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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와 CEO

[내 글]슬픔이 답이다

by 지구촌사람 2014. 9. 1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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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와 CEO

                                         -껍질 벗기와 환골탈태

 

 

  두어 달 전일 게다.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인 <골든 벨>을 보고 있는데 첫 문제로 CEO가 무엇의 약자인지 쓰라는 게 나왔다.

  그 결과를 보며 경악했다. 60여 명이 탈락한 것. 요즘 청소년들의 꿈 목록에서 벤처 기업의 CEO가 되는 게 꿈이라는 둥, 그 말은 걸핏하면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그날 그 문제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그 말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할 듯하다. 실패를 통해서 얻는 배움처럼 확실하게 오래가는 건 없으니까.)

 

  CEOChief Executive Officer의 약자다. 대표이사와 같다. 주식회사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를 대표하는 자리, 곧 모든 등기 이사들 중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이 대표이사는 알다시피 그 직위가 회장/부회장이거나 사장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부사장일 때도 있다. 대표이사가 복수일 때도 있고.

  한마디로 대표이사는 법적으로 그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회장/부회장/사장 따위는 맡고 있는 업무에 따라 붙여진 직책 겸 직위 표기이다. 요즘은 그 앞에 맡고 있는 업무를 덧붙여 해외사업 총괄 사장등으로 적기도 한다.

 

  이 CEO 계열의 용어로는 재무 업무 최고 책임자를 뜻하는 CFO(Chief Financial Officer), 운영 최고 책임자인 COO(Chief Operation Officer), 투자 부문 최고 책임자인 CIO(Chief Investment Officer) 등등 직무 분야별로 가지를 많이 치고 있기 때문에 조직마다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표기가 쓸모가 있게 된 것은 그 해당 분야에 있어서는 그의 직급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결정권을 지닌 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거래 상대방들이 단번에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해서다. 사장이나 부사장과 같은 직위 표시만으로는 모자란 탓에. 하여,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에는 CEO/President, 부사장이 재무담당 최고 책임자일 경우에는 CFO/Vice President 등으로 적는다.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일반인들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교생들이라면, 그리고 걸핏하면 CEO가 어떻고 하면서 이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무엇의 약자인지 정도는 알고 있거나, 알아보려고 노력을 했어야 한다. 더구나, 그날의 학생들은 그래도 그 학교에서는 내로라하는 아이들이었기에 대표 선수로 뽑혔을 터였다.

 

  이런 얘기를 독서회 모임에서 꺼냈다. 그랬더니, 대꾸해 오던 이 하나가 질문을 해 왔다. 흔히 보는 자동 현금 출납기 ATM의 약자가 무엇인지 좀 알려달라고. 질문을 가장한 일종의 역공(逆攻).

  내가 참석자들에게 되물었다. 누구 아는 분 있으면 대답 좀 해달라고. 좌중이 조용했다.

  ATMAutomatic Teller Machine의 약자이고, teller는 은행 창구에서 출납을 담당하는 직원을 뜻한다.  현금 출납을 기계가 자동적으로 해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면서, 내가 물었다. 몇 해 전부터 천연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시내버스 옆구리마다 하나같이 매달고 다니는 CNG가 무엇의 약자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NG는 천연가스(Natural Gas)의 약자라고 힌트도 줬다. 짐작대로 좌중은 조용했고 머리들만 좌우로 갸웃거렸다.

  C는 압축을 뜻하는 Compressed의 약자다. 압축 천연가스라는 말이다. 천연가스는 압축하지 않으면 운반/사용 등에서 불편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압축 공정을 거쳐야만 그 편리함과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C가 그 앞에 붙었다. (이 약자 해설이 현재로는 인터넷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 궁금증 해결을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서야 알았다. 이처럼 기본적인 것임에도.)

