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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총통’과 대한민국의 ‘대통령’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5. 2. 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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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총통과 대한민국의 대통령

 

[] 2013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칭화대(国立清华大学)에 들러 중국어로 연설을 하여 참석자들에게 더욱 깊은 감명을 심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중국 신문 제목을 잠깐 보았는데, 박 대통령의 중문 표기가 한국 총통 박근혜(韩国总统朴槿惠)’라고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버젓한 공식 호칭이 있음에도 한국 총통이라고 표기한 것이 좀 무례하다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혹시나 타이완에서 사용하고 있는 총통 호칭과 연관하여 우리를 다소 낮춰보는 그런 의식이 반영된 표현은 아닌지요?

 

[] ‘대통령대신 총통(总统)이라는 표기만 보아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중국어에는 大統領이란 낱말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수 있을 듯하네요. 예를 들어 히틀러가 살아 있을 때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고 가정해 보지요. 우리에겐 ‘Fuehrer’를 뜻하는 말이 없기 때문에 총통(總統)’이란 번역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되겠지요? 가까운 일본 수상의 예를 들어볼까요. 그의 정식 직함은 '內閣總理大臣(줄여서 '總理大臣')'인데 그가 방한했을 때, '일본 수상 방한'으로 표기하지 '일본 내각총리대신 방한'이라고 적지는 않잖아요.

 

       ‘大統領이나 總統모두 일본인들의 창작 번역 용어인데, 그걸 우리가 수입해서 쓰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 , ’대통령이란 말의 뿌리는 일본어이고, 중국어에는 없는 말이며 대통령을 뜻하는 중국어는 총통(总统)’이기 때문에 그리 표기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大韩民国이란 정식 국가 명칭 대신에 韩国으로 쓴 것은 미국의 예를 들면 빠를 거여요. 미국 매스컴들은 우리나라를 표기할 때, 지금도 99% ‘South Korea’라고 하지 ‘Republic of Korea'라고는 하지 않잖습니까. 그걸 중국식으로 적으면 南朝鮮이나 南韩이 될 텐데, 그런 말 대신 韩国으로 표기해 준 것만도 적지 않은 대접이라 해야겠지요. 참고로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정식 나라 이름이 '大韩民国'이라는 제대로 아는 이들은 10%도 안 된답니다(이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나옴).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우리나라에서 영국의 정식 국호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가 되겠지요.

 

중국에서 大統領대신에 총통(总统)’이라는 표기가 쓰이게 된 데는 역사적으로 좀 복잡한 사정이 있답니다. 상세한 내막(?)은 좀 긴 편이므로 아래에 그 내역을 따로 적어 설명드릴게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 신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은 南朝鮮 总统(남조선 총통. 总统總統의 중국식 간자체 표기)’으로 표기되었다. 그 뒤로 韩国 总统(한국 총통)으로 표기하면서 나라의 호칭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总统 朴槿惠(총통 박근혜)’라고 적는다. ‘朴槿惠 大統領(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어떻게 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大統領이란 표기는 중국어에 아예 없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大統領이라 적으면 현대의 중국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글자의 나열일 뿐이다.

 

일본에서 大統領이라 쓰고 だいとうりょう(다이토오료오)’라 읽는 이 말. 大統領이란 말은 president라 표기되는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 관직명을 자기네 말로 번역하기 위하여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군사문화 토양을 기초로 해서 창작한 낱말이다. , ‘大統領이란 표현은 일본산이다. 원산지증명서를 떼어 보면 메이드 인 저팬이 선명할 일제(日製) 용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말의 뿌리를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덥석 수입(?)해서 그저 일본어 한자를 한글 표기로만 바꾼 채 대통령(大統領)’이라 쓰고 읽어 왔다. 그게 상해 임정 때부터니까 이제 백여 년이 되어간다.

 

중국에서는 국가원수(‘国家元首’)라는 말은 있어도 국가원수에 해당되는 大統領이란 이 일제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大統領이란 의미로 쓰이는 중국어가 바로 总统[zǒngtǒng](총통)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뜻할 때 韩国 总统이라 표기한다. 이를테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중국에서는 美国总统选举’(미국 총통 선거)라고 적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식이다. 이처럼 그 나라의 수장(首長. 위에서 중심이 되어 집단/단체를 지배통솔하는 사람)이나 각 부의 장()을 이르는 명칭은 나라마다 다르다. 각국별로 그 나라의 실정에 부합되는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가원수로 Präsident(편의상 대통령으로 번역)가 있는 독일에서는 총리(總理)연방 재상(聯邦宰相)이라는 뜻의 ‘Bundeskanzler’라고 일컫는데, 영문으로는 (German) Chancellor’(宰相)라고 표기할 정도의 독특한 명칭이다. 대통령은 의례적 권한만 갖고 있긴 하지만 의회에 대하여 형식적으로는 총리의 추천/임명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 독일 총리를 이르는 ‘Bundeskanzler’‘Bundes+kanzler’에서 온 말로 ‘Bundes’연방을 뜻하고, ‘Kanzler(영어로는 Chancellor에 해당. 여성은 Kanzlerin.)’국정 관리자에 해당된다. 독일 총리가 실질적 국정 전체를 총괄하고 통할하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되기 때문에, 최고 행정관 총리로서의 역할에 걸맞은 이름으로 ‘Kanzler’가 채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 200511월에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정식 직함 표기는 독일연방공화국 연방()재상(Bundeskanzler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다. 사립대학교 총장, 재단법인 이사장 등을 영어로 chancellor라 부른 것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주된 역할이 대학이나 재단의 재산 총괄 관리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편의상 총리수상이라는 보통명사로 뭉뚱그려 부르는 다른 이들 역시 그 사정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일본 수상’(또는 총리)으로 약칭하는 인물은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또는 總理大臣’)이 그 나라에서 불리는 직함이다. ‘總理大臣이 내각 내의 각 대신*의 임면권까지 행사하면서 국정 전반을 괄 통(統理.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림. 통치)하기 때문이다. [참고] 일본의 대신(大臣)과 같은 이들을 각각 우리나라에서는 장관’, 미국에서는 Secretary’, 영국에서는 Minister’, 중국에서는 부장(部长)으로 호칭한다.

