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럽게만 갈무리된 소리는 독소의 당의정.
당의정은 일시적 우회를 거쳐 쓴맛을 토해내기 위한 편의용구
[전략]
"자이에서 행복을 찾았어요."
이영애의 보들보들한 목소리가 아파트 선전임을 일깨우는 순간, 나는 되레 도리질을 친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달려들어 거기에다 행복을 매다는 순간, 삶의 속살에는 질권이 설정되고 만다.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떠도는 온갖 소리에 몸피의 주파수를 맞추고 살다보면 삶의 내피에는 수많은 타박상의 흔적이 깃들고, 훗날 자신만이 기억해내는 자상(刺傷)이 정신적 외상으로 적립된다.
유력하게 통용되는 소리에 이끌려 인스턴트 행복을 좆는 발걸음들에 슬그머니 채워지는 족쇄. 몇 해를 두고 빨려나가는 아파트 대출금 이자, 찍소리도 못하고 갖다 바치는 관리비,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외형적 수평치를 확보하려는 눈치와 몸짓들. 그런 것들이 어느 새 삶의 기본형이 되어버리고 났을 때, 한참 뒤 뒤늦게야 눈에 들어오는 패션 브랜드 삶의 표지판 중 하나라고나 할까. [중략]
그렇다. 소리가 문제는 문제다. 느리더라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분절음으로 소리를 내야 ‘쌕 사고 싶어’가 ‘섹스하고 싶어’로 들리지 않는다. 부드럽게만 갈무리된 소리는 독소의 당의정일 때도 있다. 홀로 떼어낸 근사한 여인의 그림에다 버무린 부드러운 소리는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모든 실물이 그렇듯, 삶 역시 그 안팎 모두가 튼실한 실속이 있어야 한다.
당의정은 밝음의 일시적 우회를 거쳐 어둠 속에서 그 쓴맛을 토해내기 위한 편의용구로 쓰일 때가 더 많다. [2003.11]
-<나 섹스하고 싶어> 중에서
○ 사랑은 세상과 정면으로, 온 몸으로 대응해야 온전히 착상하는 조건부 배아(胚芽).
[전략] 그런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죄다, 가슴팍에 뭔가 하나씩 껴안고 있다. 사랑병(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온갖 정서(情緖)들을 담아놓은 유리병이다. 자칫 잘못해서 넘어뜨리거나 떨어뜨리면 깨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사랑을 겨누는 가슴 속 심지와 연결된 뇌관 보따리. [중략]
병(甁) 안에 갇힌 사랑의 정서(情緖)는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야 비로소 발아하는 자웅동체 정란(精卵). 세상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온 몸으로 대응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의 수정란으로 착상(着床)하게 되는 조건부 배아(胚芽). 잊을 만하면 버릇처럼 떠오르는 내연녀 같은 섬약질 서정. 그것들은 사랑병(甁) 안에만 머무는 한, 애처로운 다운증후군의 모습으로 온 생을 마감해야 하는 불온(不穩)한 운명이다. [2004.12]
-<사랑병(甁) 들고 끙끙거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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