 

  내게 ATM의 약자 질문을 했던 여인이 몹시 머쓱해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요즘의 학부모치고는 그래도 비교적 우수 학부모라 해야 할 만했다. .고교생 하나씩이 있지만 그녀는 두 아이 모두 방학 때만 학원의 단과반에 보내어 그야말로 모자라는 학과목의 보충학습을 시킬 정도로, 학원에 아이 밀어 보내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칭찬 삼아서 그녀의 그런 상황을 살짝 언급한 뒤, 결론용으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이들이 CEOATM의 약자 뜻풀이에 정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학원에 밀어 넣고 학원에 갔는지 안 갔는지를 수시로 전화로 확인하는 학부모나, 3 생활을 자청해서 함께 하는 이들, 그리고 아들의 입대 때 병영까지 따라갔다 와야만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그런 이들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 이 모든 일들은 어찌 보면 줏대 없이 남들을 따라, 베껴서 해대는 일들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의 학부모들은 응당 그리해야 한다고 미리 입력되어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제 자식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는 말도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학원이야 모자라는 과목이 있거나 아이가 적극적으로 간청하면 그때서야 큰마음 먹고 돈 들여서 보내는 곳 아닌가? 3 정도가 되면, 부모의 간섭 비슷한 끼어들기를 자식이 되레 사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된 녀석이라면 제 알아서 해내야 하고, 또 그게 시간/감정 낭비를 줄이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은가.

  군 입대하는 아들 뒤에서 눈물 찍어대는 어머니들을 보면 난 어리둥절해진다. 씩씩한 사나이로 가다듬어지기 위해 늠름한 모습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심하게 말해서 군대에 간다고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군대 내에서의 죽음도 어찌 보면 사회생활 부적응자의 탓이 더 크다. 군소리/딴생각 하지 않고, 다소 괴상망측하기도 한 단체생활에 잠시 몸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두 눈 두 귀를 질끈 감고 닫은 채 이를 악물고 첫 해를 보내고 나면, 그 뒤로는 어떻게 해도 이른바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그곳이 군대다. 인생살이 도처에서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군대 역시 제 하기 나름이다. (이 부분에서 여러 말들이 있을 수 있다. 극우보수파 어쩌고 하면서 싸구려 잣대부터 들이대고 보는 습관적 겉핥기파에서부터... 그냥 잘라 말하자면, ‘관심사병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계속 배치되고 있는데, 이른바 병영상담관들. 그중 하나인 후배는 몇 해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곳의 담당관이었는데, 사고 직전에 내가 물었던 게 있다. 그 아이들 사회에 나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답은 내 짐작대로였다. 특단의 개별적 치유 과정을 거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내내 그 물이 그 물일 아이들이라고.)

 

  사실 제대로 된 젊은이들에게는 군대생활처럼 좋은 인생 훈련소도 다시없다. 군대에서 제대로 철이 드는 젊은이들도 아주 많다. 사내아이에서 남자 어른으로 탈바꿈한다고 할 정도로. 전혀 딴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사람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하여 전혀 딴사람처럼 됨)란 말이 딱 제격일 정도로. 군 생활 중 동정을 잃고 사나이가 되었다고, 훗날 뒤늦게 씩 웃는 이도 보았다.

  군대에서 익힌 것 중 몇 가지만이라도 평생 몸에 배게 하면 그처럼 확실한 스승도 없다. 예컨대, 정시에 자고 정시에 일어나는 것이나, 기상 후 아침체조를 하는 것 한 가지만이라도.

 

  이 글을 적으며 문뜩 돌아보니, 붉은 글씨가 선명한 병적카드를 들고 입대하여 최전방 보병 사단으로까지 밀려갔던 내가 이 두 가지를 지금까지도 몸에 달고 살아온 덕분에 그나마 지금의 몸과 생활 습관을 유지하게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10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나, 국군 도수체조*를 거의 매일 버릇처럼 해온 덕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잡문 하나라도 계속해서 긁적거릴 수 있었던 듯하다. 지난 16년 동안 크게 흔들리는 일 없이...

 

 [*국군 도수체조 : 군인들이 아침마다 해대는 맨손체조를 '국군 도수체조'라 하는데, 도수(徒手)체조란 맨손체조의 한자어다. 다/팔/목 ->가/옆/등 ->뜀/팔/숨 ->몸/팔/온 등으로 그 순서를 묶어 외우는데, 다리운동/팔운동/목운동을 줄여서 다/팔/목이라 하는 식이다. 국민체조보다 좀 더 활기가 있어서 스트레칭 준비운동으로서 매우 쓸모가 있다.]

 

                                                        *

  며칠 전 일이다. 도서관 뜰로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는데 꼬마 셋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사철나무 위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잡으려는가 보았다.

