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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기원과 ‘통령(統領)’

우리말 공부 사랑방

by 지구촌사람 2015. 3. 4.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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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기원과 통령(統領)’

 

통령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는 청나라 후기에 무관 벼슬의 명칭으로 쓰였습니다. 오늘날의 여단장급인 근위영 장관(近衛營 長官)을 이르는 말이었지요. 또 고대 한나라 시대에 북방 흉노 군대의 장군을 통령으로 지칭하는 등 소수 민족 군대의 장군을 비공식적인 표현으로 '통령'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조운선[漕運船. 국가에 수납(收納)하는 조세미(租稅米. ‘세곡(稅穀)’이라고도 함)를 지방의 창고에서 경창(京倉)에 운반하는 데 사용하였던 선박] 10척을 거느리는 벼슬을 통령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세에 통령이라는 말이 쓰인 적이 있는데, 동학란 때였습니다. 동학란이 발발하자 동학의 본부인 북접(北接. 동학 조직 가운데 이대 교주 최시형이 이끄는 충청도 지역의 동학도를 이르던 말)에서 동학의 조직을 동원하여 전라도에 보내게 되는데, 이때의 집정관 사령관이 의암 손병희였고 그 직명이 북접 통령이었습니다. 당시 통령은 동학의 최고위직이 아니라, 교주 최시형이 맡고 있던 종령(宗領)의 아래 직책이었지요.

 

우리나라의 공식 역사 기록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시찰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이헌영이 1881년에 펴낸 <일사집략(日槎集略)>이라는 수신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보이는데, 일본 신문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적은 부분에서입니다. 그 뒤 1884<승정원일기>에서도 고종이 미국의 국가 원수를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president’의 번역어로 1817'두인(頭人)'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래, ‘총리(總理)/국주(國主)/()/수사(首事)/추장(酋長)’ 등의 용어를 뒤섞어 썼답니다. 음역(音譯) 차음 표기로는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bólǐxǐtiāndé]’으로 적기도 하는데, 1883년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민영익이 당시의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서(Chester Alan Arthur. 21대 대통령 1881~85)에게 제정한 신임장에서도 president의 표기를 伯理璽天德으로 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표기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도 유입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는 1870년부터 총통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1875년경 잠깐 출현한 대통령이라는 수입어가 완전히 묻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과 대만 정부에서는 ‘president’총통(總統)’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만 정부는 자국의 국가 원수의 직함으로도 총통(總統)’을 계속 사용하고 있지요. 한편 현재의 중국에서는 앞서 적었듯이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대표적인 일본식 한자어, 곧 배격해야 할 일본어 투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말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이전부터도 쓰였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무라이를 통할 관리하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보통명사였습니다. ‘阿蘇氏 武家의 통령이 되었다에서처럼 무인시대에 소규모의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지칭하는 말로 매우 흔하게 쓰이던 말이 통령이었습니다. 그들이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관 등과 같은 다른 나라의 직위를 설명하는 번역어로 통령을 애용한 것도 그만큼 그들에게는 이 통령이 일상의 언어생활에 익숙한 말이었던 때문이었지요.

 

자신들의 역사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다이묘(大名.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에서 중세에 걸쳐 많은 영지(領地)를 가졌던 봉건 영주. 무사 계급으로서 그 지방의 행정권, 사법권, 징세권을 가졌으며 군사 사무도 관할하였다)’나 막부 시대의 쇼군(將軍. 1192년에서 1868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막부(幕府)의 우두머리)’과 같은 막강한 직책 명칭에 비해서 통령은 그보다 훨씬 하위의 만만한 보통명사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고위직에 대해서조차 그처럼 쉽게, 덜 긴장하면서 작명을 해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함성득 교수는 그의 저서 <대통령학>에서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국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여기서 보듯 사실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

 

