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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일찍 알아서 시작했더라면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4. 7. 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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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답이다

- 조금만 더 일찍 알아서 시작했더라면

 

올해 들어 아침 걷기(속보) 코스를 바꿨다.

전에는 동네 몇 바퀴를 했다.

 

한 바퀴가 1.5킬로쯤 되는 아파트 단지 내 한 블록을 네 바퀴 걷고서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마무리 운동을 했다.

빨리 달리기, 철봉 매달리기, 푸시 업, 스트레칭 등등을 섞어서.

 

그런데, 이 한 블록 코스에는

300여 미터쯤 되는 대로변도 있어서 공기 질도 떨어지고

완만한 평지여서 재미(?)도 없고

똑같은 풍광을 몇 해를 두고 계속 대하게 되니

주위 훑기에 취미가 있는 나로서도 새로움이 거의 없다.

 

새로 다니는 곳은,

이따금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하기도 했던 곳.

00공원으로 이름이 붙여진 단지 내 동산에서 시작되어

파주 고인돌 유적지까지 연결되는 코스인데

마치 커다란 해삼이 허리를 뒤틀고 누워 있는 듯하다.

 

길은 구불구불해서 눈이 심심하지 않고

오르막과 내리막도 섞여 있어서 다리도 심심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나무 숲속 길이어서

풀과 나무 냄새가 깊고 짙다.

중간쯤에는 떨어진 솔잎들이 길에 깔려

마치 양탄자처럼 폭신한 곳도 있다.

 

공기 또한 질과 품격이 다르다.

인공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아 산뜻하고

배기가스들과 덜 얽힌 건 청량함에서 읽힌다.

 

거리도 적당하다.

정확히 재어보진 않았지만 발걸음 숫자와 소요시간으로 짐작해 보니

왕복 7킬로가 조금 넘는 듯하다.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와 철봉 대신에

요즘 새로 생긴 운동기구들에게 20~30분쯤

아침 안부를 챙기고 나면 7시가 된다.

1시간 반쯤 걸리는 셈이다.

 

                               *

이 길에는 아침 걷기를 버릇 삼은 이들이 많다.

얼마나 일찍 집을 나서는지

내가 초입에 이르렀을 때 이미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정도.

 

마주치는 이들을 살펴보면

3/4쯤이 이른바 어르신들이다.

40~50대만 해도 드물고

30대는 가뭄에 콩 나기인데 초과 체중 과다가 몸으로 드러난다.

 

산길에서 마주치는 이들 중 주축은 여인들이다.

남자들은 열 중 두엇이니, 1/5쯤이나 되려나.

 

활기차게 걷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아주 드물다.

얌전히 걷거나, 천천히 걷는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몸들이 그만큼만 허락하거나,

아직은 빨리 씩씩하게 걸을 수 있도록 연습되지 않아서다.

 

문득 3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생각난다.

폐암 판정을 받고서야

아파트 주변과 아파트 안의 꽃길을 걸으셨다.

마음 다스리기를 겸해서.

거기서 환자 동무도 만났고, 마음 아픈 이들도

친구 삼았다고 나중에 말해 주셨다.

 

아침 산길에서 만나는 이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는 듯하고

되돌아 나오는 길에 잠시 머물다 보면

병원 나들이 끝에 작심하고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내 귀에 들려온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하는 얘기.

왜 이런 쉬운 운동을, 걷기 버릇을 들이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

시간은 만들면 되는 것을... 이라는 자탄과 함께.

 

장모님 생각이 또 난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야

연말 모임의 가족별 10대 뉴스 발표에서

처음으로 부부용 산책 운동화를 사봤다는 걸 목록에 올리셨다.

돈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셨던 분들이었는데...

 

걷는 일에도

슬픔이 끼어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슬프기 전에 걷는 일은 엄청난 행운이다.

 

걷는 일뿐이랴. 그 무엇이건

슬픔이 제자리를 깔고 드러눕기 전에

조금만 더 일찍 알아서 하면 좋을 일이 한두 가지랴.

욕심 줄이기든, 껴안기든, 사랑하기든......                         [July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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