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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소리 나는 대로 써도 되는 것 아닌가 : ‘한글 전용’과 ‘한자 병기’, 그리고 ‘풀어쓰기’와 ‘모아쓰기’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5. 2. 12.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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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소리 나는 대로 써도 되는 것 아닌가 : ‘한글 전용한자 병기’, 그리고 풀어쓰기모아쓰기

 

[]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40대 초반입니다. 학창 시절에 한자를 잠시 대하긴 했는데, 한글 전용 소리를 더 많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배우는 둥 마는 둥 한자에 관심하지 않았습니다. 입사 시험을 볼 때도 한자 문제 같은 것은 나오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한글로 문서 작성을 하긴 해도 한자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심지어, 사원 시절에는 상사로부터 무식하다는 농담 섞인 핀잔까지 받기도 했지요. 그 핀잔 덕분에 몇 해 전에 한자 급수 시험까지 보긴 했지만요... 앞으로는 한글 전용이다 한자 병용이다 해서 일부 학자와 지식층에서 논쟁을 하는 바람에 학교 교육까지 흔들려서, 저처럼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차제에, 저의 짧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복잡한 받침 따위를 따지지 말고 아예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풀어서 적자는 한글 전용 쪽이 컴퓨터 시대에 적합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곤 합니다. 문제가 있긴 있겠지요?

 

[] 지적하신 대로, 사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측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간에 한자 표기/사용 문제를 두고 지난 수십 년 간 맞서거나 다퉈왔습니다. 그걸 두고 심지어 문자 전쟁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그 바람에 폐해가 만만치 않았지요. 뭐니 뭐니 해도 1차적인 피해는 우리말을 익히는 학생들이 제일 컸고, 그 후폭풍은 이 나라의 대중문화 일반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문서 작성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런 논쟁 과정에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일부 전문가들에게까지 한글 전용과 관련하여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답니다.

 

그 첫째는 우리말 순화 운동의 본질에 대한 착각 내지는 오해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 우리말 순화 운동이 한글 전용으로만 비쳐지거나 비약되어, 한자어 추방으로까지 잘못 번진 거지요. 우리말 순화 운동은 주로 의사(擬似) 외래어라고도 불리는 왜색조(倭色調. 일본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띠고 있는 색조의 말투나 태도를 낮잡는 말)의 말과 엉터리 외래어 외에 지나치게 어렵거나 고유어로 쉽게 바꿔 쓸 수 있는 한자어 등을 바로잡는 활동이었는데, 그것이 일부에서는 오롯한 한글 전용으로 성급하게 잘못 결론지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 전반에 확산된 국어 순화 운동이 한글 전용으로 잘못 인식되어 한자 경시로 이어지고, 1980년대 후반부터 신문·잡지도 점차 한자를 쓰지 않기 시작하면서 한자 교육 자체가 거의 매몰되었던 시기가 있었지요. 교과서에서 한자가 사라진 지 겨우 2년 만인 1974년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다시 한자가 병기되고, 대한교육연합회(현재의 대한교원단체총연합회. 당시 약칭 교련)에서는 초등학교에까지도 한자 교육을 부활하라는 건의를 했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말 지키기 운동과 같은 표현을 대하면 고유어만 써야 한다는 식으로 넘겨짚어서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까지도 무조건 배격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활동을 하는 이들 중에는 상당수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말 순화 운동과 한글 전용은 별개의 사안이고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말입니다. 우리말 순화 운동은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를 포함하여 잘못된 외래어들을 가능하면 우리말(고유어 내지는 쉬운 한자어)로 바로잡자는 게 기본 취지이거든요.

 

또 한 가지 오해는 한자 교육을 한글 전용의 정반대로 생각하는 일이랍니다. 물론 극단적인 한글 전용론자 중의 일부는 한자 교육까지도 반대하지만, 아래 자료에서 보시듯 우리나라의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기간은 1970년부터 1972년까지 딱 2년뿐입니다. 한편, 미 군정청 이래로 공문서에서의 한글 전용을 지시하거나 법률/훈령 등으로까지 규제해 온 것은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는 기본 정책이었고요.

 

, 우리나라 어문 정책은 처음부터 기본적으로 공문서에서 한글을 전용하려는 입장이었고, 다만 그 과정에서 앞서 설명한 국한혼용 또는 국한병기 등을 예외적으로 인정하였을 뿐입니다. 1948년에 공포된 <한글전용법>에서 그 뒤 오래도록 문제가 되었던 조항,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규정의 모호함 때문에 그 구체적인 시행 내역이 정권별로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한글 전용의 뼈대가 바뀐 적은 한 번도 없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랍니다. <국어기본법>의 제정으로 이제는 폐지된 <한글전용법>의 기본 취지 그대로, 모든 공문서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한글 뒤 괄호 안에 적는 한자 병기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요.