 

흔히 총리라는 이름으로 약칭되는 캐나다와 영국의 행정수반은 prime minister가 그들의 직함이다. 번역어로는 수상(首相. 내각의 우두머리)’이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운 것이,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뽑힌 장관들 중 가장 으뜸가는 이(우두머리)라는 게 원래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상(首相. prime minister)’이라는 말은 의원내각제 국가에 적합한 호칭이다. 정권을 잡은 쪽에서 꾸린 내각에 들어와 국정을 다루는 무리 중에서 우두머리를 뜻하니까... 선거에서 이긴 정당의 대표가 그 자리를 맡게 되면서 장관들을 임면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 수평관계가 깨지고 상하관계로 바뀌는 바람에 본말이 전도된 감이 있긴 하지만, ‘내각(內閣)’을 뜻하기도 하는 영어 캐비닛(cabinet)은 본래 위아래 구분이 필요 없는 집기들을 한꺼번에 담아두는 수납장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중국으로 돌리자. 중국의 국가원수는 国家主席’(국가주석)이라 하고 영문으로는 ‘President’라 표기한다. 뒤에 좀 더 상세히 다루겠지만, 사실 ‘President’에 가장 근접하는 번역 용어가 주석(主席)이다. President는 모임이나 회의를 주도하는 자리에 앉아 주재(主宰.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하는 주된 사람이고, ‘주석(主席)’은 상하 구분 없이 앉은 데서 주가 되는 자리라는 뜻이 본래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의장이나 총재등도 경우에 따라서 영문에서 president로 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무총리 격인 행정수반은 国务院总理’(국무원 총리)라 하고 영문으로는 ‘Premier’를 쓰는데, Premier는 다른 나라에서 정당제를 기반으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어 쟁취하는 직함인 Prime Minister 등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임명제(혹은 추대제)와 가까운 편이다. [참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主席)의 경우 중국과는 달리 Premier를 썼다. President에는 미국식 제도 냄새가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유일적 영도이자 사활적 사상의 주체이면서 최고 존엄으로서 무책(無責)의 지도자인 김일성에게 수평적 의미의 president를 사용하는 것은 결례라 하여, ‘최고/제일의 뜻이 들어있는 Premier를 써서 격상시키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은 북한의 어느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절대 권력자였고, 그것이 2대에 걸쳐 세습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중국에는 大統領이란 표기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韩国 总统(한국 총통)이라는 표기만 보고 그것을 성급하게 외교적 무례(?)니 뭐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훨씬 더 손해다. 중국인들의 역사 속 언어까지 끄집어내면 우리의 대통령얘기로 간신히 연결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단견(短見)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리 해봤자 결국 중국에서의 대통령이란 기껏해야 군사령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대통령이란 그들의 옛 벼슬 이름인 통령(統領)’에 큰 대 자 하나를 덧붙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청나라 후기에 등장하는 통령(統領)은 여단장급 무관 벼슬의 명칭이었고, ‘통제(統制)는 사단장급이었으며, ‘통대(統帶)는 군단장급이었다.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상관이었던 우창칭(吳長慶)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統領)'이었다.

 

그러니 없는 말까지 만들어 억지로 大統領으로 표기해 달라고 해 봐도, 중국에서는 그 자리가 잘해야 군사령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韩国 总统(한국 총통)표기를 문제 삼아 우리 방식의 표기를 관철시켜 봤자 손해인 것이다. [계속]

[정리]

총통[总统] : 중국에서 대통령을 이르는 말.

大統領(대통령) 국가원수인 president를 이르는 일본의 번역 용어.

연방재상(聯邦宰相. ‘Bundeskanzler’) : 독일에서 총리를 이르는 명칭. 영어로는 (German) Chancellor로 표기.

재상(宰相) :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 이상의 벼슬. 또는 그 벼슬에 있던 벼슬아치. 본디 ()’는 요리를 하는 자, ‘()’은 보행을 돕는 자로 둘 다 수행하는 자를 이르던 말이었으나, 중국 진()나라 이후에 최고 행정관을 뜻하게 되었음.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줄여서 總理大臣) : 일본 수상의 정식 명칭.

수상(首相) : 내각의 우두머리. prime minister.

주석(主席) : 주가 되는 자리.

주재(主宰) :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Premier : 중국의 행정수반인 국무원총리(国务院总理)’와 김일성 주석의 영문 표기

통령(統領) : 청나라 때 여단장급 무관 벼슬의 명칭.

통제(統制) : 청나라 때 사단장급 무관 벼슬의 명칭.

통대(統帶) : 청나라 때 군단장급 무관 벼슬의 명칭.

 

* 이 글은 근간 예정의 내 책자, 가제 <우리말 힘이 밥심보다 낫다 - 익혀서 남도 주자>에 수록된 것으로 이와 관련된 후속 논의 글이 네 편 정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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