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게재되는 내용들은 근간 예정인 책자의 일부이다.
우리말 공부를 좀 더 쉽게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짬 나는 대로 연재할까 한다. -溫草
○ ‘우리말’과 ‘순우리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문] ‘비행기를 우리말로 하면 날틀이 된다.’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요? ‘날틀’이라는 말이 잘못되어서인가요?
[답] 두 가지가 잘못이군요. 우선, ‘우리말’과 ‘순우리말[토박이말]’을 같은 말로 착각하곤 하는데, 두 말은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는 말들입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날틀’이 우리말로 인정된 표준어가 아니어서 ≪표준≫에 없는 말입니다. 만약 ‘날틀’이 표준어라고 한다면 ‘비행기를 순우리말로 하면 날틀이 된다.’라는 말은 성립됩니다.
‘비행기’나 ‘철수’를 ‘飛行機’나 ‘哲秀’로 적으면 우리말이 아니지만 ‘비행기’, ‘철수’로 적으면 우리말이다. 즉, 한자어도 한글로 적으면 우리말이다. 우리말 여부의 주된 관건은 표기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외래어도 한글로 적으면 우리말이 된다. 예컨대, ‘bus’는 외국어지만 ‘버스’는 외래어로서 우리말이다. ‘빵’ 또한 어원은 포르투갈 어[pão]지만 어엿한 우리말이다. 다만, 외국어의 한글 표기가 전부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니며, 외래어로 인정이 되어야만 한다. (외래어로 인정이 되면 사전에 표제어로 오른다.)
‘순우리말[토박이말]’은 ‘우리말’ 중에서도 고유어만을 뜻한다. ‘우리말’에는 ‘순우리말[토박이말]’ 외에도 한자어나 외래어 등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말’은 ‘순우리말[토박이말]’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현재 ‘날틀’은 우리말로 인정된 표준어가 아니어서 ≪표준≫에 없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각종 경비행기, 모형 비행기, 시험 비행기 등의 제작 및 경연대회나 관련자들 사이에서 일부 쓰이고는 있지만 공식 용어는 아니다. 이 말은 흔히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막무가내식 한글 전용 고집을 헐뜯을 때 자주 인용될 정도로 그분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창작 낱말 중의 하나(또 다른 하나는 ‘이화여대’의 한글 전용 표기인 ‘배꽃 큰계집애 배움집’)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되고 과장되어 유포된 것으로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참고] 1953년 한글 파동과 ‘날틀’ : 1953년 4월 현행 맞춤법이 너무 어려우니 이를 폐지하고 한글맞춤법통일안 이전의 옛 철자법으로 간소화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국무총리의 훈령이 공포되고 그에 따른 맞춤법 간소화 안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발표되는 바람에 이른바 ‘한글파동’이 일어났다. 즉, ‘믿고, 믿어’를 ‘밋고, 미더’로, ‘같이’를 ‘가치’로 쓰라는 것인데 각계각층에서 격렬히 반대하자 1955.9.19. 이승만 대통령은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담화를 발표하며 물러섰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선근 문교부 장관이 국회에 나가 어휘 문제를 언급하면서 예로 든 낱말이 ‘날틀’이니 ‘배꽃큰 계집애 배움집’ 하는 것이었는데(1954.7.11 경향신문 1면 참조), 이 말들은 외솔이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재직하던 편수국에서 교과서 안의 낱말 순화 방안의 일환으로 검토한 것이었을 뿐 이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말들이 당시의 주요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기사화됨으로써, 최현배 선생의 강압적 물리적 한글전용 사례의 대표적 낱말로 잘못 굳어지게 되었다.
참고로, 선생이 편수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편찬한 교과서에 처음 등장하여 쓰이기 시작한 것들로는 ‘지름/반지름/반올림/마름모꼴/꽃잎/암술/수술; 건널목/도시락/단팥죽/책꽂이/통조림; 짝수/홀수/세모꼴/제곱/덧셈/뺄셈/피돌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앞의 7낱말은 ‘직경(直徑)/반경(半徑)/사사오입(四捨五入)/능형(菱形)/화판(花瓣)/자예(雌蕊)/웅예(雄蕊)’를, 뒤의 다섯 낱말은 당시 흔히 쓰이던 일본어 ‘후미끼리/벤또/젠사이/혼다데/간스메’를 각각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말/토박이말/순우리말/외래어/표준어/공용어’ 등의 용어를 정리하여 보이면 아래와 같다.
국어 : 우리나라의 언어(생각/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문자 따위의 수단). ‘한국어(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우리나라 사람이 이르는 말.
우리말 : 우리나라 사람의 말(‘음성 기호’ 혹은 ‘단어/구/문장의 총칭’). 가장 넓은 개념의 용어로서, 토박이말/고유어/순우리말 외에 한자어, 외래어, 속어/비어, 사투리/방언, 은어, 고어, 신어 등이 포괄된다.
토박이말[土-]≒고유어/순우리말[純-] :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 한자어. 외래어
순우리말[純-] :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름.
외래어[外來語] : 버스/컴퓨터/피아노 따위와 같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 ↔ 토박이말/고유어/순우리말
표준어 :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 '대중말'이라고도 한다.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 사투리. 방언. 은어. 단, 속어/외래어는 표준어에 포함된다.
공용어(公用語) :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 국가나 공공단체가 정식으로 사용하는 언어. 법적인 지위가 부여되는 경우가 흔하며, 방언 속어 등은 제외.
[참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도 방언이다? : 방언의 뜻풀이에서 보듯 ‘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도 방언이다. 따라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도 언어학적으로는 방언에 속한다. 이러한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표준어는 서울 방언을 승격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투리 홀대로 비치기도 하는 표준어 중심 정책에 대한 비판의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비판의 초점이 지방 홀대 서울 우대 시각으로 단선화될 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사투리는 일종의 언어의 변이종이기 때문에 다양할수록 언어생활이 더 풍부해진다. 그러므로 사투리는 표준어와 대립관계라는 외적 인식을 지양하고 사투리가 촌스럽고 부끄럽다는 내적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공적인 언어생활인 아닌 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면 방언 사용에 어떤 제약을 두고 있지도 않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표준어와 방언은 상보적 공생 관계이지, 대립적 배척 관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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