 

요약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1) 한글 전용이라고 해서 우리말 속의 한자어 자체를 배격하거나 추방하자는 건 아니다. 2) 한글 전용 원칙과 필요 시 예외적으로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서로 어긋나는 게 아니다. 3) 국어 순화 운동과 한글 전용은 별개의 사안이다. 국어 순화 운동은 어려운 한자어를 포함하여 잘못된 외래어와 고유어로 바꿔 쓸 수 있는 외국어들을 (한자어를 포함한) 우리말로 다듬어 쓰자는 운동이다.

 

끝으로, 소리 나는 대로 적기에 관한 질문은 풀어쓰기와 모아쓰기의 문제로도 연결되는데다 조금 전문적인 분야이기도 해서, 한글 전용과 관련된 것을 먼저 다룬 뒤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해방이 되자마자 한글 전용이 미 군정청의 어문 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459월에 군정청 편수과장으로 취임한 외솔 최현배 선생 덕분이다. 외솔이 그 자리에서 3년 동안 앞장서서 애쓴 끝에 제헌 국회에서 <한글전용법>이 제정공포된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한글 전용에 관한 규정의 출발이다.

 

그러나, 이 법에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 단서 조항,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가 있었다. 이 조항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한자를 함께 쓸 수 있는 기간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 뒤로 국한 혼용(한글로 쓰되 필요한 경우 한자로만 써도 되는 것. : 1950~1970년대의 신문 표기 방식), 국한 병용/병기(한글로 적되 필요한 경우에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하는 것), 한글 전용(일절 한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으로 나뉘어 이른바 한글과 한자 사이의 문자 전쟁이라고까지 부르는 혼란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아래의 자료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어문 정책은 해방 후부터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이었고 그것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처음부터 한자 표기를 (그 구체적인 방식과 기한은 정하지 않은 채) 인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듯, 한자 교육에 관해서는 문교부의 정책이 일관되지 못한 면이 있었지만, 교과서에 일절 한자를 표기하지 않았던 기간은 단 2년뿐이었다.

 

그러므로 한글 전용이 한자 경시나 배격으로 번진 것은 국어 순화 운동의 잘못된 부작용 탓이기도 하다. 어문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한글 전용의 의미를 올곧게 세우지도 못한 채, 그때그때의 사회 분위기에 휩쓸린 일방적/강압적 태도와 위세가 문제였다.

 

이러한 일방통행식 한글 전용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한 반성은 한자 교육의 중요성으로 이어졌는데, 그 시기는 묘하게도 강압적 군사문화가 사라지는 때와 맞물린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한 움직임이 싹텄고, 군사문화의 잔재가 완전히 씻긴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서 제자리를 잡았다. 도로표지판에 한자가 병기된 것도 그때부터였고, 공문서에도 다시 한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자 병기가 제도적 문화적 뒷받침을 받으며 제대로 틀을 잡은 것은 국가 기관인 국립국어원이 최초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1999)이 발간되면서다. 그 뒤 <국어기본법> 제정(2005)으로 이어지면서, 한글로 쓰되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한자나 외국어로 병기할 수 있도록 하는 국한(國漢) 병기 안이 계속 우리나라 어문정책의 근본 뼈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글 전용 및 한자 교육과 관련된 우리나라 어문 정책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한글 전용은 처음부터 유지되어 온 근간 정책이었고, 한자 교육 문제가 간간이 끼어든 사안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1945한자폐지발기준비위원회발족. 미 군정청 : 한글전용 지시.

1948한글전용법공포. =>문제 규정 :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1949년 국회 : ‘한자사용건의안가결

1950(한자교육 결정. 시행은 1952년부터) 문교부 : 국민학교 한자교육 결정. 상용한자 1,200자 및 교육한자 1,000자 선정

1952년 국민학교 4학년 이상 국어교과서에 교육한자 1,000자를 괄호 안에 병용.

1954년 대통령 : 한글전용 지시

* 한글파동 : 1953년 철자법 개정을 대통령이 명령하여 19547월 공포된 정부의 한글 간이화안(簡易化案)’을 중심으로 빚어진 일련의 문화적 사회적 파동. 1955년까지 전국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키자 이 안은 철회되고 한글파동은 일단락됨.

1955한글전용법재발표. 중학교 한자 교육 정착

1956국민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서

1957상용한자 1,300 발표. ‘한글전용 실천요강공표.

1958년 문교부 : 각종 문서, 간판, 관청 인장 등의 한글전용 지시

1961년 혁명정부 : 한글전용 지시. =>1962한글전용안1집 발표

1964··고교의 상용한자교육 결정.

