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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 : ‘대통령’과 ‘대권(大權)’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5. 3. 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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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 : ‘통령대권()’

 

[]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든지 하면 흔히 대권(大權)’에 도전한다고들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때의 대권(大權)’이란 권력을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눈 것 중에서 큰 편, 곧 큰 권력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가요, 아니면 통령의 /권력에서 한 글자씩 따 온 준말인가요?

 

[] 좋은 질문이십니다. 그냥 넘기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지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후자입니다. 이 나라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권한을 줄여서 대권(大權)’이라 하지요. , ‘대통령(統領)의 권한()’의 준말이 대권(大權)’인데, 법적 권한이라는 점에서 중립적인 보통명사랍니다.

 

      그런데 이것을 (), (), ()’를 나타낼 때의 한자와 같은 큰 대() 자를 써서 표기하다 보니, 권력 중에서도 대소가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게도 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더구나, 이 나라의 상황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마치 무소불위의 대형 권력인 것처럼 읽히곤 해서 그런 생각을 부채질하거나 굳히게 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법적 권한일 뿐인 대권이 심지어는 기업이나 기업인의 생살여탈까지 좌우할 정도의 초법적 권력으로 인식되거나 행사되어 온 데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순박한 진리가 당사자에게는 뜻밖의 보탬수로 (그 반면, 국민에게는 대악수로) 작용한 탓도 있지요. 그것도 매스컴들이 앞장서서 큰 대() 자만 부풀리는 바람에요. 아래에 그 정황을 대충 적겠습니다.

 

초등생들에게 물었다. ‘통령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뜻이겠느냐고. ‘엄청 힘이 센 사람’, ‘최고로 높은 사람’, ‘힘이 엄청 세고 최고로 높은 대장’, ‘제일 무서운 사람에다 무엇이든 맘대로 할 수 있는 사람까지 나왔다.

 

함축하면,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힘의 상징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 자리여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로 힘이 센 사람 쪽. 아이들에게 그렇게 비쳐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란 말은 어른들에게도 비슷하다. ‘제왕적 대통령,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에다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까지 좌지우지하는 대통령등에 담긴 뜻들이 그렇다.

 

[참고]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과 생사여탈권 : 죽고 사는 것은 생사(生死)이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은 생살(生殺)’. 죽고 사는 것을 맘대로 하는 권리는 신()도 행하기 어려운 권리지만, 죽이고 살리는 권리, 생살권은 쓸 수 있는 말. , ‘생사여탈(生死與奪. 살고 죽는 것과 주고 빼앗는 것)’이란 말은 있을 수 있지만 생사여탈권은 어불성설이어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만 맞는 말임.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 국민들이야 한 표가 필요할 때 딱 그때 한 번만 빼고는 늘 만만하기 짝이 없는 똘마니 정도의 통치 대상일 뿐이며, 자신이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최고 대장이기에 아무도 자신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기는 고사하고 자신 앞에서 설설 기는 무지렁이들 정도로 여기면서, 시쳇말로 자신의 목을 자를 건 어떤 것도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역사가 두 눈 치켜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그 자신만 모른다. ‘대통령 병()’이 키운 착각들이다. ‘대통령이란 말 속에 무소불위의 힘이 있다고 내내 그렇게 잘못 알고 자라온 탓이다. 말이 생각의 씨가 되고, 행동 선택의 나침반이 되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를 아예 (大選)*’으로 줄이고, 대선에 나서거나 고려하는 일 자체를 (大權) 도전이라거나 권을 꿈꾼다.’라고 표현한다. 그것도 매스컴이 앞장서서 그래왔다. 그런 못된(?) 말을 퍼뜨린 주범들이 바로 민중 또는 사회의 목탁(木鐸. 세상 사람을 깨우쳐 바르게 인도할 만한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하는 말)이라는 매스컴들이었다. 잘못 이끌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길로 민중과 역사를 이끈 셈이다. [참고] 중국에서도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를 뜻할 때 大选[dàxuǎn](대선)이란 말을 쓰지만, 이때의 큰 대() 자는 우리와 같이 대통령을 줄인 말이 아니라 전국에서 대규모로 치러지는 큰 선거, 곧 총선거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어서 우리의 쓰임과는 달리, 단순한 수식어일 뿐이다.

 

그 어법만 보면 마치 권력에도 큰 권력과 중간 권력, 그리고 작은 권력이 있는 듯만 하고, 당연히 있어야 할 듯도 하다. 하지만, 여태까지 대권(大權)’ 말고 중권(中權)’이나 소권(小權)’까지 친절하게 언급하는 매스컴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오직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에 대해서만 (하도 당연한 말이어서 새삼 어떤 생각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대권이란 말로 부풀리고 추켜세웠다. 대통령의 그것을 아주 특별한 권력으로 포장하는 데에 매스컴들이 나서서 공헌하고, 그걸 온 나라에 퍼뜨리는 데에도 수훈 갑일 정도로 대활약을 해왔다.

 

매스컴은 가장 뜨거운 것일수록 그것을 가장 냉정하고 공정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어내야 한다. 그런 매스컴이 거꾸로 선동적인 어법으로 과대 포장을 해왔다. 그 바람에 이제는 사전에까지 대권(大權)이란 말이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국가의 원수가 국토와 국민을 통치하는 헌법상의 권한이라는 뜻으로 떡 하니 올라와 있다. 사전은 언중들의 사용 빈도와 분포도, 그리고 관행의 힘에는 한없이 약한 존재다. 하도 매스컴들이 떠들어대는 말이다 보니 사전에 올리지 않을 수는 없고, 올리려고 보니 그 어원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지라 매스컴들이 부풀리고 부추긴 내용과는 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매스컴들의 이러한 선동적 오발탄의 시발은 단연코 대통령에 들어 있는 큰 대() 때문이다. 그 글자 하나에 현혹되어,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지식인 집단으로서의 언론인들이나 학계 인사들까지도 본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게 되었다. ‘통령중에서도 제일 높은(혹은 힘이 있는) 통령이라는 단순한 수식어에 불과했던 큰 대() 하나가 이제는 수식어의 수준을 넘어 통령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권(大權)’에 보이듯 통령이 없이도 () 만으로 행세를 하고 있을 정도인데도.

 

그렇다면 큰 대() 를 떼어낸 통령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통령이 처음부터 이처럼 문제적이었는지, 아니면 통령은 전혀 문제적이지 않았는데 우리가 통령을 잘못 유지관리(?)해 와서 그런 것인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제라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바로잡을 수 있는 길도 보일 수 있을 터이므로.

 

[정리]

대권(大權) :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권한. ‘대통령(大統領)의 권한(權限)’의 준말.

생사(生死) : 죽고 사는 것.

생살(生殺) :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

생사여탈(生死與奪) : 살고 죽는 것과 주고 빼앗는 것.

생사여탈권 : 죽고 사는 것을 맘대로 하는 권리는 신()도 행하기 어려운 권리이므로 생사여탈권은 어불성설. ‘여탈권의 잘못.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 쓸 수 있는 말.   [계속]

 

* 이 글은 근간 예정의 내 책자, 가제 <우리말 힘이 밥심보다 낫다 - 익혀서 남도 주자>에 수록된 것으로 이와 관련된 후속 논의 글이 세 편 정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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