  가장 큰 녀석이 4~5학년 정도나 되었을까. 그 아래로 두어 살 터울일 듯싶은 여자아이 하나와 막내 남동생이 한 무리. 한 집안 남매들이었다. 큰 녀석이 동생들을 데리고 야외 학습(?) 겸 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몇 번의 시도 뒤에도 아이들의 아쉬움 소리가 높아질 즈음, 내가 나서서 도와주었다. 얼른 한 마리를 잡아주고서 말했다. 여기를 이렇게 모아 잡고, 조금만 보다가 놓아주라고. 이 잠자리는 곧 죽게 되므로 오래 붙들고 있지 말라고.

  사실 요즘 잠자리 중 일부는 늦철 잠자리라고 해야 할 정도로, 죽음이 임박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짧은 생의 마감을 앞두고 있는 녀석들이 같은 나뭇가지에 계속해서 내려앉곤 한다. 멀리 날아가지 않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그런 운명들이다.

 

  잠자리는 나비 따위에서 볼 수 있는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알->유충->성충의 단계를 거쳐 어른이 된다. 그렇다고 그 과정들이 글자 여섯 개로 압축되듯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유충 단계에서만도 몸피를 키우고, 몸 안의 기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그게 곧 탈피(脫皮.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허물이나 껍질을 벗음)로 줄여 부르는 껍질 벗기다. 단단한 껍질을 제 힘으로 부수고 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유충들이 탈피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힘에 부치면 탈피 중도에서 죽고 말거나, 미완성일 때는 몸의 절반 이상이 껍질에 갇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 과정이 물 밖을 빠져나와 날개를 달고 어른이 되는 단계, 곧 우화(羽化)인데, 이 또한 만만찮은 과정이다. 시간도 제법 걸리는데다 배 빼기를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야 하므로 기다림의 시간도 있다.

  물가의 나뭇가지나 돌 위에서 이 잠자리 유충의 허물을 대하면 그중에는 성충이 되다만 것들도 간혹 눈에 띈다. 우화 도중에 죽은 것들인데,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그 모습들도 흔적조차 없다.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 것.

막 우화를 끝내기 직전인 잠자리​

 

 

  무심코 우리가 시선을 던지기 마련인 잠자리 하나조차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처럼 치열한 행로를 거쳐서 그 자리에 이른 어른 잠자리들이다. 어느 과정 하나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 없다.

  제 몸의 안팎을 키우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그 단단한 껍질을 벗느라 죽어라 애를 쓰고, 어른이 되기 위해 또다시 목숨을 건 마지막 우화 의식을 치른다.

 

  공자님이 그랬던가.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논어 술이편)라고. 세 사람이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렷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스승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눈은 나에게 있는 것이라는 점일 게다.

  나는 공자님의 말씀을 슬쩍 패러디하고 싶다. ‘인생도처 개유사(人生到處 皆有師. 사람살이에는 어디에든 모두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우리 눈길이 미치는 곳에는 어디에든 있다.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잠자리 하나 같은 미물조차도 때로는 우리의 스승이 된다.

 

  하찮은 풀 하나로만 여기기 쉬운 왕고들빼기나 냉이, 참취 따위도 열매를 맺을 무렵에는 모든 잎들이 본래 크기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꽃대를 높이 세우는 데에 한마음으로 동참한다. 그리하여 잎이 무성하던 시절의 키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100배도 넘게 높이 솟아오른다. 앉은키가 0.5~2센티에 불과하던 것들이 0.5~1미터 이상 솟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잡초들로만 여기는 이런 것들에게 이런 놀라운 합심력이 있다는 걸, 좀 있다 싶은 집안의 자식들은 알고 있을까. 동기간 혹은 모자간에서조차도 심지어 소송전이라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해대는 더러운 욕심의 주인공들은 알고나 있을까. 아니, 자식들에게 그런 교훈을 일찍이 제대로 가르쳐 준 부모들이 있기나 할까.

 

  남들 따라서 등 떠밀어 자식을 학원 따위에 보내기보다도, 남들 눈치 따위와는 용감하게 결별하고서 해대야 할 일. 그건 세상 바라보기의 시선 방향 을 자연 쪽으로도 향하게 하는 일 아닐까.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일일 듯하다. 좋은 버릇일수록 일찍 길들여지는 게 백번 좋은 일이잖은가. 되돌아가는 시간과 비용, 가슴 쓰림이 절약되니까.

  생각/시선/행동을 좁은 곳에 가둬두는 데에 앞장서지 말라. 세상은 넓고 세상 도처에 스승이 있다. 곧으며 꼿꼿해서 초점을 잘 겨냥하는 시선은 그럴 때도 필요하다. [Sep. 2014]            -溫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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