1967년 대통령 : 한글전용 지시

1968(교과서 내 한자 폐지. 시행은 1970년부터 2년 간) 정부 : ‘한글전용5개년계획안발표. 상용한자 폐지 및 교과서 한자 전폐. ‘한글전용연구위원회설치.

1970한글전용법개정 공포. 각급 교과서 한글 전용으로 개편.

1971년 여러 학술단체에서 한자교육 부활을 촉구하는 건의문 제출

1972(한자 교육 부활) 문교부 : 중학교 한자교육 결정. 한자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확정/공고. 중학교에 한문 과목 독립. 전국 39개 문화단체연합회 : 한자교육 반대 건의문 제출.

1974년 문교부 : 중고등학교 교과서 한자병용 결정. 대한교육연합회는 국민학교에서도 한자교육을 실시할 것을 건의.

1976년 대통령 : 국어순화운동 지시. =>‘국어순화추진대책위원회구성. 한국방송윤리위원회 방송용어자문위원회에서는 방송용어심의안1집 간행

1983년 문교부 : 국어순화자료집(6,800단어) 배포.

1992년 국무총리 훈령 행정용어 바르게 쓰기에 관한 규정공포/시행

1985고등학교용 국어문법통일안발표. =>한글전용 표기 방식 채택.

1986년 개정된 외래어표기법공포

1988한글맞춤법표준어규정완결/공포.

1999년 국립국어원 : 표준국어대사전발간(한자 병기) => 2002표준국어대사전웹 초판본, 2008년 웹 개정판본 출시

2005<국어기본법> 공포/시행. =><한글전용법> 폐지.

 

[참고] 한글 전용과 국한 병기 측의 주된 논쟁 사항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측과 국한 병기(國漢倂記.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한자 표기)를 주장하는 쪽 사이의 논쟁 내용을 다 다루려면 몇 권의 책자로도 모자란다. 여기서는 그 주된 논쟁거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양측의 의견을 요약하는 정도로만 짚어보기로 한다. 주장과 반박의 순서로 실었는데, 국한 병기 측의 주장에 대한 한글 전용 주장 측의 반박이 주다.

 

-훈민정음 창제 이유와의 부합

국한병기 측 : 한글(훈민정음)은 한글로만 글을 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한자를 보급하기 위한 보조 도구로도 사용하기 위해 창제되었다.

한글전용 측 : 한자음 표기에 훈민정음이 사용된 것은 현대의 한자 교육에서도 한글로 음훈을 표기하듯이 폭넓게 활용한 것일 뿐이다.

-한국어에서의 한자어 비율

국한병기 측 : 한국어의 대다수(70% 가량)가 한자어.

한글전용 측 :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국립국어원, 2002)를 보면 한국인의 한국어 낱말 사용 비율은 고유어 54%, 한자어 35%, 외래어 2%.

-역사적 자료의 이해 수단

국한병기 측 : 수천 년 동안 한문으로 기록되어 온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자가 필요하다.

한글전용 측 : 역사를 배우는 사람은 한자를 알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반인들은 한자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시각적 가독성(可讀性)과 문해성(文解性. 글을 읽고 이해하는 성질)

국한병기 측 : 한자어는 고유어에 비하여 가독성이 높아 시각적으로 얼른 쉽게 구분이 되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글전용 측 :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획이 많고 복잡한 한자가 전혀 언어적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조어력(造語力. 말을 만드는 힘)과 응용력

국한병기 측 : 한자는 조어력과 응용력이 높다. 한자 교육이 절실하다.

한글전용 측 : 한자는 직관적이지 못하여 조어 단계가 복잡하며 동음이의어를 양산한다.

-지능 개발과 두뇌 발달 효과

국한병기 측 : 표의문자인 한자는 연상을 통해 암기함으로써 두뇌 발달을 촉진.

한글전용 측 : 표의문자가 지능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한자문화권과의 공생/협력

국한병기 측 :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고립되고 낙후되지 않으려면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관광객을 위해서라도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

한글전용 측 : 중국에서 쓰이는 간자(简字)체와 일본에서 쓰이는 신자체(新字体)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정체자(正體字)와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맹률에의 영향

한글전용 측 : 한자를 섞어 쓴다면 문맹자의 비율이 인도처럼 높아질 것이다.

국한병기 측 : 국제연합 개발계획(UNDP)의 문해율(文解率. 글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의 비율. 문맹율의 상대어) 통계에 따르면,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과 한국의 문맹률은 비슷하다. 문해자(文解者)의 비율은 초등교육에 의한 것이지 한자 때문이 아니다.