그런 연유로 일본은 미국의 ‘president’를 번역하면서도 자신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에 익숙했던 통령이라는 용어에 큰 대()’ 자를 붙여서 아주 손쉽게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일본국어대사전>에는 막부 시대가 끝나기 16년 전인 1852년에 출간된 <막부 외국관계 문서지일(文書之一)>대통령이란 낱말이 처음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미국의 필모어 대통령[13(재위 : 1850~1853). 1848년 테일러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으로 있던 중 테일러 대통령이 죽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온건한 노예 폐지론자] 친서를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아주 간단히창작한 대통령은 아직도 쇼군이 버티고 있는 막부 시절에 채택된 말인데다 그 뿌리를 군사적 용어에 두고 있는 말이어서 권위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며 전근대적입니다. 언어 기원적으로도 군사 문화적 용어이기 때문에 힘을 앞세운 지배와 통솔로 민중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president‘preside(회의/의식을 주재하다/주도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여러 가지 단체/사업체/모임의 장()을 가리킵니다. 독립 당시에 미국이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신대륙에 탈권위적이고 비압제적인 실질적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민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이라는 용어를 배격하고 그 대신 수평적 민주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만든 상명하복 식의 대통령이란 말은 미국에서 사용하려던 ‘president’의 의미를 원래의 목적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번역한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도 중국에서는 가장 잘못된 일본어 투 번역의 대표 격으로 이 대통령이라는 말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기이한 사연을 가진 대통령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불쑥 쓰이게 되었습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 줄거리만 대략 적자면, ‘()조선공화국를 선포했던 한성 임시정부(1919. 4. 23)가 상해 임시정부(1919. 9. 11)에 합병되면서 한성 임정(臨政)의 집정관이던 이승만이 통합 임정의 대통령으로 불리게 되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슬그머니 끼어든 게 이 일본어 투의 president 번역 용어였습니다. 각국에 상해임정 인정 탄원서를 보내면서 이승만이 삽입한 직함이 ‘The President(집정관 총재)’였는데, 임정 내에서 이를 문제 삼자 한 발 물러서면서 이승만이 제시한 것이 일본인들의 번역 용어였던 대통령이었던 것이지요.

 

그걸 임정 요인들이 쉽게 승인하는 바람에 president의 우리말 표기가 대통령이 되어 버린 겁니다. (당시 정작 문제를 삼아야 했던 것은 총재가 아니라 내각제를 근간으로 삼으려는 임시정부 형태에 비추어 ‘president’라는 용어였지만, 영어 표기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뒤로 그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손도 못 댄 채 물려 내려오는 바람에 그대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에, ‘무소불위의 제왕적 통치자로 변질되어 굳어져 가는 것까지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1차적 근원은 군사 용어인 까닭에 군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밖에 없는 통령앞에 손쉽게 ()’ 자를 붙여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데 있습니다. 그리고 2차적 책임은 그러한 일본식 용어를 생각 없이 받아들인 조선인들에게 있고, 마지막 책임은 한국인들에게 있습니다. 애초부터 군사 문화적이어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었던 이 용어를 중간 점검도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통과시키고 수용해온 것은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아래에서 천천히 그 방향을 더듬어 보기로 하지요.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은 일본식 용어입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일본인들에게 아주 익숙했던 군사용어인 통령에다 큰 대() 자만 살짝 얹어 본질을 변조한 번역용어인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 말에 일본의 정신과 혼()까지 깃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최초로 제기한 글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 . . [전략]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용어가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阿蘇氏 武家의 통령이 되었다"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중략]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이래 일본 수상의 참배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의 신사(神社)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예를 들어 '아스카(飛鳥) 신사(神社)'를 설명할 때에도 그 신사를 수호하는 신()으로서의 '대국주신 통령(大國主神統領)'이라는 말이 출현하고 있다. [중략] (이처럼) 일본 신사(神社)를 지키는 신()을 국가수반의 호칭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군사 문화와 일본 문화라는 두 가지 요소는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군사적 성격과 봉건적인 일본 문화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통령'과 같은 용어의 사용은 최대한 지양되어야 할 터이다.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일본 신사(神社)를 지키는 신()'을 우리나라의 국가수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소준섭의 칼럼 <正名論>에서 [프레시안. 2009. 8. 5. ]

 

[정리]

통령(統領) : 청나라 때 여단장급인 근위영 장관(近衛營 長官)을 이르는 말. 조선 시대에 조운선(漕運船) 10척을 거느리는 벼슬의 이름. 동학의 교주인 종령(宗領)의 아래 직책 이름. (일본) 사무라이를 통할 관리하는 우두머리.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bólǐxǐtiāndé] : president의 중국어 음역 표기.

쇼군(將軍) : 1192년에서 1868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막부(幕府)의 우두머리.

大統領(대통령) : 일본에서 막부 시대 말기인 1850년대에, 미국의 필모어 대통령 친서에 쓰인 president를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된 번역어. 그 뿌리는 군사적 일본 문화의 유산인 통령’.

 

 

* 이 글은 근간 예정인 졸저 <우리말 힘이 밥심보다 낫다 - 익혀서 남도 주자>에 수록될 내용의 일부다.

출판사와의 협약에 따라, 이 글의 부분/전부 복사/전재 및 일체의 상업적 활용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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