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는 남자용 괄호다
와이셔츠는 남자용 괄호다. 여름철에 샌들 사이로 무심코 드러나는 여자들의 발가락과 발톱에서 짐작되는 사연보다도 더 많이, 남자의 와이셔츠는 그에 대해 자상하게 이야기해준다. 형편과 처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와이셔츠는 한 편의 단편소설이다. 남자의 내력이, 그의 삶이, 요약되어 있다. 와이셔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스냅 사진으로 채워진 휴대용 앨범을 펼쳐보는 것 같다.
칼라에 버튼이 달렸거나 핀 고정식과 같이 스탠드칼라가 아닌 것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나는 와이셔츠를 보면 우선 다림질 상태와 목 위로 올라오는 깃의 높이를 본다. 그리고 깃 안쪽으로 맺혀져 있는 주름자국이 있는지, 목과 깃이 닿고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마모되었는지 살펴본다. 세심하게, 그렇지만 재빨리, 살펴보는 재주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소매를 본다. 소매단과 단추 구멍 주변을 본다. 뜯어진 실밥이 없는지, 오염도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본다. 팔목 사이로 보이는 안쪽과 커프스 정면을 잽싸게 살핀다. 맞춤 와이셔츠인 경우에는 재질도 힐끔거린다. 그러면 대체로 상대방의 정황이 읽혀진다. [1999.5]
-<와이셔츠에 매달린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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