-한자 병기와 표현력

국한병기 측 : 한자의 도움을 통해 글의 표현력을 더 잘 풍부하게 살릴 수 있다.

한글전용 측 : 우리글이 한자에 의존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참고] 한글 전용과 풀어쓰기 및 모아쓰기

 

복잡한 받침 따위를 따지지 않고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풀어서 적는 것을 풀어쓰기라고 한다. 이를테면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써라소리 나는 대로 푸러 써라로 표기하는 것이나, ‘묽은 죽물근 죽으로 적는 것 등이 풀어쓰기의 예다. 한글 전용 주장의 바탕에 깔린 것 중의 하나가 이 풀어쓰기다. 풀어쓰기를 하면 읽기와 쓰기가 쉽고 기계화가 용이해지며, 철자법도 간편해지고 한자 폐지를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풀어쓰기를 주장하거나 선호하는 입장은 한글이 표음문자라는 인식하에 대니얼 존스(D. Jones. 1881~1967. 케임브리지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저명한 음성학자가 된 사람. 영국파 실용음성학 확립에 공헌했다)가 주장하는 표음주의를 신봉하는 편이다. 표음주의에서는 문자는 소리의 대행물이므로 소리와 가까울수록 좋다. 표기를 보고 그걸 이해하는 과정에서 음성신호로 변환하는 것이 필수라고 본다. (미국의 구조주의 언어학까지 내려온 생각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이기문 선생이 존스 주장을 따르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뀐다.)

 

그러므로 한글 전용 측에서는 어차피 소리로 환부호(換符號)[변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굳이 한자를 쓸 필요가 있느냐 한글로만 [풀어] 써도 충분하고 오히려 독해하기에 더 낫다고 하면서, 이 표음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내세운다. 이러한 주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한자를 쓰지 않기 시작한 신문·잡지의 간접적인 호응을 응원군으로 삼게 되면서, 현실화의 속도가 붙었다. 그리된 데에는 한글 교육 세대가 많아지면서 한자를 섞어 쓴 출판물이 선호되지 않게 된 점과 1990년대 초반부터 개인용 컴퓨터와 PC통신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글 문서들이 광범위하게 작성통용되어 한글 전용의 현실성이 자연스럽게 실증된 데에도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이 풀어쓰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례로 서구에서는 도리어 우리의 이나 과 같은 꼴에서 보이는 모아쓰기를 극찬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모아쓰기가 표음문자인 한글에 표의주의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된 이상적인 형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 모아쓰기는 음소문자(표음문자 가운데 음소적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문자. 한글, 로마자 따위)인 한글로 하여금 단어문자(한 문자가 하나의 단어가 되는 문자.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가 갖는 장점인 표의성(表意性)을 얼마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모아쓰기야말로 한글의 특징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이 되며, 한글의 실용적인 효용을 한층 더 높여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얼음과 같은 글자는 그 모양이 독특하여 풀어 썼을 때보다 훨씬 더 한눈에 어떤 단어를 가리키는지를 알게 해 주어 마치 단어문자를 볼 때와 같은 효과를 준다. 이것이 바로 모아쓰기가 거두는 부가적 효과이다.

 

이러한 모아쓰기의 효과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프라하학파의 바쉐크(Vachek)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문자는 소리[음성 신호]로 환부호(換符號)[변환]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바로 연결된다. , 문자를 아이콘(그림단추)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 문자와 같은 기호들을 볼 때 소리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 의미와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듯이, 문자에도 그런 아이콘과 같은 기능이 있다는 주장이다. 왜냐, 문자는 귀가 아니라 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참고] 이와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국어학개설(이익섭, 1986) 참조.

 

풀어쓰기와 모아쓰기의 대립 문제를 여기서 더 논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모아쓰기는 문자가 만들어지던 한글 창제 당시부터 적용된 문자 제작의 뼈대였기 때문이다. 풀어쓰기에 최초로 매달렸던 주시경 선생의 실패 사례와 북한에서 풀어쓰기를 시도하다 좌절한 김두봉 선생의 경험도 좋은 반면교사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혼란이 야기되어 일대 사건으로까지 번졌던 1953년의 한글파동 또한 모두 이 풀어쓰기의 부작용과 관련되어 발생된 것이었다. 그런 쓰디쓴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풀어쓰기는 문자 개혁과 맞물리지 않고는 고려될 수 없는 사항인데, 우리의 한글은 문자 개혁 대상이 아니다. 일본어에서의 풀어쓰기 시도라 할 수 있는 로마자 표기 개혁안이 금세 사그라진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 위의 내용은 근간 예정인 가제 <우리말 힘이 밥심보다 낫다 - 익혀서 남도 주자>에 수록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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