지 4~5회 정도 전․후진을 하곤 한다. 그래야 반듯한 주차가 된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아내는 단 두어 번으로 아주 깨끗이 해낸다.
그런 아내가 여러 달 전 차량 접촉 사고를 냈고, 수리비를 물어 주었다.
그것도 아파트 주차장 안에서. 하하하.
1.5층이라 해야 할 정도로 높이가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는
직진 차량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좌회전을 한 때문이었다.
그것도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아내는 아주 잘하는 운전 실력에 어울리게 깜빡이도 아주 잘 켠다.
그런데, 딱 한 군데 안 켜는 데가 있다. 바로 아파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만 들어오면 희한하게도 그처럼 잘 켜고 다니던 깜빡이를
켜지 않는다. 언젠가 한번 그 얘길 비쳤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의식이 굳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럴 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건, 밥도 못 얻을 먹을 잔소리가 되는 법.
이젠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족 이동을 할 때면, 아예 아내가 고정 운전사이니
국으로 잠자코 있어야 그나마 그 자리에 끼워줄 것 아닌가. ㅎㅎ하.
*
파주로 온 뒤로, 나는 거의 운전을 하지 않는다.
도서관행이든 어디든 대중교통이 편하고, 어딜 가서든 주차 문제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다.
소요시간도 그 편이 훨씬 짧고, 비용도 훨씬 적다.
10만 원 안팎이니, 차량 운행 때와 비교해서 1/7도 안 든다.
게다가 어쩌다 운전대를 잡게 되면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지곤 한다.
바로 ‘이 바쁘고 거룩하신 몸이 깜빡이 따위까지에 신경을 써야 하리?’ 식으로
용감하게 깜빡이를 무시하는 게 버릇이 돼 버린 분들 때문이다.
이곳 파주에서 본 좌회전 차선 대기 차량 중
깜빡이를 켜고 있는 건 아주 드물다. 1할이나 되려나.
심지어 당진에서 목격했던
2차로에서의 과감한 회전 같은 것도 어쩌다 눈에 띈다.
그런 이들을 대하면 저절로 ‘파주 촌놈들 하는 짓이라니...’ 소리가 나온다.
더 심한 욕을 하고도 싶지만 점잖은(?) 체면도 생각해야 하고
욕을 하고 나면 내 기분이 망가지기 때문에 그럴 땐 한껏 이기주의를 발휘한다.
괜히 그런 일로 내 귀하고 소중한(?) 기분을 망쳐서야... 쪽으로 선회한다.
그처럼 용감하게(?) 무지한 이들 중에는 여인들도 적지 않다.
그럴 때 ‘촌놈들’이란 말은 남성용이니 양성 평등론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촌년들’이라 하자니 그건 좀 망설여진다.
그래서 바꾼 게 바로 제목에 쓴 ‘파주 촌사람들’이다.
(운전 습관은 자신만의 문화 수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 게다.
문화 수준이 후진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운전 문화도 엉망이다.)
*
지켜서 자기가 득 보고 남도 덕 보는 게 교통 법규다.
나는 안전띠 매는 습관이 40여 년이 되어 가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대적으로 안전띠 착용 캠페인을 벌이기 훨씬 전부터 맸다.
남도 아닌 바로 내 생명을 위하는 길이고, 그것도 아주 지극히 간단한 일이므로.
지금은 운전석에 앉으면 저절로 벨트로 손이 간다.
벨트부터 어깨에 메고서 시동을 건다. (운전은 습관이다!)
깜빡이는 주차장에서도 충실하게 켠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덕분에 집사람처럼 주차장에서 다른 차와 뽀뽀하는 일은 아직 없었다. ㅎ)
도로에서는 후방 주시 후, 오는 차가 있건 없건 깜빡이를 작동한다.
1초도 안 걸리는 간단한 조작.
내가 갈 곳을 다른 차들에게 알려서 내 안전을 지키고
나아가 앞서가는 차의 속내를 몰라 하는 뒤차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지극히 간단한 일. 그들과 나의 안전을 그 간단한 조작이 해낸다.
지지난 달이던가.
후배와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를 만났다.
급히 산 작은 비닐우산으로 상체만 가리고
여러 권의 책이 든 종이 쇼핑백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대로변 교차로를 지났을 때, 뒤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워낙 소리가 커서, 그 빗속에서도 저절로 얼굴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교차로 한가운데서 맞부딪친 차들 중 한 차의 옆구리가 찢어진 게 보였고
앞부분이 부풀어 오른 또 한 대의 차에서는 연기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좌회전 차선에 남아있던 차들이 서행으로 그 자리를 슬슬 피하는 것으로 보아
직진 차선에 있던 차량이 좌회전을 하면서,
맞은편에서 오는 좌회전 차량과 힘차게 충돌한 듯했다.
달려가, 가해 차량의 운전사에게 좌회전 깜빡이를 켰느냐고 윽박지르고도 싶었지만
우문(愚問) 중의 우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파주 촌놈이 하는 짓이라니...’ 소리가 나왔다.
그리곤 이내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완전히 묻히지 않았던 불길한 예측의 파편이
또다시 파주에서 튀고 있었다.
그리고... 좌회전 신호를 보고서 맞은편에서 정상적으로 회전하고 있던 차량에
타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런 날벼락도 다시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제발 대형사고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한참 뒤에 가슴에 고여 왔다.
*
‘깜빡이를 켜는 일 하나 따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 생각해서도 안 된다. 절대로!
그 간단한 일이 무엇보다도 나를 지켜 주지만
타인들의 생명도 지킨다.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로 백치가 되어버린
순백의 영혼을 지닌 지민정 님 같은 분을 진정으로 보듬으려면,
그런 억울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깜빡이 켜기와 같은 그 단순한 것부터 해야 한다.
말이나 심정으로 주억거리기만 할 게 아니라 즉각 실천해야 한다.
우물 속 같이 어둡고 깊은 슬픔이 자신에게 닥친 다음에야
그때야 그걸 떠올리면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와도 그 몫은 오로지 그 자신의 것.
송곳처럼 쑤셔대는 아픔만 고이고 또 고인다.
뒤늦게 위안이나 후회의 두레박으로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는 고통.
오만하고 건방지고 무례하고 게으르고 무지한 운전 습관 하나 때문에
조작에 1초도 안 걸리는 깜빡이 켜기 따위를 거르게 되어
나 또는 내 가족, 혹은 이웃들에게 그토록 큰 슬픔과 고통을
그처럼 무책임하게 안기고 떠넘겨서야 되겠는가.
남의 슬픔을 나의 큰 스승으로 얼른 확실하게 삼는 일.
그 또한 썩 괜찮은, 착실한, 진정으로 착한 배움이 된다.
수업료 한 푼 내는 일 없기에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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