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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자! 사랑하자!! 사랑하자!!!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4. 7. 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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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이 답이다

                                      -사랑하자! 사랑하자!! 사랑하자!!!

 

  지난달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던 김흥수 화백(1919-2014)이 돌아가셨다. 향년 95.

  그는 여러(?) 면에서 한국의 피카소가 맞다. 명불허전 (名不虛傳)!

 

  화가로서의 궤적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구상과 추상의 조화를 꾀한 화풍으로 하모니즘이라는 새 바람을 우리 화단에 불러 일으켰다. 기하학적 형태로 구분하는 화면 처리 방식이나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는 것도 피카소를 많이 닮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역시 전쟁이 끝나고 어수선한 시기에 홀로 파리로 날아들어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가을전람회. 보수적인 살롱 나쇼날에 반발해서 만들어진 전람회로 나중에 포비즘, 큐비즘의 산실 역할도 했다]에 출품하고 전시도 하면서 그곳의 회원 자리도 거머쥘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1955년의 일이니 그의 30대 후반 시절의 업적이다.

 

  그가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43년 연하의 제자인 장수현 씨(전 김흥수 미술관장)와 결혼하고 나서의 일이다(1992). 70대의 그가 30대의 아내와 함께 무대에 나와 현란한 춤을 씩씩하게 추고, 호탕하게 온몸을 흔들며 웃을 때 그의 상표가 된 짙고 긴 수염들도 멋지게 흔들렸다. (그러한 유명세 덕분에 그는 1998 모 제약회사의 CF 촬영도 했다. 어쩌면 최고령 남성 모델 기록을 세우지 않았을까.)

  티브이 화면에서 그 장면을 대하자 46년 연하의 피카소 아내 자클린 로크(1927-1986)가 떠오르며 내게 불쑥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피카소의 마지막 7번째 여인이자 두 번째 아내였던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자 창문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식탁에도 그의 자리를 마련해두는 등 그를 그리워하다가, 그가 없는 세상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면서 13년 후 피카소를 따라간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그것도 권총으로. 그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결혼 20주년이 되는 2012년 아내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김 화백은 아내 없는 빈자리를 견뎌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힘들어서 아내를 따라가야겠다는 말을 달고 사신 듯하다. 나중에는 그런 말을 뱉을 때마다 눈물이 먼저 나와서 굳게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그 말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내의 뒤를 따라갔다. 소망대로. 피카소보다 두 해를 더 살고 세는나이 95세에.

 

                                                                        *

  티브이에서 대한 일이다. 어느 호랑이 사육장에 있는 한 쌍의 벵골호랑이 중 엄마 호랑이 호야는 남편인 범호와 다툰다. 남편에게 으르렁거리다 못해 할퀴기도 한다. 엄마 호랑이는 둘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에게도 무관심하다. 심지어 한 아들을 앞발로 가격해서 어린 아들은 기절도 한다. 사육사들은 전문가를 찾고 그 치료책으로 푸르스텐 요법을 쓴다.

  프루스텐(prousten)은 호랑이 사육에서 쓰이는 말인데, 호랑이가 사랑하거나 행복할 때, 만족의 표지로 살짝 으르렁거리는 목젖울림 소리를 뜻한다. 그럴 때면 자발적으로 피부접촉을 하고, 또 허락도 한다. 자식이든 남편이든.

 

  프루스텐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받은 호랑이의 심리적 만족과 행복한 정서, 신체적 충일(充溢) 상태를 드러내는 표지판이다.

  사육사들은 프루스텐을 녹음해서 그걸 엄마 호야에게 들려주자, 호야는 얌전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상처를 입혔던 자식도 받아들인다. 녹음된 프루스텐이 호야에게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기분을 실감하도록 이끄는 데 성공한 것.

 

  그 과정에서 상처 받은 어린 호랑이를 보듬는 사육사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젊은 여성 사육사가 어린 호랑이를 자신의 방과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며칠을 애쓴다. 처음에는 우유를 먹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쓰고, 그 다음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일정한 시간만 근무하고 나면 되는 사육사로서의 업무를 훨씬 뛰어넘는 희생적인 보육이었다. 엄마의 마음이 담긴 손길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애정 어린 온전한 희생. 그것도 30대 전후로 보이는, 어찌 보면 젊디젊은 사람이 그리해내고 있었다. 온갖 몸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온전한 몸수고로 이뤄지는 희생은 우리를 차렷 자세로 감동시킨다. 마리아 테레사 수녀가 그랬고, 제인 구달*의 침팬지 사랑도 그러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숭고한 봉사의 양탄자를 엮어내다 안타깝게도 한창때에 돌아간 이태석(1962-2010) 신부도 그랬고.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 탄자니아에서 40년 이상 침팬지를 관찰한 침팬지 박사’. 영장류 학자였다가 이제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

  사랑은 그 대상/등급이나 그리고 내용물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몸수고가 따를 때 진정한 사랑이 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러한 사랑의 출발은 접촉이다. 피부 접촉. 빈민들의 손을 잡던 마리아 테레사의 손길이 그러하고, 침팬지와 껴안는 일도 하게 된 제인 구달이 그러하며 이태석 신부 역시 사진 속에서 흑인 아이들을 두 팔로 번쩍 안아든 모습은 일상이었다.

 

  사랑은 일대일이다. 일직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이()이 곧장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그 훈김으로 서로 따뜻해진다.

  입으로는 애국애족을 떠들며 속으로는 자신을 먼저 챙기는 거짓 정치가들이 결국은 차디찬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은 그들이 먼저 일직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에 숫자의 제한은 없다. 이웃을 향한 것이든, 동네나 마을을 향한 것이든, 사회와 민족을, 인류를 향한 것이든. 나아가, 단 두 사람만의 사랑이든.

  그런 단 둘만의 사랑에서 프루스텐의 표지판을 찾으라면 그것은 미소와 콧노래가 아닐까. 여인이라면 콧노래에 더하여 일쭉얄쭉하는 몸짓이 보태질지도 모르고.

 

  김 화백의 죽음 앞에서 새삼스레 장수현 관장과의 뜨거웠을 사랑이 짙게 피어오른다. 두 분이 다시 어디선가 만나서 이승에서 채우지 못한 아쉬운 사랑을 마저 꽉꽉 채우게 되시길 빌고 싶다. 아니, 꼭 그리해내실 것을 믿는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공식화(?)하고 싶어서 귀찮은 결혼식까지도 올리게 되었다며 너털웃음으로 응대하던 김 화백님의 모습이 그립다.

 

  어디에 머물고 계시더라도, 인간들에게도 프루스텐의 효과와 치유법이 널리 유포되기를 바라실 듯만 하다.

  그것도 손쉬운 피부 접촉으로 시작되는 몸수고만으로도 너끈히 거둬들일 수 있는 수확이라는 걸, 그분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면서. [July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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