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답이다
-유기견과 호들갑, 배반의 버릇, 그리고 얄팍한 양심
두어 해 전부터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집 주변과 학교 급식실 쓰레기장, 야산 공원 등에서
녀석을 봤다.
추운 겨울에는 지하 주차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기도 했고.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두 마리가 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근래에는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혹시, 길을 건너고 하다가 차에 치인 것이나 아닌지.
녀석들이 떠나지 않고 늘 맴도는 곳이 이 근처이고 보면
버린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이곳 아파트 단지 중의 어느 집일 듯하다.
아내에게 문득 그 얘기를 했다.
그러자, 아내는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본 거라면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분통부터 앞세웠다.
어지간해서는 그러지 않는 사람이.
차를 타고 가던 멀쩡한(?) 사람이 차 문을 열고는 차 안에서
개를 버리더란다.
그러자 개는 자신을 버린 그 주인 차를 향해 죽어라 뛰어가고...
한참을 그리 뛰어가도 차 주인은 열심히 제 갈 길을 가더란다.
그런 모습이 뒤에 가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찍혔고.
그렇게 버려지는 개들이 <유기견 보호센터>에 들어오는데
하루에도 120마리나 되는데다, 열흘이 지나면 대부분
안락사되더라면서 아내는 새삼 그 정경을 떠올리며 안쓰러워했고
나 또한 처음 듣는 그 안락사 얘기에 크게 놀랐다.
아내는 뒤늦게 앞서의 그 개 주인을 향해 한 번 더 씩씩거렸고.
*
주인이 버리거나 잃어버려서 <유기견 보호센터>에 오는 개들은
한 해에 6만 마리쯤 된다.
하지만, 그런 개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한다.
버려진 개들을 불쌍히 여긴 이들이 보호센터에까지 데리고 오는
정성을 받은 것들이므로.
그런 정성의 손길과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까지 치면
한 해에 10만 마리 훨씬 넘게 개들이 주인과 멀어진다.
하루 평균 300마리가 넘고, 대부분은 주인이 외면해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수치는 사람들의 이혼 숫자와도 비슷하다.)
센터 실무자 얘기에 의하면 ‘잃어버린’ 개들은 1%도 안 된단다.
하루 200마리 가까이 들어오는 유기견을 대상으로
안타까워하면서 찾으려는 주인들은 하루 평균 한 건 정도나 될까 말까란다.
하기야, <종합유기견보호센터>(www.zooseyo.or.kr)엘 가보면
잃어버린 개를 찾는 안타까운 광고들이 많다.
사례금도 20~30만 원에서 1~2백만 원까지 다양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개들이 무슨 명품에 속하는 고가의 품종도 아니다.
14살짜리 할아버지 요크셔테리어.
13살짜리 할머니 몰티즈... 등이 그렇다.
그런 이들은 진짜배기다. 개를 가족처럼 보듬던 이들이다.
*
요즘 아이들이 강아지 사달라고 보챈다는 말을 앞세워,
혹은 자신도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아서 그들 따라서
깊은 생각 없이 덥석 개를 기르는 이들 많다.
마치 남들이 다 있는 애인이 내게만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얼른 애인 하나 만들어야겠다면서
호들갑스럽게 애인 구하기/만들기에 매달리고 보는 이들과도 흡사하다.
그 애인을 제대로 받들기는 고사하고 보통으로 건사하기조차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일을 미룬 채, 그냥 덥석, 남들 따라서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문제와 맞닥뜨리며 티격태격하다가
잦은 짜증이 싫증으로 변하고 그걸 신물로 키워낼 즈음이면
슬슬 내치거나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예 돌아선다.
호들갑이 변덕으로, 변심이 배반으로, 딴전이 흑심으로 변하여
양심과 인간성에 먹칠을 하고, 그것이 버릇이 된 사이에
호들갑과 배반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양심과 인간성의 두께는
정반대로 얄팍해지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들 따라서 하고 보는 일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은.
애완견 거두기도 그와 똑같다.
만만치 않다. 아이에게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 아토피가 있는 집에서는
실내에서 개를 키워선 안 된다.
털이 빠지지 않는 개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빠지는 정도만 다를 뿐.
그래서 모든 개 품종마다 공인된 털 빠지는 수치가 있다.
예컨대, 흔히 기르는 것들로 대충 적어 보면
푸들 9, 몰티즈 11, 요크셔테리어 12, 시추 14, 치와와 21...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털이 많이 빠진다는 뜻이다.
20이 넘어가는 것들은 절대로 집안에서 같이 지내면 안 된다.
그 밖에도 알아둬야 할 사항은 적지 않다.
한마디로... 개 병원 원장 집에는 개가 없다! 집에선 기르지 않는다.
(상세 내역이 궁금하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jonychoi/20048311044)
(참,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가장 많이 기르는 품종인 ‘말티즈’는 잘못된 말이다.
원산지인 섬나라 몰타(Malta)는 제대로 발음하는 이들조차도
말티즈라 하는데, ‘몰티즈(Maltese)'가 올바른 이름이다.
행여 외국이라도 나가서 잃어버린 개를 찾을 때 ‘말티즈’란 말을 하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미리 제대로 챙겨두는 게 좋다.)
*
사랑을 하다가 사랑하지 못할 사유는 여러 가지가 된다.
