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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농담, 첫날밤

[내 글] 진담(眞談)

by 지구촌사람 2011. 9. 3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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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농담, 첫날 밤

 

  이른 아침 전화를 받았다. 일요일 아침 7시. 평일이면 출근으로 바빠할 시각. 하지만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듯만 해서 시간에 관한 한은 괜히 부자가 되는 일요일 아침이면 그 시각은 새벽에 가깝다.

  안방에서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가 튀어 오른다.

  아, 선생님? 지금 어디예요?

 

  K선생. 바로 어제 결혼식을 올린 새색시. 같이 일하는 네 선생님 중 가장 ‘까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은근히 성깔깨나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일한지 한 해가 지나자, "원장님. 넘넘 고맙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어요..." 하면서, 인사도 차릴 줄 아는 음대 성악과 출신. 그래서, 우리가 나서서 신랑감까지 책임지게 된 나이 서른의 새색시.

  어제 우리는 그 K선생의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벼운 입씨름을 했다. 친지 하나가 선물로 마련해준 서울의 호텔방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오늘 아침 가까운 나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 두 사람에게 저녁에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할까 말까를 두고.

 

  결론은 우리가 주책 부리는 것으로 비쳐질 공산이 더 큰 쪽으로 모아졌고, 우리는 덜 주책스러워지기로 했다. 왜냐, 우리가 전화를 하게 되면 두 사람이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물어볼 게 틀림없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김선생은 사실대로(?) 묘사하거나 고백해 올 것이 뻔한데, 그건 어떻게 해도 우리 부부가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었으므로. 하하하.

  대신, 우리는 그런 대로 잘 치러진 그들의 결혼식 이야기로 돌아갔다. 우리가 중매 하나는 제대로 했다고 자축했다. 신랑신부의 동시 입장과 퇴장 때에 (신부의 부친이 계시지 않음을 배려한 신랑 측의 마음씀씀이로 그리 하였다), 꽃바구니에 가득 담긴 장미꽃잎을 그들의 앞걸음에 뿌리고, 축가를 합창한 아이들은 김선생의 제자이자, 우리 학원의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있음으로,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아버지를 여읜 K선생의 결혼식은 외로움이 가려지고 빛났다.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하려는 아이들의 정성이 그 꽃잎들에 얹혀 있었고, 그것이 결혼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K선생의 아버지를, 고인의 유언에 따라, 수의 대신 양복차림으로 떠나보내는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나와 아내는 그 모습에서 울컥 해왔고, 그 순간 K선생의 어머니가 아내 손을 꼭 잡아왔다.

 

 

  방글아. 나가 놀아. 아빠와 엄마도 오늘은 첫날밤이다. 12월1일. 12월의 첫날밤이잖아....

  저녁을 먹고 나자 자꾸만 무릎 안으로 기어드는 방글이에게 (강아지 이름임)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예삿말로. 나는 아내의 그런 탄탄한 즉흥 코미디 실력에 깔깔 웃음으로 화답하고, 보고 있던 티브이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던 아내가 <태조 왕건>도 다 보지 못하고 잠들었다. 결혼식장에 나가기 직전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기어이 150포기의 김장을 마친 아내였다.

  나는 주말영화를 끝까지 다보고 그리고 유선방송의 영화까지 힐끔거리다가 자리에 누웠다. 그때다. 가끔 예삿말로 코미디언 뺨치게 재미있는 말을 쏟아내곤 하는 아내가 초저녁에 방글이를 향해 던졌던 그 첫날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입안의 사탕처럼 내 혀끝의 놀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천천히 몰려왔다. 순전히 내가 잠들 시간을 놓친 탓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아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뒤늦게 생각이 났다. 12월의 첫날밤이니 뭐니 하는 말로 오랫동안 아내의 고샅에 감춰두고 있었던 첫날밤의 추억을 아내는 그렇게 내 앞에서 우회하고 있었다는 것을...... 요요 장난감을 돌리듯 방글이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멍청하게도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눈치 채고 있었다.

  강제징용 당하듯 명부에도 오르지 못하고 맥없이 날려버린 우리의 첫날밤이었다. 지독한 감기몸살로, 결혼식을 치른 날부터 나흘씩이나 죽었다 살아나도록 고생한 아내.

 

  K선생의 결혼이 아내에게 우리의 그 알맹이 빠진 첫날밤을 돌아보게 했던 모양이다. 그날 낮에 치러진 결혼식을 대하면서 아내는 그 맺음이 예약한 그 가슴 떨리는 밤의 순간들을 미리 들여다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신혼부부의 호텔방에 전화를 걸어볼까 어떨까 하는 농담을 할 때부터 말이다.

  그러므로, 그날 방글이에게 던진 첫날밤의 농담이 아내에게는 낡은 농담이 아닐 수도 있었다. 속이 빈 선물 꾸러미였음을 알게 되었던 우리의 첫날밤을 아내는 한참 지나서야 다시 그 포장지를 뜯어보며 한 번 더 확인했을지도 몰랐다.

 

  아내가 차버린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함께 덮으며 잠을 청했다. 깊이 잠든 아내의 손을 더듬어 잡고 눈을 감았을 때, 우리가 덮고 있는 이불이 아내의 오랜 농담으로 더욱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는 생각이 흘낏 뇌리를 스쳤다.

  낡은 농담에는 온기가 배어 있다. 비록 그것이 이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그리움들을 태워 얻게 되는 안타까운 것들이라 할지라도. [2 Dec. 2001]

 

[추기(追記)] 신랑도 반듯하지만, 그보다도 더 멋진 것은 신랑의 어머니. 결혼식 날 받아놓고 신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하나뿐인 신부 오빠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사 이에라도 가서 영안실을 지키라고

                  아들을 보냈고, 신랑신부 동시 입장/퇴장도 그녀의 아이디어... 훗날의 일이긴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되자 아들의 소형차보 다도 훨씬 크고 튼튼한 RV차를 며느리에게 사 주기도 했다. 임신부는 안전한

                  차를 타야 하고, 나중에 아이 데리고 다니려면 차 공간이 넓어야 한다면서.

 

[덧대기1] K선생은 요새 두 꼬마의 엄마. 추석과 설 명절이면 아직도 꼬박꼬박 선물꾸러미를 보내온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김선생의 외가, 곧 김선생 어머니 친정이 내 가 잠시 몸담고 있는 이곳 당진군 면천이

              라는 것. 내 좋아하는 쌀100% 막걸리를 만들고 전통명주 두견주가 나오는 곳이 면천이다. 아미산 산자락

              동네. (거기서 60 년대에 이대 음대를 들어갔으니, 김선생 모친도 한 인물 하신 분이다.) 덕분에 김선생

              은 한 해에 한 번꼴로 두 아이를 싣고 낮 시간에 울 집을 들러가곤 한다. 외갓 집 나들이 길에. 그녀의

              남편이나 나는 그 낮 시간에 죄다 직장에 목줄 매어있는 지라, 결 혼 후 8년 동안에 겨우 딱 한 번 봤다. [July 2009]

 

[덧대기2] 사람의 인연이란 건 참으로 묘하다. 장모님 병간을 위해 우리가 작년에 파주로 이사 해 왔는데, 결혼 후

              부터 내내 살아온 K선생의 아파트가 바로 옆 마을. 엎드리면 코 닿을 데에 있다. [2011]

 

* 요즘, 그 동안 긁적여온 것들의 일부를  전자책으로 출판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일과가(?) 끝난 후 짬짬이 원고를 되돌아보고 있는데, 어제 눈에 띈 게 이것.

  원고를 정리하면서 새삼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해도 끝없이 지속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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