사람 사랑이든 개 사랑이든.
그럴 때, 한때 사랑하던 사람을 내칠 수는 있지만
죽으라고 길거리에 버릴 수야 없지 않는가.
개 또한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떳떳하게 이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의 하나를 또 적는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들이 그립다...
말이 길어졌다.
아내가 유기견 이야기를 하면서, 뒤늦게 또 한 번
핏대를 세우듯 한 데는 사실 사연이 있다.
울 딸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가슴 저리는 사연.
당진에서 사람들이 ‘개 별장’이라 부르던 개집을 지어놓고
대형 파라솔까지 세우고 갈아주며 기르던 세 마리의 개,
토토와 방글이, 싱글이 중에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건 싱글이뿐이다.
토토는 어느 날 장염으로 비명횡사했고, 방글이는 우리 손으로 보냈다.
정확히 4년 전의 일이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아래는 당시의 이야기다.
혹시나 싶어 내 블로그를 보니 그 이야기가 있기에 그대로 전재한다.
(http://blog.naver.com/jonychoi/2010707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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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이젠 방글이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녀석은 올해로 열 살을 넘겼다.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생이었던 것은
제 어미가 인천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내쳐진 데서부터.
어느 몹쓸 인간이 이사를 가면서 임신한 개를 아파트 내에 버리고 간 것을
내 아는 이 하나가 거둬서 길렀는데...
그 개가 임신한 걸 알 턱이 없는 그 사람은
조그만 개가(몰티즈 잡종) 배가 나왔다고, 비만이라고,
밤이면 매일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시켰던 것...
만삭이 된 어미 개를 임신인 줄도 모른 채.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그 어미가 조용히 새끼 4마리를 낳자
그때서야 오마나!... 소리가 나오고, 어미 개에게 미안해하기 시작한 그.
나중에 나에게 한 마리만 맡아달라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생후 47일 만에 내가 가서 싣고 온 녀석.
(당시 울 집에는 비슷한 사연으로 내게 떠맡긴 것들이 이미 네 마리나 있었다.)
그처럼 어렵게 태어나다 보니,
녀석은 어려서부터 귀 하나가 바로 서지 못했고
왼쪽 뒷다리는 조금 짧아서, 걸을 때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곧바로 가질 못했다.
머리도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서, 내가 처음엔 11시5분전이라고 불렀고.
그런 녀석과 10년 가까이 했다.
그리고 이곳 아파트로 와서야, 우리가 녀석에게 그 동안 베푼 자유가
녀석이 새로 맞은 아파트 생활에는 얼마나 큰 속박으로 작용하는지 절감했다.
자유의 피탈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배/웠/다...
한 번도 목줄 걸고 살아보지 않은 방글이.
늘 넓은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지내거나,
갇혔다 할지라도 운동 공간이 충분한 곳에서 머물던 방글이.
그러다 보니, 똥오줌이야 지 싸고 싶은 데에다, 암 때나 해도 되고
우리와 거의 규칙적으로 해내던 산책길에서는
아무 곳에나 제 영역표시를 해도 좋았다.
그러던 방글이...
아파트 베란다에 갇혀서는 밤새 울었고,
차 타는 걸 기겁하는 방글이는 어딜 오가기만 해도, 차안에 갇히기만 해도
차안 곳곳에 똥오줌을 싸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표시했다.
시골집에서는 낯선 이들이 와야만 겨우 몇 번, 얌전하게 짖고 말던 방글이었는데...
방글이의 몸에 밴 그러한 배변 장소와 시간대의 자유스러움.
그리고 밤중에도 유리창 너머로 훤히 보이는 안방의 우리들을 향해서 밤새 울기...
그건 아파트 생활에서는 첫 번째 타기의 대상.
우리가 주민과 관리사무소의 공격대상이 되고도 남을 게 뻔했다.
열심히 이곳저곳 전화질을 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그걸 떠맡긴 이에게까지도 전화해봤지만
방글이를 맡아줄 사람이나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방글이와 이별하기로 했다.
동물병원 두어 곳과 통화한 끝에,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있는 젊은 수의사 병원을 택해서
예쁘고 깨끗한 수건으로 방글이를 감싸 안고 갔다.
안락사...
처치비 8만 원에 사체처리비가 체중 1킬로당 1.5만원이라는 말에
우린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말도, 우리의 어떤 목소리도 방글이에게 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처치 과정에 참여하겠느냐는 말에는 진정제 주사 투여까지만,
방글이 발을 잡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내가 말했을 때가,
우리 입이 처음 열린 때.
그 이후의 광경에는 시선을 거둔 채, 동물병원 문간으로 나왔다.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한참 후, 의사가 문간의 내게 와서 말했다.
아주 편안하게, 고통 없이 갔습니다.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으시지요...
유기견으로 떠돌다가, 길바닥 같은 데서 비참하게 생을 마치는 녀석들이
하루 평균 전국적으로,
사람 교통사고 사망자의 10배가 넘는 세상이니까요.
방글이가 가고 없는 줄도 모른 채 (남의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 줄로만 안다)
제 엄마의 드레스룸/화장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싱글이와 놀고 있는 울 딸.
싱글이가 저처럼 좁은 공간을 좋아해서다.
[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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